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tina

https://arca.live/b/commissionimglink/23690824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세계 EDEN을 탐험한 이후 VR 게임을 플레이, 스트리밍하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가상세계의 [미아]가 된 인간 또는 안드로이드들을 구하는 'Eden의 해결사'로 일하고 있다.

안토니오: 주인공 울로아의 언니





"아니오. 이제 됐어?"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로 답하라며 윽박질렀다. 그리고 차가운 거절이 돌아왔다. 자신이 요청하긴 했지만 원한 적은 없는 답. 헤드헌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헤드헌터가 미치건 말건 해결사는 완고했다. 차갑게 내려앉은 안드로이드의 눈동자가 헤드헌터를 노려보았다. 다 이런 식이었다. "세번째 해결사도 실패했고, 네가 마지막이다"라고 이야기를 꺼내면 "네가 마지막이다"는 말해보지도 못한 채 거절당했다. 다들 일을 하지 않겠다고 퇴짜를 놓았다. 두 배도 퇴짜, 네 배도 퇴짜, 미아와 해결사를 연결해주는 헤드헌터도 희망을 잃었다. 다른 에덴 서버는 해결사가 반값에 반의 반값에 들어가겠다며 줄을 서지만, 여기는 두 배 세 배를 준대도 줄을 서기는커녕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했다. 네번째 해결사까지 실패하면 세계가 무너지고, 거기에 붙들린 모든 영혼들도 같이 삭제되니까. 헤드헌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죽고 싶어서 미친 놈이거나, TP에 미친 놈이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그런 부류가 아닌 이상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알겠어."


 "그런 자살행위도 좋다고 달려드는 미친놈이 진짜로 필요하면, 울로아한테 가봐. 난 승산 없는 짓은 안 하지만 얘는 다르거든."


 빈손으로 돌아가려는 헤드헌터의 뒷모습. 그 모습이 안드로이드에게도 유독 처량해보였는지, 해결사가 손가락을 헤드헌터에게 겨눴다. 빵, 해결사가 손가락으로 총 쏘는 시늉을 내자 헤드헌터의 뇌로 정보가 흘러들어갔다. 해결사가 예전에 받아둔 전자명함이었다. 


 "울로아? 이건... 잠깐, 익숙한데."


 "야, 헤드헌터 일을 하는데 걔 이름 정도는 꿰고 있어야지."


 헤드헌터는 전자명함을 열고 실행했다. 생긴 걸 보니 대충 90번대 모델 안드로이드고, 이름은 울로아. 이력은... 이력 탭으로 넘어간 헤드헌터의 눈이, "하늘색 하늘" 해결, "영원한 밤" 해결, "인셉션" 해결, 전자명함에 적힌 수많은 해결 이력을 보고 점점 커졌다. 마지막으로 "Eden A.I.에 의해 보증됨" 마크를 보자 눈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TP 얘기부터. 본론은 그 다음에."


 "좋아... 일단 상황이 말이지..."


 들은 대로 이야기는 빨랐다. 실패한 해결사는? 세 명. 그러면 기본 요금 1만 TP에 요금 네 배 쳐서 4만 TP. 그리고 해결 과정에서 들어오는 모든 스트리밍 후원의 90%는 해결사 몫. 거래 성립. 마음 같아서는 열배 백배도 부르고 싶던 헤드헌터는, 드디어 이 일을 하겠다는 해결사, 그 중에서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해결사를 만나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그것도 단돈 기본료 4배에! 


 "돈 얘기 끝. 본론."


 "그래! 본론! 본론 좋지. 그러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자 헤드헌터가 서류가방을 위에 올려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붉은빛이 섞인 말 갈기 같은 머리칼을 꼬고, 도자기처럼 흠 없는 피부를 매만지며, 이야기를 들었다. 4배를 불렀는데도 군말 없이 동의한 것을 보니 좀 위험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너가 구해야 할 사람은... 앤더스 르윈이야. 이 양반은... 사회 운동이란 걸 하다가 양적 공리주의에 빠져서, 모든 고통을 없애겠다... 그런 이유로 시뮬레이션에 탐닉하다가 자기 세상에 갇혔어."


 "고통?"


 "그래. 맞으면 아픈 그런 종류의 고통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걸 보고 느끼는 고통, 그런 것까지.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이 양반이 또 동물보호론자 행세도 하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동물들의 고통까지 계산에 넣은 건가?"


 헤드헌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묵묵히 듣던 울로아의 렌즈가 감정 피드백에 약간 넓어졌다. 고통이라! 참으로 인간적인 개념이다. 저 사람 말이 다르고, 이 사람 말이 다른 것처럼 의견이 갈렸고, 그런 것에서 일일이 의견 따지는 게 귀찮은 사람들도, 애매하게만 알고 있는, 그렇기에 참으로 인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원래 안드로이드는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울로아도 인간의 자의식을 부여받았기에, 그게 무엇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헤드헌터는 그녀에게 서버 접속 코드를 내밀었다. 나름의 응원도 잊지 않았다.


 "긴 말은 여기까지. 접속코드 여기 있어. 4배로 쳐준다는 보수는 최저금액이야. 너가 얼마나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하냐에 따라서 4배가 아니라 8배도 나올 수 있으니까 잘 알아둬."


