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Day-1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위해 구비한 방송실은 보통 밀실인 경우가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다.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흘러들어오고 나가는 소음을 방지한다거나, 혹시 모를 사생활의 유출을 방지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


일리엔도 마찬가지였다.


팬층이 두터운 그녀이니만큼 방송을 통해서 개인정보가 흘러나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를 해 두었고, 방송실은 창문하나 없는 밀실로, 오랫동안 방송을 하면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에 의한 열기로 땀에 흠뻑 젖는 날도 수도 없이 많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샤워도 했으니 다시 방송을...”


무려 5시간 30분에 달하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땀범벅이 되었던 일리엔은 잠시 쉬다가 온다는 명목으로 방송을 종료하고 샤워를 마치고 방송실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는 동안 방문을 열어뒀던 방송실이 충분히 환기가 되었는지 확인도 할 겸, 다시 방송을 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무방비한 걸음걸이로 방송실로 돌아온 일리엔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안녕?”


문과 벽 사이.


한 사람 정도나 어렵사리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틈 사이에 두터운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감은 소녀가 서 있었다.


“누구...!”


일리엔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기도 전에,


콰당탕탕!


소녀는 그녀를 밀어 넘어트리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그녀의 얼굴로 가져가 덮었다.


상식적으로 말 한다면, 어떤 마취제나 수면제도 수건을 적셔 코와 입을 가린다고 해도 즉시 의식을 잃을 정도의 효능따윈 없다.


일리엔도 그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순간 ‘또 어디선가 이상한 약품을 사서 납치 시도를 하는 멍청한...’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정말로 거기까지만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방바닥에 등이 닿는 충격과 함께 순간 숨을 크게 들이 마시는 순간 그녀의 코와 입을 막은 수건에서 민트향과 비슷한 향의 기체가 그녀의 체내로 빨려들어갔고, 만화처럼 의식을 잃었다.


그걸로 끝 이었다.


검은 옷의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일리엔에게 옷을 입힌 뒤 향수를 꺼내 곳곳에 뿌렸다.


곧 일리엔의 방송실에는 독한 알콜냄새가 가득해졌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미리 준비해 온 반쯤 빈 술병을 컴퓨터 앞에 셋팅하고 부엌에서 술잔을 가져와 1/3정도를 채운 뒤 간단한 안주를 올려놓았다.


그녀가 방송을 종료한 뒤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는 증거는 이걸로 충분했다.


가족도 없는 천사 나부랭이가 사라지게 하는데에는 이거면 충분하다.


소녀는 외투를 벗은 뒤 일리엔의 어깨 위에 걸치고 그녀를 등 뒤에 업고 자연스럽게 집을 나섰다.


고급스러운 아파트에서 만취한 소녀를 업은 소녀가 걸어나가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주민은 한명도 없었다.



1.


Day+0

“으응....”


일리엔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함께 눈을 떳다.


머릿속이 몽롱하고 붕 뜬 것 같은 기분에 조각조각난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었다.


‘팔이...’


불편하다.


두 팔이 위로 들려져 무언가로 고정되어 있었다.


자세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자세에 두 팔은 뒤로 들려져 고정되어 있으니 자세가 편할 리가 없었다.


거기에 머리는 깨질 듯 아파오니 아무리 단잠을 자던 사람이라고 해도 깨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을 정도.


‘아...!’


그리고 마지막 기억이 침대에서 눈을 감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한 일리엔이 뒤늦게서야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가운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 이었다.


썩 넓지는 않았다.


넉넉잡아 8평.


자그마한 침대 하나에 컴퓨터 한 대가 들어가면 다 찰 것 같은 좁은 공간.


백열하는 컴퓨터 앞에 앉은 소녀가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일리엔이 의식을 차리며 낸 인기척을 느낀 것 같았다.


일리엔이 흠칫 떨었다.


‘도대체 뭐지? 누구야?’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마취약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런 물건이 실존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해 사람을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은 더 놀랍다.


