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방랑의 끝에 돌아온 크래프트월드는 이전보다도 인적 없이 황량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아니, 크래프트월드는 그곳에서 태어난 것과 관계없이 모든 엘다들의 정신적인 고향이었다. 

 

 

 

 리슬레인은 크래프트월드 외곽의 광경을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았다. 오랫동안 항성계의 외곽에서 레인저 생활을 해왔고, 이제는 워프 스파이더로써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작전 사이의 공백 기간 동안 외곽을 순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아광속(亞光束)으로 운행 중인 거대함선, 크래프트월드의 바깥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은하계 속에서 항성들이 내뿜는 몇 가닥 빛줄기만이 보일 뿐이었다. 

 

 

 

 챙-

 

 희미한 금속음이었지만 초월적인 엘다의 청력은 그것이 단순한 소음이 아닌 전투로부터 발생한 소리인 것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리슬레인은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닫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뛰어나갔다.

 

 

 

 

 

 

 

 

 

 

 

 “으윽!”

 

 다이어 어벤저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외곽을 순찰하고 있던 그는 의문의 습격자에게 연신 밀리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엘다 한명 한명이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인한 전사들이었지만 습격자는 그런 엘다의 실력을 한참 웃돌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검격이 휘몰아칠 때마다 엘다 전사는 제대로 몸을 주체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물러날 데 없이 구석에 몰렸다. 

 

 “이, 이런...”

 

 습격자의 검날이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치려던 찰나, 공중에서 빛무리와 함께 다른 이의 신형이 나타났다.

 

 

 

 

 

 

 습격 현장이 보이자마자 리슬레인은 워프로 거리를 뛰어넘었다. 엘다들 중에서도 오직 워프 스파이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비기(秘技)였다.

 

 ‘큭...’

 

 소름끼치는 이마테리움의 공간을 넘어 다시 현실세계로 도착한 그는 습격자의 위에서 데스 스피너를 조준했다. 이미 백열하고 있던 총구에서 빛이 뿜어지는 것과 동시에 단분자 와이어들이 습격자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피할 틈도 없이 쏘아진 수십 개의 미세한 칼날들은 습격자의 몸을 난도질했다.

 

 

 “크아아악!”

 

 갑옷 채로 육체를 조각조각 썰어버린 와이어들은 희생자의 몸통을 완전히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장이라도 엘다 전사의 목을 치려던 습격자는 리슬레인의 치명적인 공격에 돌이킬 여지도 없이 몸이 무너져 내렸다.

 

 

 “크륵...”

 

 잘게 찢겨진 하체 위에 얼굴과 상체의 일부만이 남아 피거품을 물고 있는 습격자에게 리슬레인은 오른팔 아래에 튀어나온 칼날을 머리에 쑤셔 넣었다. 백색의 슈츠 위에 피가 튀기고 습격자는 단말마도 내뱉지 못하고 없이 목숨이 끊어졌다.

 

 “괜찮습니까, 타가레스?”

 

 “고맙습니다, 리슬레인. 하마터면 당할 뻔 했습니다.”

 

 리슬레인이 구한 엘다의 목소리에서는 희미한 안도감이 묻어나왔다. 리슬레인은 눈앞의 엘다에게서 별다른 부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습격자의 잔해를 뒤집었다. 

 

 

 “역시...”

 

 “드루카리군.”

 

 습격자의 정체를 깨달은 리슬레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드루카리, 다른 종족들에게 흔히 다크엘다라 불리는 이들은 원래 아엘다리로 지금의 엘다들과 뿌리가 같았으나, 엘다의 몰락 이후 서로 대극(對極)에 위치한 삶의 방식으로 이제는 다른 종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엘다 전사, 타가레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이런 침입이 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균열 이후 자신들은 그들과 협정을 맺은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전에 드루카리들의 수장과 대회의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협의 같은 건 신경 쓸 생각도 없다는 거겠지요.”

 

 그들이 삶을 연명하는 방식만큼이나 그들의 행태 또한 리슬레인에게는 역겹기 그지없었다. 이번에야 다행히 리슬레인이 습격자를 처리했지만 만약 엘다 전사가 패배했다면 몸은 죽고 영혼은 그들에게 빼앗겨 영겁의 세월 동안 죽어서도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을 것이었다. 

