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테이아(Aletheia) 마법 학교는 칼테론 제국 수도, 아르덴할에 위치한 국립 마법 학교다. 제국내 명성을 떨치는 최고 교육 기관으로, 마법을 배우기 위해 각지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온다.
동화 속에서 볼법한 커다란 첨탑. 깨끗한 상아색 대리석과 벽돌로 중무장한 외관은 현실감을 잃게 만들곤 했다.
학교는 중앙 광장을 기점으로 동서남북으로 퍼져있다.
동쪽으로는 학생 기숙사가 자리하고 있고, 서 쪽으로는 교수동이 있다. 두 건물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나란히 서로 마주 본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는 설립의 이념에 따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철학에 따라.
이들이 학교로 걸어가기 위해선 항상 중앙 광장을 거쳐야만 했다. 스승과 제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곳.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질문이 정답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학자들은 이 길을 생각의 길이라 칭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뭉쳐 걸어가는 길 위에선 선생과 학생 모두가 평등할 뿐.
중앙 광장은 만남만큼 항상 열띈 토론이 펼쳐지곤 했다. 이 곳에서는 연공서열에 관계 없이 누구나 주장할 수 있다. 경쟁과 협력이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따라서다.
때문에 내성적인 누군가는 생각의 길을 싫어한다. 누군가는 그저 의무적이고 내실없는 토론을 양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만나 걸어가는 길 앞에는 항상 학교가 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옆 사람과 다투고, 인정을 배우고, 무지에서 깨어나 앎을 배울 것이다.
과거 선대의 마법사들이 그랬듯.
"그리고 배고픔을 무찌르고 맛과 포만으로 가득찬 여행을 떠날 것이다!"
에스텔 에버리트. 최근 논란을 몰고 온 신입생의 등장에 학생들이 수근거린다. 산골 소녀인 그녀의 교양 없는 행동은 제쳐두고, 이 곳은 신입생들을 축하하는 환영회. 학교를 잠시 꾸며 벽에 형형색색의 천을 길게 걸고 풍선과 폭죽이 난무하는 화려한 볼거리장으로 탈바꿈 시켰다. 뿐만 아니라 음악회을 방불케하는 오케스트라를 빌려와 실내 가득히 아름다운 클래식 소리가 들린다. 케케묵고 고루한 전통을 고수하는 학교지만 이 날만큼은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 전념한다.
이 날엔 유명한 연예인, 정치인, 장군과 관리까지 찾아왔다. 학생들의 눈이 놀라 끔뻑거린다. 제국 최고의 학교인만큼 그들은 어느 학생의 가족, 친척, 후견인일 터이다. 모두가 그들과 말을 섞거나, 장래에 자신을 끌어줄 배경으로 삼고 싶어 했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 그들 또한 훌륭한 인재가 가득한 학생들을 영입하기 위해 미리 눈도장을 찍어둬야 했다.
어른들이 노리는 대상은 단연 늑대의 꼬리와 귀를 가진 수인 소녀. 에스텔 에버리트. 최근 두각을 드러내며 신입회장에서 화려한 난동을 부린 학생이자, 모든 학과장들이 자신의 학과에 들이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학생이었다. 모두가 애타게 에스텔을 찾아 헤맨다. 방금 전까지 히죽거리는 에스텔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체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에스텔은 장래에 동앗줄이 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치우며 지나갔다. 지나가겠습니다. 지나갈게요! 실례하겠습니다! 하며 인파를 뚫고 간 그녀가 마침내 당도한 그 곳.
칼테론 제국, 요리의 황금향. 막 구운 고기와 훌륭한 디저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음식 테이블이다. 많은 식장 인원만큼이나 길게 나열된 테이블엔 끝도 없이 가득한 음식이 채워져 있다. 매콤한 향신료의 카레, 이국적인 쌀과 죽 요리. 평소엔 책으로 보았던 마카롱 디저트와 초코 케이크를 잔뜩 갈아넣은 밀크 셰이크. 치즈 분수가 흐르는 퐁듀와 화로에 꽂힌 마시멜로. 길게 늘어진 빵과 그 사이에 낀 소시지. 갖가지 레시피로 쌓인 쿠키와 케이크. 싱싱한 해산물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과일과 얼음으로 시원하게 재워둔 아이스크림까지.
