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신경질적인 소음이 귓가에 울려퍼진다. 내동댕이쳐진 화병이 산산조각나고 파편이 눈가까지 튀어오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늦봄에 어울리는 따스했던 공간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화병보다도 먼저 희생된 가구들이 박살난 이 참상을 만들어낸 여자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말했다.


"뭐 해? 치워야지?"


언뜻 들으면 상냥한 목소리, 샐쭉 올라간 입꼬리와 바닥을 가리키는 손가락질. 그것을 차례대로 살핀 소녀는 묵묵하게 명을 따랐다. 전적으로 제 주인의 취향대로인 옷, 집사의 직위임에도 메이드복에 가까운 옷과 카츄사를 착용한 소녀는 축 처진 강아지같은 눈매를 일그러뜨리지도 않고 정리를 시작했다. 테이블의 파편을 옆으로 치우고, 납작해진 협탁을 힘들여 밀어둔다. 마지막으로 보랏빛 꽃잎처럼 넓게 흩어진 유리조각을 모으려 상비하고 다니는 빗자루를 꺼내들-지 못한다.


"읏..."


그녀의 고유한 마법, 염동력. 이 또한 그녀의 악취미적인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사람이 산 채로 찌그러지는 모습을 방해없이 볼 수 있다' ...라는 이유로 주 종목을 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섬뜩한 유래를 가진 힘에 팔을 붙들린 소녀는 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한다. 잠시라도 눈이 마주쳤던가? 파편이 튀기라도 했나...? 전부 아니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조심스레 묻는다. 남색의 물보라같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올린 여자가 그에 사나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무슨 문제일까? 하아... 나 너무 슬퍼... 내 마음도 몰라주고... 라닌, 응?"


소녀, 솔이 능력행사를 과시하듯 가볍게 올리고 있던 손을 콱 움켜쥔다. 그 손동작에 맞추어 집사, 라닌이 들고 있던 빗자루의 한 쪽이 터져나간다. 나무 손잡이 안에 폭탄이라도 들어있었다는 듯 자루 부분이 사라져있었다. 라닌의 발치에는 가루가 된 톱밥이 가득했고, 그녀가 있는 방향을 제외한 사방에 나뭇조각이 흩뿌려져있었다.


"라닌."

"네?"


폭거에 다리를 떨면서도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라닌에게 새겨진 공포란 그런 것이다. 종이 다른 상하관계, 조아리는 것이 유일한 생존전략이다. 어쩌다 눈에 띄고, 마음에 들어, 이렇게 되었는지...


"빗자루는 정성이 없잖아."


"..."


라닌은 자루가 심하게 짧아진 빗자루를 조심스레 내려두고 유릿조각에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손에 급격한 제동이 가해졌다.


"...읏,"


"라닌?"


라닌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함에 속에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이게 자비인 것을. 그녀의 눈 밖에 난 하인의 목이 통아저씨 장난감처럼 뽑혀져 날아간 장면은 아직도 꿈에서 그녀를 괴롭힌다. 이 정도라면 감내할 만한 아픔이고 모욕이다.


"대답. 해야지?"


그나마 조금 전까지는 얼굴에 붙어있던 가식적인 웃음도 사라졌다. 라닌에게만 보여주는 웃음이지만,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라닌에게 지극히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를 의미한다. 그녀는 정신을 다잡고 해야할 말을 했다.


"네, 솔님."


"그래. 손은 내리고."


손이 강제로 내려진다. 아래로 잡아당겨지는 손에서 장갑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국소적으로 중력이 무거워진듯 어께가 뻐근했지만 다시 장갑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나 솔이 한숨을 쉰다. 큰일이다.


떨어진 장갑은 무시하고 솔의 눈치를 살핀다. 이래뵈어도 집사 자리에서 버틴 경력이 있다, 매일 최고기록을 경신중이지만. 솔의 눈치를 살피며 장갑을 줍지 않고 유릿조각을 치우기 시작한다. 가끔 제게만 보이는 사나운 미소를 제외하고는 늘 냉소 가득한 무표정이 조금 누그러진다. 정답이었나 보다. 허겁지겁 손으로 유릿조각을 쓸어담는다.

긴장에 떨리는 손끝에서 피가 베어나온다. 그제서야 알싸한 고통이 느껴지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고운 손에 유릿가루가 박힌 채로 앞주머니에 파편들을 담고 주인을 바라본다. 하얀 앞치마에서 붉은 기운이 배어나오자 그제서야 솔이 만족했다는 듯 입을 연다.


"나 서운할 뻔 했어? 선물로 사준 장갑이 망가질 뻔 했잖아."


난 물건 아끼는 사람이 좋더라. 그렇게 말하는 솔의 모습에 라닌은 튀어나오려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자신은 그 논리에서 예외인가?

나를 물건 다루듯 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건지... 도망치고 싶다, 이 광년에게서...



ㅡㅡㅡㅡㅡㅡ

놀랍게도 평범한 글도 씁니다

광년이라는 설정이라서 마법도 산 채로 찌그러지는 모습을 여과없이 볼 수 있는 염동력으로 정해보았던 칭기

뒷부분도 빨리 써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