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나의 첫 사진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 날. 병실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무언가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물려주신 아날로그 카메라로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를 찍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죽은 것들을 찍기 시작했다. 밟혀 으스러진 지렁이, 내장이 튀어나온 새, 굶어 죽은 고양이까지. 내 방은 온갖 죽은 것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이런 취미를 보는 주위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불길한 놈.’, ‘기분 나쁜 애.’, 나아가 사이코패스라는 불명예를 안으면서까지 나는 취미를 멈추지 않았다. 죽은 것들을 보면 왠지 모를 경외감과 엄숙해 오는 감정의 교차에 거스를 수 없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 날도 나는 사진기를 들고 마을 앞 강가를 따라 걷던 중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3월의 벚꽃이 도로를 뒤덮었다. 사진기에 한 장씩 비 아래로 떨어지는 벚꽃을 담아냈다. 흐린 날씨에 오히려 벚꽃의 빛깔이 대조되어 더욱 생생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지그재그로 터인 비탈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자 작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로는 작은 나무다리가 놓여있었고 열댓 명의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 다리를 밟고 올라가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왔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대게 연인들이나 운동을 나온 사람으로 보였다.


사진을 찍으며 주위를 삥 돌던 내 카메라는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다. 그곳엔 한 소녀가 있었다. 우산을 치켜든 채 소녀는 빗물 아래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은 한편의 무성 영화처럼 소리 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그저 아름답게, 그저 적막하게, 풍경에 묻혀 은은히 빛났다. 나는 무언가 홀린 듯 카메라를 꺼내 초점을 맞췄다. 소녀는 기쁜 듯 슬픈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찍어 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손가락을 살포시 셔터에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화면에 소녀가 맺히고, 나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들여다봤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살짝 든 고개의 각도도, 혈색이 도는 얼굴빛도 또 비 아래 비추는 분위기도 매혹적이었다. 


“저기.”


멍하니 사진기를 내려보던 중 어느새 소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긴 팔과 무릎 아래로 오는 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아, 죄송해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사진 지울게요.”


나는 소녀의 표정을 살피며 삭제 버튼에 손을 올렸다. 그때 소녀는 내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 들었다.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는 그녀의 눈은 어딘가 텅 비어 보였다. 소녀의 앞머리에서 물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져 카메라 화면을 적셨다. 혼탁한 빗방울이 카메라에 닿자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소녀는 고개를 치켜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순간 무표정했다. 


“멋지네.”


그녀와 마주쳤을 때 느낀 깊은 눈동자와 밝은 목소리의 대조가 이질적이었다. 소녀는 카메라를 돌려주고 뒤 돌아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멍하니 소녀를 바라봤다. 가까이서 맡은 그녀의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자신이 늘 찍던 것들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나는 어느 순간 빗속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저기!” 


나는 빗물이 흥건한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뒤돌아본 그녀의 표정은 깜짝 놀란듯하면서도 약간의 미소가 어려있었다. 


“괜찮으면 사진 더 찍어도 될까?”


소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나는 가까운 나무 아래로 소녀를 이끌었다. 가는 순간에도 소녀의 미묘한 표정을 흘끔 쳐다보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그녀는 나무 아래서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 몸짓, 표정 하나하나에 눈이 가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왜 이럴까. 분명 그녀는 내가 찍어왔던 것과는 맞지 않을 텐데. 살아 숨 쉬는 그녀는 분명 죽어있지 않았을 텐데. 사진을 찍었다. 계속 찍어댔다. 무언가 찍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윽고 사진기의 필름이 다 떨어지고 나는 외마디 한숨을 쉬었다. 끝이었다. 더는 그녀를 찍을 수 없다는 생각이 아쉬웠다.


“이만 가도 되지?”


소녀의 말이 앵앵 귓가에 맴돌았다.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한 걸까. 나는 어느새 뒤돌아 가는 소녀를 붙잡았다.


“저기, 다음에도 찍을 수 있을까요?”


용기 내어 한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소녀는 다시 그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핸드폰 줘 봐.”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소녀는 낚아채 번호를 눌렀다. 


“내일 연락할게.”


소녀는 빗속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가 건넨 핸드폰을 오른손 엄지로 쓸어내렸다. 미약하게나마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저 빗속의 한 여성을 찍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 켠이 아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채유경. 핸드폰에는 그녀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었다. 전화를 걸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다가 이내 민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그런 내게 전화가 온 건 12시가 넘어서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내일, 아침 10시. XX여고 앞으로 와.”