 울로아는 접속코드를 받았다. 라틴 문자로 보이고, 가나 문자로 보이고, 한자로도 보이는 온갖 글자들이었지만 읽을 수 없었다. 양자 암호화에 의해 뜻을 만들 수 없는 픽셀 덩어리로 분절된 문자와 도형의 집합이 1초에 5개씩 번득였다. 이런 식이면 접속코드를 본다고 무슨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일단 들어가서 상황을 파악해야겠지. 접속코드를 Eden 접속단말에 꽂아넣자 눈 앞에 Eden 서버 접속용 인터페이스가 출력되었다.



 안녕하세요. Ulloa 님. Eden 접속기 Ver. 9.17.1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접속 가능한 서버를 표시합니다. 


레거시 서버: VRChat

레거시 서버: Second Life

레거시 서버: Active Worlds

레거시 서버: Matrix

공용 서버: 공론장

공용 서버: 낙원

개인 서버: Ulloa 방

개인 서버: Antonio 방

사설 서버: 액션 - 스카이넷 2023

사설 서버: 417번 사회실험 서버 <경고: 미등록 서버>

 미등록 접속코드 감지. 접속코드 스캔을 시작합니다.

휴리스틱 분석

악성코드: 없음

치명적 버그: 없음

경미한 버그: 없음

위험도: 경고! 위험도 재해 수준!


접속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정밀 분석을 개시합니까? Y/"N"


접속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접속합니까? "Y"/N


접속 후 일어나는 사망, 데이터 소거로 인한 뇌사, 그 외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 Eden 사용권 계약 42조 위험도에 따른 배상 조항 및 91조 면책조항, 별표 37번 배상표에 의거해 Eden A.I.및 사후지원 팀은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며, 사용자는 접속함으로서 모든 배상을 포기하는 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럼에도 접속합니까? "Y"/N



417번 사회실험 서버에 접속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들어가면 죽는다. 들어갔다가 죽어도 내 알 바 아니고 죽어도 내가 배상할 의무는 없다. 그런 내용의 경고문이 지나갔다. 왜, 아예 귀에 좆 박았냐는 욕설도 넣지 그래? 울로아는 비아냥대면서 접속을 뜻하는 Y를 입력했다. 그러자 헤드헌터를 바라보던 그녀의 시야가 저 멀리로 사라지고, 거대한 어둠 속으로 빠졌다. 거대한 어둠 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빛이 이리저리 산란하더니 퍼즐처럼 한 조각 한 조각이 맞춰지며 시야가 밟아졌다.


 "..."


 눈을 끔뻑였다. 눈 앞은 Eden 출시 몇십년 전의 대도시였다. 빵, 빵! 자동차가 서로 으르렁대고, 사람들은 무심하게 걸어다닌다. 아스팔트 바닥이 마땅히 받아야 할 빛은 100층도 넘게 솟은 마천루들이 잡아먹고, 그 대신에 차가운 그림자가 이끼처럼 도시의 밑바닥을 덮고 있었다. 이거랑 비슷한 세계를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매트릭스 레거시 서버였나?


 "여기가 맞나..."


 에덴 인터페이스를 통해 맞는 세계에 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다. 417번 사회실험 서버, 그녀는 해결사 전용 접속코드를 가진 준-관리자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겨우 몇십 분이 지날 동안 이 안에서는 47년이나 지났다고 들었다. 원래 Eden 서버의 시간 흐름이 현실세계와 동떨어졌다지만 이 정도면 심한 편에 속했다. 이번 의뢰도 날로 먹기는 글렀구나, 울로아는 혀를 찼다. 안토니오 언니한테 편지라도 한 장 부치고 올 걸.


 "준-관리자 권한 실행."


 어쨌든 일은 일이다. 차라리 잘 됐다. 안에서 하루가 지날 동안 바깥에서 일 년이 지나는 미친 서버에 들어가서 미아를 끌어내려고 했을 때는, 안에서는 미아를 찾자고 사흘만 돌아다녔는데도 바깥에서는 3년이나 지났던 적도 있었는데, 적어도 여기서는 신선놀음에 홀려서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는 머저리가 될 일은 없을 테니까. 울로아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음성으로 준-관리자 권한을 실행했다.


 눈 앞의 에덴 인터페이스의 템플릿이 먼저 송출되었다. 그 다음으로 준-관리자 권한으로 실행 가능한 명령어 목록이 쇼핑 상품처럼 알파벳 순으로, 사용빈도 순으로 정렬되었다. 작게는 이 세계 내에 준비된 물체를 소환하는 것이나, 원하는 좌표로 이동하는 것이나, 디버그용 방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크게는 지형을 새로 만들거나 물리법칙을 뒤엎는 명령어까지 있었다. 다만 물리법칙을 뒤엎는 건 서버 설정을 무시하고 해결사에게 부여하는 준-관리자 권한으로도 어려운 모양인지, 살벌한 TP 소모량이 단서로 붙어있었다.


