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휴전선이 현실보다 훨씬 북쪽 - 39도선 혹은 청천강라인 등이었다면 하는 식의 가정을 흔히 접합니다만,
정작 우리가 1951년 1.4후퇴직후 북위 37도선 평택-삼척라인(작성글본문에 언급된 안성천 라인과도 겹치는)까지 물러났다가 간신히 서울 되찾고 38선까지 북진해서 확보한게 현 휴전선입니다.
우리가 37도선에 머무르지 않고 서울수복과 38선 북상을 목표로 했듯이 공산측도 39도선이라면 자신들이 손해라서 밀고 내려오려고 애썼겠죠. 그나마 애써 회복한 38선도 중공군 춘계공세로 동부전선이 붕괴되어 (치욕의 현리전투 - 3군단 유모장군 빤쓰런!!!) 자칫하면 37도선으로 '원위치'할뻔 했다는걸 간과해선 안됩니다.
과연 당시 군수뇌부가 수도권방어 중요성을 몰라 서울 바로 위 38선에서 멈추고 휴전선그은 걸까요? 숟한 악조건에서 그나마 국토중앙 38선까지 회복하고 휴전한걸로도 선배장병 여러분들의 크나큰 노고라 치하해드려야 합니다.
사족 굳이 덧붙이자면 이런말씀 나올때마다 같은내용 댓글복붙에 플러스알파 하는것도 슬슬 지겨워집니다..;;
(채널참여 소극적이고 눈팅이나 하는 주제에 할소린 아니긴 하죠 ;;;)
백선엽 장군 회고록 일독을 권함. 1951년 춘계공세를 막아낸 이후 한국군은 본격적으로 사단급 훈련을 로테이션으로 진행했는데 바꿔 말하자면 그 이전 한국군은 사단급 훈련도 제대로 안 받아본 무늬만 사단급 군단급 부대로 전쟁 치르고 있었고 현리전투는 바로 그 51년 상반기까지의 한국군의 취약성을 대표할수는 있어도 51년 후반기 이후 한국군의 작전능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 반면에 북한군만 해도 개전 시점에서 이미 군단급 훈련 완료하고 쳐내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