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 모시르 모음]

아이누 모시르 [1]: 태평양으로 가는 길

아이누 모시르 [2]: 쿠시로 습원을 가르며

아이누 모시르 [3]: 칼데라 탐방기

아이누 모시르 [4]: 북해도의 심장으로 가다


마지막으로 답사기를 썼던 6월 14일 이래 거의 두 달 동안 여러모로 바빴던지라 답사기를 만질 여력이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왕 쓰기 시작한 답사기는 끝내야 하고, 마침 이따 이야기할 다음의 메이저한 여행도 윤곽이 잡혔는지라 그것도 티저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쿠시로와 그 주변이 여행의 주 부분을 차지했지만, 그래도 삿포로와 그 일대 역시 나름 둘러보았으니 다룰 건 다루어야겠죠?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쿠시로에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북해도의 심장, 삿포로로 돌아온 시점에서 계속됩니다. '아이누 모시르'의 5편은 다들 삿포로 오면 많이 간다는 후라노와 비에이 일대의 이야기입니다. 



숙소 아침짤로 미리보기를 시작합니다. 번외로 숙소 아침을 6시 반부터 먹을 수 있었는데 그때 오픈런 하듯이 줄을 쫙 서 있더군요. 해외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인들의 근면함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숙소가 다행스럽게도 삿포로역 바로 앞이라 투어 집결 장소인 삿포로역까지는 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날씨가 벌써부터 꿀꿀한 면이 없잖아 있는데, 모든 여행이 으레 그렇지만 후라노와 비에이는 특히 날씨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역에서 출발하다 이렇게 중간에 휴게소도 한번 들러줍니다. 후라노와 비에이가 삿포로와 가까워서 다들 많이 간다고는 하는데, 실제로는 각각 삿포로로 차로 2시간 걸리는지라, 생각하기에 따라 오히려 홋카이도 중부 아사히카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나 운전해서 가게 된다면 참조하면 좋겠군요. 



후라노로 가는 길에 있는 저수지/댐을 하나 지나줍니다. 



본격적으로 후라노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저렇게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산들이 원경에 펼쳐지고 근경에는 누가 봐도 비옥해 보이는 밭들이 평야를 뒤덮습니다. 북해도가 일본에서 농산물 생산으로 매우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을 이렇게 체감할 수 있네요. 



날씨가 흐리지만 않았어도 매우 전원적인 풍경이 연출되었을 밭의 모습입니다. 약간 윈도우 배경이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라벤더가 필락 말락하는 6월 초의 후라노입니다. 진짜 라벤더밭으로 유명한 팜 도미타는 오후에 가긴 하는데, 지금은 맛보기랄까요. 중경과 원경을 채우는 밭과 웅장한 산의 조화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원경 어딘가에는 2,291미터 높이의 아사히 산, 구로 산, 도무라우시 산 등 홋카이도의 지붕들이 있겠죠. 더 멀리 보면 다이세쓰 산도 있겠지만, 이 각도에는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 멀리 눈이 녹지 않은 여름의 산을 바라보며 묘한 전원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갑니다. 



행선지를 옮겨 비에이 방면의 명물, 청의호수로 갑니다. 보통 비에이로 오면 다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유명한 그 나무를 찾아가고, 여름에는 청의호수를 가장 먼저 거론하더군요. iOS 7의 배경화면으로도 등장한 비에이의 명소 그 자체인 청의호수는 원래 날씨가 맑으면...



이렇게, 포카리스웨트 같기도 한 색깔을 내야 하는데, 



제가 갔던 시점에서는 날씨 탓인지, 색깔이 뭔가 탁합니다. 날씨 때문에 조금 아쉽긴 한데, 그래도 나름 각도를 잘 잡고 렌즈를 조절해서 적당히 찍어보면...



이 정도의 색채는 구현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청의호수보다 약 3km 정도 상류에 있었던 흰수염 폭포로 갑니다. 비에이, 청의호수, 그리고 흰 수염의 폭포

청의호수 물이 파란 것도 사실 이 폭포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는게, 이 폭포수가 흐르면서 절벽에 있는 알루미늄 성분을 씻어내니 저렇게 물이 특이한 파란색으로 보인다고 하는군요. 푸른 수염의 아내 아니고, 흰 수염의 폭포입니다 (깔깔). 본 답사편의 제목에서 '흰 수염의 폭포'를 여기서 따 왔습니다. 



지금 사진 기준 아래로 흘러가다 보면 청의호수가 나타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죠. 인구가 만 명도 채 되지 않는 듯한 비에이 시내로 들어갑니다. 사진은 이따가 다시 들어올 비에이 역입니다. 



1977년 이래 저 자리에서 그대로 개업 중이던 경양식집인 준페이라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생각 이상의 바삭함을 자랑하던 치킨카츠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비에이 시내로 나갑니다. 




저 멀리 비에이 역까지 이어지는 비에이 중심가의 모습입니다. 비에이 시의 인구가 원체 적다 보니 시가지가 이 정도 크기더군요. 



