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부실공사가 문제였을 것이다.


언제나 흔들린다고 민원이 들어왔던 다리는 결국 무너져 버렸고


하필이면 그위로 달리던 차가 내가 운전한 차였을 뿐이다.




아, 아침을 먹고 나왔더라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다면...



아니면 더 빨리 집에서 출발했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겪을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후회가 주마등과 함께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갑자기 붕뜨는 이런 부유감은 어렸을 때 마지막으로 탔던 놀이기구가 마지막이였던거 같다.


위기감을 인지한 고작 몇초 사이에서 나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생각보다 하찮은 것이였다.




 "아, 가스 안잠그고 나왔는데..."




눈을 질끈 감았다.


재앙 앞에서는 평범한 인간 따위는 정말로 보잘것 없는 존재였다.


갑자기 다리의 보강을 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던 정치인이 생각이 났다.


그에게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괜찮아요?>




갑자기 부유감이 멈추고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상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 그에게 마지막이라도 세상이 자비를 베푼 것일까?


고통 없이 즉사로 사망했나 보다.



 <정신차리세요! 곧 다른 구조대원들이 도착할거에요!>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나를 구한 것은




붉은 머리의 사신...




 "천사...?"




아득해지는 정신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푸른 빛으로 빛나는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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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OO대로가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는데요! 하지만 다행이게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사고현장에 있는 김기자에게 연결하겠습니다.]



 [...우연히 붕괴현장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히어로'가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은 것으로 보입니다.]



 [짐작되는 사람으로는 전자기장을 다루는 히어로로 추청되고 있습니다...! 보다시피 사고 당시 찍힌 사진을 보면 자동차나 붕괴된 철근들이 느린 속도로 낙하하는 모습이 관측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분석관의 조사가 마치는대로 전할 예정이며...]




 바로 몇시간전에 내가 있었던 현장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거 같았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와서 간단한 뇌진탕 진단을 받고서 나는 이렇게 침대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응, 걱정하지마...난 건강해...알겠어...사랑해 엄마."



사람이 죽음의 위험을 맛 보면 정신이 나간다고 했던 것이 맞는거 같다.


갑자기 평소에는 하지도 않았던 부모님 안부 전화도 하게 되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살아가는 의미를 잊은체 살아가던 나는 사실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니였을까?


사실 나는 계속 꿈을 꾸고 있었고 그 잠에서 깨워준 것은 그 소녀가 아니였을까?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전에 그 소녀의 모습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일정이 적힌 수첩을 꺼내자 회사 일정으로 가득 찬 새까만 일정표가 보였다.




스윽-




스윽-




스윽-




이제는 조금 더 나 자신을 위한 날들을 살아가고 싶었다.


새카만 일정들은 이제 사선이 잔뜩 그려진 지워진 일정이 되었다.




사고를 핑계로 못 썼던 유급휴가나 전부 써야겠다.




어쩌면 다시는 찾아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서 나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헤에- 그게 당신의 일정이야? 시원해서 멋지네."




?!




어느순간 나의 뒤에는 어디선가 봤던 소녀가 서있었다.




"아마도 당신은 그 일정표를 다른 일로 채울수 없을꺼야. 내가 도와줄게."




그녀는 바로 사고 현장에서 나를 도와주던 소녀가 틀림이 없었다.




"으음...하지만 어떡하지 과격한 방식은 딱히 나의 취향이 아닌데..."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의 입에서는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커허어....크흐읍...."



뇌가 상황을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사람이 많았던 응급실이 필요 이상으로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째서인지 나의 복부에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몸이 튼튼하구나...다른 사람들은 한번에 끝났는데...아 이건 아름답지 않아...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방금전까지 멀쩡했던 병원은 어떠한 소란도 없이 한순간에 붉은빛으로 얼룩진 살육현장으로 변한 상태였다.




갑자기 시야의 반쪽이 사라지고 참을수 없는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남은 시야로 내가 본 것은



수많은 칼날들이 공중에서 불규칙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때? 신기하지? 특별히 너는 나의 쇼를 감상할수 있는 특권을 줄게. 너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야!"



 나를 구한 소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기에는 내 눈앞에서 광기에 가득찬 웃음 소리를 내는 사신은 너무나도 그 아이와 닮아 있었다.


몸은 이미 한계에 다했다는 것을 느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정신만은 매우 침착한 상태였다.



 "그 아이가...구해줄꺼야..."



이유 모를 확신을 갖고 있었다.



 눈 앞에 있는 이 아이는 천사와 너무나도 닮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응, 이만 죽어."




 푸슉-!




아아-



결국 허무한 죽음이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낮에 느꼈던 감정과는 다르게 평온한 감각이였다.


마지막...진짜 마지막 순간이 되었을 때 중요한게 무엇인지 깨달을수 있게 되었다.


비록 같은 소녀에게 살해 당했지만


내가 삶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게 되었던 것은


분명 [낮에 만난] 그 소녀 덕분이였을 것이다.




그 아이는 나의 죽음을 분명 슬퍼하겠지...




나의 죽음만이 아니라 이 응급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며 분노하고 슬퍼하겠지...




그건 너무나도 잔혹한 일이다.




그래도 그녀는 분명히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밝혀 낼 것이다.




본인이 많은 사람들은 구원한 천사이면서




동시에 악마였다는 사실을...
그림은: delpia 이분이 그려주셨고
글은: Platina  이분이 써주셨는데 뭔가 둘이 잘 어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