"아아 바로 이거야. 역시 제국 최고의 학교야!"
산골 소녀 에스텔은 두 뺨을 잡고 음식을 향해 몸을 베베꼬며 구애의 춤을 벌인다. 그녀의 짧은 인생에서, 이토록 수많은 요리가 한 곳에 모여있는 경우는 없었다. 테이블 밑에 있는 접시를 들고 무엇을 먹을까 행복하게 눈을 돌려대는 그녀. 에스텔이 집게를 들어올린다. 한 입에 먹기 좋은 초콜릿을 집으려는 순간.
"쯧."
한 뚱보 아저씨가 그녀를 보고 혀를 찬다. 에스텔은 뒤를 돌아보았다. 꼬리는 여전히 빗자루처럼 빙빙 돌아가는 상태. 뚱보 아저씨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후식은 맨 마지막에 먹는 게 좋다. 처음부터 단맛으로 입맛을 자극하면 금세 물려버리거든."
"당신은 누구..."
그는 마치 연단에서 강연하듯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모름지기, 뷔페에 처음 왔을 땐 식전 음식으로 위장에 신호를 보내는게 좋다. 빵이나 스프, 한 입 크기의 치즈 같은 것들 말이지. 괜히 눈이 커져 이것저것 욕심껏 담다 보면, 금세 배가 불러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테니 조심하거라."
에스텔은 허리를 곧게 세웠다. 그의 말투에는 어쩐지 기묘한 권위가 깃들어 있다.
"옛!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스텔은 접시를 들고 코너로 향했다. 그 곳엔 빵과 파스타, 다양한 소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에스텔이 매콤한 칠리 연어알 소스의 냄새를 맡고 그 것을 부으려는 순간. 문득 맛 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에스텔은 칠리 연어알 소스를 포기하고 빵과 크림 스프를 담아왔다.
그녀의 접시는 척 보기에도 상당히 빈약한 양이다. 가족이 봤다면 에스텔이 아프진 않을까 병원에 데려갈 정도. 에스텔은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스프를 섭취했다. 그의 말대로 따뜻한 스프는 위장을 편안하게 해준다. 빵을 찢어 흰 부분을 스프에 발라 먹고, 빵 껍질은 스프에 넣어 부드럽게 익혀준다. 포크로 찍어 접시까지 싹싹 닦은 에스텔. 뒷편에서 평론가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본다.
"맛을 잘 아는 아이로군."
개미 눈꼽만큼 먹은 에스텔은 빈 접시를 내려다 본다. 너무 닦아 거울처럼 자신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배고프다..."
에스텔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불만을 토로한다. 허기진 위장이 음식을 요구했다.
뱃 속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면 다음 요리는 무엇일까? 바로 생선과 고기. 메인 디시 차례이다. 지글 지글 구워지는 연어 스테이크와 노릇한 사슴 통구이. 칠면조의 속을 파내어 그 안에 달걀과 다진 소를 채워넣은 요리부터, 매운 소스를 발라 눈이 시큼거리게 만드는 닭 요리까지. 에스텔의 침이 줄줄 흐른다.
이 메뉴들을 다 돌기엔 시간과 위장이 모자르다. 그녀에겐 효율성이 필요했다. 먼저 자극적인 소스를 바른 고기들은 전부 쳐낸다. 이 요리들은 빈약한 실력을 소스로 떼우기 위한 혀속임. 후추와 강황, 계피 등 향신료를 때려박은 요리도 마찬가지.
모름지기 요리란 재료 본연의 맛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을 쳐내니 남은 요리는 굽거나, 찌거나, 졸인 고기 뿐이다.
