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빌런.
보통 소설이나 만화로 1화만 던지고 도망치는 작가, 아니, 빌런을 의미한다.
장편으로 이어가지 않는 시점에서 작가라 부르기에는 너무 하찮고,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히어로라기 보다는 빌런에 가깝기에.
[다음화 기다립니다]
[오 이거 팝콘각이구마잉]
[재밌어요]
[더가져와!!]
[문열어!]
[아니지, 다가져와!!]
...
[작가님. 다음화 언제나와요?]
[문열어!]
[문열어!]
[문열어!]
[문열어!]
ㄴ[기억할게!]
...
[이세상에는 1화만 쓰는 수많은 씹쌔끼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 씹쌔기들의 명단입니다]
[후원박으려고 했는데 후원 거부되있네 ㅡㅡ]
[문열어!]
[이거 다음화 언제 올라와요? 재밌는데]
ㄴ[작가가 런해버림]
[작가 닉네임이 1화빌런... 이건 귀하군요.]
ㄴ[닉값하네...]
ㄴ[선넘네...]
[문열어!]
[이새끼 IP 보니까 VPN이네.]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가,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순간이나 복선이 나오는 순간에 1화가 끝나버리고서 다음화가 나오지 않는 정말로 흉악무도한 빌런.
누군가가 말했기를, '이세상에는 사람을 빡치게 하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다가 말을 끝는 것이고...'라고 했던가.
그런 만큼 이야기를 중간에 끊어버리는, 그것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끊어버리는 분노는 성인군자도 키보드로 작가를 후려치게 만드는 분노를 일으킨다.
드륵, 드륵.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그런 1화빌런 일을 하는 입장에서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장면만 생각이 나고, 그 이상 전개가 생각나질 않는데 뭐 어쩌라고."
대학교 생활 도중에 틈틈히 시간이 나서 쓰는 소설... 아니. 활자덩어리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스스로 작가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럽다.
글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기나긴 이야기를 쓸 능력도 없으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글로 옮기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겨우 그 정도가 끝.
나름대로 소설에 대해 공부해보겠다고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작법과 관련된 내용들을 읽어봐도 내 실력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마치 장면을 쓰는 것 정도가 내 실력의 끝이라는 것처럼.
빈약해도 나름 흥미로운 설정을 짜고, 흥미로운 장면을 구상하고서 그 내용을 1화로 삼아 여기저기 사이트들에 올려버리는 것. 그게 내 한계였다.
그 다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능력은 없다. 다음 장면은 구상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를 이어갈 능력이 없으니까.
용사가 검을 뽑는 것과, 중간에 동료가 배신하는 것. 동료에게 사연을 넣고 중간중간 복선을 넣는 등의 소설이 필요한데, 직접 써도 그 이상은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쓰고,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만들어진 글은 활자덩어리를 넘어서 활자였던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올리지도 못하고 그저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뿐.
작가라고 불리기도 뭣한, 그저 1화에 닥치는대로 클리셰들을 때려박아 최대한의 재미를 강요하는 소설의 도입부에 불과한 것을 쓰고서.
그 뒤를 이어갈 의지도, 능력조차 없기 때문에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내 한계였으니까.
장편은 커녕 단편도 쓰지 못해 1화를 쓰는 것이 한계인 나의 한계.
혹시 IP를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을 피해 VPN이나 유동 IP를 이용해 글을 올리고 노는 것이 끝.
...그래도 이렇게 내가 직접 만든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람들이 댓글로 '더 내놔!'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음.
솔직히 말해서 즐거웠다.
'나는 다른 사람을 빡치게 할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다음화를 찾으며 울부짖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저열한 쾌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것.
겨우 그 정도가, 재미없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내가 찾은 쾌락이었다.
책임 없는 쾌락...이라 하기에는 소설을 쓰는 노력이 들어가니까 책임 있는 쾌락이라고 하자.
솔직히 스스로도 좋은 취미라고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나쁜 취미는 아니다.
1화빌런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읽으며 재미와 흥미를 느꼈다는 뜻이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은가. 물론 그 후일담이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해도, 재미를 느낀 시점에서 순이익은 양수일테니까.
나는 글을 읽고 다음화를 찾으며 분노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으며 쾌감을 느끼고, 독자들은 재미있는 단편을 읽으며 재미를 찾으니 서로 윈-윈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도 다음화와 작가를 찾으며 절규하는 댓글들을 읽어보던 도중에, 새로운 댓글이 올라왔다. 올린지 꽤 된 글인데도 여전히 댓글이 달리는 것에 신기해하며 댓글을 읽는데.
"...응?"
이상한 댓글이었다.
[ㅇㅇ(127.0.0.1): 완성방지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완성방지위원회?
가끔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이야기다.
쓰던 소설을 [완성]... 그러니까 연중해버리면 저놈들이 와서 작가를 소설 속으로 전생시켜서 이야기를 굴러가게 만든다는 무시무시한 위원회.
그 정체는 너무나도 비밀스러워서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와 함께 세계를 지배하는 3대 비밀조직이며 작가를 소설 속 세계를 회귀, 빙의, 전생, 환생 시키는 무시무시한 기술력을 지녔다는 무시무시한 조직이라고 한다. 작가들을 환생시켜 새로운 소설을 발매하는 것과 그 작업을 하면서 들어오는 후원으로 자금을 충당한다고.
뭐, 그래봤자 실제로는 밈에 불과하다.