“눈 떴으면 밥먹어, 천사.”

“천사?”


창백한 달빛에 비쳐보이는 눈동자가 서늘한 보랏빛으로 빛났다.


일리엔은 반사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천사라는 명칭에 당황해했다.


물론, 천사라는 호칭은 익숙했다.


언젠가 실수로 방송을 하며 천사로서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인 이후로 심심찮게 천사라는 표현을 듣곤 했으니까.


이 소녀도 자신의 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부르는 것도 마냥 이상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일리엔의 눈동자가 소녀가 보고 있던 참고서와 모니터로 향했다.


‘파괴공학에 해부학?’


깊은 전문지식을 수 년 동안이나 학습해야하는 과목.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여유롭게 인터넷 방송에 심취해서 자신을 납치 할 계획까지 세울 것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심지어 이 소녀, 어딜 봐도 잘 쳐줘야 20대 초반으로나 보일 얼굴 아닌가.


20대 초반의 소녀가 공부하기엔 파괴공학도, 해부학도 지나칠 정도로 삭막한 장르였다.


“그럼 천사를 천사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야하지?”

“... 제 시청자신가봐요.”


소녀는 눈을 찡그렸다.


“그놈의 인터넷 방송.”


그리곤 혀를 찼다.


“관심 없으니 밥이나 먹어.”


그 말을 끝으로 의자를 돌리려던 소녀는 뒤늦게 아차, 하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젠장. 생각 해 보니 팔을 묶어놨군. 먹여 줄테니 입이나 벌려.”


그리곤 그녀의 말마따나 일리엔의 바로 옆에 놓인 테이블위에 보기좋게 준비된 볶음밥을 손수 숟가락으로 떠서 일리엔에게 먹여주었다.


“천사... 라고 부른 이유는 뭔데요 그럼?”


소녀는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멍청하게 귀환 포탈 못타고 지상에 남는 천사가 한둘일까.”


일리엔 같은 천사를 이미 몇 명인가 만나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악마도 괴물도 실존하는 세계에 천사 하나쯤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고.”


거기에 한 가지 더.


“천사의 피와 눈물은 인외를 쳐죽이기 가장 좋은 소재중 하나니까.”

“납치의 이유가 그건가요? 하지만 천사의 피와 눈물은...”

“알아. 천사가 자의로 내어주는게 아니면 효력이 없다시피하지.”

“그럼...”

“그래도 풀어주지는 않아.”

“네?”


소녀는 나직하게 웃었다.


“자의로 내어줄 때 까지 묶어두면 그만이니까. 아니면 다른 수단을 사용하면 되고.”


그리곤 드르륵! 하고 책상 서랍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


일리엔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2.

Day+2

실버불렛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떠한 상황이나 사태를 해결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특효약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천사의 피와 눈물이 바로 그 실버불렛이었다.


인외의 괴물, 흡혈귀, 라이칸슬로프, 악마, 마족... 그 모든 인외가 천사의 피와 눈물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단!


천사에게서 강탈한 것이 아니라 천사가 자의로 내어준 것 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오늘은 안 주나?”


일리엔이 입을 비죽였다.


“다짜고짜 사람 납치해놓고 ‘울어, 울어서 네 순수를 증명해!’라고 하면 누가 그 자리에서 울어주겠어요? 밥이나 줘요. 맛 없으면 국물도 없으니까.”

“.....”


상황은 좋지 않다.


그녀를 구속한 밧줄을 생각하면 취할 수 있는 자세는 한정적이고, 자는 자세도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리엔은 묘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그녀가 자의로 줘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천사의 피와 눈물을 바라는 이 납치범 소녀의 행동이 재미있었다.


하는 말과 행동을 보아하니 죽을 걱정도 없고, 밥도 나름 맛있게 잘 한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인지 이런저런 대화도 해 주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자세가 좀 불편하고 심심한걸 빼면 한동안은 이러고 살아도 될 것 같았다.