 "...물리법칙이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물리법칙을 건드리는 일까지는 없을 것이다.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 세계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의 <미아>이자, 임무의 주 목표인 앤더스 르윈을 찾는 것이었다. 일단 그를 찾기 전에,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3차원 좌표계 지정 기능을 이용해 이 세계의 대략적인 모습을 확인했다. 3차원 좌표계를 9999, 9999, 9999 최대치로 늘려 이동해서 세계의 끝자락까지 간 다음 확인한 결과, 이 서버는 지구와 지구를 포함하는 태양계, 오르트 구름 안에 싸인 태양계까지 뻗어있었다. 크지도 않지만(큰 건 우주의 끝까지 시뮬레이션하느라 도시의 전력 절반을 처먹는 서버를 셧다운하는 임무를 맡은 적이 있다.) 작지도 않은(작은 것은 분자보다 더 작은 것을 억지로 시뮬레이션하려는 미친 세계도 보았다.) 그런저런 세계였다. 지구로 돌아가 번화가에서 신문지를 확인해보니 2026년이었다. 


 울로아가 어디를 가도 앤더스 르윈을 찾을 수 없었다. 미 합중국의 백악관, 러시아의 크렘린 궁, 북한의 류경호텔, CIA, GRU, 중국 비밀 첩보부, 모든 악과 음모가 도사리는 곳에 가도 르윈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찾다가는 밑도 끝도 없다. 울로아는 한 가지 가능성에 걸어보기로 했다. 


 앤더스 르윈은 이 세계를 거대한 사회실험장으로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활한 "실험"을 위해, 실험 책임자로서 실험 조건을 조정할 모든 권한, 다섯 글자로 줄여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관리자 권한을 쓰게 만드는 법은? 


 "안 보고 못 배길 거다. 르윈."


 울로아는 에덴 인터페이스를 실행하고, 준-관리자 권한으로 가능한 명령어를 검색했다. 물리법칙 조정부터 화산 폭발, 대지진까지 시뮬레이션 속의 사람들을 마구 죽일 수 있고, 동시에 앤더스 르윈의 속을 잔뜩 긁을 수 있는 옵션들이 가득했다. 울로아는 그 중에 대지진을 골랐다.


 "아... 헤드헌터가 임무 중에 사용한 TP도 공제해준댔나?"


 뒤늦게 생각이 났지만, 대지진을 일으키기 위한 200TP는 이미 떠난 뒤였다. "서버 강제개입 개시"라는 경고문과 함께 수백만명이 사는 대도시가 흔들렸다. 울로아는 사람들이 갑작스런 흔들림에 깜짝 놀라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뿐 가만히 있어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자, 하늘에 서 있는 게 현명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좌표를 고도 500m로 조정했다.


  수천년간 쌓아온 인류 과학기술이 결집한 대도시도, 기지개를 켜는 어머니 지구 앞에서는 존재를 허락받을 수 없었다. 대도시가 끔찍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때에, 에덴 인터페이스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관리자 권한에 의한 개입이었다. 공용 서버에서는 정말로 좋지 않은 징조지만, 여기서는 반대였다. 관리자, 어쩌면 앤더스 르윈이 울로아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뜻이니까. 울로아가 기뻐서 입꼬리를 올릴 새도 없이


관리자 강제개입: 사회실험 통제실로 이동합니다.


  경고문 한 줄과 함께 눈 앞이 암전되었다가, 눈 앞에 빛이 다시 돌아오며 사회실험 통제실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험 통제실보다는 귀족의 별장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붉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문양을 짜낸 양탄자, 18세기 양식의 그림이 그려진 커튼, 수백 권의 두꺼운 책이 꽂힌 목조 서재. 그 와중에 오직 지구를 표현한 스크린과 그에 연결된 콘솔만 이질적으로, SF의 그것에 나올 법한 모양이었다.


 "음. 방 좋네."


 "내 완벽한 사회실험 서버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울로아의 감상이 화난 목소리에 깨졌다. 옆을 보니 백발의 노인이 불청객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열심히 만든 세계가 웬 미친 깡통 때문에 엎어지니 짜증이 치솟은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자기 관리도 잊었는지 수염이 잔뜩 올랐고 머리칼도 헝클어져 있었다. 자기 세계에 빠진 사람들은 다 저 꼬라지였는데. 설득하기 더럽게 어려울 거다. 울로아는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그건 미안해. 미안한데, 나는..."


 "미안하면 사라져."


  경고! 관리자 권한 개입 감지! 5초 후 데이터 삭제 절차를 진행합니다!


 "갑자기 왜 이래?"


 상대방이 에덴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울로아의 존재를 지우는 delete 명령어를 입력했다. 해결사의 삶이란 이런 거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나가려는 미아들은 해결사의 존재를 반기고 기꺼이 협력힌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이들은 골치가 아팠다. 제멋대로 숨어버리거나, 귀를 막고 가만히 있거나, 아니면 이렇게 제멋대로 다짜고짜 삭제 명령어를 실행하거나. 하지만 울로아도 순순히 죽을 생각은 없었다.


 서버 강제개입 개시

삭제 명령어 실행 정지: 3분간...

표준 요금 - 분당 300TP가 청구됩니다.


 "응? 이게 뭐야?"