그녀의 곁에 평론가가 슬쩍 다가온다.
"도움이 필요해보이는군."
"...음식이 너무 많아요."
"그렇지. 눈 앞에 산해진미가 놓여있을수록,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네."
그 때 에스텔은 어느 한 구석에 시선이 끌렸다.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있다.
요리사는 검은색 안경을 낀 남성. 한 쪽 팔을 들어 기묘하게 고기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테이크에 얇은 금박을 입혀 척 보기에도 바깥에선 접하기 힘든 요리.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며 그의 요리를 담아가고 있다.
"쯧."
평론가는 고개를 저었다.
"눈에 띄는 퍼포먼스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본 실력과 식재료의 질이다. 저런 걸 연습할 시간에 실력을 갈고 닦고, 좋은 식재료를 찾아 헤매는 것이 훌륭한 요리사지. 레시피보다는 화제를 쫓는 자로구나. 이 자의 음식은 필요 없다."
평론가가 등을 돌렸다. 에스텔은 고기와 평론가를 번갈아 보았다. 소금이 고기의 기름과 녹아 잘 배합되었고, 금을 입혀 눈으로도 보기 좋은 음식. 에스텔은 고기를 담고 싶었지만 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사람이 좀 빠졌을 때를 노려야할 것 같다.
에스텔은 다시 평론가를 따라갔다. 그가 찾은 곳은 한적한 요리사의 앞이었다. 그의 앞엔 여러개의 크고 작은 칼들이 놓여있었고, 막 세척한 도마엔 싱싱한 고기가 놓여있다. 평론가는 수염을 가다듬으며 인사 대신 외쳤다.
"미디움 레어."
에스텔도 말했다.
"같은 걸로 주세요."
눈썹이 짙은 요리사는 미디움 레어란 소리에 꿈틀거렸다. 그가 뒤집개를 집어든다. 오랫동안 구워진 자글 자글한 불판을 내려다보는 요리사. 그 위에 손을 올려 열기를 재고, 고기를 들어 불판에 올린다. 고기가 연기와 기름 소리를 내며 구워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고기의 두깨가 심상치 않다. 보통의 스테이크에 비해 두 배는 큰 고기. 저런 고기는 잘못 구우면 안 쪽이 덜 익을 위험이 있다. 요리사는 뒤집개로 고기를 순식간에 뒤집었다. 흰 마블링이 가득한 고기의 지방이 작열하는 불판에 녹아간다.
"보아라. 저 고기는 미리 질긴 힘줄을 제거하였구나. 금방 도축해서 아직도 고기의 근육이 생생히 움직이고 있다. 저렇게 야들야들한 상품은 입에 넣기만 해도 사르르 녹기 마련이지."
에스텔은 눈을 반짝이며 고기에 집중했다. 이글대는 소리에 두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는 강아지처럼 살랑 살랑 흔들린다. 마치 고기에 홀린 것처럼. 그녀의 시선은 뒤집개를 따라 위로 향하고, 아래로 내려간다.
마침내 완성된 고기가 두 접시에 올려진다. 이만한 크기의 스테이크는 본 적 없었다. 기름기로 윤기 있게 빛나는 스테이크는 도톰한 블랙 푸딩처럼 출렁거렸다. 요리사의 앞엔 고객이 자유롭게 뿌릴 수 있는 소금과 후추가 있었다.
그러나 평론가는 제 길을 걸어갔다. 오로지 재료의 맛만 평가하겠다는 소신이다.
에스텔은 평론가를 따라가 나란히 테이블에 앉았다. 그가 나이프를 들어 고기의 정 가운데를 긋는다. 무척이나 부드럽게 썰리는 고기 안엔 핑크빛의 연한 속살이 드러난다.
"이 것이 미디움 레어군요..."
"그렇다. 요리사의 실력을 판가름하기에 제격인 굽기 방식이지."
"그럼 잘 먹겠습니다!"