흡혈귀나 마족을 때려잡고 다니는 소녀의 방 구석에는 살벌한 철제탄통과 돈다발이 들어있는 박스가 겹겹이 쌓여있었고, 어떻게 생각하면 이렇게 사육당하는 삶도... 괜찮지 않아?


게임도 못하고, 나가서 놀지도 못하는걸 빼면 말이야.


생각해보니 자신은 방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드문 히키코모리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일리엔은 울적해졌다.


그 날, 소녀는 일리엔에게 고급스럽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볶음밥과 맛있는 샌드위치 그리고 손수 내린 커피와 초코바나나 무스를 제공했다.


3.

Day+3

소녀는 성실했다.


새벽이 되면 소리 소문없이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한 뒤 샤워를 하고 오전 공부를 시작한다.


잡다한 전자기판을 꺼내놓고 한참동안 땜질을 하는가하면, 직접 조립한 전자기판을 컴퓨터와 연결해 보기만해도 어지러운 컴퓨터 언어를 두드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점심식사를 실시하며 일리엔에게 식사를 먹여주고, 오후에는 파괴공학과 해부학을 공부한다.


시간이 나면 직접 조립한 전자기판을 들고 나갔다 돌아온 뒤 저녁이 되면 어딘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감시 카메라의 영상을 몇 개나 띄워두고 살피기 시작한다.


“뭐 하는거에요?”

“제 발품을 팔아서 인외를 찾는건 비효율적이니까.”

“... 그래서 도시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구요? 경찰에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안 걸리면 그만이잖아?”


소녀는 책상 옆에 놓여있는 사탕막대들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게 뭔데요?”


그냥 공부할 때 먹고 남은 막대를 쌓아둔게 아니었나?


“이걸 꺾으면...”


소녀가 사탕막대를 하나 골라 꺾자 화면 하나가 픽! 하고 꺼졌다.


“이렇게 그 자리에서 고장나는거지. 회로도 바로 불타버리기 때문에 영상이 어디로 전송되었는지는 찾을 수도 없어. 게다가 설치된 벽이나 가로등과 유사한 재질로 만들어서 숨겼기 때문에 찾기도 힘들고.”


소녀는 그렇게 말한 뒤 꺾인 사탕막대를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장낸 카메라 다시 설치하고 올테니 기다려. 오늘 저녁은 조금 늦게 먹자.”

“.....”



4.

Day+4

“본인이 정의의 사도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정의의 사도?”


소녀는 웃었다.


“그럴 리가. 정의의 사도가 도시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샷건을 쏴갈기고 다닐 리가 없잖아?”


그리곤 책상 서랍 안에 들어있던 묵직한 권총을 꺼내 흔들었다.


“물론 샷건만이 아니라 이런 훌륭한 권총도 있지. 언제든지 필요하면 말만 하라고. 장비값은 피나 눈물로 받겠지만.”

“.....”

“혼자 놀다가 심심하면 언제든지 부르고. 알지?”


소녀는 언젠가 보여준 적 있는 부끄러운 물품들이 잔뜩 들어있는 서랍을 향해 발 끝을 까닥였다.


“여자들끼리도 즐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그 날, 소녀는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Day+5

“그런데 항상 옷은 까만 추리닝만 입네요?”


정말로 까만 추리닝만 입는 것은 아니다.


외출을 할 때면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입을법한 슈트를 입기도 했다.


-라고는 하지만 결국 추리닝에 라이더 슈트 정도나 입는다는 소리다.


“불만 있어?”

“아니, 그래도 여자아이인데...”


소녀는 콧방귀를 끼며 한 손으로 귀밑머리를 쓸어넘겼다.


“예쁘니까 괜찮아.”

“.....”

“너보다 내가 더 예뻐.”


일리엔이 콧방귀를 꼈다.


소녀가 흘깃 일리엔을 살폈다.


“딱 봐도 키부터 내가 더 크고.”


가슴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슴도 내가 더 크지.”

“.....”

“틀렸어?”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일리엔보다 키도 크고 가슴도 컸다.


