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 모시르 모음]

아이누 모시르 [1]: 태평양으로 가는 길

아이누 모시르 [2]: 쿠시로 습원을 가르며

아이누 모시르 [3]: 칼데라 탐방기

아이누 모시르 [4]: 북해도의 심장으로 가다

아이누 모시르 [5]: 후라노, 비에이, 그리고 흰 수염의 폭포


북해도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오후 2시경에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으니, 오전은 얼추 시간적 여유가 나오니 삿포로역 근처에 있는 일본의 7대 제국대학 중 하나이자 지금도 일본의 강력한 명문 중 하나인 홋카이도 대학교를 둘러보러 갑니다. 



전날의 흐린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이날의 날씨는 놀라울 정도로 밝았습니다. 전날 날씨가 이랬다면 후라노, 비에이 뷰도 쩔었을 텐데... 아쉽군요. 



일본에서는 호쿠다이 (北大, 북대)라고도 불리는 홋카이도대학은 일본 제국이 세운 9개의 제국대학 중 일본 본토에 있던 7개 대학 (나머지 2개는 당연히 경성제국대학과 대북제국대학) 중 최북단에 있던 대학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 중심으로 대학들이 서열화된 한국과 달리 구 제국대학 7개가 최상위에 위치한 일본의 대학 시스템 구조상 일본 최고의 명문 중 하나입니다. 2010년 노벨상 수상자인 스즈키 아키라를 배출한, 노벨상 배출 대학이기도 하죠. 


정문부터 휘황찬란한 경우가 많은 한국의 많은 학교들에 비하면 홋카이도대학의 정문은 조금 소박해 보이긴 하지만, 이래봬도 저 캠퍼스가 서울대 관악캠퍼스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예상 외로 넓은 대학이었던...



캠퍼스 지도를 보니 벌써부터 그 크기가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같은 제국대학이라 그런지 건축 양식이 묘하게 경성제국대학 건물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이 생각나네요. 



홋카이도대학 캠퍼스의 특징 중 하나로는 녹지가 생각보다 많다는 데에 있는데, 여기만 딱 떼놓고 보면 공원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 날이 토요일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뭔가 고요한 정경이 펼쳐집니다. 



홋카이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홋카이도대학의 초대 교두 (총장)이자 미국의 화학/생물학/농학 교수였던 윌리엄 클라크의 흉상이 캠퍼스의 남쪽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의 명언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어릴 때 위인전 같은 곳에서 나폴레옹 사진과 같이 탑재해주는 경우가 많아 나폴레옹이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윌리엄 클라크라는 다소 생뚱맞은 (?) 사람의 명언이어서 벙쪘던 때가 있었죠. 



캠퍼스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 윌리엄 클라크 흉상에서 시작되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조금 서쪽으로 틀면 홋카이도대학에서도 유명한 포플러 길이 펼쳐집니다. 사진을 영 못 찍어서 그림이 그렇지만, 나름 운치가 있더라고요. 



이게 대학교 캠퍼스가 맞나 싶을 정도의 오솔길을 지나면



홋카이도대학 농학부의 텃밭 (?)이 있습니다. 홋카이도대학 자체가 농업학교로 시작한 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합당한 토지 할당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뭔가 서울대의 자하연이 생각나는 연못이 있습니다. 



계속 북상하면서 공학부를 지나갑니다. 




사진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홋카이도대학 의학부가 조금 더 북쪽에 나타납니다. 



의학부 쯤에서 돌아보는 홋카이도대학의 메인 스트리트 (?). 대학 박물관을 포함해서 주요한 건물들은 전부 이 라인에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약간의 조명빨(?)을 받은 홋카이도대학의 메인 스트리트. 이게 정말 대학교 캠퍼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녹음이 우거져 있습니다. 



홋카이도대학을 떠나기 전 이걸 깜빡했군요. 녹음에 가려진 게 시계탑인데, 여기 있는 홋카이도대학 시계탑이 홋카이도대학 본관 기능을 하는 곳이랍니다. 

이렇게 보면 시계탑도 그렇고 구 제국대학인 것도 같고 서울대 연건캠과 묘하게 비슷한 면이 많은...




홋카이도대학도 다 둘러봤겠다, 이제는 귀국할 시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역도 아니고 삿포로의 중앙역인 JR 삿포로역이 대학에서 10분 거리라 빠르게 귀국길에 오를 수 있습니다. 삿포로가 개발되면서 거의 동시에 시작된 대학이다 보니 입지는 가히 사기적이군요. 

이쯤되면 익숙한 구도의 JR 삿포로역 북쪽 뷰와 함께 삿포로를 떠날 채비를 합니다. 



요금표 지나칠 수 없죠. 




삿포로로 들어올 때 탔던 것과 같은 열차를 타고 다시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합니다. 



정신차려보니 다시 치토세 공항입니다. 