 

 “이번 일을 정식으로 항의해도...”

 

 “아마 일부의 일탈로 여기고 넘어갈 겁니다. 이런 일로 동맹이 흔들려서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으음...”

 

 침음성을 흘리던 타가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일로 동족들이 곤란해 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동행하겠습니다. 이 자와 함께 온 자가 있을지 모르니.”

 

 “감사합니다, 리슬레인.”

 

 이후 두 사람은 외곽 지역을 수색했지만 다른 침입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리슬레인은 습격에 대해 분대장에게 보고했지만 결국 이 사건은 별다른 조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으흐음... 죽었다고요, 그 사람이?”

 

 “네, 듣기로는 순찰하는 병사들한테 당했다고 합니다.”

 

 “기껏 크래프트월드로 가는 웹웨이를 알려줬더니 병신도 아니고 하핫...”

 

 여성의 조소에 담긴 모멸감에 보고를 하던 여성 또한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녀들이 있는 곳은 끝을 모를 만큼 까마득히 높은 건물의 중층이었다. 그 높이는 곧 이 도시에서 그녀들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곳은 코모라, 다크엘다들의 본거지였다. 

 

 

 

 크래프트월드의 습격을 지원했던 자가 바로 이 창백한 피부의 여인, 마에자레였다. 다크엘다 중 정예전사, 인큐비가 되기 위한 시련의 최종 관문은 다름 아닌 엘다의 전사와 1:1로 겨뤄 살해하는 것이다. 카오스가 창궐하며 종족의 명운이 걸린 지금도 그들은 시련을 치른답시고 동맹한테 습격을 행한 것이었다. 

 

 비록 습격은 실패했지만 그녀는 아직 일을 마무리 지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직접 지휘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관여된 일에 엘다 하나가 어깃장을 놓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에자레는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다크엘다라는 족속이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사악한 것은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 딱히 그녀가 별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 병신을 죽인 놈이 누구죠?”

 

 “타가레스라는 다이어 어벤저와 리슬레인이라는 워프 스파이더, 두 사람입니다.”

 

 “두 사람... 흠, 누가 죽였을 거 같나요?”

 

 이곳, 코모라와 크래프트월드와의 거리는 다른 차원에 있다고 해도 무방할 거리였지만 계략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크엘다답게 그녀는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다. 에리니엘은 마에자레에게 파악한 내용을 대답했다. 

 

 “타가레스는 평범한 수준의 전사입니다. 그에 비해 리슬레인은 워프 스파이더로 있기 이전에도 오랫동안 레인저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 전사를 죽일 수 있는 거겠죠. 인큐비도 되다만 것이라 해도요. 그래,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건 섭섭하니, 후훗...”

 

 은하 너머에 있는 한 엘다의 파멸을 꾀하는 그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맴돌다 사라졌다.

 

 

 

 

 

 

 

 

 

 

 

 

 

 

 

 

 아엘다리, 다른 종족으로부터 엘다라 불리는 이들은 크기가 대륙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함선 크래프트월드를 중심으로 은하계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전성기에 비하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아직도 극도로 발전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으며 상당수의 크래프트월드가 잔존해 우주를 떠돌고 있었다.

 그런 아엘다리 중 최전선에서 카오스의 군세와 대적하는 이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견(異見)의 여지없이 울쓰웨가 꼽힐 것이었다. 카디아 항성계 근방에서 울쓰웨는 때때로 인류와도 손을 잡으며 워프의 사악한 손길로부터 동족들을 지켜내고 있었다. 

 

 

 

 

 

 

 “으음...”

 

 리슬레인은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다크엘다의 습격이 허무하게 넘어가 버리자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아무리 카오스의 공세가 위협적일 지라도 저런 혐오스러운 것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크래프트월드를 이끄는 파시어와 아우터크의 지혜에 대해서 한 번도 의심을 해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회의감이 그 자신의 의무를 잊게 할 만큼은 아니었다.

 

 

 

 리슬레인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의구심을 속으로 삭이며 묵묵히 의무를 수행했다. 울쓰웨 크래프트월드 병력의 대부분이 외부로 나간 지금, 경계는 소수의 인원들만이 수행하고 있었고 경계병 하나하나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했기에 리슬레인은 허투루 자신의 일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으로부터 피어난 미혹은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에서 머물렀다.