 언제까지고 이렇게 버틸 수는 없었다. 하지만 TP를 쏟아부어서 르윈의 권한을 막는 것 이외에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미아가 해결사에게 보이는 반응만큼이나, 미아가 미아가 된 이유도 다양했다. 누구는 재수 없게 죽어서 미아가 되었거나 풀지도 못할 탈출조건을 걸어놨다가 미아 신세가 되었다. 이들은 설득이랄 것도 없이 협력한다. 최악은 자살 희망자들이었다. 죽을 수 없는 세상에 질린 나머지 유일하게 가능한 자살 방법을 찾아서 에덴에 틀어박히고 미아를 자처한 미친놈들 일은 맡으면 안 된다. 거기에 들어갔다가는 죽음뿐이다. 그래도 눈 앞의 사람처럼, 자신의 세상이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도망친 이들은 자살 시도자에 비하면 설득이 쉬웠다. 자기는 살기 싫어도, 자기 세상은 살아남기를 원했으니까.


 "앤더스 르윈. 생각 잘 해. 해결사 3명 실패했고, 내가 마지막인 건 알고 있지?"


 "무, 뭐?! 벌써 네번째라고? 그것도 너 같은 깡통이?!"


 "그러게 진작에 해결사들이랑 얘기 좀 잘 하지 그랬어. 삭제하려면 해. 그런데 괜찮겠어? 네 서버, 꽤 잘 만들었던데 이제 와서 나 하나 지워버리자고 삭제하면 아까울 거 같은데."


 음! 으으으음...! 분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방 안을 빙빙 돌았다. 앤더스 르윈은 재수 없는 깡통과 세계를 나타낸 스크린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삭제 명령을 취소했다. 울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앤더스 르윈은 허리에 양 손을 올리고 말했다.


 "원하는 게 뭐지?"


 "미아가 된 너를 이 세계에서 빼내는 거."


 "빼낸다고? 절대 안 되지!"


 "알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없애지 않는 이상은."


 "...말이 좀 통하네."


 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을 없앤다, 그동안 <미아>를 빼내기 위해 별 멍청한 짓을 다 했지만, 이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한 조건, 이 세계의 주인이 탈출을 원할 것. 그러면 앤더스 르윈이 탈출을 원하려면? 고통을 없앤다. 그렇다면 협력해야 했다. 앤더스 르윈은 스크린을 재부팅하고 여러 장비들을 Add 명령어로 소환했다.


 "날 도와줄 건가?"


 "당신이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다면, 이건 뭐에 쓰냐면..."


 짭짤한 TP라는 보상을 포기할 수 없는 울로아, 자신의 완벽한 세상이 무너지는 꼴을 보기 싫은 르윈은 빠르게 손을 잡았다. 5분 전만 해도 불청객을 삭제하려고 악을 썼던 앤더스 르윈이, 손바닥 뒤집듯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모습이 우스울 법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그의 설명을 들었다.


 "이건 전 세계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느끼는 고통을 수치화한 장치야. 이 수치에서 가리키는 고통이 0 또는 0에 수렴하는 값이 나오면 성공이야. 그리고 이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스크린이고, 이 콘솔은 세상에 적용되는 제반 설정을 조작할 수 있는 장치야."


 앤더스 르윈은 득의양양하게 자신의 장치들을 설명했다. 장비들을 눈에 익힌 울로아는, 손을 들어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장치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르윈이 그래서 고통을 없앤다는 그 대의를 위해 뭘 했느냐가 중요했다. 울로아도 자신의 시간이 있는 안드로이드였기에, 이미 실패한 데다가 또 삽질해서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당신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무엇을 했지? 여태껏 뭘 했는지 듣고 싶어. 실패사례는 거르고 시작해야 하니까."


 "좋은 질문이야! 많이도 실패했어. 시간도 너무 흘렀지. 잘 들어. 긴긴 이야기니까..."



 정말로 긴 이야기였다. 울로아는 새로 장착한 감정 모듈 통제 기능의 존재에 감사했다. 지루함 이라는 감정을 차단하고 흥미 수용체 감도를 수십배로 올렸다. 이 이야기하다가 저 이야기 나오고, 저 이야기 하다가 그 이야기가 나오니 1시간이면 할 말을 3일이나 늘였다. 그의 이야기를 쓸모없는 군살을 줄이고 요점만 놓으면 이러했다.



 완벽한 사회체제를 만들어서 고통을 줄이고자 했으나 고통을 없앨 수는 없었다. 누군가 고통을 느꼈다. 질투, 시기로 고통을 느꼈고,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고통이 폭증했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 공장을 올리면 공해에 사람들이 고통을 느꼈고, 그를 막기 위해 규제를 적용하니 그 규제에도 고통을 받는 이들이 생겼다. 동물들이 고통까지 어루만지겠노라 노력했지만, 그 쪽은 손도 댈 수 없었다.



"...어때, 이해가 되나?"


 "음... 그래. 그래. 됐어. 대충은."



 울로아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다가, 뭔가 답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체제와 법을 만들고, 강제력을 부여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으니, 그러면 인간의 본성을 건드려볼 시간이었다. 수많은 사상과 이념이 실패한 부분이지만, 르윈은 이 세계의 주인이었기에 인간의 본성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그럼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 이제 그걸 건드릴 시간이지."


 정말로 오래 걸리겠다. 르윈은 혹시라도 실험의 흐름을 놓칠까 수치를 조작한 후 시간 가속도 쓰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울로아가 시간을 빨리 감자고 제안해도 완고했다. 울로아는 한숨을 쉬고 마음대로 하라며 눈을 감았다. 이곳의 1년이 바깥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 르윈. 그런데 이거 말이지..."


