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웬 맥리르 아메지스트


276살 / 174 cm/ 죽음의 신과 계약한 마녀/ 모쏠 / 인간과 서큐버스의 혼혈 / 자기혐오

조용함, 쿨데레, 저주 마법이 특기이며 의뢰를 하면서 악령들을 렌턴에 수집하여 정화 시키는 일들을 한다.
 
아리아와 동행하며 언니인 아리샤의 부재를 로웬이 채워주는 느낌


전투 스타일은 대기중의 마나의 성질을 바꿔 점화, 폭발시키는 형태

폭발하는 광경이 꽃이 개화하는것과 같다고 하여 꽃의 마녀라 불린다.




배경스토리

“아빠! 아빠!”

“응?”

“아빠는 왜 큰 거야?”

“그건 아빠가, 키가 커서 그래요. 우리 로웬도 당근과 피망을 많이 먹으면 아빠처럼 많이 클 거에요.”

“으읏... 싫은데.”

“아빠 말 잘 들어야지 착한 아이가 되는거야.”

 

로웬은 아빠의 말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상상 속의 피망을 먹는 것만으로 입안에서 쓴맛이 느껴진 것 같았다. 아빠는 다시 미소 지은 뒤 장작을 더 패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많은 소녀는 장작을 패는 아빠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떠올랐는지 소리쳤다.

 

“아빠! 아빠!”

“응?”

“나는 왜 검은 머리인데, 아빠는 왜 붉은 머리야?”

“...그거? 그건 로웬이 엄마를 닮아서 그래요.”

“아하... 천번 자고 오면 엄마가 온다고 했지.”

“그래 그래 이제 로웬이 몇 밤 잤더라 아흔 밤?”

“아흔하고 두밤이야! 아빠는 꼭 그렇게 틀리더라.”

“하하 아빠가 그런 건 잊어버리네.”

“피! 엄마가 돌아오는 날은 기억해! 아빠.”

“로웬이가 대신 기억해주고 있으니까 다행이네.”

 

아빠는 다시 웃고 난 뒤, 장작을 패는 것을 로웬은 다시 손을 들며 아빠를 부른다. 

 

“아빠! 아빠!”

“응? 무슨 일인데.”

“나는 왜 뿔이 있는데 아빠는 왜 뿔이 없어?”

“...음 글쎄. 그건 엄마가 돌아오면 이야기해 줄게.”

“너무해! 엄마는 언제 오는 거야!”

“로웬이 아빠 말 잘 들으면서 천 번 자고 나면 올 거야.”

“응! 아빠 나 착하지?”

“물론이지. 오늘은 로웬이 좋아하는 걸로 요리로 먹을까?”

“와! 햄버거 먹을래! 아빠 최고!”

 

호기심을 가지던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아빠에게 안겼다.

 

***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매일매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했고 숫자를 틀리는 아빠에게도 몇 번이나 알려줬던 날이다. 내일이면 천일이 되는 999일째 밤을 지냈다.

 

그동안 아빠와 함께 지내며 착한 아이로 지냈다. 매일매일 밥을 열심히 먹었고, 착한아아는 일찍 자야한다는 말에 잠이 오지 않았지만 억지로 잠을 잤다. 그 결과 키도 컸다. 물론 아빠만큼 크진 않았지만, 아빠보다 가슴이 더 커졌다. 아니 내가 자랐지만 아빠는 자라지 않은 거겠지.

“헤헤헤헤...”

“딸 오늘은 아침부터 왜 이렇게 좋아해?”

“그야 이제 엄마가 오잖아!”

“아, 그렇지...”

 

아빠의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갔다. 

 

비웃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웃어야 할 때, 아빠는 저렇게 웃으며 무마하려고 했다.

 

“아빠...”

“응?”

“나한테 거짓말 한 거야?”

“아, 아니야! 무슨 거짓말을 해.”

“아빠는 항상 그렇게 숨길 게 있으면 그렇게 입꼬리가 올라가더라. 아 방금 눈이 돌아갔어. 거짓말하려는 거지.”

“그, 그래? 딸이 눈이 좋아.”