 

 ‘지금이 전례 없는 험난한 위기라고는 하나 분명 우리 동족들이라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늙은 엘다가 보면 이상주의에 빠진 망상이라고 고개를 저었을 발상이었다. 하지만 리슬레인은 진심이었다. 천 년 이상을 살아온 고령의 엘다들에 비해 겨우 300년 가량을 살아온 이 젊은 엘다는 동족들이 제대로 힘을 합치면 모든 역경을 전부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후우...”

 

 마음속은 안개 낀 호수처럼 혼탁했지만 그는 혹여나 또다시 다크엘다들이 침입할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순찰했다. 하지만 그가 순찰하는 동안 다른 침입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교대 시간이 되어 후번(後番)에게 순찰을 인계한 리슬레인은 자신의 집으로 복귀했다. 

 

 

 

 

 

 

 

 

 

 

 

 

 

 

 

 

 

 “이라쉬, 이전의 그 엘다, 이곳까지 데려올 수 있겠어요?”

 

 마에자레의 말에 그녀의 호위 이라쉬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은 어렵겠군요. 단순히 죽이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코모라까지 그놈을 갖고 오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에리니엘은 당혹스러워했다.

 

 “갑자기요? 굳이 데려올 이유가 있나요?”

 

 “듣기로는 엘다를 착취하면 인간 같은 것들보다 훨씬 영혼이 더욱 풍족해지고 강인해진다고 해요. 군침이 돌지 않나요? 원한다면 에리니엘도 옆에 있게 해줄 테니까요.”

 

 드루카리가 착취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대상을 육체적, 영적으로 고문해 쥐어짜내는 것을 뜻했다. 다크엘다는 다른 존재들을 고문함으로써 나오는 에너지를 극한까지 발달한 기술을 통해 가공하여 그로부터 젊음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에리니엘은 엘다를 고문하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거야 솔깃한 일이지만요...”

 

 빈 말로도 거절은 안 하는 에리니엘을 보며 마에자레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쿠쿡, 솔직하기는... 이라쉬, 약에 취한 엘다라면요? 가능할까요?”

 

 그녀가 조건을 바꾸자 이라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크래프트월드에 있다한들 약물에 취해 헤롱대는 엘다 하나 데려오는 게 어려울 리가 있겠습니까.”

 

 “후후, 좋아요. 부탁할게요.”

 

 그 말에 이라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크래프트월드로 가야하는 이라쉬는 태연했지만 그 모습을 보던 에리니엘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마에자레님, 혹시 거기까지 갔다가 일이 틀어지면 상황이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분명 그 엘다, 워프 스파이더였을 텐데요...”

 

 순간적으로 단거리 워프를 통해 몇 번이고 공간을 뛰어넘으며 단분자 칼날을 쏘아대는 정예병 워프 스파이더는 엘다들뿐만 아니라 은하계 전체에서 공포스럽기로 명성이 자자했기에 그녀가 꺼려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리니엘의 우려에도 마에자레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여상한 표정이었다.

 

 “물론 워프 스파이더가 제 눈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면 물론 조심했을 거예요. 그 잽싼 워프 능력과 스피너는 성가시기 그지없으니... 하지만 까마득한 거리가 사이에 있는 이곳에 그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자신을 가지세요, 에리니엘. 그 기계가 작동한 이후로는 그 엘다는 이라쉬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요.”

 

 마에자레가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자 에리니엘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극악한 것이기에 그렇게 믿고 계시는 건가요?”

 

 자신이 투입할 것을 생각하던 마에자레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는 듯 쿡쿡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자아, 들어보세요. 여기 미세한 기계가 있어요. 스스로 공중을 비행할 수 있지만 작은 벌레보다도 은밀하고 느리죠. 이 기계에 들은 것은 단지 몇 방울의 약물뿐. 대상을 향해 약물을 주입하는 것을 마치면 기계는 스스로 자신을 분해해 먼지가 되어 사라져요. 거기에다 노려진 대상은 미세한 통각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약물을 주입하는 주사기 또한 예리해요. 눈 뜨고 당해도 아무런 것도 못 느낄 만큼.”