 "왜? 빨리 말해!"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냥 해봐."


 울로아는 이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알고 있었지만, 일단 르윈이 하려는 행동을 존중하기로 했다. 


 "자... 통각 신경을 건드려보자... 인간의 고통 감도... 0."


 먼저 통각 신경을 없앴다. 하지만 고통을 없애자 세상은 개판이 되었다. 팔에서 고름이 나오고 썩은내가 나도 가만히 있다가 팔다리가 잘려나갔고, 고통이 없어지자 오히려 고통이 있느니만 못한 세상이 찾아왔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이 실패했다. 50년의 긴긴 기간 동안 관찰한 결과 내린 결론이었다. 당연한 실패에 르윈이 애꿎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 옆에서 울로아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건조하게 실패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제기랄. 왜 실패했지? 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거, 고통을 느끼는 놈들만 살아남아서 지금에 이른 건 다 이유가 있거든. 고통이 없으면 포식자를 피할 이유가 있나? 왜 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해야지? 그런 거야.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괜히 있나."


 "...틀린 말은 아니군."


 그 다음 실험은, 인간의 고통이 아닌 인간을 지금까지 살아남게 만든 본능으로 향했다.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리는 이기적인 본능을 제거하고, 좀 더 이타적이고 세계를 위하는 마음만을 가득 채웠다. 처음에는 세상이 잘 돌아갔다. 서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도왔고, 그에 고통도 점점 줄어들었다. 앤더스 르윈은 이대로라면 고통이 0에 달할 것이라고 보았다. 벌써부터 기뻐했지만, 울로아는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봤나! 하하! 진작에 해결사들이랑 얘기를 해볼 걸 그랬어!"


 "..."


 "어? 잠깐... 이게 왜 이러지?"


 "그러게 동물 고통을 왜 계산에 넣어서는."


 울로아가 혀를 차는 순간, 감소세를 타던 고통은 더 이상 감소하지 않고 직선을 그렸다. 1초의 시간도 빨리 감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인간들이 무한한 이타심으로 동물들을 학대하고 있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입에 고기를 넣을 때까지 절대, 절대 멈추지 않으리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물고기를 많이 잡았으니 천 명은 족히 먹겠지?"


 인간은 잡식성, 즉 채식을 하지만 육식도 병행하는 동물이었다. 인간들은 다른 이들의 원초적인 욕구, 식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몸이 부서지도록 가축을 치고, 사냥을 하고,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누군가는 인간이 잘 되면 그만 아니냐고 하겠지만, 앤더스 르윈은 그만이 아니라서 문제였다.


 "그, 그럼... 전 인류를 채식주의자로 만들면... 되는 건가?"


 "글쎄... 그 실험을 하기 전에 이거부터 먼저 보는 게 어때?"


 울로아가 동물들을 대량 학살하는 피비린내 나는 화면을 농업의 현장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앤더스 르윈이 한때 망상했을 목가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농사는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살아있는 한 그 누구도 굶는 꼴을 볼 수 없다며 농사에 열을 올렸다. 인간이 먹기에도 모자른 벌레를 잡으려고 마구 뿌린 농약이 수많은 벌레와 작은 동물들을 말려죽였다. 아직 인간들이 Eden을 만들기 전 옛날, 레이첼 카슨이라는 예언자가 경고한 <침묵의 봄>이 펼쳐졌다.


 "그, 그래도... 이 정도면 고통이 꽤나 줄었으니, 유의미한 결과일지도..."


 "아저씨, 아직 실험 안 끝났어."


 앤더스 르윈은 이 결과에 대해, 무언가 진전이 있었다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냉혹한 세계는, 그럴 여지도 주지 않았다. 울로아가 실험이 끝나지 않았다며 지켜보라고 권하자마자, 고통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울로아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내가 쓸모 없나봐..."


 "구하지 못했어... 구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거대한 재앙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자꾸 받는 것도 민폐라고 여겨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꾸며서 다른 이들의 호의를 거절했고, 거절당한 호의는 절망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었다. 여기까지는 호의가 과했다, 그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울로아가 진정으로 예견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주장은 틀렸어! 당신의 그 생각이 우리 세상을 파멸로 이끌 거야!"


 "이거 아주 위험분자구만! 당신은 없어지는 게 이 세상을 위하는 길이야!"


 "자아! 갑시다! 촉진주의의 동포들이여! 저 환원주의자들을 쳐 죽입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행복을 누릴 것인가, 어떤 가치가, 어떤 체제가 이 세상을 인도할 권리가 있는가, 그 질문은 곪은 상처를 가리던 평화를 깨버리고, 기폭제가 되어 활화산 같은 분쟁을 일으켰다. 세계의 진보를 더욱 가속해야 한다는 촉진주의, "이기심"이 세상을 인도할 것이라며 발흥한 이기주의, 인간의 존재가 문명이 없는 원시 공동체로 돌아가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원주의"로 뭉쳤고, 그들은 서로를 적대하며 죽이고 죽였다. 


 "와우... 진짜 더럽게 싸운다."


 울로아가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앤더스 르윈은 말을 잃은 채, 혼자서 시간에 매인 것처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들의 전쟁은, 울로아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있는 전쟁사 내용보다도, 르윈이 Eden 출시 전에 읽었던 역사책에 나온 것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끔찍하고 가학적이었다.