연재중지를 하거나 리메이크를 하겠다고 선언하고서 돌아오지 않는 작가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아니면, 가끔 나오는 빙의물 소설의 프롤로그에만 등장하는 집단.
피식 웃으며 스크롤을 다시 내리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127.0.0.1...?
유동은 아이피가 두번 나오는거 아니였나?
마침 저 아이피도 대학에서 들었던 컴퓨터 교양수업에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규약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자기자신을 호출하는 주소였던 것으로...?
깜짝 놀라서 스크롤을 내리려는데, 스크롤이 내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다시 올라갔다.
마치 해킹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스크롤이 보여준 댓글창에는 ㅇㅇ(127.0.0.1)이라는 사람이 새롭게 쓴 댓글이 올라와있었다.
[ㅇㅇ(127.0.0.1): VPN을 쓰신 작가님을 추적하느라 참 힘들었어요^^]
툭.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이 공포 속에 떨어졌다.
해킹, 해킹인건가?
얼마나 시간이 넘쳐나는 쓸데없는 놈들이길래?
VPN으로 아이피도 숨겼는데 나를 찾아냈다는, 그것도 겨우 1화만 쓰고 도망간 나를 찾아내겠다고 그 지랄을 했을 해커에게 속으로 조용하게 경의를 표하며 바로 본능적으로 발을 들어 컴퓨터의 전원을 꺼버리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컴퓨터의 전원은 꺼지지 않고, 휴대폰은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뭐지?
전원 버튼을 다시 눌러도 마찬가지. 휴대폰은 여전히 검은 화면이었고, 모니터는 밝게 빛났다.
지, 지지직ㅡ
[ㅇㅇ(127.0.0.1): 작가님의 과거 기록을 조회한 결과, 1화만 던지고 연중하신 적이 12차례나 되는 악질 1화빌런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심지어 2화도 안올리고 1화만 올린게 12번이라니, 저희 조사반도 굉장히 당황했다고요?]
내가 12번이나 1화빌런 짓을 한 것은 맞지만, 그 중 절반 이상은 유동 IP로 VPN을 이용해서 올렸다.
심지어 노트북으로 써서 이 데스크탑에는 기록이 없는 것도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안거지?
"저, 저기...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해커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넘쳐나고 쓸데없이 의욕과 재능이 넘치는 해커인 것은 분명하니까.
[ㅇㅇ(127.0.0.1): 오해요?]
"네, 네. 제가 1화빌런 짓을, 그러니까, 1화만 쓰고 다음편을 안쓴건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다음화가 안써져서 그런겁니다.]
[ㅇㅇ(127.0.0.1): 흠.]
"기록을 보시면 아시잖아요? 저도 나름대로 2화를 쓰려고 했었는데, 그게 안써져서 그런겁니다. 네. 절대로 일부러 그런게 아니에요."
[ㅇㅇ(127.0.0.1): ...그건 그렇네요.]
그 말과 동시에 모니터에서는 팅, 소리가 나면서 워드창 여러개가 주르륵 열렸다.
...이거 다 휴지통에서 지워버렸을텐데? 설마 지워진 파일까지 복구해버렸다고?
머릿속에서 해커의 위험도가 두세단계는 더 올라갔다. 심지어 지워버린지 1년을 넘어버린 파일까지 그대로 있었으니까.
대체 뭐하는 놈이지?
벗어나는대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야겠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정도로 컴퓨터를 마음대로 매만질 정도면 흔적도 잔뜩 남겼을테니까.
"네, 그러니까, 절대로ㅡ"
[ㅇㅇ(127.0.0.1): 그러면, 쓰게 하면 되겠네요.]
"ㅡ네?"
[ㅇㅇ(127.0.0.1): 저희 완성방지위원회에는 작가님의 창작을 물심양면으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도와드리기 위한 여러가지 지원책이 있답니다.]
"아뇨, 저기, 그러니까. 그 지원책이라는게...?"
[ㅇㅇ(127.0.0.1): 소설을 쓰기 힘드시다면, 수필이라면 괜찮겠죠? 직접 경험한 일이잖아요?]
"...네?"
눈을 깜빡였다.
이 미친 해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그 댓글이 달림과 동시에 모니터가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 80년대 화면처럼 수평으로 선이 그어지면서 지직거리는 기괴한 화면을 본 나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니터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어, 어?
입도 열리지 않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나는 그대로 화면 속으로.
아니.
그 망할해커새끼가 띄어놓은 워드 창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주인을 집어삼킨 화면 속에 새로운 댓글이 하나 올라왔다.
[ㅇㅇ(127.0.0.1): 오늘도 저희 완성방지위원회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렇게, 나는.
"...씨발?"
내가 쓰던 소설 속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왜 여자냐고ㅡ!!"
주인공이 아닌 히로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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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썼던 글을 약간만 수정한 것.
1화빌런을 찾으며 욕하는 여러분들.
다음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작가를 그 안에 빙의시키면 되는?거 아닐?까??요???
TS) 자신이 썼던 1화 단편 속 히로인으로 빙의해버린 1화빌런.
그러나 자신이 빙의한 세계는 1화 단편 하나가 아니라, 자신이 썼던 12개의 단편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끔찍한 혼종 세계였고...
스팀펑크, 중세판타지, 현대판타지, SF 네개 세력이 서로 엮이며 벌어지는 대환장 상황 속에서 본래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