 

이상하게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읽을 수 있었다. 가끔 보는 상인이 내 가슴을 봤다가, 내 시선에 보고 돌리며 부끄러워 하는 것도, 소꿉친구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상하게 남자들의 마음이나 생각은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주머니의 마음은 못 읽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가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정말로 특별하다는 거겠지. 빨리 엄마 보고 싶다.’

 

“엄마 정말로 천번 자고 나면 오는 거 맞지?”

“아마 내일 엄마가 올거야. 안되면 무슨 일이 있는 거니까.”

“거짓말이면 아빠랑 대화 안 할 거야!”

“노력해볼게 하하...”

 

아빠가 무언가 숨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착한 아이이니까 아빠에게 더 캐묻지 않았다.

 

이렇게 착하게 있으니 엄마도 분명히 올 게 분명했다.

 

‘엄마가 나타나면, 엄마냐고 묻어야지. 맞다고 하면 가장 먼저 껴안아달라고 하고, 아빠도 껴안아달라고 할거야. 그리고 엄마에게 뿔이 있는 지 확인해야겠다. 아,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것도 많은데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남은 거야.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는 로웬은 아빠에게 엄마는 내일 언제 올까 물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밤이 왔다. 이 밤이 지나면,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엄마는 언제 오늘걸까. 사실 지금도 밤이니까 지금 오시는 거 아닐까? 엄마가 왔는데, 자고 있다고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걱정을 하는 로웬. 그렇게 몸을 뒤척이면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잠이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멀쩡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로웬은 아빠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짐꾼으로 용사를 도왔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잠이 왔기에 아빠 방으로 갔다.

 

아빠도 엄마가 온다는 사실에 잠들지 못했는지 내가 들어가면 꺠어있었다.

 

“로웬? 무슨 일이야.”

“잠이 안와서... 옛날이야기 해줄 수 있어?”

“물론이지. 자 침대로 들어오렴.”

“와 아빠 최고”

 

아빠의 침대로 들어와 이불을 덮었다. 

 

“이불에서 아빠 냄새나.”

“내일은 이불 빨아야겠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용사 이야기 해줘!”

“그럴까. 그러면 이건 마왕을 잡으러 갈 때 있었던 일인데..”

 

옛날이야기를 들으면 행복하다. 특히 아빠가 용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아빠는 사실 내가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려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걸 모르는 듯 조금 더 이야기 한다.

 

‘졸려...’

 

아빠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평상시라면, 내 모습을 보고 잠들라고 하는 아빠는 오늘따라 더 열심히 이야기했다. 눈동자도 커졌고, 목소리도 커져서 자고 싶은데 시끄러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아빠..”

“그때 용사님이 말이지.. 응? 왜 그래?”

 

내가 툭툭 건드리면 아빠는 나를 바라본다. 어째서인지 붉어진 볼. 내가 방해를 해서 그런지 조금은 짜증이 난 거 같았지만, 다시 나를 보고 웃어줬다. 

 

“엄마는 언제와...”

“...”

 

내 질문에 아빠의 표정이 굳었다. 내게 미소를 지어주던 표정이 분노로 변해갔다.

 

‘이런 적이 없는데...’

 

“하... 진짜. 그놈의 엄마 엄마.. 용사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해?”

“아, 아빠? 으읏... 아파.”

 

아빠는 도끼자루보다 얇은 내 팔을 잡고 힘을 줬다. 손에 잡혔을 뿐인데 마치 어딘가 묶인 것처럼 벗어날 수 없을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 이래 아빠... 이상해...”

“이상해? 매일 매일 네 엄마를 닮아가고 있어서 짜증이 난단 말이야.”

 

엄마를 닮아서 짜증이 난다.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어서 묻고 싶은데 그전에 눈물이 나왔다.

 

목이 막힌다. 그래도 이것은 꼭 물어보아야 했다.

 

“아, 아빠는... 엄마 싫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면 아빠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서큐버스 혼혈 아니랄까 봐. 지금 나를 유혹하는 거냐?”

 

아빠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내 양팔을 붙잡았고, 내 위에 올라탔다. 

 

항상 자상했던 아빠가 지금은 거대한 나무보다 컸고, 어느 맹수보다도 무서웠다. 

 

“아빠 아파. 자, 잘못했어요! 요, 용서 해주세요.”

