종합 속보

무지성 무근본으로 쓴거라 좀 조잡하다

사실 요즘 소설 쓸 맛이 안난다

---

인생 살기 좋다.


여기가 무릉도원이요, 에덴동산이자 열반의 경지이니.


천지만물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러 한때 머물렀던 속세를 굽어보니 지금까지의 시간은 덧없음을 느꼈도다.


어제 잠깐 보고 픽, 넘겨버렸던 TS물.


그 당사자가 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몸에 난 잔흉터들과 짜증만 일으키는 상처들이 전부 사라졌다.


소녀의 몸을 확인할 겸 샤워를 하는 중에도, 한 후에도, 상처가 벌어지거나 물이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팔꿈치나 무릎 뒤, 접히는 부분을 문질러대도 피부가 약간 발갛게 되고 뜨끈한 느낌이 들 뿐, 누렇거나 투명한 진물이 배어나오지 않는다.


매일 밤마다 손톱을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깎아대고 갈아댈 필요도 없다.


아침에 모래사장에 누워 있는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필요도 없다.


침대는 언제나 깔끔했고, 손톱은 남들처럼 적당한 길이로 길렀다.


모두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아직 익숙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들이 내게 변해준 만큼은 나도 변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구부정했던 자세도 고치고, 이왕 유학 온 거, 열심히 살고.


가져다 버리려던 책들을 다시 책상 위에 펼치고, 공부 계획표도 짰다.


이제 미소를 짓는 건 익숙해졌고, 대화도 5분 정도는 쉽게 이어갈 수 있다.


미소녀 보정인지, 영어 발음도 꽤나 유창해진 것 같다.


이제 땀을 흘려도 샤워를 할 수 있으니까, 운동도 시작할 수 있다.


기분 좋은 피부의 열기가, 에어컨으로 조절되는 체외의 찬 공기와 맞닿는다.


어쩌면 감기에 걸릴 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대수가 아니다.


그저 지금 당장,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배드민턴을 칠 수 있다는 상황이, 꿈만 같았다.


이게, 나를 제외한 모두가 보장받는 기본적인 삶이구나.


공부 성적도 쑥쑥 올라서, 12학년으로 월반했다.


토플? 응, 115점까진 쉽더라.


분명 어릴 때는 나름 영재 수재 소리 듣던 나다.


노력하지 않아서 망가진 머리는, 노력하면 다시 돌아온다.


AP Calculus도 듣기 시작했다.


수학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건, 사실 처음이 아닐까.


나는, 원래 이런 미래를 살 수도 있었구나.


기뻐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수월하게 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SAT를 치고, 얼마 후에는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문 대학교에 들어갔다.


첫 등교했을 때 본 학교의 거대한 담장에 얽힌 담쟁이넝쿨이 떠오른다.


이미 여자의 몸에 완전히 익숙해진 나는, 그 곳에서 내 사랑도 찾을 수 있었다.


훤칠하니 잘생긴 금발에 푸른 눈의 토종 미국인 선배와 눈이 맞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엔, 같이 집을 구해서 동거까지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서, 속도위반까지 갈 뻔했지만 운이 좋아서 갑자기 애가 생겨버리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 자궁의 안에 차오른 정액의 따스함을 느끼며, 한참 동안이나 혀를 섞고 있자니-


그가 내게 말을 건넸다.


"...일어나."


"ㅇ, 으응...?"


한국어는, 오랜만에 듣는다.


특히 내가 한 번도 한국어를 가르쳐준 적이 없던 사람한테 듣는 건, 더욱 신기하다.


나를 위해서 한국어를 따로 배워준 걸까.


그런 거라면 좀 감동인데.


"일어나세요."


그렇다기엔, 발음이 너무 유창한데.


이게 뭐지?


"방금, 뭐라고-"


"환자분, 일어나세요."


조현병 환자들은, 자신이 만든 현실에 갇혀 산다.


자신이 만든 현실 바깥의 존재인 우리가 그 안에 개입하려 하면, 익숙하지 않은 자극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 환자도 같은 케이스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24년간 달고 살았고, 17년 되던 해에 결국 미쳐버렸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미국의 유학생이며, 그곳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의사인 나라도, 조현병에 걸려보기 전까지 그 느낌을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으으, 깨우지 마아...."


"환자분, 여기는 정신병동이고, 환자분께서는 조현병을 앓고 계세요."


"뭐...?"


"지금 보이는 모든 건 환자분의 환상입니다."


"뭔 농담을, 그렇게 재미없게 해..."


이 환자도, 가망이 없어 보인다.


진단서에 빨간 펜으로 크게 엑스 자를 그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보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다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새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자기 자신에게만 축복인 만큼, 남들의 행복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주술에 가깝다.


육체의 병은 자신을 힘들게 하지만, 정신의 병은 남들을 힘들게 한다.


어쩌면, 이 환자는 육체가 고통받으며 느꼈던 고통을, 자신의 환상 속에서 보상받으려 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