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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남자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엄마?”

애처로운 목소리로 불러보지만, 오직 그의 목소리면 벽에 부딪혔다가 되돌아올 뿐이었다.
아이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찰박.

아이의 두 발이 바닥에 고인 끈적한 붉은 액체에 닿았다.

“응?”

그러고 보니 벽에도 온통 붉은 액체가 뿌려져 있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아이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거실로 나갔다. 부엌에도 갔다가, 뒷마당도 확인했다.

‘아무도, 아무도 없어.’

오직 진한 피비린내뿐.

멀리 동이 트는 아침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농사일을 하러 가는 농부 아저씨도, 이른 아침부터 고소한 빵 냄새를 풍기는 빵집 아주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맨발로 도시를 거닐었다.

“엄마.”

이따금 떨리는 목소리를 내어 보지만, 그 어디에도 불쌍한 아이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훌쩍.”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코에는 콧물이 가득했다.
엄마가 아닌 누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 엄마! 엄마~~!”

아이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실루엣을 향해 달려갔다.

* * *

끝이 뾰족한 고깔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도 없어.”

그녀의 기억 속 마을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이 북적북적한 대도시는 아니었어도, 적잖은 사람들이 사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이른 아침이라 할지라도 인기척이 너무 없었다.

그보다 뿌연 안개 너머로 느껴지는 냄새는,

“피.”

분명 인간의 피 냄새였다.
지팡이이자 창인 무기로 땅을 톡 하고 건드리자, 창두에 있는 오브를 중심으로 보랏빛 파동이 퍼져나갔다.

위잉. 위잉. 위잉.

멀리 퍼져나갔던 파동이 다시 돌아왔다. 지금 이곳에 사람은 없었다.

‘무엇이 이 마을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보랏빛을 내는 오브로 안개를 조금씩 걷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아스라이 그녀의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아이. 이건 남자아이의 목소리야.’

이 사태를 만든 몬스터, 아니면 이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 ….”

그녀가 나지막이 주문을 외우자,

쏴아아아!

안개가 한 번에 휩쓸려 나갔다. 그리고 사라진 안갯속에서 이제 막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엄마!!”

‘엄마?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아이는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명치에 얼굴을 묻은 아이를 떼어내려 했으나,

“훌쩍. 훌쩍. 엄마.”

어째선지 그냥 두었다.

“… ….”

대신 손을 들어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녀의 손 덕분인지 한동안 눈물을 쏟아내던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눈이 마름모야. 이상해. 우리 엄마가 아니야.”
“그래요. 전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에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품에서 떨어진 아이가 그녀를 보았다.
뾰족한 고깔과 안이 비치는 겉옷 그리고 몸에 딱 달라붙는 레오파드까지.
남자아이는 알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누나는 변태구나!”
“변태?”

그녀는 요정이 변태(變態)하는 종족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녀가 아는 한 아니었다.
그러나 소년은 확신에 찬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신부님이 도시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변태가 산다고 했어. 막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맨몸을 보여주는 것을 기뻐한대.
누나가 그 변태 맞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맞지만, 변태는 아니었다.
그녀는 창을 내려 꼬마의 머리를 꽁! 하고 때렸다.

“아팟!”
“제 이름은 로스티나 코스모스, 방랑모험가랍니다.”
“로스 … 코스모스?”

아이는 처음 들어보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 마을을 들렸던 것이 꽤 오래전이란 사살을 깨달았다. 그래도 저 나이 때 남자아이라면 그녀의 이름은 몰라도 이명은 들어봤을지도 몰랐다.

“혹시 원더링 페어리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니!”

아이는 당당했다.
그리고 눈을 커다랗게 뜨고 되물어왔다.

“누나는 페어리야? 요정님! 날개! 날개를 보여줘!”

소년은 의욕적으로 그녀의 주변을 돌았지만, 애석하게도 녀석에게 보여줄 날개는 없었다.

“그만, 어지럽네요.”
“난 괜찮은데.”
“그보다 마을 어른들은 어디에 갔나요?”
“… 몰라. 자고 일어났는데. 모두 사라졌다. 엄마도, 옆집 아저씨도. 빵집 아주머니도.”