체크인 코너 한쪽 위에 대문짝만하게 이번 여행의 절반을 차지한 쿠시로, 특히 가히 '일본의 순천만'이라 할 수 있는 쿠시로 습원이 있으니 뭔가 반갑더군요. 갔던 시즌이 비교적 비수기라 그런지 한국인은 고사하고 사람은 진짜 적었습니다만...



신치토세 공항 국내선 터미널 쪽에는 김포공항 롯데몰이 붙어 있듯 복합쇼핑몰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이 인근에 라멘집이 모여 있는 구역이 있는데, 그 중 한 곳에서 라멘을 먹으며 한동안 북해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만끽합니다. 



지금 봐도 세련되어 보이는 신치토세 공항 국제선 게이트. 실은 이때 보안 검색대를 출발 20분여를 남겨두고 통과했는데, 게이트를 잘못 보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Final Call에 이름이 올라오는 수치심과 함께 실제 게이트까지 400미터를 질주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죠. 



무려 신치토세-하네다 간 국내선에 들어간 전일본공수의 보잉 777을 먼저 보내고 이륙합니다. 777을 국내선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일본 국내선 수요 규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서울-제주가 압도적이라 그렇지 도쿄-삿포로의 경우에도 세계 10위권 내의 인기 노선이라니 말 다했죠. 



비 오는 신치토세 공항을 뒤로 하고 이륙합니다. 



정신차려보니 일본은 어디 가고 다시 익숙한 논밭과 산들을 사방으로 가르는 도로들이 빚어내는 한반도의 정경이 저를 마주합니다. 



경기도 남부에 저렇게 철도차량기지처럼 생긴 곳이 쭉 뻗은 선로와 같이 있다...? 여기는 뭔가 서화성남양 근처일 것 같군요. 서해선 KTX가 머지않아 이 길로 올라오고, 신안산선의 종점이 이 근처라 신세계테마파크도 들어서고 한다죠. 



뭔가 교과서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시화조력발전소입니다. 조금 이따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원경에는 인천과 송도국제도시가 보이는군요. 



인천신항이 근경에, 원경에는 송도국제도시의 아파트 숲이 보입니다. 



인천대교와 저 멀리 월미도가 보입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인천대교를 따라 날아오면 영종도로 들어오고, 



저 멀리 보이는 대한항공 A380기들을 보며 착륙합니다. 



확장공사가 한창인 인천공항 제2터미널 쪽을 지나 탑승동 방면으로 갑니다. 




여긴 대한항공과 스카이팀의 구역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양 기세등등한 대한항공의 항공기들이 시선을 강탈합니다. 



대한항공의 양대 플래그십인 A380과 B747-8i가 일기토를 벌이고 있군요. 



끝으로 다시 지방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 방면 직통열차를 타러 가며 6일, 6편에 걸친 '아이누 모시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2014년 7월 말 이후 거의 10년 만에 간 일본이었고,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처음으로 단행한 출국이었습니다. 답사기를 쓰는 것도 작년 2월에 나름 히트였던 지난 2019년 미국 3주 답사기 이래 처음이었고, 때문에 그만큼 메이저한 답사기를 준비했습니다. 원래는 이보다 판이 더 커서 캐나다 로키 산맥을 열차로 주파할 계획으로 시작한 하계 출국이었지만 일정이 틀어져 상대적으로 가까운 홋카이도로 타협했죠. 처음에는 삿포로, 해 봤자 후라노와 비에이 정도를 생각하고 출발한 저로선 일정의 대부분을 그때 처음 들은 쿠시로라는, 홋카이도 동부의 도시에서 보낸 것이 한편으로는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신한 경험이었습니다. 색다른 모습의 일본을 보면서, 특히 태풍 아니면 폭염인 요새 한국의 날씨를 생각하면 쿠시로의 서늘한 여름 날씨가 더욱 생각이 납니다. 


이번의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그런 맥락에서 '참신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우리에게는 가까운 일본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일본도 굉장히 광대한 만큼 다양한 모습이 펼쳐진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서 볼 때마다의 참신함을 음미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쿠시로와 그 주변은 한국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가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가 생각한 일본과는 또 다른 참신한 북녘의 모습, 그것이 이제는 흔적뿐인 아이누족의 땅, '아이누 모시르'의 참 모습 아닐까 싶네요. 


앞서 다음 답사지에 대한 티저를 이제 풀겠다고 했는데... 설연휴를 포함한 1-2월 즈음에 싱가포르에서 약 1개월간 단기로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싱가포르도 싱가포르지만 겸사겸사 해서 말레이시아부터 인도네시아까지, '한국에서 비교적 먼' 동남아시아를 총체적으로 맛볼까 합니다. 물론 남들이 다 가는 곳도 한 번씩 가겠지만, 도지챈의 집단지성으로만 알 수 있는 참신한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지금부터 추천받습니다. 


거의 반 년이나 남은 싱가포르 이야기를 벌써부터 하는 이유는 그야... 높은 확률로 그게 다음편이기 때문이죠. 중간중간에 크고 작게 국내 곳곳을 답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 정도 규모의 대규모 답사는 한동안일 것 같군요. 머지않아 싱가포르와 그 주변 답사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