“아빠라고 부르지마. 너는... 아니 그냥 조용하게 하는 게 좋겠군.”

“아빠. 자, 잘못했 우흡!...”

 

아빠는 내 양팔을 한 손으로 붙잡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막았다.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이 내 코와 입을 전부 막은 두꺼운 손이 되니 너무 무섭다. 

 

“제기랄... 네가 잘못한 거야.”

 

아래쪽에 무언가 무거운 게 닿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것이 닿는 순간. 끈적하고 기분 좋은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싫어! 하기 싫어!’

 

아빠가 내 몸을 누르면서 당해야 한다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음은 어쩔지 몰라도, 머릿속으로 이런 짓은 절대로 해서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로웬은 발버둥을 쳤다. 입을 막은 손바닥을 이로 깨물고, 발로 아빠를 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저항에 아빠의 약점을 공격한 거 같았다.

 

“크흑!”

 

손바닥이 깨물려도 신경을 쓰지 않았던 아빠가 괴로워했고, 나를 묶어두던 손에 힘이 풀렸다. 

 

‘도망쳐야 해!’

 

재빠르게 아빠의 품에서 나오고 난 뒤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아... 하아... 하아... 으흣...”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뛰어서 그런지 발이 쓰라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로 집에서 벗어났다. 

 

다행히도, 어두운 숲속에서 길이 보여서 넘어지거나 그런 일은 하지 않았지만,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바닥에서 눈물이 나왔다.

 

“엄마... 엄마... 흐윽... 아빠...”

 

집에 돌아가면, 엄마와 함께 아빠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안에 아빠 손바닥을 물었을 때 나온 피 맛이 입속에서 느껴지며, 내가 아빠에게 상처를 입히고, 아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덮치려고 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자상하던, 아빠가 이상하게 변했다. 나를 겁탈하려고 했던 모습... 그리고 내 머릿속에 각인된 무언가가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려줬던 것들... 

 

그렇게 내 천 번째 날에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고 난 홀로 있게 됐다.

 

***

 

울면서, 잠드렀던 로웬. 침대가 아닌 땅바닥의 차가움에 몸을 뒤척이면 볼을 찌르는 느낌이 든다.

 

“으... 아파.”

 

눈을 떴을 때. 검은 새가 나 볼을 찌르고 있었다.

 

“까악.”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 자신의 발을 부리로 가리키는 새. 그곳에는 편지지가 있었다.

 

편지를 읽으라는 것 같아서, 편지를 가져갔다.

 

“까악.”

 

자기는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까마귀가 한번 더 울고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난 뒤 편지를 펼쳤다.

 

편지 안에는 나비 장신구가 있었다. 중요한 것 같아서 우선 챙기고, 편지를 읽으면 그곳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

to. 로웬 맥리르

 

이 편지가 제때 도착하면 좋겠군. 

 

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현자야. 네 아버지와 용사도 도와준 사람이지. 네가 궁금한 것들을 알려줄 수도 있고, 지금 네가 겪은 일을 해결해줄 수도 있지. 

 

어차피 갈 곳도 없을 테니 이곳에 오는 것도 좋을 거야. 만약에 오고 싶다면 나비 장신구를 손 위에 올려봐. 그러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거야.

 

P.S 물론 네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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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화려한 글씨체로 써진 편짓글을 보고 로웬은 손 위에 나비를 올렸다. 그러면 나비가 저절로 날아올라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어째서 자기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려준다는 현자의 말에 로웬은 마음을 다잡았다. 

 

“... 가봐야겠다.”

 

그렇게 돌아갈 길이 없는 검은 머리 소녀는 나비의 길 안내를 따라 현자가 사는 곳으로 갔다.

 

***

 

-3월 XX일 오늘부터 1일 

 

안녕 일기장아. 나는 로웬이라고 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현자님이 매일매일 있었던 일을 적으라고 했어. 

 

오늘은 일기장을 받기 전 일도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전부 적으라고 해서 그때 있던 일을 기록할게.

 

나는 나비 장신구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걸어서 이곳에 왔어. 가는데 해가 두 번 뜨는 것을 봤을 거 같아. 배도 고프고 발도 아팠지만, 다행히 도착할 수 있었어.

