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토끼 한 마리>

 

 헤네시스는 엘리니아와 이어져 있는 만큼,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숲은 규모가 꽤 컸다.

 

 마치 대륙 곳곳을 뻗어나간 세계수의 뿌리처럼 넓고도 깊었는데.

 

 그 때문인지 블랙윙의 거점들은 헤네시스와 엘리시아의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발각을 염려해 이런 곳을 잘도 마련한 것이리라.

 

 오늘은 골렘들이 출현하는 사원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블랙윙의 한 거점을 치기 위해 근처에 와 있다.

 

 주변에는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푸른 결계석과 함께, 안개를 발생시키는 기계들이 작동 중인 걸로 봐서… 이 곳은 틀림없이 블랙윙의 거점이 분명했다.

 

 우선은, 저 안개 발생 장치부터 제거를 해볼까….

 

 위잉- 위잉-

 경고를 알리는 사이렌과 함께, 공간을 울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침입을 감지하였습니다. 상대에 적합한 약점 분석 중….]

 

 내 다크 사이트를 감지하다니… 이런 적은 처음인데… 예감이 좋지 않았다.

 

 황급히 표창을 흩뿌려 안개 발생 장치를 고장 내게 하고, 서둘러 도망치려는데….

 

 “그 분의 뜻을 방해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블랙윙의 검은 제복을 입은 한 중년 남성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 알았다.

 

 “이베흐… 설마 너 혼자 뿐이야?”

 “그렇다.”

 

 놈은 무뚝뚝하게 내 말에 답하며, 진압봉을 꺼내들었다.

 

 “설마 너 혼자서 날 상대하려는 건 아니겠지? 저번에도 넌 내게 상대가 안 됐잖아?”

 “…네 상대는 겔리메르님께서 창조해낸 인공지능 시스템이 지목해줄 거다.”

 “그게 무슨….”

 

 [약점 분석 완료!]

 

 불길하게 느껴지는 기계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건 설마….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한 때 붙잡혀간 내 동족, 토끼 수인들이 붉은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겔리메르 이 비겁한 대머리 녀석이….”

 

 그간 나는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하면서, 혼혈들의 정당한 권리를 얻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레지스탕스의 온갖 음지에서의 일을 나 혼자 도맡을 정도로 그렇게 노력을 해왔었다.

 

 여러 일을 해치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괴로웠던 것은 적에게 세뇌당한 수인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나랑 그들은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이종족도 아닌 하나의 불순물. 따라서 구출 대상에서의 수인은 인간보다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내가 레지스탕스를 위해 온갖 더러운 일들을 처리하면서 인간의 편협한 시각을 바꾸려 노력했으나… 고정관념은 쉽사리 바뀌질 않았다. 나를 이해하는 건 지그문트를 포함한 몇몇 동료들 뿐.

 

 그 때문에 대머리 박사의 실험에 희생당한 수인들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그들 또한 인간과 같은 생명체이기에, 구원의 손길이 간절할 터.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만을 이해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들에게 그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차마 적으로 등장하는 수인들을 죽이지 못하고 기절시키곤 했다.

 

 나중에 내가 더 큰 힘을 가지게 되면… 그 때가 온다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꼭 버텨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을 끝끝내 죽이지 않고 기절시켜 쓰러트린 나였다.

 

 “…덮쳐라.”

 

 이베흐의 신호와 함께 사방에서 들어오는 토끼 수인들.

 

 그들의 공격을 피해내며, 곳곳에 와이어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

 

 흑발로 변한 슈아가 곳곳을 깡충깡충 날뛰며, 와이어를 설치하는 걸 발견한 이베흐.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그는 우선 안개 발생 장치로부터 꽂혀진 표창을 회수했다. 그리고….

 

 “이건 그대로 돌려주마.”

 

 곳곳에 설치된 와이어를 슈아의 표창을 던져, 끊어먹고 있었는데….

 

 ‘그럴 줄 알고 함정을 설치했지.’

 

 갑자기 인간 몸집만한 거대 표창이 허공에서 날아와, 이베흐를 급습했다.

 

 ‘해치웠나?’

 

 연기가 걷히면서, 그의 실루엣이 점점 확연해졌다.

 

 슈아의 생각과는 달리, 이베흐는 피를 흘리고는 있었지만 아직 움직임엔 이상이 없어보였다.

 

 “큭… 잘도 이런 함정을…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베흐가 표창을 날렸다.

 슈아는 그의 동작을 보고, 자신을 향해 날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표창은 뜻밖에도 토끼 수인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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