에스텔 또한 고기 한 가운데를 포크로 찍고,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본다. 이토록 잘 갈라지는 고기는 처음이다. 건강하고 좋은 소의 고기일수록 부드러움의 질이 달라진다. 마치 생선처럼 결을 따라 잘린 고기 속엔 연분홍의 핏기가 살아있었고, 사면이 골고루 익혀있다. 특히 안에서 쏟아지는 육즙은 벌써부터 침샘을 자극한다.
에스텔은 마침내 입 속에 고기를 집어넣었다. 씹히는 고기의 맛을 음미하며 꼬리를 흔들어댄다. 마음 같아서는 통째로 입에 넣고 싶을 정도다. 으음하는 추임새가 절로 입에서 새어나간다.
"소녀. 먹고 나서 빈 접시를 요리사에게 보여주거라."
"예?"
"그게 요리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에스텔은 요리를 다 먹고 빈 접시를 보여주었다. 늙은 요리사는 홀홀거리며 기뻐했다.
메인 디시를 먹었다면, 다음은 샐러드의 시간이다. 아삭한 토마토, 양배추, 멜론, 용과, 포도 등이 기다리고 있다. 육식을 원하는 에스텔은 생략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식사엔 서순이 존재한다. 에스텔은 몇 가지 과일을 담아 테이블에 돌아왔다. 한 손으로 껍질을 집어 과일을 먹고, 혀에 묻은 고기의 냄새를 씻겨낸다. 이러면 다음 코스 요리에서 진가를 맛볼 수 있다.
마침 샐러드 코너 옆에 다음 코스가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치즈 덩어리들. 산양과 소, 낙타에서 나온 우유를 짜 발효시킨 치즈들이다. 푸른 곰팡이가 핀 블루 치즈부터, 구멍이 송송 뚫린 에멘탈 치즈, 생우유로 만들어진 까망베르, 치즈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브리 치즈까지. 갖가지 치즈들이 마치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에스텔은 푸른 줄무니와 얼룩이 묻은 블루 치즈를 한 조각 집었다. 냄새를 맡는 순간, 고약한 고린내가 예민한 후각을 강타했다. 에스텔은 바로 코를 틀어막았다. 매캐한 냄새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한다.
"블루 치즈는 초심자에겐 맞지 않지."
평론가는 블루 치즈를 가져가 입 속에 털어넣었다. 저런 걸 맛있게 먹다니. 에스텔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에겐 까망베르 치즈가 어울렸다. 특히 갓 만든 까망베르는 물기가 가득하다. 알처럼 둥근 치즈를 칼로 그으면 쫀쫀한 유막이 갈라지고, 부드러운 치즈가 모습을 드러낸다. 치즈는 끈적하고 맛이 좋아서, 빵이나 다른 요리에 발라먹기 적당했다.
치즈를 먹은 후, 식사의 마지막이 찾아왔다.
디저트. 에스텔이 넘보고, 꼬리를 치고, 달콤한 냄새로 그녀를 유혹했던 과자들. 터키젤리,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입에 털어먹기 좋은 크기의 크림과 바삭한 비스킷들. 무한으로 구워지고 리필되는 디저트가 그녀를 기다린다. 이런 호사는 가난한 그녀가 쉽게 접할 수 있는게 아니다. 최대한 많은 요리를 맛보고 즐기는 것이 미식의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
에스텔은 조그마한 집게를 집어들었다. 삐끗. 삐끗. 잘 담아지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녀는 초콜릿 요리를 담을 수 있었다. 달콤한 초콜릿 빵에 초콜릿 코팅을 바른 디저트. 제국의 유명 쇼콜라티에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입 안에 넣자마자 녹아내리며 꽃을 피운다. 날 것만 먹던 에스텔의 혀에 꽂혀지는 충격적인 당과. 부서지는 빵과 달짝지근한 초콜릿이 이빨에 달라붙을만큼 위태롭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맛에 에스텔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 밖에도 제국은 넓고, 요리는 많다. 사방에 가득히 피어난 디저트들은 갖은 냄새로 에스텔을 유혹하고 있다. 자신에게 그대가 다가와 한 입 맛보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에스텔은 유혹에 못 이겼다. 촉촉한 크림이 가득한 요리. 음료수 안에 신기한 버블이 씹히는 요리. 시원하고 톡 쏘이는 탄산과, 에스텔이 팔을 높이 들어올려도 끊어지지 않는 껌까지.