아이가 금세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로스티나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차라리 오크 무리를 토벌하고 말지, 우는 아이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아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애써 울음을 꾹 참는 듯, 코를 소매로 쓱싹 닦고는 말했다.

“요정 누나는 모험가라고 했지?”
“네.”
“그럼 내가 의뢰할게. 우리 엄마를 찾아줘.”
“… 좋아요.”
“아싸! 그럼 어서,”
“하지만 의뢰에는 대가가 필요해요.”
“대가?”

아이가 주머니에 있는 것을 양손에 모두 꺼내 들었다.

먼지 쪼가리와 돌멩이 그리고 종이 쌓인 오래된 사탕이 전부였다.

“이걸로 할게요.”
“앗! 그건.”

소년은 로스티나의 손에 들린 사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갈팡질팡하는 것도 잠시, 엄마를 찾고자 하는 마음에 굳은 결심을 했다.

“그건 내가 엄마에게 생일날 받고 아껴 두었던 거야.”
“소중한 물건이군요.”
“엄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줄게. … 대신 무슨 맛인지 알려줘야 해.”

로스티나는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까서 입에 넣었다.
대도시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싸구려 눈깔사탕, 그마저도 오래된 탓인지 맛이 희미했다.

“사과 맛이네요.”
“사과? 아삭아삭 사과?”

로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입에 침이 잔뜩 고인 듯,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입안에 들어가 버린 것을 욕심내지 않았다.
아이는 그녀에게서 몸을 훽 돌려, 다른 곳을 보며 소리쳤다.

“이제 엄마를 찾아줘.”
“알겠어요.”

로스티나가 소년의 곁에 섰다. 그녀를 힐끔 바라본 소년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녀는 소년의 손을 잡았다.

“자, 갈까요?”
“손은 좀 … 난 어린 애가 아니라고.”
“제게는 충분히 어려요.”
“내 눈에는 난쟁이 누나도, 악! 아프다고!”

또 한 번 꿀밤을 맞은 아이가 머리를 감쌌다.

“출발할게요.”

로스티나는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마을을 탐색했다.
여느 농촌 마을이 그렇듯 몇 년 사이에 그녀의 기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을 구조를 잘 아는 아이와 함께 골목골목을 수색했지만, 어디에서 사람은커녕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시작한 수색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도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식사 시간이 되어 들어간 마을의 유일한 식당, 벽에는 온통 피 칠이 되었었다. 식당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는 건물에 사람은 없고 붉은 피만 가득해, 피비린내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로스티나가 표정이 어두워진 아이를 데리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그리고 식당에서 챙겨온 빵을 소년에게 내밀었다.

“누나. 엄마는 무사하실까?”
“… ….”

거짓말이라도 괜찮으실 거라 말해야 한다는 것을, 한참 뒤에 깨달았다. 아이는 이미 두 손에 쥔 빵을 눈물로 흠뻑 적신 이후였다.
그녀는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녀 몫의 빵을 옆자리에 두고, 마을로 뛰어 내려갔다.
뒤를 돌아보니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심하라는 듯, 손을 흔들어주고 마을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후우. 후우. 후우.”

로스티나는 지팡이를 살며시 발아래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 $$@%#!”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요정족 언어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보랏빛 무리가 사방에서 그녀에게로 몰려들었다.
보랏빛은 스스로 마법진이 되었고, 눈이 부신 빛을 발하였다.

“응답하라!”

그녀의 외침에 다시 사방으로 퍼져나간 빛무리, 그것은 마을 곳곳에 있는 사람들의 피와 뒤섞여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피의 주인을 찾아 두둥실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이 뛰고, 호흡이 혀끝에 와 닿았다.
그러나 뭉그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지팡이를 들어 한 걸음씩 허공에 움직이는 피의 뒤를 쫓았다.

허공에 떠오른 피는 모두 한 방향으로 향했다. 마을 외곽에 있는 성당,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그녀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평소와 달리 굳게 닫힌 성당 문을 힘겹게 밀었다.

끼이이익.

저무는 태양 빛이 문틈 사이로 비스듬히 성당 내부를 밝혔다.

“세상에.”