더 전화하고 싶었지만 이내 전화는 끊겼다. 나는 아날로그 카메라 속 그녀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뽑아 놓은 사진은 처음 만났을 때 찍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그 사진은 천장 위에 붙여져 있었다.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볼 때마다 그녀의 공허한 눈이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날 나는 늘 그렇듯 카메라를 챙겨 들고 유경이 말한 고등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틈틈이 버스 창틈에 쌓인 죽은 거미나 파리 따위를 찍었다. 한참 사진을 찍다 시선을 옮겨보니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더러운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왜 하필 찍어도 그런 걸 찍어?’ 그런 말이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역겨웠다. 속에서 무언가 울렁이는 기분이었다. 당장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잠바에 전부 게워내고 싶었다. 나는 버스 벨을 눌렀다. 버스가 멈추고 나는 도망치듯 내렸다. ‘더러워.’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터덜터덜 내딛는 두 발은 추를 달아놓은 듯 무거웠다. 


결국. 고등학교까지 와서는 지쳐버렸다. 시간을 보니 아직 9시 40분이었다. 너무 일찍 왔나. 주위를 둘러보던 내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뒤 돌지 마.”


익숙한 목소리. 나는 그것이 유경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이 상태로 데이트를 하자는 거야?”


유경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뒤돌아도 돼.”


뒤를 돌자 교복 차림의 그녀가 서 있었다. 여기 오면서 본 XX여고의 교복이었다. 


“가자.”


나는 유경의 뒤를 따라나섰다. 가는 내내 우리 사이에 대화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저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우리의 발걸음이 멈춘 건 한 쇼핑센터 앞이었다. 소녀와 어울릴만한 곳. 그러나 왠지 쇼핑센터를 바라보는 유경의 표정은 어두웠다. 뭐라 물을 새도 없이 그녀는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사람이 북적였다. 하지만 그건 옷가게나 음식점 근처뿐이었고 잡화점 근처는 한가했다. 유경은 종종걸음으로 잡화점으로 걸어갔다. 


“뭘 그리 멍하게 있어? 어서 와.”


이 소녀가 무슨 이유로 잡화점에 들렀는지 이유도 영문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의문을 품은 와중에도 유경은 잡화점을 둘러보는데 빠져있었다. 특히 공구코너를 돌아다니는 게 눈에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유경은 망치를 손에 들어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건 어디다 쓰게?”


유경은 내 얼굴을 돌아보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사진 모델에 어울리는 소품을 구하는 거야.”


대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 참으로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여자였다. 잡화점에서 소품을 구하는 건 무슨 생각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결국, 유경은 망치를 샀다. 그 뒤 우리는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벚꽃이 거의 져 버렸다. 짓밟히고 흙탕물에 절인 벚꽃잎은 더는 꽃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형체가 뭉개졌다. 평소 같으면 그런 꽃잎을 찍었겠지만, 오늘은 마음껏 소녀를 찍기 위해 참았다. 


“여기서 찍자.”


유경이 멈춘 곳은 한 나무 아래였다. 올려다보니 앙상한 가지 사이사이로 꽃잎이 달려있었다. 하얀 목련 나무였다. 


“여기서 잠깐만. 그냥 찍으면 심심하니까. 내가 내는 문제를 맞히면 한 장 찍게 해줄게.”


그녀는 또 킥킥댔다. 


“그냥 찍으면 안 돼?”

“안돼.”


그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혹시 너 꽃말에 대해서 알아?”

“꽃말?”


들어본 적 있다. 예를 들어 카네이션은 효도를, 노란 장미꽃은 친한 친구를.


“그래, 혹시 백목련의 꽃말이 뭔지 알아?”


모르겠다. 꽃말을 다 외우고 다니는 취미는 없었다. 내가 예를 들은 건 정말 대표적인 것만 나열한 것이었다. 


“글쎄? 사랑?” 

“반은 맞았네.”


소녀는 나직이 웃었다. 그 웃음이 나를 비웃는 거 같아 고개를 숙였다.


“정답은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야.”

“그래?”


왜 그녀가 이런 꽃말 놀이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놀이의 형태를 빌려 궁금한 것을 묻는 건가? 라고 잠깐 생각했다.


“그럼 다음 문제. 자살하는 동물이 있는데 이름이 뭘까?”

“으으….”


머리를 쥐어 짜냈다. 분명 쥐 종류 같은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힌트 없어?“

”없어.“


단호하다고 해야 할까. 융통성이 없는 부분도 있다. 나는 슬금슬금 유경의 눈치를 보다 두 손을 들었다.