 

 에리니엘이 뚫어져라 손바닥을 보자 그 위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무언가가 천천히 공중을 유영(遊泳)하고 있었다.

 

 “이걸로 그 엘다를?”

 

 에리니엘의 물음에 마에자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밀함을 위한 느린 비행속도 때문에 실전 투입은 불가능하지만 이런 일에는 제격이죠. 이 기계도 쓸 만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들은 약물이에요. 한 번 맞으면 자연스레 잠들고 그 후로 3일은 못 깨어나게 만드는 수면제에요.”

 

 설명을 듣고 있던 이라쉬가 말을 덧붙였다.

 

 “처음에는 바로 약효가 퍼지지 않아 비틀거릴 텐데 그 정도만 되도 데려오는 데는 문제가 없다. 웹웨이를 통해 이동할 때는 이미 깊게 잠든 후겠지. 별 거 아닌 일이다.”

 

 이라쉬의 말을 들은 후에야 에리니엘은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워프 스파이더라고 해도 이라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투기장에서 이라쉬는 홀몸으로 포획된 타이라니드 레이브너 알파 개체를 도륙낸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리니엘은 레이브너가 휘두르는 4개의 칼날들을 거대한 검 하나만으로 받아내며 거체(巨體)를 찢어발기던 모습을 떠올렸다. 사실 이런 전술적인 식견은 에리니엘보다도 마에자레가 훨씬 더 뛰어났다. 당연히 마에자레는 충성스러운 자신의 수하를 헛되이 쓸 이유가 없었다.

 

 “갔다 오지요.”

 

 “네, 이라쉬.”

 

 마에자레는 떠나는 이라쉬와 일별(一別)했다.

 

 

 

 

 

 

 

 

 

 

 

 

 

 

 이라쉬는 마에자레가 알려준 웹웨이를 통해 크래프트월드로 잠입했다. 크기가 대륙급에 달할 만큼 거대한 크래프트월드였지만 웹웨이 게이트를 통해 갈 수 있는 곳은 일정했고 그곳은 곧 리슬레인과 교전을 했던 다크엘다가 이용한 웹웨이 게이트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와 지켜보세요. 아슈라니들의 인력이 부족할 때이니 지금 순찰경로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 생각에는 엘다들이 순찰경로를 바꿨을 거 같지는 않네요.’

 

 마에자레의 조언대로 웹웨이에서 나와 꼬박 하루 동안 제자리에서 잠복해있던 이라쉬는 워프 스파이더 복장을 한 엘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자가 리슬레인인가.’

 

 수면제가 들어있는 기계를 조작하며 이라쉬는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취향은 눈앞의 적을 조각조각 썰어버리는 것이었지 이렇게 잔수작을 부리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엘다들의 본거지에서 워프 스파이더와 정면에서 맞붙는 게 자살행위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중을 기약하는 수 밖에.”

 

 손바닥 위를 떠난 기계가 리슬레인에게 향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라쉬는 은밀하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며칠 후, 마에자레의 집무실로 바디슈트를 입은 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의 어깨 위에는 워프 스파이더 복장을 한 엘다가 축 늘어진 채 올려져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리슬레인이었다. 체구는 오히려 이라쉬가 작았지만 자신보다 덩치가 큰데다 무장까지 한 남자를 짊어지고도 그녀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마에자레님.”

 

 마에자레의 호위병, 이라쉬가 다가오자 마에자레는 그녀에게 물었다.

 

 “일은 은밀히 처리했나요?”

 

 “문제없었습니다.”

 

 이라쉬의 장기가 잠입은 아니었지만 다크엘다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은밀해질 수 있는 종족이었다. 마에자레는 이라쉬의 말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놈이 덜떨어진 놈이었군요. 수고했어요, 이라쉬. 흠, 그 자가?”

 

 마에자레의 물음에 이라쉬가 수긍했다.

 

 “예, 리슬레인이라는 워프 스파이더가 맞습니다. 정면에서 붙었다면 만만치 않았겠지만 약을 맞으니 저항도 못 하더군요.”

 

 이라쉬가 리슬레인을 들고 오자 에리니엘이 재빠르게 탁자를 치웠다. 이라쉬는 그 위에 리슬레인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세 여자는 탁자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워프 스파이더 특유의 하얀 투구는 없었기에 그의 맨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갖고 온 보람이 있었네요!”