그곳에는 사람, 아니, 사람이었던 고깃덩이들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모여라.”

허공에 떠돌던 빛을 갈무리한 로스티나. 그녀는 조심스럽게 성당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저벅. 저벅.

성당은 마을과 달리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깨끗했다. 어딜 봐도 눈에 들어오는 시체조각과 언밸런스할 정도로.
로스티나는 다시금 창두로 성당 바닥을 톡 건드렸다.

사방으로 물결치며 퍼져나가는 보랏빛 파동.

한 명이 걸려들었다.

타탓!

땅을 박찬 로스티나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반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예배실 뒤편, 좁고 어두운 복도를 내달렸다.
옆으로 난 창문에 태양이 아슬아슬하게 지면에 걸쳐있는 것이 보였다.

‘더 빨리.’

이 성당에 사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부정한 생명체가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좁은 복도 끝 줄지어 늘어선 참회실이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 나무 문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문이 부서지고.

‘없어!’

그리고 두 번째 나무 문. 쾅!

‘없어!’

세 번째도, 네 번째에도 참회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징표는 여기를 가리키는데.’

이미 지면 아래로 거의 넘어간 태양, 참회실에도 이젠 어둠이 조여왔다.

“어디에도 없어. 그렇다면!”

로스티나가 허공에 뛰어 올렸다.

“합!”

작은 몸을 있는 힘껏 비틀어, 창에 회전을 더했다.

으드드득!

창대가 비틀리며 비명을 내지르고,

“나와랏!”

로스타나는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콰콰콰콰쾅!!!

창끝이 바닥에 꽂히고,

파직!

돌로 된 바닥에 사방으로 금이 갔다.

바사사사삭.

바닥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후웁.”

뿌연 먼지 연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를 정확히 노렸다. 그녀의 창이 괴물의 목덜미로 쇄도하는 순간,

“오! 신이시여! 사, 살려주시오!!”

괴물이 소리쳤다.

퍽!

간발의 차로 로스티나의 창이 괴물의 목덜미를 훑고 바로 옆에 박혔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히이익!”

괴물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로스티나가 손을 몇 번 휘젓자, 참회실에 가득 찬 먼지가 가라앉았다.

“신부님?”

성당의 주인이었던 신부가 정신을 잃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신부가 괴물이 아니라면.’

쾅! 멀리서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쾅!

그 소리는 점차 로스티나와 신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콰앙!!

마침내 참회실 벽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아…]

검은 털로 뒤덮인 기다란 주둥이, 노란 눈동자에 검은 동공, 온몸이 빡빡하게 세운 털로 뒤덮인 채 붉고 기다란 성기를 축 늘어뜨린 녀석은,

[으르르르르]

웨어울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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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티나 코스모스의 작은 몸이 휘청였다.

참회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날아간 여파였다. 작지 않은 공간이 무너진 벽에서 나온 흙먼지로 가득했다.

 

“콜록.”

 

벽 너머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

 

로스티나는 전처럼 먼지를 가라앉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저도 모르게 하얀 창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주춤주춤 벽에 등이 막힐 때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크르르르르]]

 

썩은 내가 진동했다.

 

자욱한 먼지로 상대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먼지가 이리저리 날리며, 시체 썩은 냄새가 뜨거운 입김과 함께 밀려왔다.

 

‘위험해.’

 

아직 상대가 모습을 다 드러내지도 않았는데, 로스티나는 마른침을 거듭 삼켰다. 먼지로 인해 목구멍을 지나며 가끌거렸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적을 앞두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허벅지에 포션 벨트를 더듬었다.

세 개의 홀더 중 포션이 묵직하게 꽉 차 있는 것은 두 개에 불과했다.

 

‘마나포션을 미리 충전했어야 했는데.’

 

그나마 세 번째 홀더에 힐링 포션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딸각.

 

로스티나는 길쭉한 막대 모양의 보라색 마나포션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먼지가 가라앉고, 괴물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검은 털로 빡빡하게 뒤덮인 몸체,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처럼 팔다리가 길쭉했다. 거대한 체구가 참회실 안으로 다 들어오지 못할 만큼 컸기 때문인지 네 발로 바닥을 기었다.

그리고 길쭉한 주둥이.