 

신기하게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니까. 현자님이 있으셨어. 신비한 느낌이 나시는 분이었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보고 있으면 현자님이 내게 먼저 말을 해주셨어.

 

'일단 냄새가 나니 씻어야겠구나.'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리 말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씻는 것을 도와주고 난 뒤에 빵을 주셨어. 그리고 바람불지 않는 따듯한 집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었어.

 

자고 일어난 뒤에 현자 님에게 감사하다고 했어.

 

‘친구의 딸을 도와주는 게 당연한 거지... 내 평생 도움을 준 사람은 거의 없으니 고마워해도 돼.’

 

친구의 딸이 아빠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는 현자님에게 질문을 계속했고 현자님은 내게 전부 이야기 해주셨어.

 

나는 로웬 맥리르래. 로웬은 엄마가 지어준 이름, 맥리르는 죽은 내 아빠의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했어.

 

붉은 머리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라, 아빠가 이야기하던 용사님이 사실 진짜 아빠라고 했어. 검정 머리가 용사 아빠를 닮았다고 했어. 붉은 머리 아빠는 정말로 용사 아빠의 짐꾼이었는데, 용사 아빠가 마왕과의 싸움에서 희생하고 난 뒤에 나를 키우기로 한 거래.

 

아빠가 사실 아빠가 아니었다니, 진짜 아빠였다면... 나에게 그러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슬펐어.

 

‘만약에 진짜 아빠였으면 저를 침대 위에서 누르거나 하지 않았겠죠?’ 

 

그렇게 물으니까. 현자님은 고민하더니 오히려 내게 질문했지.

 

‘너, 아빠의 마음이나, 다른 남자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았니?’ 

‘헉!’

‘반대로 네 주변의 여자들의 속마음은 읽지 못했지?’

‘정, 정말로 모든 것을 아시는 현자님이신 건가요?’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니’

 

그렇게 대답하시고 현자님은 나를 보고 웃었어. 다만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으셨어. 

 

‘네가 그런 힘을 가지게 된 건 엄마 때문이야. 로웬 맥리르 너의 엄마는 서큐버스 퀸이거든.’ 

 

나는 그러니까 용사와 서큐버스 퀸의 딸이래. 서큐버스는 남자를 홀리는 마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냐고 질문을 했는데, 현자님은 자세한 것을 듣기엔 내가 너무 어려서, 더 크면 알려주겠다고 말해주셨어.

 

‘아무튼 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것을 가진 것이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거야, 나쁜 것도 말이지... 욕하려는 건 아닌데 뭐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 서큐버스에게는 서큐버스의 이데아가 있을 뿐이지.’

 

현자님에게 이데아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데아는 마땅히 담겨진 고유의 특성이라고 하셨어.

 

‘네가 살아있다는 것은 당연히 먹고 움직인다는 것이지. 자세히 들어가면 모든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지만, 이데아가 없다면, 그것은 존재해선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돼. 살아 있는데 먹지 않으면 그걸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거지.’

 

현자님의 설명이 너무 어려웠어. 하지만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내게 서큐버스의 이데아가 있었다는 거였어.

 

‘서큐버스는 남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지. 특히 밤이었으니 네가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힘이 네 아빠를 홀려서 그런 일이 생기게 했던 거야... 뭐 곧바로 덮치지 않은 바보 녀석도 대단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해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어. 아빠가 이상해지지 않았다는 말로 들려서 좋기도 했지만, 그러면 모든 문제가 내게 있었다는 거였으니까. 그러면 내가 잘못한 게 되는 거였지... 나는 내가 싫었어.

 

‘로웬 맥리르 울지 마렴. 네 잘못은 맞지만, 내가 원한 게 아니잖아.’

 

현자님의 말에 나는 다짐하고 물었어.

 

‘그 이데아라는 것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현자님은... 나를 잠시 보시고 미소 지으셨어. 

 

‘로웬 맥리르, 지금 네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했겠지?’

‘네. 이런 원하지도 않는 힘은... 가지고 싶지 않아요.’

‘이데아를 없애려고 하다니 용사의 딸이 맞긴 하네. 아쉽게도 나조차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 이데아를 없애는 방법은 나도 알지 못해. 다만 네가 원한다면 그 힘을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게 해주지... 물론 매우 힘들고 귀찮은 일이 될건데 괜찮아?’

