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광창 안으로 가득 들어온 햇살. 조금 늦은 아침의 햇살 속에서 현우는 슬며시 눈을 떴다. 폭신폭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이불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 섬 밖에서도 이토록 평온한 아침을 맞이해 본 적이 없었던 현우는 게슴츠레 뜬 눈을 다시 감고는 부드러운 이불을 끌어안으며 몸을 뒤척였다. 조금 더 자도 되겠지. 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온 몸으로 만끽하며 이부자리에서 몸을 뒤척이던 현우는 무언가 따뜻하고 부드러운게 두 팔에 감겨오는걸 느꼈다. 부드럽지만 단단하면서도 포근한, 이젠 기억조차도 잘 나지 않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떠올리며 품 속으로 들어온 따뜻한 무언가를 두 팔 가득 끌어안으며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


꿈 같은 따스함을 맛보는 것도 잠시. 비몽사몽한 정신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한 현우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베개가 이렇게 따뜻할 리는 없고, 그렇다고 이불의 촉감도 아니고. 생각해보면 이 방에 침대는 하나 뿐이었고 투숙객은 두 명이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우는 슬며시 눈을 뜨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고 현우의 시야 안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피오라의 얼굴이 또렷하게 들어왔다.


 "와악!"


피오라의 허리를 끌어안고 배에 얼굴을 부비던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박차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피오라는 무표정한 얼굴 위로 홍조를 띄운 채 현우를 빤히 쳐다보다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일어났군."


 "...그... 고의는 아니었는데..."


 "알고 있어.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으니 괜찮다."


피오라는 현우가 부비고 있던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더니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엄마' 라고 불린건 기분이 좀 묘하긴 하지만."


 "...!"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얼굴이 새빨개진 현우는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버버거리며 그 자리에 딱 굳어버렸고 피오라는 큭큭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고 해도 약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지. 나는 너보다 연상이니 조금 더 어리광을 부려도 좋아."


 "으..."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짓던 현우는 문득 피오라의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서 어렴풋한 모정을 느끼며 떠오른 미묘한 표정을 고개를 돌려 숨겼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품에 안긴 자신의 모습을 잠깐 망상하던 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잡념을 날려버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ㅡㅡㅡ


 "실험 도중에도 느끼던 거지만 정말 놀라운 실력이군."


 "...다들 이정도는 하지 않아?"


연구실 숙소 주방에 비치된 식재료로 가벼운 아침 식사를 만든 현우. 연구보조원들이 식사를 만들어 제공해주겠다는걸 한사코 거절한 현우는 직접 주방에서 솜씨 있게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만들어 피오라에게 대접했다. 수프를 한 술 떠 먹은 피오라는 꽤 놀랍다는 표정으로 현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구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군. 내다 팔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 솜씨다. 괜히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게 아니군."


 "..."


현우는 부끄러운지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피오라의 앞에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귀여운지 피오라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현우를 쳐다보았고 현우는 괜히 어색한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그래."


피오라는 직접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현우의 입가에 붙은 빵조각을 슥 닦아주더니 말했다.


 "식사가 끝나면..."


잠시 머뭇거리던 피오라.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욕실로 가지."


 "...어?"


 "네가 말했던 부탁. 지킬 생각이다."


현우는 숟가락을 떨어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횡설수설 말하기 시작했다.


 "아..아니. 그건 없던 일로 해 줘! 그런 이상한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다니. 무리해서 그딴 헛소리 지키려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잊어버려."


 "무리하는게 아니다."


피오라는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얼핏 본 그녀의 얼굴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름대로 나도 용기를 낸 거니 잔말말고 따라왔으면 한다."


 "..."


부탁을 들어주는게 아니라 이런 어조는 거의 역으로 협박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현우는 숟가락을 든 피오라의 손이 달달달 떨리는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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