”미안, 모르겠어.“


그러자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그네 쥐.“


아, 들어본 적이 있다. 뭐, 집단자살은 오명이란 말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시답잖은 문제를 푸는 이유라도?“

”재밌잖아.“


유경은 어느새 내 손에서 카메라를 뺏어갔다. ‘압수’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두손 두발 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 사진을 찍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유경은 근처 풀숲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녀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들고나온 건 달팽이 한 마리였다. 그녀는 망치와 달팽이를 내게 넘겼다.


”죽여.“


장난이지? 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껍질 안을 살펴보니 아직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죠?“

”글쎄.“


그녀는 고개를 치켜세웠다.


”재밌잖아?“


달팽이를 망치로 짓이기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의 취미도 그녀의 흥미도 결국 죽음이라는 하나의 공통사항으로 연결됐다. 그녀가 달팽이를 죽이는 것도 내가 그걸 찍는 것도 결국 매한가지였다.


”굳이 왜?“

”너도 재미로 죽은 거 찍잖아?“


물론 맞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이미 죽은 걸 찍지. 살아있는 걸 죽여서까지 사진을 찍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그랬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왜? 겁나?“

”아니.“


물론 거짓말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달팽이를 바닥에 내려다 놨다. 이제 망치를 내리치기만 하면 됐다. 달팽이는 형체도 없이 무너질 테고 그럼 나는 유경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생명 하나가 희생될 테지만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교환비율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달팽이는 자연에 놔두면 알아서 죽을 운명이다. 그 명을 재촉하는 거밖에 없었다. 


”죽여.“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는 군중의 호흡이 되어 나를 등 떠밀고 있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그렇게 내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갔다.



망치가 휘둘러졌다. 나는 한동안 고개를 돌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눈만 꿈쩍이며 입꼬리를 찡그렸다.


”하하하하.“


그 순간 유경은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슬쩍 돌아보니 배를 잡고 아주 제대로 터졌다.


”솔직히 정말로 죽일 줄은 몰랐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산이 부서진 달팽이가 곤죽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유경은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서 망치를 뺏어 들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부터 우린 친구야.“


유경은 내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그 뒤 그녀는 목련 나무 아래에 서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찍어.“


나는 셔터에 손가락을 올렸다. 티는 안 내고 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셔터에 힘만 실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뭐해? 얼른 찍어.“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국어 지문의 주제 찾기 마냥 모호하고, 난해했다.


”안 찍으면 오늘은 돌아간다.“


명령으로 시작해서 협박으로 끝났다. 그녀한테 놀아나고 있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의 눈빛을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실이 강하게 옥죄어 왔다. 나는 그녀의 몸짓에 따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상이 맺히고. 그녀의 모습이 찍혔다. 사선으로 햇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치마와 동복 상의가 눈에 남아 떠나지 않았다.


”이제 됐지?“


유경은 뒤돌아섰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 으깨진 달팽이가 눈에 밟혔다. 나는 달팽이를 찍지 않았다. 근처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살포시 그 위에 덮어주고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또다시 우리 사이엔 말이 없어졌다.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암묵적인 규칙처럼 작용했다. 


”저기 말이야. 너는 안 궁금해?“

”뭐가요?“

”말 놓으라니까.“

”그게….“


유경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나에 대해서 말이야.“


유경의 말을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유경에 대해.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로 묻지는 않았다. 남에 대해서 그렇게 캐물어서 이득을 보는 건 인기 있는 아이들에게나 효과적인 사교 방법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사교성 밝은 아이가 아니었다.


”글쎄, 네가 여고생처럼 보인다는 거?“

”그거뿐이야?“


그녀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교복밖에 보이지 않았다. 


”넌 정말 바보구나.“


유경은 사거리에 닿자마자 인사도 없이 휑 가버렸다. 나는 멍한 얼굴로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나는 사진기 속 사진을 넘겼다.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아름다웠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도, 가슴팍에 달린 학교 마크도, 다리에 난 멍도.


‘멍?’


사실은 잘 모르겠다. 종아리 부분에 검은색이 보였다. 그저 필름에 먼지가 찍힌 건가 싶어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찍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고정된 자세를 봐서 그런지 눈에 확 들어왔다. 심지어 그녀가 오른손으로 왼손을 살짝 잡고 있었다. 왠지 떨쳐낼 수 없는 이질감이 들었다. ‘그녀는 왜?’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사진만을 찍고 있을 뿐이다. 더는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집에 들어가서 쉬자.