 

현자님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어. 이 사람이라면 뭐든 잘 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좋아. 너는 이제 로웬 맥리르 아메지스트야. 내 제자라는 뜻이지. 제자로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전에 매일같이 이 일기장에 있었던 일을 적을 것.’

 

... 그렇게 나는 현자님에게 일기장을 받고 지금 있었던 일을 쓰고 있어.

 

나도 언젠간 현자님처럼 강해지고 내 힘을 다룰 수 있게 되겠지. 빨리 내 이데아를 없앨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 현자님이 매일 가르쳐준다고 하셨으니 빨리 됐으면 좋겠다.

 

***

 

3월 XX일 –이 일기를 쓴지 3642일

 

오랜만에 내가 쓴 일기를 앞에서 봤다. 나는 정말로 사람보는 눈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어떻게서든 도망쳤어야 했는데... 양아버지가 어째서 현자에게 나를 넘겨주지 않으시고 나를 키워주셨는지 알 거 같았다. 

 

거의 10년 동안 그의 밑에 살면서, 느낀 점은 그 사람은 뛰어난 마법사는 맞지만, 좋은 어른, 선생 부모는 아니다라는 점.

 

마법을 내게 알려줄 때도 

 

이상하다. 나는 이거 몇 시간 만에 했는데... 

그 느낌이 있지 않아? 몸에서 끌어오는 느낌 말이야.

 

서큐버스의 피가 흐르는 내게 가르쳐준 마법의 영역이 직관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잘 가르쳐주지 않고는 자신의 수준으로 성장하길 바랐으며, 약초의 채집이나, 자기가 필요한 연금술을 재료들을 구해오라는 등 귀찮은 일들은 모두 전부 나에게 떠넘겼다. 

 

그렇게 있다보니 마법의 힘이 정말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또 웬만한 마법에 대한 지식은 있어서 천재 마법사로 평가받고 있지만... 솔직히 이 현자의 밑에서 10년이 있다면 누구든 나처럼 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현자도 자기와 비교하며 이 정도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마법 실력이 늘어나며 내 서큐버스의 힘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 힘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금의 내가 하는 일은 잔에 가득찬 물을 조금씩 덜어내는 일과 비슷한 것이었고, 힘을 조절할 수 있다보면 언젠가는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것이 나와 현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변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서 서큐버스의 힘이 너무나 강해졌다. 조금씩 힘을 덜어내는 것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줄어든 만큼의 힘이 더욱 생겼고 오히려 늘어났다.

 

이거 물잔이 가득 찬 상태인데 위에서 물을 붓고 있는 상태네.

 

스승님은 그렇게 나의 상태를 보셨고,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큐버스 퀸의 피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강해졌고, 외출을 했을 때 나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이 늘어나서 머리가 아파왔다.

 

- 힘이 이렇게 늘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서큐버스 퀸의 이데아인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서큐버스의 힘을 제대로 써보는 건 어때... 으아악! 하지마! 알겠어 다른 방법... 방법을 알려줄게! 

 

나를 실험체로 쓰려는 현자에게 분풀이를 하면 현자가 비밀을 알려줬다. 

 

사실 나 말이야. 혼자서 배운 게 아니야. 뭐... 알고 있었다고?

 

현자의 스승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그의 스승은 드래곤이라고 했고, 여전히 살아 있다고 했다.

 

- 스승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야. 오래 살면서 연구도 많이 했을 것이고, 방법을 알고 있을거야.

 

그걸 이제야 알려준 스승의 을 다시 한번 잡아 당겨준 뒤 스승의 스승님을 만나러갈 준비를 했다. 

 

그래도 스승을 가르친 분이라면... 정말로 이데아를 없애는 방법도 알 수 있을 거라 희망하면서..

 

***

 

3월 XX일 –이 일기를 쓴지 3645일

 

스승의 스승님을 만나러 떠나고 며칠이 지났다.

 

내 서큐버스의 힘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해야 했다. 

 

여자라면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나를 볼 때 느껴지는 시선에는 끈적한 무언가 느껴졌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내 배에 닿았던 아버지의 물건이 생각났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뜨겁고 무거운 것이 내 아랫배에 닿고, 입안에는 붉은 피 맛이, 양팔이 묶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이. 그리고 그때 안에 품기고 싶었던 욕망이 들었던, 서큐버스의 이데아까지... 

