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떠오르는 대로 감상 넣은 것들. | 인문소설 느낌 짧은 샘플, 2900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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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얀 돌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꾸까는 경쾌한 리듬으로 발걸음을 딛는다. 부드러운 파랑과 부드러운 하양... 모네의 그림 같은 하늘이네, 하고 생각하면서. 하늘은 아직 환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거리에는 벌써부터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고, 부티크나 음식점 따위의 쇼윈도에서도 희붐한 빛이 흘러 나오고 있다.  

마치 어둠을 어떻게든 내쫓아 보려는 것처럼. 무언가를 두려워 하는 걸까? 하고, 무심코 생각했다. 

처음 들린 집의 할머니는 하얀 테이블클로스가 덮인 테이블에 한 손─손질하고 관리하는 것 같지만 울퉁불퉁해서, 젊었을 적보다는 조금 검붉어졌을 피부와 갈라진 손톱─을 올려 놓고 반지를 빙글, 빙글 돌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꾸까가 찾아 올 것을 쉬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걸까? 마을에서도 변두리지만 녹음이 많고 조용한 곳에 있는 집. 신발을 벗으려 하자, 구두 앞코에 이파리가 연약하게 하나 붙어 있는 것을 보고서 꾸까는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현관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떼어낸 다음, 들어서자 다정한 음식 냄새가 코 끝을 가득 멤돌았다. 


“오야, 편히 앉으렴아고, 이젠 혼저 사는 늙은 할멈이라... 손님맞이가 오랜만이여. 오는 길에 봤겠지만 밤만 되믄 장사도 문 닫아놨지, 얼른 투드려서는 깨서 사갖고 와서... 참, 저녁 먹었남?” 


도리도리! 부정의 의미로 꾸까가 고개를 젓고 나서 착석하자, 기꺼이 음식이 나온다. 크로켓과 토마토 샐러드, 소고기 스튜와 빵. 손님이라면 귀찮지 않나, 싶은데. 할머니는 오히려 명랑하게까지 보일 만큼 오랜만의 손님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여기도, 저기도, 온통 우드 위주의 앤틱.  아름다운 카펫과 그림들, 낮게 흐르다가 곧 슈만으로 바뀔 예정의 축음기의 브람스, 리놀륨 바닥.  


“예전에는 고생 숱허게 하고 살았는디 말여. 지끔스야 살기 괜찮지만은, 인저 늙어서 뭣한디야~. 이렇게 찾아오는 새럼이라도 있으믄 좋지. 어려운 자식도 없응께, 곱게 늙은 편이기야 하겠지만은...” 

 


2) 

 

람들이 우산 속으로 숨을 때마다 비가 내렸다. 물방울들은 밟힐 때마다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주장하겠지만, 지나가는 행인들 중 그 누구도 관심을 줄 리가 만무하다. 바람이 뒤집어 놓은 우산은 줄곧 그 장소에서 제 주인만을 기다릴 텐데. 멀거니 남의 일인 것처럼 비를 맞으며, 꾸까는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우산 손잡이를 쥐었다.  

뱅글, 

뱅글. 

우산 손잡이를 돌리니까, 잔뜩 돌아가며 흔들리는 풍경에 물방울들이 어지러움을 견디다 못해 떠나갈 즈음, 어느새 비가 사람들의 등 뒤로 낡은 판화처럼 수직 무늬를 온 세상에 박아 넣는다. 꾸까는 허리를 숙여, 가만히 고인 물을 바라본다. 수면 위로 작년 여름에 익사했다던 어떤 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마르지 않는 얼굴을 잊고 싶지 않아서, 꾸까는 가만히 생각했다. 파래진 입술에선 어떤 언어가 떠돌고 있을까, 하고. 그러다가 장화 속에 숨어 있던 물방울이 젖은 양말을 데려간다. 축축한 것들은 버려져야 비로소 말라 갈 수 있는 운명인 걸까? 

그치만, 쉿! 꾸까는 우기에 아직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떠다니는 기억은 딱히 모으지 않아도 빗물처럼 고이게 되어 있고, 그러다가 증발하는 게 순리니까. 아이의 울음처럼, 더는 따라갈 수 없는 곳으로. 만약 떠오르는 기포에 붙어 간다면 수면 위로 도망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래서는 소중한 기억들이 무거운 공기처럼 온 몸에 달라붙었다가, 깨져서 투명하게 흩어져 버리고 말 테니까. 대신 꾸까에게는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이 있으니까, 괜찮다. 구태여 슬프다고 말로 표현하면서 울어 젖히지 않아도, 빗물이 고이는 곳은 항상 꾸까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해구가 있다. 

 


3) 

 

까는 아직도 조금 축축하게 느껴지는 우울의 심지를 억지로라도 효수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종종걸음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어둑어둑한 통로 양쪽에 색깔도, 소재도, 제각각인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나는 노란색으로 얼기설기 페인트 칠된 나무 문, 하나는 무미건조한 회색의 도어락이 달린 철문처럼. 복도를 나와, 녹슨 우편함과 종이 쓰레기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건물 앞을 빠져나온다.  

그러다가 버림받는 것에 익숙한 나뭇잎들이 연약하고 초라한 발목을 끊으며 꾸까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지는 공원 길을 지나, 초침이 부러졌던 시계를 빤히 쳐다보던 그 날의 유령처럼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 세상 어디로도 돌아갈 장소가 없는 추방자처럼, 혹은 지느러미도 없던 주제에 미련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절벽에서 떨어진 치어처럼. 좁은 길목 중앙으로 좁은 문이 있었다. 퇴화를 기다리다 외로움에 벌벌 떨던 언어들이 뭉쳐져 생긴 문일까? 음, 글쎄. 그 앞에 가만히 홀로 선 꾸까의 모습은 가장 높은 측광량으로 인화되는 콘트라스트. 마치 오래 생각하고 그린 흑백 만화나 영화의 마지막 컷 같다. 울컥 토한 은빛 사리가 벽돌 보도 블럭 위에 마지막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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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