그날, 나는 교복을 입은 그녀를 인화하여 처음 찍었던 사진 옆에 붙여놨다. 그녀의 표정은 오묘하게 뒤틀려있었다. 나도 뭐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처음 보는 여자하고 친구가 되다니, 그녀도 나도 단단히 미쳐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들의 관계를 용인했다. 매일 아침. 그녀는 나를 불렀고, 나는 카메라 기술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피사체의 각도, 빛의 세기, 조리개 등, 많은 것이 맞아 떨어지자 그녀의 사진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걸 의식했는지 매일 다른 옷을 입었고, 포즈도 점점 역동적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우리가 만난 지 세 달이 지났을 때는 내 방은 그녀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갔다. 


”야.“

“응?”


어느새 나와 그녀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내 사진이 그렇게 좋아?”


그녀는 벤치 옆자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 싫다고는 할 수 없지.”


말투는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였지만,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종이 한 장이 들어갈 정도로 좁혀졌다. 


“왜?”

“잘 모르겠어.”

“에에….”


유경은 두 뺨을 부풀렸다. 이 신호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유를 대란 신호였다. 


“글쎄, 아마도 그런 운명이 아닐까?”

“쳇.”


솔직히 죽음과 관련된 사진을 찍어온 것도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저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을 뿐이다. 나는 약했고, 그저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치일 뿐이었다. 물론 유경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는지 아직도 삐져 있었다.


“바보.”

“맞지.”


나는 그저 그녀의 말에 긍정해줄 뿐이었다. 그녀의 사진을 찍고 그 대가로 간간이 이렇게 어울려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다가 눈앞에 사랑이 와도 못 알아보겠네.”


그 말에는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아니, 느껴본 적조차 없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가신 일이기도 했고, 나 자신이 무너지는 걸 막는 거조차 버거웠다. 그런 주제에 남을 위해 산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1+1=2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만큼 어려웠다. 


“너는 무얼 소중하게 생각해? 무얼 위해 사는 거야?”


당연히 정답은 ‘없어.’였다. 하지만 내 입은 딴 소리를 해댔다.


“지금은 이 사진과 이 사진을 찍게 해준 너야.”


그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내 입에서 무심코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소중한 건 없어.’라든가 ‘나는 나 자신만 소중해.’란 말을 거리낌 없이 할 만큼 눈치가 없는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호….”


그런 내 작전이 통했는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작은 내 키와 안 그래도 큰 그녀의 눈높이가 서로 맞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익숙하지 않았다. 유경의 크고 똘망똘망한 눈과 긴 속눈썹은 나를 긴장시켰다. 


“그러면 사진과 나, 둘 중엔 누가 더 좋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성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만약 사진을 좋아한다면 한동안 삐질 그녀가 생각나고, 그녀를 고르기엔 내 마음속에서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답을 무를 수도 없고.


한동안 대답이 없자 유경은 더욱 가까이 얼굴을 들이댔다. 사람의 약점을 잡는 건가. 결국, 나는 두 손을 내저었다.


“미안, 못 고르겠어.”


이것이 나의 최선의 대답이었다. 이러면 사진과 유경 둘의 가치를 좀 더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외침이라도 될 수 있었다. 


“이리 따라와 봐.”


그런 내 작전은 역시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야, 어디가?”

“따라오면 알아.”


그녀가 향한 곳은 공원의 공중화장실이었다. 마침 사람도 없이 분위기가 조용했다. 뒤편으로는 수풀이 우거져있었다. 그녀는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한낮인데도 햇빛이 안 들어와 그늘이 져 있었다. 


“여긴 왜?”


순간 유경은 나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녀의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쿵쿵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옷감이 내 팔에 닿았다. 


“솔직히 말해봐. 사진보다 내가 좋지?”


아니,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팔이 더욱 세게 나를 옥죄어 왔다. 그녀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다. 뜨겁고 끈적한 감각. 마치 잠에 취한 듯 몽롱했다. 


“그건 왜?” 

“그야, 넌 항상 네 감정에 솔직하지 않으니까.”

그렇다. 그게 무슨 나쁜 것인가. 그저 나의 개성중 하나일 뿐이다. 

“말했잖아. 둘 다 좋다고.”

“거짓말.”


그녀의 눈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이제 더는 도망칠 곳은 없었다.


“너는 내가 좋아. 그걸 왜 애써 부정하는 거야?”


왜 이렇게 나를 귀찮게 굴지.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바보.”


그 순간 유경은 입술을 포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그녀의 몸에 나를 맞췄다.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따스한 감촉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나는 유경을 밀쳐냈다. 그녀는 아쉬운 듯 혀를 날름거렸다. 


“뭐 하는 거야?”

“이젠 알 거 같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찍어 봐.”

“응?”

“지금 나 찍어보라고.”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어서 찍으라는 듯 내 손에 손을 얹었다. 