 

 걱정할 때는 언제고 에리니엘은 리슬레인을 보고 잔뜩 들떠 있었다. 고위층인 마에자레, 강인한 전사인 이라쉬에 비해 에리니엘은 신체 개조나 약물이 주특기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육신을 찢고 쪼개며 직접 주물러 오던 그녀가 보기에도 리슬레인은 감탄할 만한 먹잇감이었다.

 

 “제가 갖다 놀까요?”

 

 에리니엘이 낑낑거리며 그의 몸을 들어 올리자 마에자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도 첫 시식은 제 꺼니 먼저 먹으면 안 돼요?”

 

 “네, 헤헤... 끙...”

 

 에리니엘이 엘다 하나를 붙잡고 애쓰는 모습에 이라쉬는 보다 못해 나섰다. 

 

 “가는 데만 한나절이겠군. 이리 줘라.”

 

 “앗, 고마워요 이라쉬!”

 

 엘다 포로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고문실로 향했다.

 

 

 

 

 

 

 

 

 

 

 

 

 

 

 처리해야 할 일을 끝내고 마에자레는 고문실로 향했다. 부하들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녀 또한 새로운 포로가 기대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문을 연 그녀는 철제 침대 위에 구속된 리슬레인을 발견했다. 에리니엘은 그 옆에서 기계를 조작하고 있었다.

 

 “에리니엘, 뭐하고 있었나요?”

 

 “아, 마에자레님. 역시 최대한 잘 빼먹으려면 그래도 세팅을 좀 해두는 게 낫거든요.”

 

 태연하게 말하는 에리니엘이었지만 방에 배어있는 자욱한 피냄새는 이곳에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 끝에 죽어나간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좀 더 하면, 됐다! 끝났네요.”

 

 그녀의 말에 마에자레는 리슬레인을 쳐다보았다. 침대 위에 구속되어있는 그는 아직 잠들어 있는 채였다. 그 모습을 불만스레 보던 이라쉬는 무심하게 리슬레인의 팔뚝에 침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침 안에서 수십 개의 바늘들이 튀어나오며 팔 안의 혈관들을 파고들었다.

 

 “윽, 끄으으으?!”

 

 잠들어 있던 리슬레인은 핏줄이 찢겨 불타오르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깨어났다.

 

 “흐응?”

 “하으으...”

 

 그가 고통 받으며 내뱉는 에너지에 마에자레는 감탄했다. 이미 짜낼 대로 짜낸 하찮은 인간 포로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는 에리니엘은 달아오른 얼굴로 다리를 비벼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라쉬가 다시 침을 빼내자 가운데의 침으로부터 솟아난 바늘들에 팔뚝의 피부가 뜯겨나갔다.

 

 “끄아아!!”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에 리슬레인은 다시 울부짖었다. 구속된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던 그는 핏발 선 눈으로 황급하게 주변을 보았다.

 

 “드루카리? 이 역겨운 것들이 왜, 커억!”

 

 말을 듣고 있던 이라쉬는 인상을 쓰며 리슬레인의 배를 짓밟았다. 폐가 짓눌리는 감각에 그는 컥컥거리며 거칠게 기침했다. 이라쉬는 팔뚝의 살점이 붙어있는 침을 그의 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네 앞에 있는 자들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나 보군.”

 

 리슬레인은 이곳이 크래프트월드가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안다고 그가 눈치를 보는 일은 없었다. 안 그래도 혐오스러운 것들이 눈앞에 3명이나 있자 리슬레인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기분이었다.

 

 “네깟 것들에게 빌기라도 하라는 것이냐? 생명과 고통을 갈취하며 연명하는 기생충 같은 년들아!”

 

 “이 새끼가...”

 

 붙잡아온 포로놈이 지껄이는 말에 격분한 이라쉬가 나서려는 찰나, 마에자레가 나섰다. 리슬레인은 자신의 앞에 누가 왔든 불타오르는 듯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지금 상황을 잘 이해를 못 하는 거 같은데...”

 

 “내 상황이라면 넘치게 이해하고 있다, 벌레 같은 것들아!”