 

[[크르르]]

 

놈이 더러운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창처럼 길고 뾰족한 이빨 사이로 붉은 피가 섞인 침이 걸쭉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칼처럼 날카로운 손톱으로 바닥을 긁던 녀석의 손이 바닥에 쓰러진 채 오줌을 지린 신부에게 향했다.

 

“더럽네요. 이 좀 닦으세요.”

 

어둠 속에서 사냥감을 쫓던 녀석의 노란 눈동자가 한쪽 벽에 물러나 있던 로스티나 코스모스에게 꽂혔다.

놈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기다란 혀를 내빼 입 주변을 닦았다.

 

[킁, 킁킁]

 

아니면 그녀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과일 향이 녀석의 식욕을 돋은 걸일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놈의 노란 눈동자가 검은 동공은 이제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마력의 구슬!”

 

그녀의 창 주변으로 보라색 구슬이 생겨난 것이 신호였다.

 

[[크아아아!!]]

 

거대한 몸집 탓에 참회실 안으로 다 들어오지도 못한 웨어 울프가 손을 휘둘렀다.

 

탓.

 

경쾌한 움직임으로 허공에 몸을 띄운 로스티나.

 

“발사!”

 

창끝에 모인 보라색 구슬이 웨어 울프의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놈은 황급히 눈을 감고 손을 휘둘러보지만, 워낙 큰 탓에 대충 쏴도 얼굴에 맞았다.

 

두두두둑!!

 

가죽으로 만든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결코,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어느 하나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다는 신호였으니.

 

타타타탓.

 

로스티나는 마치 땅을 디딘 것처럼 벽을 내달렸다.

그녀보다 기다란 창대의 끝을 양손으로 잡고, 창이 활처럼 휘도로 휘둘렀다.

 

“갈라져라!”

 

반월 모양 창날이 웨어 울프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사사사삭.

 

‘얕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허공에 흩날리는 놈의 검은 터럭들, 빡빡하게 자란 놈의 털이 천연 방어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벽에 두 발을 모은 채, 재차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끄아아아아!!]]]

 

그러나 이미 두 차례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웨어 울프도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놈에게 좁은 참회실 안으로 몸을 비집어 넣으며, 거대한 채찍 같은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쿵! 쿠쿵!!

 

로스티나는 벽을 박찼다.

 

타핫!

 

도약은 놈을 공격하려는 원래의 의도와 달리 간신히 몸을 피하는 데 사용했다.

그녀의 옷 끝이 손톱에 걸려 서걱 잘리고,

 

찰랑.

 

금으로 만든 장식이 바닥에 떨어졌다.

 

‘위험해.’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었다. 놈의 손톱은 시시각각 벽을 타는 그녀의 뒤를 쫓았고,

 

[크엉!]

 

웨어 울프의 길쭉한 주둥이 근처라도 움직이는 순간에는,

 

철컹!

 

쇠로 만든 듯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를 물어뜯으려 했다.

 

[컹! 컹컹! 컹!]

 

집요한 주둥이가 로스티나의 엉덩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날 때쯤, 그녀의 마름모꼴 눈동자와 뾰족한 마녀 모자 끝에 달린 마른모 장식이 동시에 빙그르르 돌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빛나는 순간,

 

“위대한 어머니의 잃어버린 바늘 뭉치!”

 

그녀가 몸을 반전하며 외쳤다.

검은 웨어 울프의 커다란 주둥이가 옳다구나 그녀를 집어삼키려 쫘악 벌렸다.

 

“쏘아져라!”

 

허공에 나타난 보라색 바늘들.

 

하나하나가 스피어처럼 커다란 바늘 무리가 놈의 주둥이 안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푸욱, 푹푹!

 

[캐 캥!]

 

놈의 날카로운 이빨이 깨져 나갔고, 두툼한 혀에 보라색 바늘이 어지럽게 꽂혔다.

처음으로 괴로운 듯 고개를 흔드는 웨어 울프, 녀석의 주둥이에서 나는 피가 사방에 뿌려졌다.

그녀의 마법과 달리, 페어리 족의 이야기 파편은 놈에게도 통했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직접 짠 퀼트!”