더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일리엔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조금 늦을수도 있어. 저녁은 알아서 먹어.”

“저, 팔이 이렇게 묶여있어서요?”


빙글빙글 웃는 일리엔을 보며, 소녀는 웃었다.


“그럼 굶으면서 기다려. 밥은 돌아와서 해줄테니.”


소녀는 새벽이 되어서야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Day+6

“밥... 안줘요?”


일리엔은 침대 위에 누워 식은땀을 흘리며 잠든 소녀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일리엔은 그래도 성실한 생활을 유지하던 소녀가 이렇게까지 늦게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인식아 박힌 이 소녀는 피부 아래에 피 대신 기름이 흐르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생활을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렇게 사람다운 약한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런것도 아닌가?’


일리엔은 엉거주춤 선 자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최근 계속 묶여있어서 신겨을 쓰지 않았는데 역시 편한 자세는 아니다.


몸을 비틀어 살짝 앞으로 내밀고 침대 위에서 끙끙 앓고 있는 소녀를 살핀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신음소리를 내며 잠든 얼굴이 안쓰럽다.


일리엔은 슬쩍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읏샤.”


그녀의 손을 묶고있던 밧줄이 무색하게도 손이 쑥 빠져나온다. 소녀의 앞에 서서 한참동안 그녀를 내려보던 일리엔은 조심스레 컴퓨터 옆에 놓인 수건을 챙긴 뒤 물에 적셔 소녀의 이마에 얹어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밧줄로 돌아가 아직 매듭이 묶여있는 밧줄 안으로 손을 쏙 집어넣었다.


“아~ 배고프다~”



Day+7

“아~ 배고프다. 누가 몇 일 씩이나 잠을 자버려서 배가 너무너무너무 고픈걸~”

“시끄러워.”

“아아~ 납치해놓고 밥은 안 굶길 것처럼 굴더니 밥도 안주고~ 이 천사는 실망해버릴지도~”


일리엔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웃었다.


소녀는 한숨을 쉬더니 침대에서 어렵사리 몸을 일으킨 뒤 일리엔에게 다가가 턱을 잡아 얼굴을 마주쳤다.


그리고,


“읍!? 읍읍!”


다짜고짜 입을 맞췄다.


당황하는 일리엔의 입 안으로 혀가 파고드는 깊고, 농밀한 키스였다.


일리엔의 혀를 혀로 엮고, 입 천장과 입술을 제멋대로 탐하는 폭력적인 키스이기도 했다.


“후우. 이제 만족해?”

“무, 무, 무, 무, 무슨!?”


소녀는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맛있는 여자아이의 농밀한 키스. 배부르지?”

“변태!”

“맞아. 아니면...”

“흣...!”


일리엔의 오른쪽 가슴을 다짜고짜 움켜쥔 소녀가 다시 짧은 버드키스를 나눴다.


투두두둑!


그 짧은 사이에 한 손으로 일리엔의 셔츠 단추를 모두 풀어버린 소녀가 일리엔의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정신없는 딥키스와 버드키스, 그리고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가슴을 주물러대는 손길에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일리엔이 깜짝 놀라며 허리를 비틀었다.


“이런걸 더 원하는거 같은데?”


하지만 소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일리엔의 하복부를 괴롭힐 뿐 이었다.


털 한점 나지 않은 균열 위를 쓰다듬고, 수줍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클리를 슬쩍슬쩍 건드리며 일리엔을 놀린다.


일리엔의 숨소리가 금새 거칠어졌다.


그녀의 애액으로 살짝 젖은 손을 슬쩍 핥은 소녀가 웃었다.


“어때? 이제 배 안고프지?”

“하아.. 하아.. 하아...”


일리엔의 달뜬 얼굴을 보며 소녀는 웃었다.


“이런, 배가 고프긴 한가봐. 기다려. 볶음밥으로 괜찮지?”

“자, 잠깐만...”

“응?”


일리엔이 붉어진 얼굴을 휙 돌린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세요...”

