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중국 광둥성 선전시. 


이곳은 1979년까지 ‘광둥성 바오안현’으로 인구 30만의 농촌이었음. 


작은 농촌이지만 영국과 중국의 국경으로 유명했음. 홍콩과는 심천강 하나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음. 

문혁 시기에는 많은 대륙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곳까지 와 홍콩으로 도망가면서 심천강을 건너다가 공안이나 영국경찰에게 사살당하기도 했음. 


1978년 중국공산당 회의에서 개혁개방이 공식화되고, 그 대표도시로 국경 시골인 바오안이 선정됨. 

그리고 바오안현은 1980년에 ‘심천시’로 승격됨. 





선전은 개혁개방의 1호도시로써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개발됨. 


CBD를 중심으로 대형 도시개발을 하는 덩샤오핑식 현대 중국도시의 모델이며,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전국 및 세계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함. 


초기 중국의 경제발전모델답게 해외기업 공장과 외주로 발전한 도시였는데

특히 가까운 대만의 전자제품 기업의 공장이나 홍콩기업의 대륙 진출 거점 역할을 했음. 




2000년대 초반 선전의 성장은 정체되는데,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기 시작할 시점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도시였음. 


선전시 공산당과 기업들은 활로를 모색했는데, 

바로 산업을 고차화하여 단순 생산이 아닌 그간 외주로 쌓아온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미래산업에 투자하는 것이었음. 







그 결과 선전은 인구 1400만의 아시아 최대의 IT도시이자 실리콘밸리로 발전함. 


이웃 홍콩의 경제력을 뛰어넘었으며, 그들의 외주로 제조업을 하던 기업들은 텐센트 등 굴지의 미래산업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함. 


또 이런 개혁개방 기치 아래서 성장한 선전은 타 중국 도시에 비해 능력주의, 시장경제, 규제혁파에 매우 능함. 

해외 자본은 선전을 타 중국 도시에 비해 비즈니스하기 매우 좋다고 말함. 타 지역 공산당 위원회와 달리 당 일꾼들이 기업인들을 먼저 찾아 필요한 것을 먼저 묻고 불필요한 규제가 있으면 혁파하려는 노력을 보인다고 함.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대의 부정적 잔재 청산을 위해 자신의 우상화를 금지하였음. 


하지만 선전이라는 도시를 만든거나 다름없는 덩샤오핑은 선전시에 큰 그림으로 붙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