 

사방에 흩뿌려졌던 보라색 기운이 그녀 앞에 모여들어, 격자무늬의 커다란 퀼트(누비이불)를 만들었다.

그리고 퀼트 가운데 마름모가 원처럼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덕분에 웨어 울프의 더러운 피를 직접 맞지 않아도 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기 바닥에 쓰러진 신부처럼 피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검게 물들었을 것이다.

 

‘자리를 옮겨야겠어.’

 

그녀가 이 마을에 들릴 때마다 불길한 마녀가 온다며 성을 냈던 신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에 유이한 생존자이기도 했고, 그녀가 떠난 후 꼬마를 돌봐줄 유일한 어른이기도 했다.

 

“멍멍이. 따라오세요.”

 

그녀가 참회실 밖으로 난 창문 너머로 몸을 날렸다.

참회실 밖은 성당 주변에 조성된 묘지였다. 페어리의 피를 물려받은 그녀는 무게가 없는 사람처럼, 비석을 밟으며 성당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콰앙!!

 

성당 한쪽 벽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 웨어 울프가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울!!]]

 

웬만한 주택만큼 커다란 몸집을 드러낸 녀석은 등에 갈기를 바짝 세우고,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로스티아의 뒤를 쫓았다.

 

[[헥. 헥]]

 

긴 혀를 빼문 놈은 늑대나 개처럼 네 발로도 빠르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

고개를 돌려 모습을 확인하던 로스티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놈의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무언가.

 

‘사람이야.’

 

그랬다. 사람, 그것도 성인 여성이 놈의 성기에 꽂혀 정신을 잃은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설마.’

 

로스티나가 생각하는 불길한 예감은 대개 들어맞았다.

어느새 도시의 거리에 접어든 그녀가 상점 간판을 박찼고, 그 뒤로 보라색 가루가 반짝이며 흩날렸다.

 

[[으르릉!!]]

 

웨어 울프는 시야를 방해하는 가루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고, 그중 일부가 녀석의 성기에 꿰인 여성의 몸에 안착했다.

 

‘아직 살아있어.’

 

마을 광장에 도착한 로스티나가 발을 멈췄다.

그녀가 원하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정신을 잃은 채 인형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여성의 상황을 생각할 때 더 멀리 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웨어 울프의 육중한 몸이 광장에 도착했다.

 

쿠웅!!

 

놈의 무게에 돌로 만든 바닥이 부서지고 사방으로 튀었다. 그 일부는 놈의 가랑이 사이 여성의 몸에 박혀 붉은 피를 자아냈다.

 

[크르르]

 

피 냄새가 자극을 했는지, 녀석은 자신의 가랑이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채 조임을 느낄 수 없는 여성 그리고 전방에 보이는 달콤한 과일 향이 나는 여자. 아직 덜 자란 듯 키가 작았지만,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로스티나가 엿들었다면 화를 낼 만한 생각을 한 웨어 울프가 가랑이 사이의 여자를 손으로 쥐었다.

 

“!”

 

로스티나는 여차하면 부상을 각오해서라도 놈의 손에서 여성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놈은 조심스럽게 성기에 끼인 여성을 빼내었다.

 

쯔어어억.

 

웨어 울프의 성기에 결합된 여성은 끈적한 소리가 내며 마침내 해방되었다.

인간의 보지라고 불 수 없을 만큼 확장된 구멍에는 웨어 울프의 점성 높은 정액이 가득했다.

 

뜻밖에도 놈은 그녀가 다칠세라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소리 없이 하늘에 뜬 달같이 노란 눈으로 로스티나 코스모스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웨어 울프의 붉고 기다란 성기에서는 차가운 밤바람에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로스티나 코스모스는 그 순수한 욕망의 눈동자에 정신이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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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ㅓ흑마이깟....작가님의 필력이 너무...쩌는레후...

기존의 설정을 지켜주심만이아니라 흥미로운 새로운 설정들도 마구마구..!!!!!!
정말 재밌게 읽었읍니다 ㅠㅠㅠ
글 써주신 0래작가님 감사합니다!!!!!


폰그림에익숙해진다면 꼭 삽화를구려봐야겠읍다 야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