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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도지챈러들. 지난 시간에는 영종도의 조선시대에 대해서 알아봤다면 오늘은 영종도의 근대와 현대에 대해 알아볼 거야.


     근대 영종도에 역사적인 사건은 없어. 영종진도 폐지되고, 국영 목장 같은 것도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조금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어.


         영종도에는 금골은골이라는 지명이 있어. 그 중 은골은 운서동 지역에서 은골공원, 은골마을, 은골사거리 등의 형태로 재에도 쓰이고 있는 지명이야. 이것이 무엇을 뜻하냐고? 금광과 은광을 뜻해.

  

      1919년 영종면에 살던 김성근이란 사람이 금광을 발견하게 돼. 금광은 찾은 장소는 고려시대 편에서도 언급했던, ‘동강마을이야. 이곳은 영종에서 가장 먼저 금맥을 찾은 곳이란 뜻으로, 통광(通꿰뚫을 통, 鑛광물 광)이라는 말로 동네를 칭하다가 변형되어 동강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해. 금이 많이 나는 곳이라는 뜻의 금골이라는 이름도 동강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은골과 대비되어 쓰였어. 하지만 현재는 금골이란 지명은 사라지고 은골만이 남아있어.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영종도의 채광산업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1960년대 즈음에 막을 내렸다고 해. 채광산업이 한창일 때는 전국 각지, 심지어 일본에서까지 사업가들과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영종도에는 한때 2만 명이 넘는 인구가 상주했다고 해. 당시에는 인천공항 및 공항신도시 부지, 하늘도시 일부 부지가 아예 없었고 공동주택도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인구가 정말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현재 영종동 인구인 15천명보다도 많을 정도면, 말 다 했지.


      아쉽게도 채광산업은 상술했듯 1960년대에 막을 내린 후,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아. 그저 지명에만 그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지. 외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대다수인 지금은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현재까지 계속되었어도 나와 별 상관은 없었겠지만, 왠지 약간 아쉬운 기분이 들긴 해.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던 공사장이 여럿 있던 영종도에는 고려시대처럼 피란민이 들어왔다고 해. 그 중 이북 출신인 일부는 이북과 가까운 이 섬에 아예 눌러앉아 버렸다고 해. 고려시대의 역사가 600년 후에 똑같이 반복된 셈이지.


      현재 영종도는 영종하늘도시 개발로 고층 아파트들이 줄줄이 들어선 신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불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종도 주민들은 대부분 초가집에 살았다고 해.




   1970년대 영종도. 저작권자 김홍일.


      이 시기 영종도는 삼목도와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고, 삼목도는 둑으로 신불도와 연결되어 있었어. 삼목도-용유도는 징검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간조 때만 건너갈 수 있었다고 해. 1988년 영종-용유 연도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영종도에서 삼목도로 건너가, 거기서 징검다리를 통해 용유도로 가는 식으로 영종-용유 간 왕래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져.

그리고 통념과는 달리 영종지역 주민들이 내륙으로 나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곳은 구읍뱃터 단 한 곳뿐이었다고 해. 그래서 용유도에서 배를 타려던 사람은 영종도에서 하루 묵기도 했다고 전해져.


1970년대 구읍뱃터. 당시에는 배가 15분에 한 대씩 다녔다고 한다. 영종-인천 페리는 현재도 운항한다.


 이 시기 지어진 다리들은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어. 1988년 개통된 영종-용유 연도교는 인천공항T1-T2 사이 관제탑 인근 지번, 영종-삼목 연도교는 신라면세점 근처의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인근 작은 길, 영종-신불 연도교는 현재의 BMW드라이빙 센터 뒤편에 있었고 인근 도로표지판에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어. 여담으로 80년대에는 현재 공항 부지인 바다에서 굴 양식이 이루어졌다고도 해.



매립 이전 영종도 지도. 이 지도에 표시된 다리들 말고도 추가로 1988년 영종-용유 연도교가 개통되었다.


 1973년부터 계속 경기도 옹진군에 속해 있던 영종도는 1989년 인천직할시 중구에 편입돼. 그리고 1990, 인천국제공항이 영종-용유 사이 바다를 메워 건설하기로 결정되지. 1992년 시작된 부지조성 공사는 1997년 완공돼.


 선사시대부터 서로 떨어져 있었지만, 계속 연계되어 살아가던 네 섬이 마침내 하나가 된 거지. 당시 공항 부지에 수용되어 사라진 삼목도, 신불도 주민은 보상으로 공항신도시의 단독주택용지를 분양받을 수 있게 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홈페이지-공항신도시 지구단위계획 참조)


 삼목도와 신불도는 현재 삼목1사거리, 삼목초등학교,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신불IC 등의 지명에만 그 흔적이 남아있어.

 20001121, 최초로 영종도와 인천 내륙을 잇는 연륙교인 영종대교가 완공돼. 그리고 2001329,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게 되지. 그 후 2003년 영종도 전역이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고시되고, 2007년 영종하늘도시 사업이 시작돼. 2009년 제2연륙교 인천대교가 개통하고, 2012년 영종하늘도시가 첫 입주를 하게 되지.


 영종도의 주민등록인구는 1990 1만 명이 채 안 되었어. 하지만 공항신도시 및 영종하늘도시 개발에 힘입어 2020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9만 명이 넘어. 계획인구는 그 두 배인 18만이고.


        나는 영종도에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60~70년대부터 영종도에 거주하신 분들은 감회가 정말 남다를 것 같더라고.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고, 광물을 캐던 조그만 섬. 그런 섬이 간척을 통해 면적이 3.5배나 넓어지고 세계적인 허브공항 인천국제공항을 보유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게다가 운서동은 인천광역시 100대 상권에도 포함될 정도로 번화하고, 하늘도시에는 고층건물들이 빽빽하지. 인구는 10배나 넘게 증가했고. 우리나라 전체가 크게 변화했지만, 그 중 영종의 변화는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야.


         내가 경제자유구역 삼총사 중 영종을 유달리 편애하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살고 있어서일 뿐만이 아니라 섬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깃들어 있기도 해서야. 1년 반밖에 살지 않았지만, 영종도 안의 수많은 곳에 그런 흔적들이 묻어있어.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그런 것에 관심이 없지. 그렇지만 그런 흔적들을 알아볼 수 있다면, 여기도 옛날부터 사람사는 곳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어. 그냥 소소한 이득이라 할 수 있지^^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다음 시간부터는 영종의 현재에 대해 다뤄볼게


자료출처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7543581&memberNo=24167781

    http://enews.incheon.go.kr/usr/com/prm/BBSDetail.do?bbsId=BBSMSTR_000000000394&nttId=4461&menuNo=3000&upperMenuI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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