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이제 둘 뿐.

오직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섬에선, 공동우승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유키와 리오 본인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애써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모르겠어, 나도..."
"차라리, 제가 금지구역 쪽으로 나간다면..."
"그건 절대로 안 돼!"

리오의 날카로운 반응에 유키는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알아차렸다는 듯 힘없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절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으신 모양이군요."
"그래. 내가 널 죽이든, 네가 스스로 죽든, 난 네가 죽는 모습은 절대로 못 봐."

모순인 것은 리오 본인도 알고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루미아 섬의 제 1법칙.
비록 그 둘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 법칙에는 예외가 없었다.
약간의 위안이라 하면, 유키도 리오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 제가 당신을 벨 일은 없을겁니다."
"알아, 나도... 알아..."

차마 말을 마저 꺼내지 못하고 같은 말만 읊조리는 리오와, 그것을 씁쓸한 듯 바라보는 유키.
얼마 뒤, 유키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미나미 씨. 제게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죽겠다는 말 꺼내기만 해봐."
"그런 건 아닙니다."

유키의 주장은 총을 쓰자는 것이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세 걸음을 걷고 나면 뒤돌아 동시에 총을 쏘는 방식. 서로가 익숙한 무기도 아니니 실력 면에서 공평하다는 것이었다.
리오는 물론 거세게 반대했지만, 이래선 결국 둘 다 죽을수 밖에 없다며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유키의 말에 결국 받아들였다.

"대신, 꼭 나한테 쏴야 해. 자기한테 쏘거나 엉뚱한데 쏘면 죽여버릴... "

무심코 말버릇이 나오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재빨리 다문 리오를 보고 유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평상시야 그러려니 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오히려 질 나쁜 농담이 돼버린 셈이었다.
부끄러움 반, 경멸 반 섞인 눈초리를 외면하고 유키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 진정하세요."
"...어쨌든, 치사하게 먼저 가버리는 짓은 내가 용서 안 해."
"걱정 마세요. 제 머리에 총을 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믿어도 되는 거지, 그거?"
"물론입니다."

확답을 받은 리오를 뒤로 하고, 유키는 시체에서 권총 두 자루와 총알 몇 발을 찾아 들고 왔다.
하나는 리오 앞에, 하나는 자기 앞에 놓아 두고, 말없이 탄창에 총알을 재어 넣기 시작했다.
리오가 총알을 전부 넣었을 즈음, 유키는 겨우 한 발을 채운 참이었다.

"역시 총은 안 익숙하지?"
"그렇네요.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는 어렵긴 하군요."
"설마,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동감입니다."

유키가 탄창을 총에 집어넣고 일어서자, 리오도 따라 일어서 유키의 등에 같이 등을 맞댔다.
서로의 체온이 옷 너머로 느껴졌다.
조용히 뛰는 심장소리도 얼핏 들려왔다.
총을 쥐지 않은 리오의 왼손에, 마찬가지로 비어있는 유키의 오른손이 닿았다.
리오의 손이 유키의 손으로 파고들어 자연스레 손을 맞잡았다. 유키도 굳이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 상태로 둘은 한참을 계속 서 있었다.

"저기, 사토."
"왜 그러시나요."
"차라리 이대로, 평생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거, 비정상은 아니겠지?"
"신기하네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차라리 시계가 멈춰 손목에 달린 이 팔찌가 터져버리지 않았으면.
이대로 평생 서 있을수만 있다면.

하지만 제한시간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애수에 잠기는 것은 그만두고, 둘은 맞댄 등을 떨어뜨렸다. 맞잡았던 손으로 꽉 주먹을 쥐고서.

한 걸음, 두 걸음.
급류처럼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그 두 걸음동안은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세 걸음을 뗀 두 명의 소년소녀는, 동시에 뒤로 돌아 총을 겨눴다.



리오는 한 손으론 유키의 오른손을 부여잡고, 나머지 한 손으론 유키의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총을 쥐고 있어야 했던 유키의 왼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 나쁜 자식아! 반칙이야, 이딴 건 반칙이야!"
"죄송합니다. 이 방법 밖에는 없었어요."
"네 총이... 네 것만 터지는 게 어딨어! 난 인정 못 해!"

유키의 와이셔츠 쪽에선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끝없이 피를 흘리는 상처는 유키의 피 전부를 쏟아낼 듯이 뱉어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미나미 씨. 바깥으로 나가실..."
"시끄러! 말 하지마! 아직 지혈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틀렸습니다. 간에 맞은 모양입니다. 신체가 강화됐다고 해도 이래서야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군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유키의 목소리는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이런 게... 이런 게 어딨냐고... 이 바보야..."
"너무 슬퍼는 마세요. 섬에서 나가시면, 다시 친구분을 뵐 수 있잖습니까."
"넌, 네 친구는 어쩌려고 그러는데!"
"제 친구는 이미 죽었습니다. "

소스라치게 놀라며 리오는 호흡을 멈췄다. 흘러나오는 눈물은 그치지 못한 채였다.

"하루의 부모님 장례식 다음 날, 하루는 목을 맸습니다. 제가 그런 식으로 말한 탓이었어요. 제가..."
"그런 건 네 잘못이고 뭐고 아니야. 일단 살아! 살아서 같이 나가자고!"
"저랑은 다르게... 리오 씨의 친구 분은 아직 살아계시잖아요... 나가서 꼭 다시 말을 걸어주세요..."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고 눈물만 끝없이 흘리는 리오의 눈가에, 유키는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 맺혀있는 눈물을 훔쳤다.

"리오... 울지... 마..."

말도 마저 마치지 못한 채 힘없이 손을 떨군 유키를 끌어안으며 리오는 미친듯이 울었다.
어쩌면,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너와 만났다면, 좀 다른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도 평범하게 같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젠 내 앞에 내가 알던 너는 없다.
끌어안고 미친듯이 살아나길 기도해도 식어버린 몸은 따듯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울고 있는 그녀의 뒤로, 실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다가왔다.
가장 앞에 있는 중년 남자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가볍게 고갯짓을 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리오의 팔다리를 붙잡고 주사를 놓았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리오는 필사적으로 유키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곧 실험이 시작됩니다. 3분 내에 바깥으로 나가주십시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귀를 찢는 듯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터져나왔다.
리오가 눈을 뜬 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처음 이 섬에 들어와 실험을 시작했을 때 잠들어 있던 그곳.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인 리오였지만, 이내 별 수 없이 가방을 챙기고 지하를 뒤로 했다.

눈 앞에는 익숙한 루미아 섬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리오는 일단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걸어가기로 했다.
뚜렷한 목표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생존 의욕도 들지 않았다. 끝없이 실험을 반복시킨다는 걸 깨달은 이상, 굳이 애써서 살아남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 리오의 귀에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곳으로 걸음을 옮긴 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검정 교복과 머리칼. 망치로 내리치고 있는 저 칼.
저기 앉아 칼을 손보고 있는 남자, 틀림없었다.


사토 유키였다.

"유키...?"

리오의 입에서 홀린 듯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름이 불리자 뒤를 돌아본 유키는, 약간의 불안함이 서린 눈빛으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누구시죠? 어떻게 제 이름을..."
"나야, 리오. 기억 안나...?"
"저희, 구면이던가요?"

장난을 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정말로 그는 리오에 대한 기억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낙담도 잠시, 리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한동안 같이 다니지 않을래?"

이번엔, 좀 다른 결말을 맞고 싶다고 리오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만은 살려내 보이겠다고.
마지막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앞에서 죽게는 두지 않으리라고.

애타게 바라보는 리오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유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빌드업 도저히 못하겠어서 마지막부분만 대충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