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의 중요지대는 대부분이 오래전부터 큰 자본가들에게 점령되었던 것으로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고 오늘에도 이미 대공장으로 경성방직, 용산공작, 피혁회사, 연와회사 등이 잇고 방금 건축 중의 맥주회사가 두 곳 등 대경성이 관청과 은행 회사 학교들로 된 안온한 문화도시로 옛서울의 전통을 많이 상속하고 있는 반면에 근대도시로서의 공업적 발전은 혼자 영등포가 전책임을 다지고 나가는 듯 한 감이 있다. 


앞날의 대영등포를 꿈꾸고 있는 이곳의 읍장 영감은 “적어도 삼십만의 인구를 포옹할 도시를 목표로 한다”고도 말하기는 하나 그것이야말로 어느 명년의 일일런지 측정키 힘든 일이나 우선 당장에 발전되고 잇는 현상으로만 보아도 놀랄 만 하다.




1934년 조선일보에서 특집 연재한 <대경성 후보지 선보기 순례> 중 영등포 관련 기사임. 


당시 조선일보는 ‘대경성 계획’에 따라 경성부 편입이 확실시된 경성 근교의 모습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데, 가장 규모가 컸던 영등포는 특히 위와 같이 상세하게 기술하였음. 


읍장이 자신감 넘치게 30만 도시를 목표로 한다고 말할 정도… 

참고로 인구 30만이면 평양보다 크고 후쿠오카와 비슷한 규모로, 제국 10대 도시 수준의 인구임. 당시 영등포가 얼마나 화려하게 발전하고 있었는지 짐작케 해 줌. 

또 저 읍장의 말에는 영등포의 경성 편입을 반대하고 독자 도시로 나아가려 하는 속내가 숨겨져 있음.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의 글을 더 보자. 




명일의 영등포를 위한 당장의 문제는 시구개정과 하수도 공사이다. 아무리 대도시의 원대한 전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 아직 시구라고는 경인가도의 간선 하나 외에는 길이라고 볼 것이 없고 또 하수도의 설비가 없어서 시가의 면목을 유지치 못하고 있다. 

읍당국에서도 당면한 시설로 명년의 사업으로 착수할 계획은 있다고 하나 아직 예산이 확정치 않은 모양인데 대영등포의 전도로 보아서는 수도의 설비까지 있는 오늘에 하루 바삐 해야할 시설의 하나로 되여있다



그러나 경성 사람인 조선일보 기자의 눈에 보기에는 아직 영등포는 경성에 비해 한참 인프라가 못한 도시로 보였나 봄. 

도로도 경인가도밖에 없고, 수도나 인프라가 부족함을 말하고 있음. 


나중에 영등포가 경성 편입을 받아들였을 때, 읍에서는 경성부에 그 조건으로 하수구나 인프라 문제 개선을 요구하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