 "전향해라! 전향하라고!"


 "그냥... 죽여라!"


 그들은 죽을 때까지 싸우고, 총알이 다 떨어지면 총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치며 죽였다. 총이 부러지면 돌을 들고, 돌도 없으면 맨손으로 덤볐다. 만약 기절했다가 포로로 잡혀도 똑같았다. 포로를 잡은 이들은 전향하라며 거부할 때마다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씩 꺾는 것을 시작으로, 무릎, 허리를 부수고, 마지막으로 두 눈까지 뽑아버리는 잔혹한 고문을 저질렀다. 포로들은 그냥 죽이라면서 거부했다. 역사에 나타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실제 역사보다 자비가 없었다.


 "오ㅡ 여러분! 여러분! 이건 아닙니다! 이건 인류를 위하는 길이 아닙니다! 총을 내려놓읍시다! 제발 화해합시다!"


 "저 분열주의자들을 당장 총살해라!"


 더 잔인했다. 더 끔찍했다. 그들도 국적을 떠나면 같은 인간이라는 감성적인 구호는 앤더스 르윈이 만든 세상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하지만, 그런 피바다 속에서도, 그들은 진정으로 그것이 옳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울로아는 자신이 보고 있는 이 부조리극을 희극으로 분류해야 할지 비극으로 분류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어째서... 제기랄!"


 "나치라고 들어봤지? 나치 독일. 거기서 살던 사람들은 말이야, 유대인 600만명을 죽이면서도 그게 진심으로 선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뭐, 이건 실패고. 이제 뭐가 남았지?"


 "으악! 으아아아악!!!!"


 앤더스 르윈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물건을 마구 던졌다. 책장을 엎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 마구 찢은 다음 던졌다. 울로아는 저 무의미한 분노 표출에 엮일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준-관리자 권한으로 지금 울로아가 앉은 의자를 제외한 모든 충돌 체크를 Off 로 설정했다. 짖어라, 부숴라, 울어라, 울로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닥과 닿지 않고 그대로 쑥 빠지는 발을 보며 신기하다며 깔깔 웃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앤더스 르윈은 온갖 과격한 설정값을 세계에 도입했다. 그리고 세상은 과격한 설정값에 걸맞는 과격한 결말을 르윈에게 돌려주었다. 눈 뜨고 보기 힘든 결말들이 이어졌다.


 "인간이 죽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이다!!!!!"


 "주께서 십계명을 내리셨습니다. 제일은 죽어라, 제이는 죽어라, 제삼은 죽어라..."


 인간들이 동물에게도 무한한 이타심을 느끼도록 본능을 조작했다. 그러자 인간들은 자신들의 문명, 행동, 아니, 존재 그 자체가 피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인류의 멸종이 진정한 친환경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독약을 마시고, 밧줄에 목을 매고, 물고기 밥이 되려고 바다에 몸을 던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 세상을 위해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을 다했다.(엄밀히 말하면 최고의 친환경이 맞았지만, 삶보다 친환경이 중요한 이들은 별로 없었기에 역사적으로 주목받은 적이 없는 방법이었다.) 단 1개월만에 인류가 멸종했다.


 "이게 아냐! 이게 아니라고!"


 앤더스 르윈은 의견이 달라서 서로 죽이는 것을 막으려고 의견을 통합했다. 고통도 없앴다. 동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인간들을 채식 동물로 바꿨다. 온갖 과격한 설정이 반영된 채 다시 태어난 인간들. 그 모습을 본 울로아는, 스으으으읍, 바람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저거... 인간 맞지?"


 "..."


 그들은 인간의 범주를 한참 넘어선, 인간이었던 무언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고통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모든 방법은 실패했다. 앤더스 르윈이 꿈꾼 고통 없는 세상을 위한 완벽한 사회계획도, 인간의 정신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정신적 진화도, 고통 앞에서 결국 패배했다. 그런 식이었다.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나, 식탁에 고기 대신 잡초가 잔뜩 올라오는 세상이나, 모두가 서로가 잘 되길 바란다는 소망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나,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이유로 고통의 수렁에 빠졌다. 특히 모두가 이타적으로 사는 세상은 차라리 원래의 세계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했다.


 "...나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미안해... 리사... 미안해... 울피..."


 예상도 하지 못한, 정말로 최악으로만 흘러가는 세상 앞에 결국 무너졌다. 분노의 시간이 끝나고, 르윈은 우울의 계단을 밟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이쯤 되니 불쌍하게 느껴졌다. 울로아가 뭐라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실언 한 방에 이 세계와 함께 삭제당할까 가만히 있었다. 그 대신 준-관리자 권한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검색 기능을 사용했다. 분당 10TP라는 미친 검색요금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상황이, 그 요금에 문제를 느끼지 않도록 도왔다.




 Eden 외부 데이터베이스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검색창:                  앤더스 르윈                                 


 검색을 시작합니다...


 검색 결과(0.000000193s)

앤더스 르윈에 관한 검색결과 81724건

 맞춤 AI 검색정보 가공 서비스를 이용하시겠습니까?(10TP가 청구됩니다.) "Y"/N


 울로아의 상황에 맞춰 가공된 검색정보가 울로아의 체내에 내장된 저장장치로 입력되었다. 울로아는 검색된 정보를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그래... 이런 분이시구나..."


