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저녁이었고, 바람은 다분히 시원했으며, 그렇지만 유난히 햇빛은 강해 세상이 전체적으로 주홍빛에 가까웠던 시각이었다.
그 아이를 처음 본 장소와 상황을 기억한다. 주택가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공원이었고, 물을 뿜는 분수대에서 홀딱 젖는 것도 아랑곳않으며 뛰어 노는 아이들이 잔뜩이었던 상황에, 그 아이만큼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인지 가까우면서도 먼 발치에 구비된 벤치에 다소곳이 앉아 그 놀이를 눈으로만 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지나가던 와중 살짝 눈에 스치듯이 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긋나있는 나의 천성은 그것을 머리에 새기더니, 온갖 상황이며 가정을 해 어떠한 망상에 끼워맞추기를 시작했다. 그 적은 정보를 가지고 무얼 하느냐 묻느냐면 할 말은 없었다. 때문에 나도 잠시 멈춰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척 하며 그 아이에게로 이따금씩 눈을 돌렸다.
아이는, 뛰노는 저 또래들과 나이갸 유별나게 달라보이지는 않았다. 앉은 키로 셈하더라도 크게 어긋나보이는 점은 없었다. 유달리 다른 점이라 하면은 혼혈로 보이는 모습뿐이었다.
아이의 머리칼은 주홍빛의 석양을 머금어도 백금 빛깔이 하도 또렷했다. 밝은 갈색 눈동자는 이유 모를 처연함이 감돌고 있었다. 살짝 움츠린 품 안에는 공룡인지 파충류인지 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의미불명의 인형이 하도 꽉 안기어져 있었다. 의외로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외로는 활동복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옷이 이유일까 싶다. 나이에 맞지 않는 스타킹 하며, 와이셔츠와 같은 빳빳한 재질의 상의에 멜빵 스커트까지. 그렇다면 잠시 자리를 뜬 보호자를 기다리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경만 하고 있는 이유가 해결되기도 하고.
생각을 마친 나는 그러려니 하며 이제 돌아갈까 싶었다. 더 생각할 거리도 없는 상황에 굳이 더 있을 이유야 없었다. 그러자 그 때였다. 주홍빛 하늘에서 비 몇 줄기가 툭 툭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기이어는 어두워져 비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일기예보를 들었던 나는 들고 있던 우산을 펴 비를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공원의 사람들은 기상이변에 허둥지둥대며 조속히 무리로 모여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우산이 있더라도 비는 찜찜하다. 그들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나도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러던 차에 아이가 눈에 들었다. 아이는 비가 오는 것도 아랑곳않으며, 구태여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왠지 모를 동정심이 들어 발을 뗐다. 다가가 우산의 면적의 반을 아이에게 제공해주었다. 어디를 보는 지 모를 눈을 하고 있던 아이는 그제야 나를 보았다. “그대로면 비 맞을 거야.” 나는 짤막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아이는 의외로 말을 했다. 게다가 자기가 벤치에서 일어나 내가 우산을 당겨도 문제 없게 해줬다. 나는 다소 작은 우산 탓에 어깨가 젖는 것은 아랑곳않고 대화를 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네, 아빠요.” 라고 말한 아이는 갑자기 시무룩해지더니, “하지만 우산은 없으실 텐데. 걱정이에요.”
“아마 편의점에서 네 몫까지 사오지 않을까.”
“그러려나요.”
“그러실 거야.”
와중에 빗줄기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꽤나 강력해졌다. 노을이 지던 하늘은 어디가고 군청색의 먹구름으로 가득 뒤덮여져 있었다. 강해지는 빗소리는 꽤나 성가셨다. 어깨를 적시는 빗줄기도 마찬가지였다. 자리를 옮길까도 싶었으나 부모가 아이를 찾는데 깨나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그러지를 못했다. 혹시 그래도 주위에 적당한 곳이 있을까 근처를 둘러보았다. 마침, 이라고 할 정도의 알맞은 건물이 있었다.
“저기 화장실 건물 차양 아래로만 가자. 괜찮겠니.”
“네.” 아이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고, 건물 아래로 오니 빗줄기 소리는 더욱 강렬하게 들렸다.