“잘 안들리는데?”

“계속... 계속 해주세요..”

“뭘 계속해달라는거야?”


일리엔은 부끄러운 얼굴로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소리쳤다.


“애, 애, 애, 애무...! 계속 해주세요....!”


소녀는 쿡쿡쿡! 하고 웃었다.


“뭐, 좋아. 대가만 충분히 지불한다면.”


그리곤 책상 서랍에서 여성용 자위기구들을 꺼냈다.


“못해줄 것도 없지.”


한 손으로 로터와 스위치를 든 소녀를 보는 순간 일리엔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전에...”


소녀는 웃으며 일리엔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숨이 가빠올 정도로 깊은 딥키스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버드키스도 아니었다.


부드럽게 입술을 덮는 사랑이 담긴 키스.


“하아...”


소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귀엽네.”

“.....!”


일리엔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확 돌렸지만 소녀는 재차 그녀의 얼굴을 붙잡아 눈을 마주쳤다.


“싫어?”

“그.. 그건...”


여자아이의 미소라는게 이렇게까지 멋질 수 있다니?


황당할 지경이었다.


부끄러워하는 일리엔을 보며 소녀는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부드러운 살내음이 풍겨왔다.


‘복숭아.. 향기..’


소녀에게선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났다.


“복숭아..”

“응?”


소녀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는 듯 일리엔을 내려 보다가 자신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 원래는 냄새가 나지 않는 바디만 쓰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 이니까.”


그리곤 찡긋, 하고 눈웃음친다.


헉! 하고 일리엔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 눈웃음을 치는 모습마저도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랑스럽고 멋져서, ‘나 이 사람에게 반해버린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이었다.


문득 일리엔의 머릿속으로 그간 소녀가 보여준 모습들이 스쳐지나갔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 일의 대부분이 괴물들을 쳐죽이기 위한 준비라고는 하지만 원래 자신의 일에 열중인 사람은 어디서 봐도 멋진 법이다.


더욱이 그 사람이 그 일에서 충분한 성과까지 올리고 있다면, 그리고 외형적으로 뛰어난 사람이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소녀는 입고 있던 옷의 단추를 풀어내리며 일리엔과 가슴을 마주했다.


“어때. 내가 좀 더 큰게 맞지?”


골짜기에 얼굴을 파묻으면 정말로 질식사라도 할 수 있을걸? 소녀는 그렇게 덧붙이며 웃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일리엔을 껴안으며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흠칫,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일리엔은 소녀의 손길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바르르 떠는 그녀의 몸을 껴안은 소녀는 천천히 그녀의 보지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꾸물대는게 귀엽네. 천사도 몸은 사람이랑 똑같은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아니긴?”


소녀는 일리엔의 애액으로 젖은 손가락을 꺼내 핥았다.


“이렇게 질질 흘리는건 똑같은데.”

“.....!”


일리엔이 입술을 꼭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해줘요...”

“응?”

“키스.. 해줘요.”

“쿡...!”


소녀는 일리엔을 구속한 밧줄이 연결된 천상과 결합을 해제한 뒤 공주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키스는 침대 위에서.”

“.....”


그리곤 침대 위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눕힌 뒤 일리엔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핥짝,


“히야아악!?”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일리엔이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도 키스를 하며 애무를 해주겠거니 했던 소녀가 보지를 핥으니 허리를 타고 전기라도 흐르는 것처럼 발작하든 허리를 튕겼다.


하지만 소녀는 그런 것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재차 그녀의 보지를 핥았다.


“히야악...! 흐으응, 흐윽...!”


일리엔은 묶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음을 삼켰다.


간질간질하고, 무언가, 따뜻한 것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지나가는 곳 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쾌감이 벼락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신으로 퍼져나가서, 다리와 발가락이 제멋대로 오므라든다.


“크흡.. 흐윽...!”


핥짝, 핥짝...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과할 정도의 쾌감이 계속해서 이어지니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버텼다.


“이만하면...”