에스텔은 초콜릿 알을 맛 보았다. 따뜻한 소스를 부으면 얇은 초콜릿이 녹으며 안에 있던 요리가 드러난다.
그녀는 동양에서 건너 온 과자를 맛 보았다. 밀과 쌀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꿀을 찍어먹는 요리였다.
에스텔은 대추야자도 먹어본다. 사막에서 자란 과일이 이토록 달다니. 식물 학도로서 참을 수 없는 과일이었다.
그렇게 꼬리를 살랑이던 에스텔. 제국의 모든 디저트를 다 먹어보겠다는 욕망은,
배부름 앞에 무릎 꿇었다. 갑자기 먹기가 싫어진다. 입맛에 물린다. 아직 맛 보아야할 무수한 요리가 있는데도.
이는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헬쑥한 표정의 손님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표정을 지으며 요리를 담고 있었다.
너무 많은 달콤함을 맛본 탓일까. 에스텔은 벽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골랐다. 마치 장기전을 치룬 권투 선수처럼 지친 표정. 그러나 눈은 여전히 승부에 불타며 음식 쪽에 가 있다.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맛볼 수 있을까. 에스텔은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감을 잡아본다.
아직 해산물도 못 먹어봤고, 음료도 못 마셔봤고, 케비어라던가, 최고급 요리도 남아있는데.
그녀의 눈 앞에 놓인 동양식 오리 구이. 기름에 튀겨 바삭한 껍질과 찢어지며 드러나는 하얀 고깃결이 일품.
다른 테이블엔 케첩을 바른 튀김 요리가, 고기와 버섯을 꽂은 꼬치 구이가, 눈 앞을 휘도는 음식들이 바로 앞에 있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평생의 미련이 될 터이다. 에스텔은 다시 일어났다.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반드시 모든 요리를 맛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에스텔에게 뷔페란 마라톤과 같았다. 천천히 한 번에 한 음식씩, 아주 조금만 담으며 맛을 본다. 이미 산더미처럼 쌓인 위장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는 뷔페란 코스를 완주해나갔다.
요리사들은 당황한다. 에스텔이 손톱만한 음식을 접시에 담아가고, 그 것을 포크로 찌르거나 스푼으로 누르며 형태를 체크한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맛을 음미하는 그 자세. 그들이 익히 봐왔던 숙련된 평론가와 동일한 행동이다. 자신의 요리가 평가대에 오르자 요리사들은 에스텔에게 친절해졌다. 자신은 어떤 재료를, 어떤 발효 방법을, 어떤 신기술을 선보였다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에스텔은 그저 맛만 좋기를 바라며 꼬리를 흔들어댄다.
"너무 많아. 맛있어! 하지만 너무 많아! 맛있어!"
음악의 도돌이표처럼 몇 마디 단어만 내뱉는 에스텔. 그녀에겐 아직도 수많은 코스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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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막을 내리고, 테이블에 차려졌던 성대한 음식들이 치워진다.
평론가는 난생처음 기괴하고, 진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배가 산처럼 부풀어오른 에스텔. 어찌나 빵빵한지 북처럼 쳐보고 싶을 정도다.
"자네. 그걸 다 맛본 건가?"
에스텔은 미소 지었다. 그녀가 후들대는 손을 높이 들어올린다. 에스텔이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평론가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오메데또."
다른 요리사들도 모두 모여 박수를 친다.
"오메데또 에스텔."
에스텔은 이후 배탈이 나 한동안 고생하게 되었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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