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조선이란 나라 자체에 대한 이해를 못하고 있네. 좌우도 나눈 건 군사적인 목적이 주였고, 조선은 광역행정이 필요하다면 각 도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중앙에 보고 올리고 지시 하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원주를 중심으로 도로망이 깔려있을 필요도 없고, 관찰사만 돌아다니는 구조다. 그정도 교통은 이미 고려 이전에도 충분했었다. 그리고 호족 견제같은 건 도 경계같은 걸로 하는 게 아니라 부군현 차원에서 수령과 향리 수준에서 이뤄지는 거였고... 고려말에 합친 건 말했잖아. 군사적 환경 자체가 변했다고. 귀찮아서는 무슨...
그래서 방곡령도 중앙에서 내린거냐? 광역 행정이 중앙 담당이라는데 관찰사가 방곡령 내리는 권한이 있네? 방곡령 같은 곡물 통제나 군사 조직 권한은 행정이 아닌가보지?
애초에 전근대 국가가 모든 광역 행정 사무를 중앙 보내서 처리할 정도면 교통망이나 통신망이 오늘날 못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오늘날도 광역 행정 사무를 중앙에서 처리 못하는 데말이안.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원도에는 강릉과 춘천에 중심 행정기구인 감영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고 관할 구역이 달라 사실상 분리된 지역처럼 운영되었구만 무슨 교통이나 생활권이 행정에 영향 못미친다는 주장을 하는거여.
거기에 감사도 영서에서 영동을 가기 힘드니 원주에서 영동쪽 감사가 힘들어지는 공백이 생기는것이니 (돌아다닌다해도 영동 돌때는 영동만 돌아다녀야하니 영서가 공백) 확실히 잘못 묶어서 만든거 맞음.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있고, 제도가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를 모른채 시대상에 따른 변화를 섞어서 자기 편한대로만 결론을 내리는구나. 금산과 제주, 봉화와 남해, 제천과 보령은 생활권이 겹쳐서 같은 도겠냐? 그래도 될만큼 주요행정은 부주군현 내에서 이뤄졌다. 관찰사와 병마사는 중앙집권제 속에서의 직위였지 봉건적 지방제나 오늘날의 광역자치 개념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안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