 

기분 나빴던 어린 시절의 경험. 그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가 마법을 사용하게 되어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면, 결국 이데아에서 벗어나야 했다. 

 

스승의 스승님을 만난다면 어떤 방법을 알 수 있을까.

 

확신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그분이 사는 곳으로 간다. 내일이면 그분을 볼 수 있겠지.

 

4월 XX일 –이 일기를 쓴지 3650일 

 

스승의 스승님,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 드래곤이라고 했지만, 폴리모프를 하신 것인지 인간으로서 나를 맞아주셨다.

 

처음에 그분을 보았을 때 눈동자만 보였다. 황금빛 눈동자에는 확신을 가진 이지적인 눈빛이었고 나는 ‘아 이 사람이라면, 방법을 알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제자는 잘 지내고 있니?

 

드래곤은 나를 흘깃 보고선 내게 물었다.

 

나쁜 스승이예요.

 

나는 스승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자 그분은 내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셨다.

 

내 못난 제자 때문에 고생이 많았구나, 로웬 맥리르 아메지스트.

 

그분은 내게 미소를 지으신 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따듯한 손길이었다. 어머니가 머리를 만져준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아련함이 느껴졌다, 

 

저기 엄... 아니 스승의 스승님 제가 이데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이야. 네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네. 살아 있는 자가 숨을 쉬지 않고, 서큐버스가 더 이상 서큐버스가 아니게 되는 것을 원해요.

네 그림자를 스스로 끊고 싶어하는 거구나...

 

나는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초월자가 된다면 네가 원한 이데아를 끊는 일은 가능하단다.

 

초월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마법사가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단계에서 그 이후를 생각한 경지. 내 스승이 이론적인 최고라고 말한 영역을 너무나 간단히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필멸자들은 이데아에 모든 것이 제한되어있지. 그대를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인과관계 속에 있으니 말이야, 반대로 그것에서 모두 초월해버린다면 그대는 이데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게 가능한 것인가요.

아이야. 내가 그대에게 말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구나. 다만... 현인이 말 한 구절을 기억하렴. ‘노년은 저무는 날에도 타오르고 격분해야 합니다. 꺼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안타까운 듯 말해주는 그분의 목소리는 내가 정말로 발버둥을 치면... 스승님이 말하는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감사합니다.

내게 무엇을 줘야 할지 고민이 됐는지 말이야. 이런 것을 줘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단다.

 

그분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이제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안타까움을 느껴졌다.

 

떠나시는 건가요?

이데아에서 벗어난 초월자라도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

 

쓴웃음을 지으신 뒤 내 이마를 툭 치시고 손을 떼셨다.

 

“내 제자에게 배운 지 10년이 된 것 축하해. 그리고... 부디 너를 용서해주길 바라. ”

 

그분은 그 후 사라졌다. 

 

가슴의 한켠이 따뜻했다가 식어버리니, 그 허전함이 더 느껴졌다, 봄바람이 불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의 느낌이었다. 

 

그분께서 남긴 현인의 구절처럼, 발버둥을 어떻게 해서든 쳐서 초월자가 되고 말 것이다.

 

***

8월 XX일 –일기를 쓴 지 10,000일째.

고대의 마법연구를 했다. 아버지가 남기신 전투기록을 파헤치다 보니 용사인 아버지가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꿈을 꿨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12월 XX일 – 일기를 쓴 지 20,000일째.

스승님과 같은 수준에 올라섰다. 스승님은 내게 축하한다고 했지만, 기쁘진 않았다. 아직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어째서 스승님이 여기서 멈췄는 지 알 거 같았다. 아마 더 높은 경지로 가면 외로워지겠지.

 

5월 XX일 – 일기를 쓴 지 30,001일째.
 
토벌의뢰에 참가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모험가는 없었다. 모험가들은 나를 꽃의 마녀라고 부른다. 스승이 나비의 현자니 꽃의 마녀라는 게 당연한 거 같았다. 토벌 후 돌아와 연구했다.

- 3월 XX일 – 일기를 쓴 지 36,500일째.