비에이 시 중심가의 건물에서 나름의 연식을 느끼며, 여기도 쿠시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정체되어 늙어가는 동네로 보입니다. 




비에이 역입니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 역 크기는 군 소재지 정도에 있는, 하루에 열차가 서너번 들어오는 정도의 역 크기죠. 

운이 좋게도, 비에이 역에 있는 약 30여 분 사이에 열차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무려 한 칸짜리 열차입니다. 아사히카와까지 가는 JR 후라노선 열차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고 하는데, 사실 한 칸짜리 열차를 굴린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한국에서는 되게 생소한데 일본에서는 그런 걸 유지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후라노선 자체는 단선인데 비에이역에는 저렇게 대피선이 준비되어 있어서 교행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다시 자연환경을 즐기러 갑니다. 1970년대 닛산 스카이라인 광고에 나왔다는 켄 & 메리 나무라는 미루나무입니다. 날씨만 좀 더 좋았다면 나름 더 화사한 색감이 나왔을 텐데, 아쉬운 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참고로 날씨가 굉장히 좋으면 이런 모습이라고 하네요. 



바이커 분들이 이 일대를 간혹 지나가긴 해서 꽤 그림같은 광경이 연출됩니다. 



근처에는 일본의 담배 중 세븐스타라는 담배 표지에 등장하여 유명세를 탄 '세븐 스타 나무'입니다. 



바로 옆에 이렇게 자작나무들이 도열한 것도 신기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속 펴야가 참 전원적인 풍경을 또다시 연출하는 순간입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일본 육자대의 차륜형 장갑차는 북해도가 일본 육자대의 북방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후라노-비에이에서의 마지막 목적지인 팜도미타에 도착합니다. 

1990년대에 팜도미타 주변 지역에서 라벤더를 그만 재배하고 다른 소위 '돈 되는 작물'을 재배하는 트렌드가 있던 참이었는데, 팜도미타의 주인만큼은 라벤더 밭을 계속 가꾸었다고 합니다. 몇 년 뒤에는 이 지역에 유일하게 제대로 남은 라벤더 밭이 되었는데, 우연히 찍힌 그곳의 사진이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지금은 연간 100만 명이 방문하는 일본 제일의 라벤더 밭이라고 하죠. 

물론! 제가 간 시점은 6월 초라 그런 건 별로 없고, 제대로 된 꽃밭을 보려면 홋카이도 성수기인 7-8월을 추천드립니다. 



7-8월 성수기에 맞춰 가면 이렇게 언덕을 꽉 채운 꽃밭을 볼 수 있죠. 







물론 제가 간 시점에는 그런 건 없고, 한창 꽃밭이 만들어지던 참이었습니다. 



그래도 한쪽 밭에서는 라벤다가 슬슬 꽃밭이 될 것 같은 모습이더군요. 



팜토미타 창립자인 타다오 토미타의 사진입니다. 이 사람이 남긴 라벤더밭이 매년 백만 명 단위로 찾아오는 일본 제일의 라벤더밭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나름의 개방감을 주는 팜토미타와 후라노 분지를 뒤로 하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갑니다. 



삿포로 역에서 저녁을 해결합니다. 굳이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는 않는 것은...



5일차 밤 일정의 하이라이트, 삿포로 역 바로 옆에 있는 JR 타워 38층의 전망대로 올라가기 때문이죠. 

도쿄 이북의 일본 도시 중 가장 큰 도시라길래 야경을 나름 기대하고 갔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죠. 창문 때문에 조금 비치긴 했는데, 아직도 야근하는 삿포로 중심가의 직장인들이 밝히는 불빛의 향연 속에서 삿포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삿포로 근처에서 내려다본 버스터미널입니다. 지붕에 각각의 목적지를 써놓은 것이 특징적이죠. 



어제는 지상 레벨에서 헤매고 있었던 곳을 오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은 항상 새롭습니다. 



JR 삿포로역은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2030년대에 지금은 신하코다테호쿠토역까지만 들어오는 JR 홋카이도 신칸센을 삿포로까지 연장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에 대비하여 이렇게 삿포로역에 신칸센 승강장도 만들고, 고속선도 깔고, 공간을 마련하는 등 나름의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다음에 삿포로에 오게 되면 신칸센도 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집니다.


5일차 일정을 마치면서 든 생각으로는, 다 좋았는데 유일하게 날씨만이 문제였습니다. 후라노의 라벤더는 사실 시기를 잘못 잡아서 왔다 치더라도, 전반적으로 하늘이 좀 흐려서 경치의 색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아쉬운 면이 좀 있었달까요. 

그렇게 '아이누 모시르' 답사기 5일차를 마칩니다. 다음 6일차가 마지막 편이 될 예정인데, 작년 2월 나름 선풍적 (?) 인기를 끌었던 3주간의 미국 답사기 이래 이게 처음으로 써보는 대규모 답사기였습니다. 그 여운도 이어갈 겸 6편 끝자락에서 미래의 답사기 예고도 같이 해 보죠. 


다음 편 예고: 삿포로 탈출, 한가함과 위기 사이의 줄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