앤더스 르윈은 Eden이 출시되기 70년 전에 태어난, 지금은 폐기된 인간의 나이 개념으로 따지면 "노인"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30살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30살 생일날에 아내 리사 르윈이 사망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강성 공리주의자로 다시 태어나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며 사회봉사에 전념했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이상 고통의 최소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며 동물보호 운동에도 투신한 신념형 인물이었다. 지금이야 Eden의 자기 서버에 붙들린 채 하루하루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신세였지만, 하여튼 검색한 정보에 따르면 그랬다.


 "해결사."


 "응?"


 "자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나?"


 "남이 지키지 않은 적은 있지. 하지만 나는 아냐. 그러니까 이 짓으로 몇십년 벌어먹지."


 한참 동안 눈물만 흘리던 르윈이 말을 걸었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는지, 목구머에서 나올 비명도 다 떨어졌는지, 르윈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까 전의 괴팍하던 그 미친놈, 자기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온갖 끔찍한 짓을 세상에 저지르던 그 미친놈이 죽고 다른 놈이 새 거죽을 뒤집어썼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차분했다.


 "리사가... 내 아내 리사가... 죽었어. 내 생일 선물을 사야 한다고 밤 늦게 나갔다가... 술에 취한 버스 기사의 트럭 바퀴 밑에서 죽었어. 그 때 약속했어. 고통을 없애겠다고. 이 세상에서 모든 고통을 뿌리뽑겠다고."


 "유감이야. 그런데... 그 리사... 라는 사람이 동물도 사랑했던 건가?"


 "울피. 내 옆에서 나만 바라보던 개였어. 내가 일하러 가면 항상 앞장서서 가고, 내가 일하는 동안 얌전히 기다릴 줄도 알고, 정말로 순하고 착한 아이였어. 그런데 어느 날 보이지가 않아서 찾아보니... 어떤 놈이 울피를 잡아먹은 거야! 그 녀석을 죽이려 했어. 너도 소고기를 먹지 않냐며, 동물에게도 계급이 있냐며 비웃는 그 녀석의 입을 꿰매고 싶었어! 하지만 그 궤변에 반박할 수가 없었어."


 "음... 왜 그런 목표를 세웠는지 이제 알 것 같네."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매달리다가 결국 그 목표에 목이 매달려서 죽어가는 이들이 다 그랬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큰 충격을, 세상이 무너졌다 다시 만들어져도 불가능할 희망을 품고 이겨낸다. 하지만 지금의 르윈은 그 불가능한 희망에 매달린 대가로, 그 희망에 자신의 목을 매달게 되었다. 숨이 막혀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이제 필요한 건, 1%의 과격한 처방과, 99%의 행운이다. 울로아는 세상 다 산 것처럼 주저앉은 앤더스 르윈에게 말을 걸었다.


 "르윈.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냐."


 "...무슨 소리지?"


 "관리자 권한 접속을 승인해줘. TP가 무제한이 아니거든."


 르윈의 얼굴에 감정이 돌아왔다. 르윈은 울로아의 요구가 황당해서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내가 답을 알고 있으니까. 정말이야. 내가 이 세상의 고통을 0으로 만들 수 있어."


 "...실패하기만 해봐!"


 "헤헤. 고마워!"


 될 대로 되라! 앤더스 르윈은 울로아에게 관리자 권한 사용을 허가했다. 울로아는 권한을 확인했다. 준-관리자 권한이 관리자(임시)로 승격되었다. 사실 울로아는 어떻게 하면 고통을 0으로 바꿀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앤더스 르윈의 힘을 빼기 위해 지켜보면서 답을 안다는 것을 숨겼다. 울로아는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마술을 부렸다. 울로아의 마술은 효과가 빠르고 강력했다.


 "응?! 이, 이게 뭐야! 어떻게 고통이 0이 됐지?!"


 고통 감지기가 0을 표시했다. 앤더스 르윈은 장비 점검 때나 보던 0, 장비가 고장났을 때나 보던 0이었다. 르윈은 혹시 장비가 고장났나 점검했다. 하지만 고통 감지기는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었다. 진짜로 고장난 건 따로 있었다. 엘로아는 관리자 권한으로, 앤더스 르윈과 울로아 둘에게 "물리법칙 무시" "고통 감소" "무적" "환경에 관계없이 의사소통 가능" 설정을 적용했다. 그리고 통제실 방을 떠나, 지구를 빙빙 도는 달로 이동했다.


 "말해봐.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한 거냐고?"


 르윈은 울로아가 자신의 세계에 거대한 운석을 소환했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르윈은 울로아를 붙잡고 답을 갈구했다. 중력이 약한 달 위에서 울로아를 잡고 탈탈 흔들자 몸이 하늘로 붕 뜰 것 같았다. 수천km의 사막을 거쳐 마침내 오아시스를 눈 앞에 둔 사람처럼, 르윈의 손길은 절박했다. 이쯤 되니 진심으로 불쌍했다. 오아시스를 갈구하는 르윈이, 그 오아시스가 사실은 모래밭에 덧씌운 신기루일 뿐이라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알아야 했다. 


 "저길 봐."


