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건 내가 그 집을 떠나온 후 거기서의 내 기억과 부모님의 이야기에 의존한 것이므로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틀은 맞다는 거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는 알다시피 다세대주택가였음. 

집과 집 사이 공간은 되게 좁고, 건너편 집 사이는 대략 5m-10m 정도? 되는 골목길이 있었어.

집들은 대개 4층이었는데, 간혹 가다 3층이나 5층짜리 집들이 있곤 했지.

생활수준은...최악이었다고 해도 사실 거짓말은 아니야. 실평수가 각각 15평 정도에 길거리는 더러워서 바퀴벌레는 엄청 많고 쥐들도 간혹 보였으니.

그렇다고 무슨 '빈민가'라고 하기에도 그랬어, 그냥 소시민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공간이었으니. 솔직히 이 정도면 이쪽 일대에선 좀 나은 편이었고.


우리 건너편 앞집은 3층짜리였고, 그 옆집은 4층짜리였는데, 그 옆집 옥상에서 내가 어렸을 적에 항상 아주머니가 나오셔서 빨래를 널으셨어.

근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집 앞에 막 경찰들 봐있고 사람들이 몰려있는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그땐 그냥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

나중에 여쭤보니까 엄마가 베란다에서 세탁기 돌리다가 그 아주머니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걸 보셨다고...

난 그때 성당 할머니 댁에 있어서 소리를 못 들었거나 기억이 없는 거 같아


그리고 나서 몇년동안 그 빌라 자체에 사람이 다 나가면서 흉물처럼 돼버렸어. 그러다가 그래도 그 집이 나갔나봐. 막 대학생쯤으로 돼보이는 사람들 수십명이 4층에 들어와서 같이 살았어. 잠깐 있는 줄 알았더니 꽤 오랫동안 살더라. 뭔지 알겠지? ㅇㅇ 변두리로 쫓겨난 기마대학생들... 물론 그때의 나는 몰랐지

근데 너무 시끄러웠어. 그리고 쓰레기도 엄청 막 버리고, 원래 살던 주민들은 막 난리가 났지. 질 나쁜 얘들이 들어와서 밤에 잠도 못 자고 환경미화원 분들까지 고생시킨다고...또 쓰레기 줍는 일들은 노인일자리창출사업인지 뭐시긴지 해가지고 어르신들이 맡으셨어. 쓰레기만 수거업체 직원들이 걷어가고. 

근데 뭐 어쩌겠어. 어쨌든 그 사람들은 돈 주고 들어온 사람들이니 동사무소에서도 주의 주는 것 말곤 별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지. 


그러던 어느 날 밤 일이었어. 민사고를 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중2의 나는 새벽 3시에 엄청나게 큰 여성의 비명소리를 들었어. 순간 소름이 돋아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어. 너무 무서워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 내가 조심스럽게 거실을 나서자, 건너편 그 빌라의 불이 켜졌고, 사람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다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거야. 나는 문단속을 다시 하고, 가족들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 자기 위해 누웠는데,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어.


그 다음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기서 합숙하던 대학생 하나가 옥상으로 올라가 옆 건물로 건너가면서 도망치던 중, 거리 계산을 잘못했거나 체력이 딸렸거나 등의 이유로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참 안타까운 일이지. 그 이후에 그 집 3,4층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고 집주인만 1층에, 그리고 세입자는 2층에 살았어. 다행히 그 이후로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아. 근데 정말 소름돋는 우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