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wikipedia.org/wiki/Tollense_valley_battlefield

기원전 13세기 중부 유럽의 톨렌스 계곡에서는 중앙유럽 출신의 4000여 명의 전사들이 대규모 조직적인 전투를 벌였음


여기서 서로 다른 장비를 갖춘 두 군사 집단이 대치하였는데 예전의 싸움에서 다친 흔적인 골절이 치유된 두개골들을 통해 훈련받고 경험이 풍부한 전사가 대거 참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음. 그리고 표준화된 금속 무기들이 말의 뼈와 섞여 발견되어서 고고학자들은 청동기를 든 기마 전사로 구성된 장교 계급이 보다 더 간단한 무기를 가지고 일반 병사들을 지휘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음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중에 한 집단이 중남유럽의 다양한 유물들과 청동기 시대 유럽의 초기 화페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은 청동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임. 그래서 두 집단 모두 유전적으로 유사한 중앙유럽 출신이지만 한 집단은 중남유럽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전쟁터로 이동해 온 것이라고 함


남쪽이나 서쪽에서 온 더 잘 무장된 집단이 전략적으로 오래 전부터 세워져 있는 둑길을 타고 북쪽이나 동쪽으로 가는 길에 강을 건너고 싶어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도로는 주석과 사치품의 장거리 거래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함


상처에서 뚜렷한 치유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여러 차례 전투를 치뤘다고 봄. 그리고 화살촉 하나 외에는 뼈 사이에 물질적 발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통해 전투 후 시신들이 털렸음을 알 수 있음. 승리자들은 아마도 죽은 사람들을 강물에 던졌고, 강물에 의해 하류로 운반되고 침전되며 시체들은 잔디로 뒤덮여 부분적으로 보존되었음


이 톨렌스 계곡 전투의 의의는 아마도 각각의 중앙 정부에 의해 수천명으로 구성된 두 군사 집단이 모여 조직되고, 먹이를 주고, 보고를 받고, 전투에 이끌려 왔다는 거임. 이는 중부유럽의 정치사회적 발전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진전되고 호전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함. 또한 이 전투의 승리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전투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북유럽의 흩어진 농가들이 집중적이고 견고한 정착지로 대체되었다는 점에서 주변 지역까지 큰 영향을 끼쳤던 청동기시대 중부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