어느새 몸을 일으킨 소녀가 얼굴을 가린 채 비명을 참는 일리엔을 보며 웃었다.


그리곤 일리엔의 팬티를 벗겨내렸다.


“.....!”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던 일리엔이 눈을 치떴다.


이제, 이제구나. 그런 생각에 전희로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이젠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소녀는 천천히 자신의 스커트 아래로 팬티를 벗어내렸다.


“누구는 아랫입이라고 하더라고. 어때?”


그리고 천천히 다리를 벌려 일리엔과 보지를 마주했다.


“아랫입으로도 키스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다.”


스윽,


“히이익!?”


묘한 느낌이었다.


쓸리는 것 같은데, 클리와 클리가 마주칠 때 마다 움찔, 움찔, 하고 허리부터 퍼져나간 전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흐으윽, 히이이익?!”


찔꺽, 찔꺽, 찔꺽,


“나도. 읏...!”


일리엔을 애무하는 사이에 자신도 젖은 것 인지, 소녀도 한쪽 눈을 바르르 떨었다.


어느새인가 허리까지 움찔대며 흔들어댄다.


두 팔이 구속되어 움직일 수 없었던 일리엔은 전신으로 밀어닥치는 쾌감을 억지라도 부리는 것처럼 버틸 수 밖에 없었지만, 소녀는 바들대는 일리엔의 다리를 끌어안고 보지를 비볐다.


질척이는 음란한 소리와 두 소녀의 신음성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흐응, 흐응, 하아앙...!”

“흐으읏...!”


신음을 참지 못한 일리엔이 하복부를 바르르 떨었다.


“가, 가, 가요..! 나, 나아아...! 가버려어어...!”

“나, 나도..! 흐으응...”


질척이던 두 소녀들의 보지 사이에서 애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흐으윽...!!”


침대 위에 엎어지듯 쓰러져 일리엔과 얼굴을 마주한 소녀를 보며 일리엔이 웃었다.


“저기요.”

“.....”


아무렇지도 않게 밧줄에서 손을 빼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름이 뭐에요?”

“.....”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몸을 일으킨 일리엔은 희미하게 빛나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쓸어내렸다.


“난 일리엔이에요.”


고개를 홱 돌린 소녀가 중얼거렸다.


“... 터.”

“네?”

“린 싱 윈체스터.”

“예쁜 이름이네요.”

“그래서?”


일리엔은 부드럽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 벗겨졌던 옷을 입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다음에는 정식으로 집에 방문하도록 해요. 그 땐, 저랑 같이 방송을 해도 좋구. 밥을 해 줘도 좋구...”

“.....”

“친구라는게 그런거잖아요?”


그리고 린 싱 윈체스터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예쁘고 성실한 친구는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희미한 빛이 소녀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다음에 또 만나요?”


천사의 힘으로 기억이 지워진 소녀의 눈이 멍- 해진 순간 일리엔은 소녀가 그랬듯 쿡쿡! 하고 웃으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Day+14

무려 일주일 가까이 휴방을 한 일리엔은 뒷수습을 하느라 바빴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직접 만든 코스프레 옷을 입고 춤을 춘다거나, 상상도 못할 미션을 받는다거나 하는 등의 수단.


“아앙!! 진짜야! 진짜 친구랑 놀다 온거라니까요!? 내가 애인이 어디있어!”


씨이, 방종하고 쉬다 올거야!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과 투닥거리던 일리엔은 그렇게 말 하며 방송을 종료하고 샤워실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뜨거운 물로 느긋한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며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시던 일리엔이 방송실의 문에 손을 얹을 때 였다.


‘음?’


방문의 너머에서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쿡쿡!’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무방비한 걸음걸이로 방송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안녕?”


문과 벽 사이.


한 사람 정도나 어렵사리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틈 사이에 두터운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감은 소녀가 서 있었다.


“저기요.”


쿵!


일리엔이 소녀의 얼굴 옆으로 벽치기를 하며 웃었다.


“이름이 뭐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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