 

내 연구가 한계에 다다랐다. 더는 이 세상에서 배울 것이 없지만, 초월하진 못했다. 

다른 경계의 마법이 필요했고, 스승님은 신화의 방법을 제안했다.

 

신화라는 것은 고대의 또 다른 기록이며 예전의 사람들의 방법이지.

 

신화 속의 물푸레나무는 고대의 신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목을 매달았다는 이야기, 지옥에 있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악기와 함께 물푸레나무가 가리킨 곳으로 가, 지옥에 도달한 이야기 등 죽음과 깨달음과 연관이 많은 나무였다. 

 

고대 신이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는 방식으로 목을 매달고 며칠간을 보내다 보면 죽은 자들이 보였다.

 

그중에서 마법이 느껴지는 원혼을 붙잡아 마법을 가르침을 받기로 했다.

 

많은 원혼들이 내 살을 탐하고, 질투하는 시선과 욕망이 느껴지지만, 그 시선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살아있는 자의 감정이 죽어가서 삶의 이데아를 포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끔은 초월자가 되었기에, 이데아가 없어지는 것인지 이데아가 없어져서 초월하는 것인지 묘한 호기심이 들었지만, 곧 이 원혼 마법을 배운다면... 더 초월에 가까워질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 7월 XX일 – 일기를 쓴 지 37,000일째.

 

초월자를 다시 보았다. 그는 자신을 죽음의 신이라고 부르는 자였다. 

그는 자기를 보고 미치지 않은 자는 처음 본다고 했다. 용건이 뭐냐고 묻자. 자신의 영역에서 허락받지 않은 필멸자를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결국 서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초월자가 나를 가르쳐주고, 나는 초월자의 사도가 되는 계약.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 편리하게 이승을 오갈 수 있는 심부름꾼을 얻었다. 나는 초월자에게 배우는 기회를 얻었다.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이데아를 없애는 일을 하면서, 내 이데아를 없애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12월 XX일 – 40797일

 

사도의 일을 하며, 나의 이데아가 줄어드는 것을 알고 열심히 한 지 10년이 지났다. 

 

어째서 사신들을 묘사할 때 해골로 묘사하는지 알 거 같았다.

 

삶에 미련이 남은 자를 죽인다는 것은 나를 죽인다는 것, 내 안에 나를 조금씩 죽여가다 보면 나도 정말로 해골만 남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초월하게 되면 내 몸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지.

 

***

 

조용한 집 장작을 패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수십개의 장작을 패고도 붉은 머리의 남자는 땀을 흘리지도 않은 채로 멍하니 집의 입구를 바라본다.

 

변화 없는 생활의 반복에 혹시 누군가가 오지 않을까 입구를 보는 일이 추가됐을 뿐인 남자의 생활. 다만 오늘은 다르다.

 

“용사님.”

 

긴장감이 넘치는 우편 배달부가 왔다. 얼굴이 달라진 것을 보니 새로운 배달부인 거 같다... 그래 그 녀석은 오랫동안 배달을 했으니 새로운 후임이 이 일을 하는게 맞았다.

 

“나는 용사가 아니야. 운이 좋은 짐꾼이지. 무슨 일인가. 마왕이 또 부활했다고 하나?”

“아, 아닙니다! 그냥 편지입니다... 편지를 받았다고 기록을 해주시고... 또 추가로 여기에 사인을 남겨주시면 안될까요.”

“물론이지. 이름이 뭔가.”

 

붉은 머리 남자 집배원의 이름과 성실한 집배원이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해주고 돌려보냈다.

 

일과를 전부 끝내고 여유로운 그는 집에 들어가 편지를 확인했다.

 

나비의 현자의 이름으로 배달온 편지. 무슨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닐까. 딸이 현자에게서 떠난 후 오랜만의 소식을 전해주러 온 것일까 하는 생각에 편지 봉투를 뜯었다.

 

두장의 편지가 있었다. 하나는 현자가 자신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는 이야기와, 예전의 빛을 이걸로 퉁치자고 적힌 편지와... 로웬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였다.

 

현자 녀석은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만약... 자신에게 로웬의 이름으로 된 편지가 온다면 자신이 절대로 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런 수를 쓴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랜만의 남자의 손이 떨렸다. 마왕을 눈에 봤을 때도 이렇게 두렵진 않았다... 그때는 용사가 있어서 괜찮았는데, 이제 자신은 홀로 이 감정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그가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계속해서 긁게 했다.

