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타이지는 1627년 조선을 침공해 의주성,안주성,정주성을 점령하며 조선을 핀치에 몰고있었는데 그과정에서 북방병력 6000명과 이완,남이흥,전상의 장군이 모두 전사한다.
홍타이지는 3만의 군대로 레알 조선을 끝장낼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늘은 아직 조선을 버릴 생각이 없었는지 2명의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나 홍타이지와 후금군의 앞길을 막기시작한다.
바로 선조대 무신으로 활동한 이립과 정봉수로 2명은 의병을 일으켜 후금군의 배후를 치게되는데 특히나 이립의 활약이 눈부신 편으로 이립은 정묘호란을 대표하는 공세적 전술의 지휘관이다.


정봉수는 평안도 용천에서 4000명의 병력을 모아 용골산성에서 후금군을 요격하기 시작한 무관이자 의병장으로 조정의 지원없이 무려 2개월동안 후금군의 후방을 요격한 숨겨진 조선의 명장이다.
정봉수는 매국노인 장사준을 참살한 동시에 용골산성에서 후금군을 요격하는 동시에 2개월동안 4000명의 병력으로 용골산성을 수성했으며 또한 기병대를 양성해 조선인 포로들을 구출하기도했다.
후금군이 작정하고 용골산성을 조지기 위해 5차례에 걸친 대공세를 모두 막아내는 전공을 기록한 양반으로 정묘호란판 정문무 또는 조선의 김윤후로 불리는 명장중 1명인데 조정의 지원은 없이 4000명 병력과 기병대를 양성했다.
선조가 남긴 유산으로 이양반 인재욕심이 많은 선조가 발탁한 인물로 임진왜란에서 참전했는데 재미있는건 무과에 급제하자 마자 일본군과 싸우고 좀쉬려고 할떄 후금군하고 싸운 일생을 외부의 적과 싸운 인물이다.


후금군이 제일 경계한 인물은 바로 정봉수가 아닌 무관이자 의병장인 이립으로 정봉수의 경우 엄연히 말하면 수성전과 요격을 감행한 수세적 전술을 감행했지만 이립은 후금군을 상대로 공세적 전술을 구사했다.
이립은 1627년 3월 후금군 1000명이 주둔한곳을 공격해 2일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 후금군 200명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으며 3월27일 북위포 전투에서는 후금군 2000명과 전투를 벌인다.
북위포 전투에서 또다시 후금군 200명을 사살하고 수많은 군사물자를 노획한 동시에 공세적 전술로 후금군의 배후병력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우는데 후금군 3000명과 전투를 벌여 공식적으로 400명의 후금군을 사살했다.
배후병력 3000명이 이립이 지휘하는 조선군에게 섬멸당하고 정봉수에게 배후가 요격당하면서 후금군은 급하게 조선조정과 화의를 맺고 명나라와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본토로 철군한다.


조선은 운은 1627년 1년뿐이었는데 공세적 전술로 후금군 철군에 대전공을 세운 이립이 전쟁이 끝난뒤 얼마안되어 사망하고마는 조선조정 입장에서는 대참사가 터지고만다.
이립은 후금군 400명을 사살한 전공을 세운 장수로 홍타이지가 새롭게 조선침공의 걸림돌로 지목한 인물인데 이러한 장수가 전쟁이 끝난뒤 얼마안되어 죽었으니 조선조정 입장에서는 X됨을 감지할만 하다.
이립은 당시 조선군내에서 공세적 전술로 후금군을 상대로 전공을 세운 인물이기에 전쟁준비를 하는 조선입장에서는 필요한 인재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만다.
졸렬한 인조답게 전공을 인정해주지 않다가 영조 12년에 전공을 인정받고 안주 충민사에 배향되었으며 이립이 죽자 후금은 다시 조선침공각을 슬슬 다시 재기시작한다.


용골산성의 전투의 영웅이자 조정의 지원은 단 1도 없이 기병대와 정예병력을 양성해 후금군을 2개월동안 요격하고 용골산성을 수성한 정봉수만이 조선에 남아있었다.
대신들은 정봉수를 북방으로 보내 전쟁준비를 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이괄의난에 스턴이 걸린 인조는 정봉수를 북방이 아니라 후방에만 배치하는 초대형 병크를 저지른다.
정봉수는 전라좌수사,청북방어사등 그야말로 승진은 승진인데 아무일이 없는 후방을 맴도는데 역시나 정묘호란에서의 대전공과 포로구출로 인해 민심이 정봉수를 행해있자 인조는 혹시나 정봉수가 북방에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정봉수를 후방에 배치한다.
인조는 이떄 현장 지휘관들의 군권을 박탈하는 대병크를 치는등 이괄의 난에 스턴이 제대로 걸려 10년동안 대신들의 말조차 듣지않는 폭주상태로 대신들의 전쟁준비 간언을 꾸준히 무시했다.


청나라는 10년동안 조선침공각을 재던중 본인들을 고전시킨 공세적 전술 지휘관 이립과 용골산성 전투에서 유연한 전술운영과 기병전술을 선보인 정봉수등이 10년전에 죽었거나 후방에만 있자 바로 조선침공을 결정한다.
이번에는 평안도를 우회해 한양을 직공했는데 인조가 스턴에 걸려 런을 제대로 못치고 남한산성에 갇혔으며 김준룡,유림등이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등 분전이 있었으나 이떄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가 청군에게 점령당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소현세자,봉림대군이 사로잡히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인조는 무조건 항복을 하는데 청나라군은 정묘호란에서 조선군이 생각보다 잘싸웠기에 이렇게 빨리 무너질줄 몰랐다고한다.


이립의 죽음과 정봉수의 후방좌천은 조선이 병자호란에서 패전한 결정적 원인이 되는데 두사람다 철산에서 군대를 일으켰기에 정묘호란 당시 사로 연계해 후금군을 공격했다.
정봉수가 용골산성에서 기병대를 이용해 후금군의 후방을 요격하면 이립이 지상군을 이끌고서 혼란에 빠진 후금군을 섬멸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후금군은 이러한 조선군의 전투방식에 꽤나 많은 병력들을 잃었다.
그런데 이립이 죽고 그나마 실전경험이 많은 정봉수마저 후방으로 좌천되면서 조선군 지휘부에 경험이 적은 지휘관들이 배치되면서 결국 강화도와 한양이 함락당하는 대참사가 또 벌어지며 인조는 항복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