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올바르고 건전한 성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NoMatterWhat입니다. 여러분이 꾸준히 성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신 덕에 이렇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멈추지 않는 성에 대한 욕구에 경의를 표하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가져온 성은 프랑스 아비뇽의 교황청입니다.
누구나 그런 상상 한 번씩 하죠. 하 ㅅㅂ 나도 유럽에서 왕이나 했으면 이 ㅈㄹ 안하고 있을텐데. 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생각 접고 지금 눈 앞에 있는 걸 하는게 훨 이득입니다. 유럽의 역사를 통틀어 대충 절반 정도는 왕이 거의 쩌리였거든요. 중세에 왕이라는 존재는 기껏해야 좀 센 영주? 그래서 대귀족들의 눈치를 슬슬 봐야했습니다. 게다가 이때는 왕따위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죠. 바로 킹갓제너럴엠페러 교ㅡ황이었습니다.
교황의 권한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두 가지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1. 카노사의 굴욕
2. 대헌장 무시 설명 끗
3. 십자군
교황이 말 안듣는 황제에게 파문을 날리면 황제는 겨울에 맨발로 눈 밭에 서서 몇 날 며칠을 빌어야 했습니다. 왕이 ㅂㅅ이어서 아무리 귀족들이 권한을 뺏어도 교황이 한마디 하면 원상복구였죠. 교황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원하신다! 한마디면 전쟁이 시작됐고요.
하지만 12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막강했던 교황의 권위가 점점 실추되기 시작하고, 왕의 권한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 계기는 다름아닌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하라는 이슬람교도 죽이기+성지회복은 안하고 같은 기독교도나 약탈하고 있으니 교황의 권한이 추락할 수 밖에요. 반면에 왕은 본격적으로 권력이 강해지게 됩니다. 암것도 안했는데 귀족들이 성지가서 죽어나니 권력이 커질 수 밖에요. 이렇게 무게추가 점점 기울어가는 와중에 터진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비뇽 유수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왕이던 필리프 4세는 측근 귀족들로 기초적인 형태의 관료제를 확립하고 프랑스 영토 내의 영국 국왕 소유지를 걷어내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재정 부담은 자연히 커졌고, 이를 충당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귀족들은 열심히 갈아 더 이상의 수입을 바라기는 무리가 컸죠. 그래서 그는 이제껏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시도합니다. 교회에 세금을 때린겁니다.
당연히 이를 들은 교황은 개빡쳐서 "저저 싸가지 없는 새끼 파문 때려야지..." 하기 전에 필리프 4세가 먼저 선수를 칩니다. 이게 바로 아나니 사건입니다. 아나니 지방에서 휴가를 즐기던 교황을 프랑스로 납치해온겁니다. 심지어 이때 납치된 교황은 건틀릿으로(!) 뺨을 맞는 등의 학대를 당합니다.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급히 교황을 구출하지만, 노령의 교황은 이때의 충격으로 사망하게 되죠.
쨌든 필리프 4세는 이런 기회를 놓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프랑스인 주교를 교황에 앉히고,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게 됩니다. 근데 요 위치가 굉장히 흥미로운 위치입니다.
이 위치에 관한 설명은 읽는 사이트마다 다 달라서 조온나게 뒤지다가 찾은 결과물입니다. ㄹㅇ 이걸로 글 한 편 뽑을 수 있음.... 하지만 여러분은 그딴 과정에 관심이 없으시죠!
아비뇽은 플랑드르 백작령에 속해있는 땅으로, 론 강 하나를 경계로 프랑스령과 신성로마제국으로 갈립니다.
요로케
당시 이 플랑드르 백작에게 땅을 빌려 교황이 이곳에 머물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아는 아비뇽 교황청이 세워집니다. 이때 플랑드르 백작이던 사람은 시칠리아 여왕이기도 했던 조반니 1세였습니다. 시칠리아 여왕은 처음 들어보신다고요? ㅇㅇ 정상입니다. 저도 처음 들어본 사람이거든요.
조반나 1세(1327~1382)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아니 근데 아비뇽은 어쨌든 신성로마제국 땅이라며? 왜 하필 저기다 데려왔지?" 답을 드리기 전에 요 지도 하나 보시죠.
저 파란색 부분의 문양,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고렇습니다.
여기서 보셨습니다. 시칠리아 왕국의 왕족은 프랑스를 지배하던 카페 왕조와 사촌간입니다. 이제 필리프 4세가 교황청을 아비뇽에다 박아놓은 이유가 쉽게 짐작이 가실 겁니다.
1. 강 하나만 건너면 바로 도착 가능
2. 명목상 다른 나라 땅이라 프랑스 안으로 옮기는 것 보다 부담이 덜함
3. 어차피 사촌네 땅임ㅋ
이만한 땅이 더 없는거죠. 여튼 그렇게 해서 아비뇽에 세워진 교황청은 뭐랄까.. 차라리 성 같이 생겼습니다.
진짜 ㄹㅇ로 중세 성하고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죠. 공성전 해도 될 비주얼입니다. 저게 나름 당시 파리 왕궁을 본따서 만든 겁니다만, 글쎄요. 외관미는 어디다 팔아먹었나 싶네요ㅋㅋㅋ 여기 안쪽도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황량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