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춘천이 왜 그렇게 강원도내에서 확고한 중심도시 이미지가 없는지 의문일수도 있음.


그러나 이건 80년대까지의 춘천을 보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음.


1. 고층아파트 없는 난개발 도시

춘천엔 석사1.2지구가 들어설 때까지 제대로 된 고층아파트 하나 없었음. 춘천 최초의 고층아파트는 88년에 지은 후평현대1차인데(본인 옛날 집이기도 함) 도청소재지라는 춘천의 입지를 감안하면 한참 늦은 일. 그 당시까지 춘천은 후평주공1-5차까지 수백개 동에 달하는 4층짜리 주공아파트가 후평동에 산재해있고, 정작 아무것도 없는 후평공단이 있으며, 효자동과 교동, 죽림동과 운교동 등지에 난개발로 이루어진 단독주택이 산재한 도시였음. 도청소재지의 모습이라기엔 정말 턱없이 부족하지.


2. 마치 마계에 온 듯한 시내

명동은 안 그랬냐 하면 여긴 더함. 당시 춘천에는 캠프페이지가 있어서 시내 바로 옆 소양강 방향으로 0.6제곱킬로미터나 되는 면적이 그대로 가로막혀 있었음. 헬기가 뜨고 비행기가 뜨고 미군부대 바로 옆에 있는 춘천고등학교에서는 미국 국가가 매일 들려서 학생들이 전부 미국 국가를 외우고 다녔다고도 함.


여기까지냐 하면 이게 시작임.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소양로2가와 낙원동 등지에는 사창가가 대놓고 자리잡고 있었고, 춘천고등학교 출신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길만 나가면 남선생님들이나 남학생들 보고 놀러오라며 영업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함. 더욱 놀라운건 춘천고등학교 바로 옆에는 성수중학교 / 성수고등학교 / 성수여상 / 중앙초등학교가 있었다는 거.


당시엔 닭갈비도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하지 않아 춘천시민들만의 외식거리 위치였고, 엠백화점 같은건 존재하지 않았으며 현재의 브라운5번가 자리에는 과거 춘성군청이 있었음. 지금 명동의 절반 규모뿐이었던 것. 심지어 약사동에는 교도소까지 있었음;;


게다가 과거에는 영서로도 없었어서, 소양로를 지나서 화천을 가는 길에 있는 사창가를 지나가면 화천의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께 저건 뭐냐고 물어봤다고도 함. 그저 답이 없던 80년대의 아름다운 현실이지.


3. 그러면 뭐 없었음?

ㅇㅇ 뭐 없었음. 당시 춘천은 전국 유일의 고속도로 없는 도청소재지로 심지어는 4차선 국도 자체가 없었음;; 서면이나 중도 등지에서는 배를 타고 소양로1가로 나왔고, 북산면이야 뭐 지금이랑 똑같지. 양구나 인제 역시 쾌룡호를 타고 다녔는데 당시 육로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빨랐음. (소양댐선착장-양구 30분, 신남 45분)


당시에는 심지어 주변지역으로 가는 도로에 터널도 없었음. 잼버리도로(56번 국도)는 90년대에나 개통한 도로고, 양구 가는 길은 2000년대 후반 들어서야 개량을 시작했으며 그 전에는 춘천-양구 육로로 90분이나 걸렸지. 화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저 당시엔 부다리고개 자체가 제대로 도로가 존재하지 않았고, 5번 국도로 돌아가면 지금과는 달리 1시간은 걸렸음. 홍천 가는 길이야 지금 5번 국도와 크게 다를 게 없고. 그 와중에도 온의동, 퇴계동은 논밭과 82정비대대 등이 있었고, 시내 한복판에는 102보충대가 있었으며, 이후 개발되는 애막골 바로 옆에는 경자대대가 있었지.


그러면 다른곳은 뭐가 없었냐 하면, 춘천은 무려 그린벨트가 있었던 도시임;; 춘천 구봉산의 유명 카페인 산토리니도 그린벨트 해제되고 나서야 지은거고, 신북은 항공대와 2군단, 그린벨트가 함께 있어서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고 지금도 어려움. 강북은 뭐 춘천사람들한텐 지금도 아무것도 없는 마계 취급인데 이 당시엔 공지천 남쪽의 온의동, 퇴계동이 그런 취급이었음. 90년대 초 남춘천중학교 학생이었던 분의 증언에 따르면 동네가 다 산이어서 허구헌날 뱀이 나왔다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았을까 싶은 희망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첨언하자면, 저 당시에는 소양2교의 그 아치형 구조물도 없었고 소양강처녀상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의암호반 자체가 개발제한으로 묶여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음. 참고로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는 1989년 발표된 노래...



그래서 춘천사람들이 규제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물론 이건 강원도민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음) 원주에 대한 라이벌의식과 지역감정, 수도권에 대한 불만(주로 상수원에 관련한 것들)과 도청 사수의지가 그렇게 강한거임. 85년의 춘천은 도청 빼면 정말로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도 시체나 다름없었으니까.


갑자기 뜬금없이 생각나서 써봄. 근데 재밌는건, 저기 써있는건 내가 기억을 이상하게 했거나 한 게 아닌 이상 전부 사실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이 더 있을거라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