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추진된 수없이 많은 춘천의 개발 프로젝트들은 도심과 연결되어 추진된 소규모 택지개발을 제외하고는 모두 축소, 중단 또는 백지화되었다.


그러나 왜일까?


우선 이 수많은 프로젝트들의 추진 배경을 알아보자.



https://arca.live/b/city/19940616

(35년 전 마계춘천 이야기)


호수와 산악으로 뒤덮인 낭만의 도시로 알려진 춘천.

그러나 그 춘천이 휴전선에서 50km 떨어진 도시라는 이유로(참고로 서울이 휴전선에서 40km 떨어져 있다), 수도권의 상수원이며 의암호반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도청 소재지라는 이유로 개발 제한이 이루어져 낙후된, 전국에서 가장 교통이 열악한 도청 소재지이자 전국 제일 윤락의 도시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95년 8월 29일, 전국 도청 소재지 중 마지막, 홍천군과 함께 강원도 18개 시군 중 7번째로 춘천에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1971년 새말IC까지 영동고속도록가 개통되며 원주와 횡성에 고속도로가 들어왔고, 1975년 영동고속도로 새말IC - 강릉IC 구간과 동해고속도로 모전IC - 북평IC 구간이 개통되며 평창, 강릉, 동해(당시 삼척)에 고속도로가 들어왔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춘천은 강원도 18개 시군 중 5번째로 철도가 들어온 지역이다. 그러나 경원선과 동해북부선 모두 전쟁 이후 폐선되었으므로 현대 기준 실질적으로는 처음이나 다름없다. 서울행 단방향 철도라는 단점을 안고 있던 단선 비전철 철도 경춘선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전철화와 복선화가 시작되며 낙후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90년대 춘천의 교통망은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4차선 시외도로라는 당연해 보이는 물건이 강원도의 제1도시, 중심도시, 최대도시이자 도청 소재지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았다. 1915년 개통된 경춘가도의 개량판인 경춘국도의 확장공사 자체는 89년 6월에 완공되었으나, 의암교 구간과 가평읍 - 서면 5km 구간은 여전히 2차선으로 남아 세기말이던 199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나 확장되었다. 경춘국도 일대의 도로망이 조금 특이하게 지어져 있는 이유와 춘천이 서울과 매우 가깝고 통근통학 비율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현저히 다른 지역색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 1995년 개통된 중앙고속도로는 홍천까지뿐이었고, 이마저도 왕복 2차선이었으며 2000년 6월 1일에나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까지 춘천에서 도로교통을 이용하면 서울시계까지도 2시간 - 2시간 30분 이상, 원주까지 2시간, 속초까지 3시간이 걸렸다. 현재는 서울시계까지 50-60분, 원주까지 50-60분, 속초까지는 1시간 30분이면 이동할 수 있다. 왜 수도권 사람들이 춘천을 먼 도시라고 인식하는지, 왜 강원남부와 영동(특히 영동남부)에서 도청 소재지로서 춘천의 입지조건을 부정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강원도의 기득권이 어디인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 중앙고속도로가 전 구간 4차선으로 개통되고, 2009년 7월 경춘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춘천의 접근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되기 시작한다. 경춘고속도로는 정체가 없는 상황이라면 과거 광고문구였던 서울-춘천 38분이 실제로 가능한 도로이며, 2012년 2월 ITX-청춘 개통 이후 춘천-청량리는 청량리-망우 간 선로용량 포화 때문에 제 속도를 낼 수 없음에도 55분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소요시간을 자랑했다.


이후 2018년 서울양양고속도로 전 구간이 개통했고, 2027년경 동서고속철도와 동해북부선이 완공된다면 속초까지 35분, 강릉까지 1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용문-홍천 철도와 춘천-원주 철도까지 마무리된다면 타 지역에서의 철도 접근성도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도시 내적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2001년 도시를 휘감았던 그린벨트가 해제되었고, 윤락의 수도라 할 수 있을만큼 기지촌의 홍등가가 번창했던 춘천은 2005년 캠프페이지가 사라지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춘천역 일대와 소양로 일대 등 춘천 원도심의 다양한 지역에 눌러앉았던 사창가는 시내의 102보충대가 용산리로 옮겨간 후에도 남아있었으나 캠프페이지가 없어지자 몰락, 2008년부터 진행된 춘천시의 소양/약사재정비촉진지구 사업으로 흔적조차 제대로 남지 않고 사라졌다. 도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새로운 발전의 여건이 생겨난 것.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개발 사업이 정말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지금의 춘천을 만들어냈다.


다음 편에서 G5 프로젝트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