사실, 이제부터는 내가 해 줄 것이라곤 없었다. 아이는 비를 피하게 됐고, 그렇다면 보호자가 오기까지를 잠시 기리기만 하면 되었다. 제 삼 자인 나는 이제 내 갈 길을 가도 문제는 없었으며, 오히려 보호를 명목으로 계속 아이의 곁에 있는 것이 이상한 행위라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은 어느 호기심 탓이었다. 어떤 호기심이느냐 물어도 답은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 이유로부터 기인되었는지,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혹은 뭘 보려고 이러는 건지 다소 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흐리기 그지없는 이 날씨처럼 마찬가지로 내가 뭘 하려 하는지도 다소 붕 뜬 채로. 그렇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곁이 허전할까 싶어 계속 서 있었다.
“고맙습니다.” 와중에 아이는 살짝 젖은 머리를 숙이며 나에게 인사했다.
“……그래.”
나는 다소 석연찮은 목소리로 그 감사에 답했다. “아빠는 언제 올까요.” 아이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건 글쎄. 언제 오실까.”
나는 괜히 우산을 바닥에 툭 툭 때려대며 답했다.
“언제 오실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금방 오시겠지.”
“정말로 그러실까요.”
“아빠를 믿어.”
“……네. 그럴게요.”
내 말을 들은 아이는 품 안의 인형을 더 강하게 껴안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실수한 걸 알았지만 덧붙여줄 말을 그다지 찾지 못해 침묵했다.
그러다 괜히 목이 타기 시작해 그것을 핑계삼아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뭐라도 마실 생각 있니.”
“네?”
‘자판기에서 뽑아올 건데 마실 게 있나 싶어서.”
“뭐가 있어요?”
“……글쎄.”
측면의 자판기를 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아이는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틀었다. 곧 그것을 유심히 보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끔벅거리며 “딸기 음료 있나요?” 하고 말했다. 웰치스 하나 뿐이지만 있기야 있었다.
“있네. 이걸로 뽑는다?”
“네. 감사합니다.”
가져와 쥐어주자 아이는 공손히 받아들며 또 고개를 숙였다. 나는 적당히 사온 음료를 마시며 비는 언제 그치려나 생각을 했다. 혹은 아이의 아빠가 언제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쪽이든 소식이 없어서 다소 찜찜했다.
힐긋 옆을 보자 아이는 사온 음료를 다소곳이 두 손으로 잡아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목이 메었는지 찌푸리며 눈망울에 눈물을 머금었다. 덧붙여 입술을 잔뜩 삐뚤빼뚤 움직였다. 또 내 눈치를 살폈다.
“……괜찮니?” 나는 어색하게나마 물었다.
“ㅈ, 잘못 삼켜서 그래요.” 아이는 아무튼 괜찮다며 우기듯 말했다. 물론 괜찮겠지만 부끄러워 하는 것이 신경쓰여서 그렇다는 말을 괜히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서 “……그래.” 하며 살그머니 긍정만 해줄 뿐이었다.
시간은 쭉 지났다. 우리의 캔이 전부 빌 즈음이었다. 음료를 다 마셔서 빈 캔이어도 어쩌지 못하고 쭉 들고있는 아이에게 “다 마셨으면 줘” 말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그 동안에 비는 거의 그쳐있었다. 구름 사이로 삐져나오는 노을빛이 강렬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자 보지 못한 얼굴이 한 명 생겨있었다. 아이의 이목구비와 닮은 사람이었다. 나이는 젊어보이지만 분명 아이의 아빠라 나는 확신했다. 그야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아이의 표정이 본적 없이 밝았던 탓이었다.
곧 아이가 날 봤다. 남자의 시선도 아이를 따라 나에게로 향했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했습니다” 말했다. 내가 "그래" 하며 말하기도 전에 아이의 아빠 또한 나에게 고개를 짧게 숙이며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란도란한 부녀사이에 살짝 얽힌 어색함에 뒷목을 긁으며 나 또한 고개를 숙이고 이 말을 했다. 등을 돌리고 걷는데 아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 말은 괜히 우렁차 귀가 떠나라 소리 지른 정도였다. 혹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다 모르고 크게 질러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나는 등돌렸던 몸을 다시 아이에게로 틀어, 조금이나마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고 그곳을 떠났다.
이름도 뭔지 모를 아이와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적당한 사건이며 해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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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이 작은딸 너무 귀엽습니따!!! 보기만해도 행복해지는거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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