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허 글붕어 마싯다

설정 짜는거 좋아하는데 너무 행복하네요 ㅎㅎ

0래작가님 항상 감사합니다.


사악. 사악. 사악.

 

중년 사내가 숫돌에 날을 세우던 장검을 눈높이까지 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장검은 너무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뭉툭하지도 않은 날이 섰다.

뭘 모르는 초보들은 날이 날카로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검 위에 머리카락이 떨어지면 잘릴 정도로.

사실 그 정도로 날을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날카로운 검은 두어 번 휘두르면 이가 나가고 부러지고 만다.

 

이 정도가 딱 좋지.”

 

잘 세운 장검은 잘 빠진 여인을 보는 것과 같다.

이제 현역에서 은퇴한 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랬다. 장검을 거치대에 올려놓고, 곰방대를 물었다.

 

후웁. 후우.”

 

뽀얀 연기가 검에 서렸다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검을 휘두르다 보면 검이 말을 걸어온다.

 

검과의 교감.

 

그 경지에 오르면 거칠 것이 없었다. 검과 창과 화살과 마법이 난무하는 전장을 2.7kg짜리 장검 한 자루를 들고 종횡했다. 육중한 철갑을 입은 기사도, 진리에 도달했다는 마법사도, 위대한 정령의 속삭임도 그를 막지 못했다.

한때 정점에 달했던 남자로서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때 자신은 생명체가 아니라, 한 자루의 검이었다고.

 

후우~.”

 

이제는 연기처럼 사라진 과거의 영광일 뿐이다.

 

딸랑.

 

상점 문이 열리고 등짐을 바리바리 진 수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오, 뭐야. 포치냐?”

아저씨!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그게 뭡니까? ? 그래서 장사 좀 하시겠어요?”

시끄럽다. 이 녀석아!”

 

실실 웃으며 말을 하는 갯과 인간인 포치와는 오랜 인연이었다.

 

그보다 잘 들었다.”

뭘요?”

이번에 길고양이 한 마리 입양했다며.”

! 그 무슨 망발이세요!”

네 파티에 리자드 맨 녀석이 한 시간이나 투덜거리고 갔다. 자기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 털북숭이가 채가 버렸다고.

그것도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아무것도 안 사고 말이야.”

그 냉혈한 녀석이!!”

 

커다란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며 리자드맨의 뒷담화를 하는 포치를 보며, 중년인은 과거 자신의 동료들을 떠올라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포치, 포치, 포치! 그만 투덜대고. 고양이 인간은 새 파티원이야 아니면 여자친,”

!!”

가게에서 짖지 마라, 시끄럽다.”

 

노란색 머리를 긁적인 포치가 어딘가 어색하게 말했다.

 

걘 그냥 …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 광장에서 널 붙잡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며.”

그건 그런데. 아무튼, 그래요! 그보다 이거 이것 좀 봐주세요.”

 

요즘 들어보기 힘든 포치의 당황한 모습에 조금 더 놀려줄까 생각한 상점 주인이었으나, 그가 꺼낸 물건에 눈이 사로잡혔다.

 

나무도 철로 만든 것도 아닌 손잡이야 그렇다 치고, 한 뼘 남짓 길이의 칼날은 분명 그가 처음 보는 금속이 틀림없었다.

웨폰 브레이커처럼 물결 모양의 칼날을 손가락으로 튕겨보기도 하고, 다른 검을 가져와 맞대보기도 했다.

 

놀랍게도 정성껏 날을 세운 장점의 이가 나가버렸다!

 

상점 주인은 장미문양이 그려진 칼날을 쓰다듬으며 포치에게 물었다.

 

… 이거 어디서 구한 거냐? 드워프 놈들이 만든 게 분명하다. 아니면 … 설마 새로운 던전이라도 발견한 거냐?”

 

포치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이세계에서 온 겁니다.”

이세계!!”

 

장미문양의 칼을 든 그의 두 눈이 흔들렸다.

 

너 설마 … 이세계에 다녀온 것이냐? 용사들의 고향인?”

.”

 

대답하는 포치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것이 바로 녀석이 상점을 들어올 때부터 느껴졌던 당당함의 근원이었다.

 

용사들의 고향.”

 

소문만 무성한 곳, 누구도 다녀온 적이 없다는 그곳에 직접 다녀왔다면 그럴 만도 했다.

 

용사라.”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용사가 되는 꿈을 꿔본 적이 있었다. 눈앞에서 이세계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를 떠벌리는 눈앞의 수인도 다르지 않았다.

 

포치.’

 

그가 처음 포치와 만난 것은 용병 일을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이 마을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벌써 십 년 전이군.’

 

* * *

 

빌어먹을.”

 

곰방대를 입에 문 남자가 연신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는 불안한 두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한쪽 벽에 가득한 번쩍한 무기와 다른 쪽에는 기사들이 사용하는 풀 플레이트 갑옷이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하나 같이 고품질의 무구들, 문제는 상점에 있는 것이라고는 갑옷에 미끄러지는 파리가 전부라는 점이었다.

