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온라인DB가 없어서 실시간 업뎃이 안되니, 이 동네에서 팔은 족보랑 저 동네에서 팔은 족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누구 이름이 어디 족보에는 있고 어디 족보에는 없고 그런 경우가 많았음. 그래서 나중에 종친회 같은데서 족보 정리할 때, 이제와서 누가 족보를 산 사람이고 누가 원래 그 가문이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니 이름이 족보에 없을 경우 너님이 가진 족보 가져오면 신판 족보에 이름 넣어줍니다" 하는 식으로 대충 퉁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음.
근데 희귀성씨면 그렇게 대규모로 매매됐을 리는 없는거 같기도 한데...
검색해보니 시조 김근겸이라는 양반이 왕건때 청주 출신으로 개경에서 관직을 하고 있었다고 나오고, 아들과 손자도 상당히 높은 벼슬을 했다고 나와 있으니 아마 이 사람도 청주 쪽에 근거지가 있는 호족이 아니었나 싶음.
헌데 신라 말에서 고려대에 지방 호족들이 자기네 권위를 세우려고 가문의 시조를 중국 성인이나 어디 왕족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그러면 청주 김씨도 그런 식으로 신라 왕족까지 이어보려다가 꼬인 게 아닐까 싶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