“지금 나를 찍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사진이 찍혔다. 그녀의 얼굴은 오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좋아해”


그녀의 말이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둘 사이에 벽 하나를 두고 있는 것처럼.


“그게 무슨….”

“좋아한다고.”


그녀는 내 팔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 그걸 모를 정도로 바보천치는 아니었다.


“사실은 처음 내 사진을 찍어줬을 때 나 너무 기뻤어. 사진에 찍힌다는 행동. 무언가 영원한 죽음을 상징하는 거 같거든.”

“무슨 뜻이야?”

“사진 속에선 영원한 죽음 상태로 남을 수 있다는 거야. 박제되는 거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찍혔어. 나 너무 기뻐.”


그녀는 내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그녀의 말은 최면이라도 되는 마냥 거스를 수 없었다. 


“너는 어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교묘하게 갖고 놀고 있었다. 마치 인형을 부리는 것 마냥.


“미안.”


나는 그녀를 떨쳐내고 그대로 달려나갔다. 유난히 붉게 빛나던 그녀의 입술이 머릿속에 남아 떨쳐낼 수 없었다. 무서웠다.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공원을 한참 벗어나자 부르르 휴대전화가 떨렸다. 유경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뒤로 몇 번 더 울렸지만 전부 받지 않았다. 그대로 문자 한 통이 왔다. 고심 끝에 확인해보니 짧은 문장 하나가 적혀있었다.


‘사진 잘 부탁해.’


그날부로 그녀는 다신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녀와의 기억을 점점 지워갔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머리를 감쌌다. 나는 왜 유경에게 끌렸던 걸까? 나는 왜 유경에게서 죽음의 향기를 맡았던 걸까? 그리고 유경은 왜 나를 좋아한 걸까? 분명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건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인데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사랑에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있을 뿐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그녀의 사진만을 좋아하고 있던 거뿐인가. 나는 유경의 사진을 모두 모아봤다. 점점 사진이 최신화가 될 때마다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옷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무릎 약간 아래로 오던 치마는 점점 종아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포즈도 특정 부분을 가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손목. 


나는 황급히 유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시도에도 그녀는 받지 않았다. 나는 망연자실하였다. 정녕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나 볼 수 없을까. 그때 핸드폰이 떨리고 문자 한 통이 왔다. 


‘지금 당장 백목련 아래로 와.’


나는 당장 사진기를 들고 그녀가 말한 백목련 아래로 뛰어갔다. 이미 버스는 끊긴 시간. 아슬아슬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가는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녀의 말투 행동 그리고 했던 말을 곱씹으며 공원에 도착했다. 백목련 아래에는 그녀가 서 있었다. 많이 초췌한 모습으로, 그녀의 얼굴엔 멍 자국이 있었다. 


“유경아!”


나는 황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그대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왜 그래?”


유경은 말이 없었다. 대신 한 두 방울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왔구나.”


그녀는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나는 그대로 울도록 놔뒀다. 한참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침 잘 왔어.”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웃어 보였다.


“무슨 일이야?”

“그야, 멍청한 가장 때문이지.”


그녀는 내 품에 계속 안겨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도 아버지가 날 때렸어.”

“뭐라고?”

“나를 덮치려고 했어 내가 저항하자 그대로 나를 때리고….”


그녀는 거의 울상이 되어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죽여버렸어. 그 인간.”

처음 보는 그녀의 감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말 없이 그녀의 등을 쓸어 내려줬다. 미세하게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맨날 긴 옷을 입고 있었구나. 손목도 그었고.”

“응.” 


술술 부는 그녀의 증언에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졌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그녀는 망치를 내밀었다. 처음 쇼핑할 때 산 그 망치였다. 망치 끝엔 피가 묻어있었다.


“날 죽여줘.”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매한가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나고 싶어.”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차마 손이 안 나가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처음 달팽이 죽였을 때 기억나지? 그때처럼만 하면 돼.”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 큰 눈은 어느새 무기가 되어 나를 후려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나는 슬슬 뒷걸음질 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었다. 


“한 번만 부탁할게. 제발 나를 죽여 줘.”


그녀의 말이 앵앵 귓가를 맴돌았다. 죽여 줘.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이질적이었다. 나는 그녀를 밀쳐냈다. 그 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미안, 난 못 하겠어.”

“바보!” 


그녀는 내 뺨을 쳤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죽일 용기도 이유도 없었다. 


“가 버려! 너 같은 남자.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


나는 뒤돌아 터덜터덜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녀한테 맞은 뺨이 얼얼했다. 밤거리를 걷는 내 발은 한없이 무거웠다. 다음날 백목련 아래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혼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나는 그 뒤로 죽은 것들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사진은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