 

‘맥주를 마시고 술기운에 볼까. 아니 그렇지만 딸의 글을 어떻게 술을 마시고 읽을 수 있지... ’ 마음속에서 온갖 갈등을 일으킨 그는 잔에 맥주를 채우고 편지를 읽다가 목이 타면 마시기로 타협했다.

 

고급스러운 편지지에 정갈하게 적힌 글자. 소식은 잘 듣고 있었다. 로웬 맥리르 아메지스트라는 이름은 이제 용사의 딸, 현자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그녀로 불리고 있으니까.

 

그런 그녀가 자신에게 이제와서 무슨 편지를 썼을지 두려운 마음에도 천천히 편지의 윗 부분부터 눈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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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버지에게

 

이 편지를 쓰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집을 나온지 200년이 더 넘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잘 지내셨나요. 잘 지내셨길 바라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꽃의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개인적으로 죽음의 신과 계약도 맺어보고, 힘을 빼앗기기도 했네요. 물론 그것이 그분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지도 않아요. 아리아와 아리샤라는 분이랑 함께 다니며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요. 그렇게 경험을 쌓아가며, 제가 부족했던 것을 채워가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가며 초월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아버지에게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을 이유는 없었지요.

 

아버지. 죄송해요. 그렇게 도망쳐버리고 이제야 용기를 내서 연락을 드리다니. 모험을 다니지만, 아버지에게 연락을 드릴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고 방법은 있었는데 아버지가 만약 제가 한 행동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현자을 통해 알 수 있게 됐어요. 

 

저를 찾은 것이 현자님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을요.

 

제가 사라지고 난 뒤에 아버지가 현자님에게 제가 사라졌다고 알려주셨다면서요. 그리고 자기는 그 아이를 더는 맡을 자격이 없다고 하셨다고 했고요.

 

그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에요. 단순히 제 이데아의 문제였던 것이죠. 만약 제게 서큐버스의 이데아가 없었다면, 아버지가 저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실 필요도 없으셨을거고. 행복했던 부녀가 이렇게 고통받을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 가끔은 아빠가 그리워요. 침대에 누워서 듣던 이야기도, 장작을 패는 것을 가르쳐주던 모습도, 제게 고기라고 속인 뒤 당근을 먹이는 장난을 치셨던 거도. 전부 즐거웠던 추억이더라고요. 여전히 거짓말을 하시고 나서 웃으시면 입꼬리가 올라가나요. 저를 속이려고 할 때는 눈동자가 돌아가나요. 장작을 팰 때 잘 안되면 흣! 소리를 내시나요. 그리고... 아빠에게도 제가 좋은 추억이셨을까요. 저에겐 아빠가 정말로 좋은 추억이니까 혹시나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그 생각을 버려주세요.

 

아버지가 오래 살 수 있으셔서 다행이에요. 여전히 그곳에서 있으시다는 이야기에 편지를 이렇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만약 아빠가 이미 떠나셨다면, 정말로 후회만 남았을 텐데 많이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연락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처음에는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걱정이 많았는데 어느 새 쓰다 보니 벌써 한 장을 전부 채웠네요. 더 쓰고 싶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이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 할게요. 나중에... 제가 초월자가 되기 전에 아버지와 전부 이야기 하고 싶거든요.

 

그러니 아버지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요.

 

from. 당신의 딸 로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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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지막 마침표까지 전부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더 읽고 나서야 붉은 머리 남자는 편지를 놓을 수 있었다.

 

편지지는 화려하고, 글씨체는 수려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상냥함에 남자는 미소지었다.

 

“아... 로웬. 너는 여전히 착하구나.”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의 가슴속의 무게가 약간 덜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지금이라면 정말 편히 잠들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잠들 순 없지.”

 

붉은 머리 남자는 자신도 팬을 들었다. 평범한 편지지에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너로 인해 용서받았으니 너도... 용서해주라는 편지 내용.’을 어떻게 하면 글로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편히 잠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편히 밤을 샐 수 있었다. 


아래는 캐릭터 이미지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