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6.25 이전까지 북한땅이었던 강원도 인제군에서 각종 징계를 받아 쫓겨난 관료들, 공무원들이 노동당으로부터 어떤 죄목으로, 어떤 징계를 받아 쫓겨났는지를 요약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를 보면 당시 인제군 주민들이나 높으신 분 상당수가 노동당 당적까지 있었음에도 북한 정권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38선 이남으로 도망치거나,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여러 대책을 강구했음을 알 수 있는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김봉상: 빈농 출신, 춘천사범학교 졸업 후 서화인민학교 교장 역임


-서화중학교 교장 서금택과 '의형제 그룹'을 맺어 남한 친화적인 발언을 하고 다녔고, 북한의 토지개혁 등의 여러 정책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음. 이게 발각되자 1948년 8월 4일에 몰래 38선을 넘었고, 남쪽으로 간 후에는 춘천에서 학교 교원 자리를 얻음. 

월남으로 자동으로 노동당에서 출당.


2. 김재영: 일본군 지원병 출신, 내무서(경찰서)에서 시설계장 등 역임


-업무와 출장 중 서류가방 분실과 추태로 기관의 위신을 깎아먹었고, 마침 옛 일본군 출신이라 아직도 그 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판단됨. 결국 노동당에서 출당 결정.


3. 김환선: 일제 면서기 출신, 인제군인민위원회 서기 역임


군 농민동맹 지도원을 역임했음에도 일부 반동 농민들과 모략질을 했으며, 면인민위원회 서기로서도 직무태만을 일삼음. 결국 모든 직위에서 사임시킴.

그러나 1949년 7월에 남쪽의 호림부대가 인제군을 침입했을 때 납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싸웠고, 냉정히 자아비판까지 마쳤으므로 징계를 철회하기로 결정함.


4. 김훈: 도쿄 릿쿄대학 국문과 졸업, 인제군인민위원회 비서 역임


-처남의 38선 이남 도주를 알고 있었음에도 상급 당에 알리지 않았음. 모든 직위에서 사임시키고 엄중경고 처분.


5. 심관흠: 일제 면서기 출신, 인민학교, 중학교 등의 교원 역임


-1948년 10월 2일에 무단으로 남쪽으로 도주, 이후 춘천에서 상점 개업.

월남으로 자동으로 노동당에서 출당.


6. 심영화: 일제 면서기 출신, 인제 농민은행 서기 역임


-친척들이 전부 월남한 것을 보고 남쪽에 있는 토지를 노리고 야밤에 38선 남쪽으로 도주. 이후 춘천에서 순사로 일하는 중인 것을 확인. 

월남으로 자동으로 노동당에서 출당.


7. 심일록: 일제 면서기 출신. 인제면인민위원회 서기 역임


-공산당 타도 및 남한 지지 발언을 한 것을 확인하여 출당시킴.


8. 심재찬: 일제 구장, 함경북도 아오지탄광 식당 주인 출신, 노동당 인제지역 세포위원장 역임


-일제 구장으로 복무할 때와 같이 독재적 작풍과 소부르주아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여 출당시킴.


9. 이처영: 일제 당시 국민학교 교장 출신, 해방 후에도 인제인민학교 교장 역임


-1947년 3월 28일에 홀연히 도주. 이후엔 서울에서 순사를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함.

월남으로 자동으로 노동당에서 출당.


10. 이희목: 일제 면서기 출신, 인제면인민위원회 서기 역임


-1948년 6월 이후 전 가족이 행방불명됨. 월남으로 간주하고 자동으로 노동당에서 출당.


11. 조환철: 일제 면서기 출신, 서화면인민위원회 서기장 역임


-해방 후에 일제를 위해 복무한 사실도 있고, 서화면 서기장 시절에도 국가재정규율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됨.

출당과 함께 인민재판을 통해 3년의 노동교화형 선고.


12. 정창수: 일제 당시 강원도청 근무, 서화면인민원회 서기 역임


-6천평의 땅을 농사짓고 있는 규모있는 중농이며, 당이 제시한 과업도 제때 집행하지 않아 마을 인민들을 동요하게 하였고, 결국 노동당에서 출당 결정.


13. 채우식: 일제 금융조합 서기 출신, 원통인민학교 교장 역임


-교무주임을 맡던 당원 심대흠이 38선 이남으로 도주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함. 모든 직위에서 사임시키고 엄중경고 처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동당은 처음엔 면서기 등의 일제 관료 출신도 받아들여 주었으나, 그 중 상당수는 갖은 핑계를 대어 쫓겨나는 운명을 피하지 못함.


2. 의외로 상당히 많은 노동당원이 월남을 택함. 이들 중 상당수는 연안파가 이끄는 조선신민당 출신이긴 했으나 어쨌든 38선 이남 월남이란 방법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반대를 표현한 당원들이 적지 않았음을 방증함. 

월남한 사람들의 직위도 말단 서기부터 학교 교장, 인민위원회 비서 등의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들까지 다양했음.


3. 연안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조선신민당과 기존의 김일성 중심의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당원들간의 간극이 꽤나 심했음을 알 수 있음. 

비록 이들은 조선노동당이라는 이름 하에 당을 합치긴 했으나, 구성원들 자체의 사상 차이 때문에 몇몇 갈등들을 겪었고 결국 중심부에서 밀려난 신민당원은 월남이라는 길을 택했을 수 도 있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