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s://arca.live/b/commission1/51213944?p=1


하얀 머리 소녀의 앞에는 두 개의 작은 컵(통)이 존재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녹차맛 젤라또. 각각 황금색과 초록색의 작은 컵에 담긴 차갑고도 달콤한 후식.


 


소녀의 푸른 물빛 같은 두 눈이 밝게 빛난다.


 


“흐음.....”


 


어느 것을 먼저 먹을까? 그것은 중대한 문제다. 사람의 위란 한계가 있는 법이고, 설령 넉넉한 여유 공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처음에 먹는 것과 나중에 먹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는가, 꼬리부터 먹는가.


 


케이크 위의 딸기를 먼저 먹는가, 나중에 먹는가.


 


탕수육을 부어 먹는가, 찍어 먹는가.


 


“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도 당사자한테는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하얀 머리의 소녀, 은설에게 아이스크림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은 삼시세끼를 먹고 살아가지요. 달리 말하자면 80년의 수명이라 했을 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의 횟수는 3x365x80 번이라는 거죠.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밥처럼 그렇게 자주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러니깐.... 음음....”


 


머리에서 김이 난다. 과부하 걸린 cpu 마냥 버벅이는 두뇌의 뉴련들. 한달에 아이스크림을 몇 번씩 먹더라? 10번? 너무 적나? 아니지. 3일에 하나 정도 먹어도 10번이잖아. 그래도 밥은 하루에 3끼씩 먹으니... 이럴수가! 1/9 이다. 더군다나 아이스크림은 80세에 먹지는....먹지는.... 먹지 않을까?


 


은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1000 x 10 = 10000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대략 1만 번 이라는 것이지요.”


 


1만 번.


 


유명한 일본 만화에서 나오는 ‘1만’ 번의 감사의 정권 찌르기.


 


‘1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한 분야에 전문인이 될 수 있다.


 


만세란 ‘만’ 자에 ‘세(歲)’를 합친 글자다.


 


만이란 그런 것이다.


 


차고 넘침에, 모자름이 없고, 완성으로 이뤄진다.


 


“아이스크림에는.... 진리가 있어요.”


 


어쨌든.


 


초코맛 아이스크림이냐, 녹차맛 젤라또냐.


 


은설은 답을 내렸다. 그녀의 수저가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간다. 전인미답의 얼음별에 도착한 수저는, 그 행성의 얄팍하고도 부드러운 고운 결을 파고들어, 퍼 올리기 시작한다.


 


한 덩이, 너무나 완벽한 형태로 퍼 올라진, 아름다운 모양새의 작은 보석.


 


조명 빛에 맑게 빛나는 그것은, 진주처럼 어두운 초코알이 콕콕 박혀있는, 진갈색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이었다.


 


“오랜 친구를 더 소중히 해야 하는 법이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서, 자칫 함부로 여길 수 있기에, 더욱 소중히 여기고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우정이란, 사랑이란 서로 주고 받는 것.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자기를 선택해준 은설에게 초코의 폭력이라 할 가공한 맛의 애정을 보여준다.


 


“흐음~~!!”


 


초콜릿은 묵직하다. 강렬하다. 혀가 찌르르 울릴 정도로 달콤하지만, 설탕과는 다르다. 초콜릿 간직한 고유의 향이 달콤함과 섞여들어 혀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녹아 내릴 듯 부드럽게 혀를 감싼다.


 


그에 반해, 아이스크림이란 이 얼마나 가벼운가? 마치 솜털과 같은 촉감. 그 이름조차, 부드럽기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라 불린다. 차갑지만 얼음처럼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지 않다. 체온에 닿는 순간 순식간에 녹아버려, 그 형체를 잃어버리고 마는 얼음결정 같이 가냘픈 존재.


 


묵직한 초콜릿, 가벼운 아이스크림. 이 정반대 속성을 지니 두 존재가 합쳐진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혀에 닿자마자 달콤하게 녹아내리면서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연극으로 따지자면 뮤지컬 오페라. 정신없이 춤을추고 노래를 부르며, 관객의 혼을 쏙 빼놓고는 그렇게 막이 내린다.


 


하지만 그 여운은 꽤나 오래 지속된다.


혀에 남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깔끔하고도 진한 풍미.


 


한 번 더 먹는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에 대단한 점은, 한 번 먹어도 맛있고 두 번 먹어도 맛있다는 것이다. 이 단맛에, 적응이란 없다. 매번 맛있을 수 있다니....


 


그러나 초코 아이스크림 쪽으로 2번 왕복한 수저는, 허공에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공중에서 정지한 수저가 항로를 바꾼 것은...


 


녹차맛 젤라또였다.


 


젤라또를 파고드는 감촉은, 아이스크림과 사뭇 달랐다. 끈끈하고 꾸덕꾸덕하여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기분. 산뜻하게 퍼지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다르다’는 것을 촉각으로부터 알 수 있다.


 


푹 퍼진 초록의 젤라또. 


 


은설은 기대감을 안고, 젤라또를 입에 넣었다.


 


“흐응~~~!”


 


절로 나오는 콧소리.


 


젤라또는 다른 의미로 묵직했다. 아이스크림이 사르륵 녹는다면, 젤라또는 그 형체를 단단하게 유지했다.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씹는 감촉이 존재하였다. 얼음도, 아이스크림도 아니다. 이 끝으로 느껴지는 쫀득쫀득한 감촉은, 같은 우유에서 나온 형제지간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치즈에 가까운 식감이다. 잇새로 파고드는, 깨무는 즐거움.


 


녹차의 맛은 또 어떠한가.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 본디 씁쓸했을 뿐인 녹차가, 가루로 된 말차로, 젤라또에 스며들자 향은 더욱 강해지고 쓴맛과 달콤함으로 더욱 풍부하게 변한다.


 


그것은 초콜릿과도 같은 방향성의, 쓰고 달면서 고유한 향을 지닌, 자웅을 겨룰 맛이란 평할 수 있다.


 


초코라떼, 녹차라떼, 


 


초콜릿, 녹차 초콜릿.


 


초코케이크, 녹차케이크.


 


초코쉐이크, 녹차 쉐이크.


 


초코가 할 수 있다면 녹차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녹차맛 젤라또 역시, 한 번 먹어도 맛있고 두 번 먹어도 맛있다는 것이다. 이 단맛에, 적응이란 없다. 매번 맛있을 수 있는게 초코 아이스크림 말고 더 있다니....


 


녹차맛 젤라또를 한 번 더 음미한다. 역시나, 맛있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


 


전통의 강호 초코릿 아이스크림?


 


동서양의 조화, 녹차맛 젤라또?


 


한번으로는 비교가 부족하다. 다시 한 번 먹어본다. 은설은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를 각각 한 번씩 더 입으로 넣었다.


 


초코릿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다. 녹차맛 젤라또도 마찬가지다.


 


한 번 더.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씁쓸하다. 녹차맛 젤라또도.


 


한 번 더.


 


아이스크림은 부드럽다. 그러나 젤라또는 쫄깃쫄깃하다. 서로 다른 걸 추구한다. 이것에 어찌 우열을 가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한 번 더...!


 


부드럽고 달콤하고 씁쓸하고 쫀뜩쫀득하고, 씁쓸하고 달콤하고, 차갑고.... 맛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맛있게 먹는 게 아니겠는가? 


 


분석하고, 평할 시간에, 은설은 아이스크림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즐길 뿐이다.


 


 


 


“잘 먹었습니다!”


@그뉵그뉵NO2 님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를 두고 고민하는 딸래미를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