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레이징 채리엇

*주의사항. 이 작품은 AU야. 그래서 설정이 원작하고 많이 다를 거야.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나 혼자 파는 현우×바냐 커플링이고. 무엇보다 내가 아직도 뉴비라서 캐해석 ㅈㄴ 미숙하다. 또한 캐릭터들 나이는 만으로 계산함.
참고로 이 글은 내가 전에 썼던 https://arca.live/b/bser/90363825 의 리메이크 겸 내 팬게임의 프리퀄임.

그래도 OK라면 재밌게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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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1일.
서울 서대문구의 어느 고등학교 인근의 뒷골목. 한밤중에 불빛도 없는 어스름한 이 골목에서, 한 소녀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여러명의 불량 여학생들에게 얻어맞고 있었다. 주위에는 소녀가 이곳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타고 있었던 휠체어가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꺄악—!! 그만, 이젠 제발–!!"

"주머니에서 100원 나올 때마다 한 대라고 했잖아! 그러게 돈을 제때 내놓으라니까 왜 안 내놓고 지랄인데? 어디 보자, 주머니에서 5만원 나왔으니까 한 500대는 맞아야겠는데?"


은발에 푸른 눈을 지닌 소녀는 맞으면서도 전혀 저항을 하거나 도망치지조차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걸을 수 없는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걷지조차 못하는 자신의 다리가 이 정도로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제발 누가 자신을 도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5분째 아무도 오고 있자 않았다. 아니, 오지 않았었다. 붉은 머리카락의 남학생 하나가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전까진.


"어, 뭐야. 쟤 장현우 아냐? 근데 저 새끼, 우리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데?"

"뭐냐? 어 진짜네. 어이 장현우! 네가 여긴 왜 온 건데? 설마 반야심경 도와주러 온 거냐? 이건 우리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라?"


하지만 도깨비 무늬의 재킷을 입고 마스크를 쓴 붉은 머리카락의 남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반야심경이라는 조롱 섞인 멸칭으로 불린 소녀 역시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현우라 불린 도깨비 점퍼를 입은 소년이 주먹을 쥐더니 주먹에 불꽃을 휘감은 채로 불량 여학생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학생한테 펀치를 날리는 것은 그때였다.


"끄아악—!!"

"민주야?!"

"장현우 이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이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끄허억!!"


불량 여학생들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현우가 날린 불꽃을 휘감은 주먹에 얻어맞고 전부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현우는 바들바들 떨고 있던 은발 소녀에게 손을 내밀며 차갑게 말했다. 


"다치지 않았다면 됐어. 일어나."

"..."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도리거렸다. 자신은 걷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할수 없었으니까. 현우 역시 그것을 기억해내고 말했다.


"아, 맞다. 너 다리가 불편하지. 그럼 내 등에 업히도록 해."


그렇게 소녀를 들쳐업고 골목 밖으로 나온 후 병원에 소녀를 데려다 주기 위해 큰길을 걸어가던 현우는 소녀에게 물었다. 


"야, 바냐. 대체 어쩌자고 저 새끼들이랑 엮였던 거야. 저 새끼들한테 걸리면 끝장이라니까. 서민주 별명이 독사인 것도 몰랐던 거냐? 저 새끼는 지 눈밖에 난 놈들 끝까지 추적해서 보복하는 새끼라고."

"그래도... 현우 씨가 힘들어 보여서요."

"됐어. 내 걱정은 마. 그보다 휠체어 박살난 거 괜찮겠어? 저거 꽤 비쌀 텐데."

"그건 괜찮아요. 어차피 별로 애착도 없는 걸요..."

***

열여덟 살 장현우에게 미래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소문, 험담, 손가락질, 그리고 낙인... 너무 많은 것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막막함을 잊기 위해 싸움을 하거나 바이크를 타는 등 현실의 자극을 더 키우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을 둘러싼 소문과 험담, 손가락질과 낙인은 더욱 더 악화되어갈 뿐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의 곁에 그나마 남아있던 친구들마저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이제 그의 곁에는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인 민아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러 구속된 이후로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

그와 동시에 잃을 게 거의 없는 그가 유일하게 잃고 싶지 않은 대상이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유일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

선천적으로 하반신이 불편했던 열여섯 살 바냐 나보코바는 어릴 때부터 환상을 보는 능력을 가졌다.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답답한 현실과 달리 환상은 자유로웠고, 그녀는 어느 순간 현실보다 환상에 더 의존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어느샌가 자유를 꿈꾸게 되었다.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자신의 두 다리로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가족이 바냐의 능력을 알게 되었고, 바냐의 능력을 병으로 착각한 그들은 바냐를 더욱 더 세상과 고립되게 만들었다.