거금을 들여 마련한 상품이 하나도 팔리지 않고 있었다.

 

다시 칼이라도 들어야 하나?”

 

아내가 결사반대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었다.

 

며칠간 상점을 찾은 사람이라고는 가끔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호미나 삽이 있냐고 들른 것이 전부였다.

곰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자식 놈들이 가만 바라보고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그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것은 곰방대에 꾹꾹 눌러 담은 연초가 유일했다.

 

뻐끔뻐끔 물고기라도 된 것처럼 연기를 뿜고 있는 그에게 재밌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허브 사세요! 드루이드가 직접 기른 허브 한 단이 단돈 동화 열 개입니다!”

 

갯과 수인인 소년이 자신만큼 커다란 등짐을 진 채로, 양손에는 그가 광고하는 허브를 들고 사람들에게 흔들고 있었다.

그를 싸늘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뿜어대는 소년,

 

스프에 넣어도 좋고, 약재와 혼용해도 아무 부작용이 없는 드루이드표 허브 팝니다-.”

 

아직 부모의 그늘에서 보호받아야 할 소년이 길 가던 아줌마에게 허브를 한 단 팔고 좋아하고 있었다.

 

그거 팔아서 고작 얼마나 번다고. .”

 

혀를 차는 상점 주인이었으나, 생각해보니 오늘 순수익은 갯과 수인의 압도적 승리였다.

그가 보는 것만으로 벌써 네 명째 허브를 사 갔으니까.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

 

씁쓸한 패배감에 곰방대를 털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한참 허브를 팔던 소년이 가만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동네 수인 꼬마들이 모여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 ….”

 

아무 말 없이 손에 든 허브를 바라보는 소년이, 아무도 모르게 소매로 눈가를 쓰윽 닦았다.

 

.”

 

상점 주인은 담뱃재를 들이킨 것처럼 입맛이 썼다.

 

점심 도시락 삼아 가져온 육포를 어디에 두었더라.’

 

상점을 뒤져 육포를 찾은 그가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가려는 그의 귀에 미약한 신음성이 들렸다.

 

그 아이다!’

 

상점 주인은 신음이 들리는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막다른 골목에는 드루이드표 허브가 더러운 골목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허브 파는 소년이 마을 왈패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딜 고아 새끼가 나대는 거야!”

개 같은 짓거리를 하니까 너희를 개새끼라고 욕하는 거야. 낄낄낄.”

, 저 새끼주머니에 돈 있어.”

 

아직 뼈도 다 여물지 않은 소년을 집단 린치하는 왈패들.

 

으드득!!”

 

마을 양아치 정도야 검을 쓰지 않아도 콧바람만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했다.

그러니 웨어울프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과한 행동이었다.

 

우드득, 우드득!!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몸에서 두 배는 커진 몸, 천연 갑옷처럼 빽빽하게 자란 늑대 털,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까지.

상점 주인은 제 운명도 모른 채 소년을 괴롭히는 양아치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막대를 들어,

 

와다다다닥!!

 

단 한 번의 호흡만으로 마을 양아치들을 물리쳤다.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양아치들, 그 가운데 몸을 웅크린 허브 파는 소년이 있었다.

상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상품도 내팽개친 녀석이 제 몸보다 작은 토끼 수인을 감싸고 있었다.

 

이봐 괜찮냐?”

 

소년의 커다란 귀가 움찔거렸다.

 

갑자기 멈춘 폭력 그리고 나타난 웨어울프.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소년은 여전히 토끼 수인을 제 몸으로 가린 채 말했다.

 

, 아저씨가 절 구해주신 건가요?”

뭐 그런 셈이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상점 주인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다친 데는?”

 

소년은 제 몸이 아니라 토끼 수인의 몸을 확인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무기 상점 주인분 맞으시죠?”

. 어떻게 알았냐?”

전 상인이니까요. 어디에 누가 사는지 시장 조사는 필수죠. 헤헤.”

그러냐?”

 

상점 주인의 볼이 실룩거렸다.

 

. 그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멍청하게 맞지 말고 도망쳐라.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니까.”

 

용병으로 달고 달은 그가 건넨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럴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건 리트리버 답지 않은 행동이에요!”

 

리트리버. 갯과 수인 용사의 이름이었다. 참으로 당돌한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상점 주인은 하고 싶은 말이 태산과 같았으나, 아직 어린 소년의 꿈과 희망을 짓밟고 싶지는 않았다.

손에 든 막대를 던져버리고, 몸을 돌렸다.

 

그래, 그건 뭐 알아서 하고. 이 녀석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을 거다.”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에게 소년이 소리쳤다.

 

전 포치에요!”

 

포치라, 꽤 괜찮은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다음 이어진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아저씨 장사 진짜 못해요!”

 

상점 주인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가 서서히 몸을 돌려, 당돌한 소년을 노려보았다.

 

?”

생선 파는 고양이 같았다니까요!”

이 자식이 옷까지 찢어가며 구해줬더니!”

그러니까 제가 장사하는 법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 ….”

대신 제게 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 와중에 거래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며, 포치라 소개한 녀석은 천생 장사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