 

 “후후... 이곳에서는 결코 자신의 영혼이 빠져나갈 수 없는 걸 모르는 건가요?”

 

 마에자레가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자 리슬레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영혼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영혼이 모두 카오스의 슬라네쉬에게 저당 잡혀 있는 엘다들은 영혼석이 없으면 죽어서도 결코 구원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리슬레인의 눈빛은 아직 죽지 않은 채였다.

 

 “이미 워프 스파이더가 될 때부터 내 영혼을 걸었다. 겨우 영혼석으로 날 협박하기라도 할 셈이었나?”

 

 워프를 할 때마다 카오스의 악마들이 머무르는 공간을 영혼을 걸고 지나가야 하는 워프 스파이더다운 기개였다. 마에자레는 그에게 감탄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아, 물론 아니죠. 이 정도일 리가요. 우후후...”

 

 마에자레는 옆에 있는 병을 열더니 바닥에 흩뿌렸다. 

 

 “앗, 마에자레님! 그걸 원액 채로 뿌리면...”

 

 에리니엘이 다급히 다가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위에 자신의 구두를 문지르더니 구두 채로 리슬레인의 사타구니를 밟았다.

 

 “끅?!”

 

 구두가 스치며 그의 속옷이 벗겨졌지만 리슬레인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치솟는 끔찍한 감각에 몸부림쳤다.

 

 “으아아악!!”

 

 그녀의 구두에 묻은 끈적이는 액체가 리슬레인의 기둥에 닿자 푸른 핏줄이 툭툭 튀어나오며 그의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발기했다.

 

 “오, 생각보다 격렬한 반응.”

 

 “아, 아깝게... 생생한 엘다 포로를 벌써 고장내려고 그러세요?”

 

 에리니엘은 안절부절 못하고 리슬레인과 땅바닥에 뿌려진 액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에자레가 리슬레인의 성기에 묻힌 것은 극약에 가까운 미약(媚藥)이었다. 희미하게 희석해서 써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물건을 원액 채로 뿌려버리자 그가 발작한 것이었다.

 

 한계를 넘어선 쾌감은 고통이나 마찬가지였다. 리슬레인은 자신의 다리 사이를 중심으로 혈관들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이를 악물었다. 

 

 

 으드득!

 

 어금니에서 시리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의 하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하면 하찮을 뿐이었다. 리슬레인은 당장이라도 미칠 것 같은 고통에 기괴하게 몸을 비틀고 있었지만 정작 그를 보던 세 여자는 감탄했다.

 

 “꽤... 잘 버티네요? 으읏...”

 

 에리니엘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을 잘 견디는 리슬레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그가 진득하게 내뿜은 고통의 에너지에 에리니엘은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다리 사이가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비부만을 겨우 가리는 속옷에서는 끈적한 애액이 밖으로 새어나오며 그녀의 허벅지를 적셨다.

 

 “흐응...”

 

 이라쉬 또한 재밌는 장난감이 들어왔다는 듯 이전과 달리 흥미 섞인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미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에리니엘은 마에자레를 보챘다.

 

 “마에자레님, 빨리... 아읏, 저, 저 죽을 거 같아요...”

 

 마에자레는 에리니엘한테서 나는 암컷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에리니엘, 좀 부끄러우니까 자제하면 안 될까요?”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흐웃!”

 

 에리니엘이 당장이라도 덮칠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마에자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고 있던 속옷을 벗었다. 사실 그녀의 비부도 젖어버린 지 오래였다. 습기 찬 속옷을 대충 집어던진 마에자레는 리슬레인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윽, 이, 역겨운 창녀들이...!”

 

 “후후... 기대되지 않나요? 약만 발라도 이런데 제 뱃속까지 들어오면 어떤 기분일지?”

 

 마에자레가 허리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비부를 그의 자지 위에 올려놓는 모습은 리슬레인에게 마치 지옥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통으로 창자가 뒤틀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이들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해봐라, 그으...!”

 

 리슬레인이 입을 떼는 것과 동시에 마에자레의 비부가 그의 자지를 물었다. 










예전에 커미션 받아서 작업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중단했던 커미션 내용입니다. 


푹찍푹찍이 당연한 세계관에서 19금 커미션을 쓰다보니 쪼끔 어색한 느낌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