마치 그물망에 잡힌 나비처럼, 자신을 억압하고 가둘 뿐인 현실에서 벗어나 그녀는 자유를 원했다.
누군가의 간섭도 없는 세계를, 이상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환상 속의 장소를.
그런 장소로 자신을 데려다 줄 사람을, 그녀는 찾고 있었다.

***

다음 날. 현우 덕에 무사히 병원에 입원했지만, 자신이 전치 2주 판정을 받은 것 때문에 노발대발한 부모님께 다시는 현우와 어울리지 말라는 엄포를 들고 풀이 한껏 죽은 상태인 바냐는 병실에서도 집에서도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던 평소와 달리 뚫어져라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이후...
"하아... 현우 씨가 전화를 안 받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유키 씨도 오늘 오후부터 전화를 일부러 안 받고 있는 거 같고, 그렇다고 리오 씨한테 전화하자니, 분명 현우 씨 관련 일인 걸 알면 협조를 안 해 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냐는 계속해서 현우의 휴대폰으로 기약 없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으니까.

뚜벅, 뚜벅.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어서 하루 유치장.... 역시 현우, 너답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모습도 딱히 싫진 않네."
"그 목소린... 역시 너냐."


현우는 유치장 창살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 무덤덤하게, 하지만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말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 역시 현우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차분하고 침착하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장난스럽고 익살맞게 말을 건네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해 주었다.

"바냐에게는 비밀로 해 뒀어. 아마 네가 유치장에 있단 소식 들으면... 걱정 많이 할 테니까."

"상관없잖아, 딱히. 걔가 내 여자친구도 아닌데."

"그보다, 넌 대체 무슨 깡으로 구청장 딸과 그 패거리에게 그 정도 중상을 입힌 거야? 나도 가끔씩은 네 그 무모함을 좀 본받고 싶다가도, 이렇게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일만 빵빵 터뜨리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난다니까."

"...야, 유키. 너 방금 그거, 나 돌려까는 거지? 아니지, 이건 걍 대놓고 까는 거잖아 새꺄."
"하하, 들켰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현우와 유키는 경찰서 유치장을 빠져나와 다시 학교로 가는 중이었다. 사실 유치장 핑계 대고 학교를 아예 쨀 수도 있었고 현우도 그걸 원했지만, 유키가 강하게 반대한 탓에 둘은 얄짤없이 수업을 들으러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현우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바냐였다. 현우는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잘못하면 바냐가 수업 중에까지 전화를 걸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현우 씨!! 괜찮아요?! 어제 저녁부터 연락이 안 되서 완전 걱정했어요!"
"아 씨 깜짝이야. 그렇게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게다가 너 어제 내가 유치장에 있는 사이 전화를 25통이나 걸었더라? 이건 뭐 스토커도 아니고."

"네?! 유치장이요? 대체 어쨰서...!"

"신경 쓰지 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훈방 조치됐으니까."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현우 씨가...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을게요."


현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면 됐어. 그리고 내가 유치장 들어간 건 네 책임 아니니까 너무 그러지 말고. 몸은 좀 어떤데?"

"전치 2주래요."
"어지간히도 많이 맞았나 보네. 일단 수업 들어가야 하니까 끊는다."

전화를 끊은 현우에게 유키가 말했다.


"둘이 사이 좋은데?"
"좀 닥쳐 제발. 내가 그 새끼 여자친구도 아니고..."

"아 네, 네. 둘이 좋은 사랑 하세요~"
"야 임마 너 진짜 죽을래?!"

그렇게 유키와 학교로 걸어가면서, 현우는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게 대체 얼마 만인 거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쭉, 현우에게는 친구가 유키 한 명밖에 없었다. 그가 살인자의 아들이란 걸 알고도 편견 없이 대해주는 사람이 유키 한 명 뿐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적어도, 바냐가 나타나기 전까진.


'계속 나한테 이유 없이 마음을 여는 걸 보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밀어내기 싫단 생각을 하게 돼.'


대체 바냐는 자신의 무엇이 마음에 드는 걸까. 자신이 그녀에게 해 준 일이라곤 그녀가 지어낸 상상 속 이야기를 들어 주고, 멋진 상상이라고 칭찬해 준 것 뿐이었는데....

그런 고민을 안고 다시금 학교로 향하는 현우의 머리 위를, 어느새 하늘 정가운데에 뜬 태양이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