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레이징 채리엇


지난 편: https://arca.live/b/bser/9947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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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는 유키와 현우의 말을 듣고 어이를 상실한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저 둘이 저러는 건 2학년 내내 지겹도록 봐왔지만, 이번 사태는 진짜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무튼 그래서 현우 니가 오전 수업을 통째로 빼먹은 이유가 독사네 패거리들이랑 쌈박질하다가... 아니지, 니가 걔들을 일방적으로 두드려 팼다가 유치장 끌려가서란 얘기 아냐. 게다가 유키 너는 그걸 또 매번 왜 꺼내주는 건데. 보석금 안 아깝냐?"
"친구니까요. 게다가 현우 군 같은 경우엔 저 아니면 어울려 줄 사람도 없고 말이죠."

"아, 그러세요? 하여튼 너네 둘은 왜 같이 다니는지 이해가 조금도 되질 않는다니까."


사실 그건 리오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바보에 살인자의 아들인 현우와,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의 범생이인 유키가 도대체 무슨 면에서 마음이 맞았고, 그리고 또 왜 2년째 저렇게 절친하게 지내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건 아마, 영원고등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7대 난제 중 하나일 거다.

그리고 그 난제에 시달리고 있는 건, 현우의 담임인 에이든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원고 2학년 교무실은 그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겨우 평온을 되찾았다. 다행히 구청장이기도 한 민주의 부모님은 딸과 달리 개념 있는 인간이었고, 그들이 '민주가 바냐를 괴롭혔다'는 걸 듣자마자 현우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면서 상황이 별 일 없이 마무리된 것이었다. 에이든 역시 코코아를 마시면서 잠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 에이든 쌤! 마침 찾고 있었어요."


그를 부르는 동료 교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영원고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권수아였다. 에이든은 모처럼의 휴식이 방해받아서 아쉬웠지만, 이내 수아가 건넨 리스트를 보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죠 이건."
"다름이 아니고, 사토 유키 학생 말인데요, 저번부터 계속 장현우 학생 부탁을 받고 책을 대리로 빌려 주더라고요. 처음엔 현우 사정도 아니까 몇 번 정도 봐줬는데, 나중에 가니까 아예 대놓고 그러더라고요... 안 그러게 주의 좀 주고, 그동안 연체된 책들을 현우한테서 받아내야 할 거 같아요. 아, 이건 지금까지 유키가 현우에게 대신 빌려준 걸로 추정되는 책 목록이에요."
"네입. 모쪼록 잘 처리하도록 하죠."

이후 수아가 가자, 에이든은 다시 코코아를 들이키더니 중얼거렸다.

"잘 처리하긴 개뿔... 진짜 그 덤앤더머 듀오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냐. 게다가 난 그런 덤앤더머 듀오랑 2년째 같은 반에서 마주치고 있고. 장현우 그 새ㄲ... 아니, 그 놈 때문에 유키까지 맛탱이가 간 것 같은 건 나만 그런가?"


그리고 그는 다시금 리스트에 눈길이 갔다.

어떻게 된 게, 현우가 유키를 통해 대리로 빌린 책은 죄다 중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웹툰 단행본이나 소년만화 등이었다.  

"이 학교에 이런 게 있는 것도 신기하네. ...'드래곤 테이머즈 완결편'이라. 내가 현우 그 녀석만했을 때 연재 시작했던 만화 같은데, 드디어 완결이 난 모양이네."

에이든은 잠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가 만화책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는지, 이젠 더 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

에이든은  칼 베켓이라는 본명을 제외한 과거가 모두 지워진 용병이었다.
그에게는 생체 전기를 증폭시켜 체외로 방출하는 능력이 있었다.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인터폴에 고용되어 아글라이아와 싸웠을 때도 그가 가진 능력 덕분에 손쉽게 임무를 성공했지만, 그 대가인지 아니면 아글라이아의 보복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못 가 같이 작전에 참여했던 동료 용병 3인이 사고사했던가. 


그리고, 이번 그의 고용주는 아글라이아를 쫓는 수수께끼의 UN 산하 국제 군사 기구 '에레보스'였다.

4년 동안 대한민국의 영원고에서 교사로 위장하며, 그 학교를 다니는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들을 아글라이아로부터 지키라는 것이 의뢰 내용이었다.

***

"얌마, 장현우. 너 보니까 드래곤 테이머즈 완결편 시리즈를 유키한테 대신 빌려달라고 요구해놓고 아직까지 반납도 안 했다더라?"


그를 비꼬는 듯한 빈정거리는 말투로 가해지는 에이든의 추궁에도 현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예.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요?"
"너 그 책을 대체 얼마나 오래 빌린 건진 알긴 하는 거냐? 자그마치 세 달이야, 세 달. 이 정도면 반납할 때도 됐단 생각은 한 번도 들질 않았던 거냐고. 너 때문에 애들이 항의를 얼마나 하는ㅈ..."
"쌤은 늘 그런 식이죠. 제 사정 따위는 고려도 안 하고, 그저 다른 애들 말에만 귀를 기울이시고. 뭐 됐어요. 쌤이 제게 공감해 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으니까. 아, 그리고 그 책은 지금 여동생이 읽고 있어요. 지금 거의 다 읽었으니까, 한 이틀 뒤면 돌려줄 수 있을 거에요. 혹시 몰라서 말하자면 유키한테는 이 모든 일의 동의를 구하고 한 거에요."

울분을 쏟아내듯 차분하게, 하지만 확실히 분노와 원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물 흐르듯 내뱉는 현우에게, 에이든은 차마 뭐라고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니, 차마 뭐라고 말을 건네면 좋을지 몰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현우는 멋대로 뒤돌아서서 교무실을 나가 버렸지만, 에이든은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갑작스럽게 그에게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