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였다.
아니, 죽인 것 같다.
수녀는 황급히 폐공장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손을 벌벌 떨며 자신이 만든 저주인형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묘지를 거닐던 수녀는 한 사냥꾼과 마주쳤다.
사냥꾼은 그녀를 보자 얼굴을 찌푸리며 "닭장 비린내가 난다." 짧게 한마디 내뱉곤 엽총을 꺼내들었다.
수녀가 정신을 차릴 즈음엔 불쾌하게 휘발된 기억과 사냥꾼이었던 고깃덩이만이 그녀 앞에 지리멸렬하게 널부러져 있었다.


난 잘못없어.

그 더러운 자식이 날 그런 취급했어.

죽어 마땅한 자식.


수녀는 중얼거리며 저주인형에 박을 못을 찾고 있었다.


"안녕?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진 수녀가 뒤돌아보자 머리에 커다란 토끼귀 모양 리본을 매달고 있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술사이며 마술에 쓸 트럼프카드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마술사에게선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수녀를 혐오하지도 않았다.
아무런 적개심 없는 순진무구한 마술사를 마주한 수녀는 또 다시 자기혐오를 느꼈다.


"너 표정이 안좋아보이는데 괜찮니?"
마술사는 잠시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뒷춤에서 새햐안 비둘기 한 마리를 꺼내보였다.


"내 조수 비둘기씨를 소개할게, 지금부터 마술쇼를 시작할 거야!"
마술사는 활짝 웃으며 공연을 시작했다.


마술사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상자 위에 비둘기를 올려놓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리곤 들고있던 실크햇으로 비둘기를 덮은 후 짧은 막대기로 톡톡 두들기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어느새 무언가에 홀린듯 마술을 관람하던 수녀의 눈은 이내 휘둥그레졌다.
실크햇 안에 있어야 할 비둘기가 사라졌다.


"쨘~ 감쪽같이 사라졌지? 비둘기씨는 어디로 갔을까?"
마치 어린아이에게 마술을 보여주듯이 마술사는 사라진 비둘기를 찾는듯한 몸동작을 보이며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수녀의 귀 뒤로 천천히 손을 뻗어 무언가를 꺼내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윽고 수녀의 눈 앞으로 거둬들인 마술사의 손 위엔 방금 전 실크햇 안에서 사라졌던 작고 하얀 비둘기가 놓여져있었다.
"어때? 신기하지?"
마술사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녀는 난생처음 마술을 보았다.

죄로 더럽혀진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 또한 처음 보았다.

어째서인가 어두웠던 마음 한 켠에 작은 빛이 든 기분이다.

그렇게 갈망하던 구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수녀는 마술사에게 특별한 호의를 표하고 싶었다.


방금 본 신기한 마술을 따라해보고픈 흥분한 어린아이처럼, 수녀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자신도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수녀는 손에 쥔 저주인형을 자신의 치마폭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시 꺼낸 손에 저주인형은 들려있지 않았다.


마술사는 어설픈 마술에 애써 웃어주며 박수를 쳤다.
수녀는 마술사가 진심으로 감탄하기 바라며 손에 닿는 물건을 전부 치마 안으로 넣었다.
치마폭을 쥐고 세게 흔들어도 치마 속으로 사라진 물건은 밑으로 떨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비로소 마술사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특별한 장치라도 숨겨져 있는거야?"


수녀는 치마를 들춰서 마술의 비밀을 보여줬다.
찰나의 순간 마술사는 깊은 심연을 마주했다.


마술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녀는 당황하여 마술사를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떨어져있는 리본과 실크햇만이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수녀는 미친듯이 웃었다.


실성한 수녀가 루미아섬을 배회하고 있다.


- 루크, <블랙홀이 뭐에요?>에서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