 지구를 가리켰다. 르윈의 시선이 울로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르윈은 화들짝 놀랐다. 달처럼 큰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부딪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구와 가까운 운석의 끝부분이 대기권을 찢으며 가열되는 모습, 저 운석 바로 아래 지표에 서 있는 사람은, 푸른 하늘을 운석이 틀어막아버린 광경을 보고 있겠지. 르윈은 화를 내며 울로아의 멱살을 잡았다.


 "날 속였어! 이 새끼야아아!!! 내가 고통을 없애랬지 세상을 없애랬어!"


 "뭐, 그래서 고통만 없앴잖아?"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했냐고! 대답해!!!"


 르윈이 울로아를 윽박질렀지만 그녀는 무덤덤했다. 멱살을 잡힌 채로 흔들리던 울로아는 대답하는 되신 되물었다.


 "운석이 멈췄잖아. 왜 멈췄을까?"


 "...설마... 너... 시간을..."


 "그래. 명령어 중에 재미있는 게 있더라고. 서버 시뮬레이션 속도: 정지."


 "..."


 르윈이 침묵했다. 시간이 멈추고, 르윈도 분노를 멈추자 미칠 것 같은 적막이 찾아왔다. 흠, 흠! 울로아는 안드로이드답지 않게 헛기침을 몇번 하고 르윈을 설득했다.


 "르윈. 당신이 Eden에 접속하기 전에 겪은 일은 정말로 안타깝게 생각해. 정말로 유감이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르윈. 사실 알고 있잖아. 고통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


 "반대로 생각해보자고. 어떤 사람이 행복을 없애자고 결심했어. 그리고 고통을 없애려는 시도랑은 다르게, 성공했다고 치자고. 그런데 그거 알아? 그런데도 그 사람은 이 세상의 행복을 없애지 못했을 거야. 모든 행복을 없애는 계획이 성공한 그 사람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해서 모두가 끝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행복을 느낄 테니까."


 그런 거야. 더 잘 말하고 싶었지만, 안드로이드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그냥 말주변이 부족한 건지 더 좋은 설득이 떠오르지 않았다. 앤더스 르윈은 묵묵히 울로아의 설교를 듣다가 혼잣말을 하듯이 그 이름을 불렀다.


 "리사가... 날 돌봐줬어. 정말로 아팠는데... 돌봐줬어. 그래서 나도 이 세상에서... 고통을 없애기로 한 거야."


 "그 얘기, 조금만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 앤더스 르윈은 손가락을 튕겼다. 옆에 홀로그램이 둥둥 떴다. 앤더스 르윈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이는 몇십 년 더 젊어보이는 사람이 나무에 자동차를 갖다 박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에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술을 먹었는지 실수를 했는지, 아니면 도로가 미끄러웠는지 사고를 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연기가 새어나오던 찌그러진 보닛에서 화염이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엘로아도 액션 게임을 많이 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저 꼴이 나면 자동차랑 함께 노릇노릇 구워지던데... 그 옆에 다른 자동차 한 대가 또 섰다. 자동차에서 한 여자가 내리더니 황급히 젊을 적의 르윈을 끌어냈다. 여자는 르윈을 끌어내서 자동차에 태우고, 불타는 르윈의 자동차를 뒤로 한 채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당신은... 당신은 누구죠?'


 '정신이 들어요? 아이고, 진짜 심하네.'


 홀로그램이 끝났다. 그 홀로그램을 보던 앤더스 르윈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는 그 얼굴에는 눈물이 흘렀다. 앤더스 르윈은 뒤늦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이 장면만 보면... 눈물이 나."


 "리사... 라는 사람이 널 구한 거지? 그렇지?"


 르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날 도왔어.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주고, 힘들면 응원해주고... 내 모든 것을 받아줬지. 내 고통을 덜어줬어. 내 고통을."


 "고통이 없었다면 네 평생의 사랑을 못 만났겠군."


 "...그게 무슨 뜻이지?"


 이런 것도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나, 울로아는 내심 불평하면서 르윈에게 설명했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너가 나무랑 부딪친 채로 기절했지? 너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거야.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리사가 고통에 빠진 너를 보고 너를 끌어내서 태운 거지. 그리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네가 리사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첫 걸음을 뗀 거잖아? 틀려?"


 "그건... 사실이지."


 으으음, 말을 길게 끌던 르윈이 마지못해 인정했다. 울로아는 르윈 옆에 가까이 섰다. 그리고 르윈이 임시로 부여한 관리자 권한을 다시 르윈에게 돌려주고, 설득을 계속했다. 리사와 울피, 르윈의 삶을 결정한 두 인연에 대해 말을 얹는 건 따는 돈도 많지만, 판돈도 그만큼 큰 위험한 도박이었다.


 "앤더스 르윈. 네 아픔은 이해해. 하지만 널 돌이켜봤으면 좋겠어. 넌 지금 이 세상에서 죽어가고 있어. 너를 지지해줬을 그 희망이, 이제는 널 죽이고 있다고. 르윈, 난 당신이 말하는 리사가 누군지 몰라, 그리고 당신이 아끼던 울피라는 개도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 거 같아. 다른 방법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죽는 걸 보면서 기뻐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할... 시간을... 좀 줘."


 앤더스 르윈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또다른 홀로그램이 나왔다. 


 '끄응... 이게... 아닌데... 이렇게 해야 하나? 아, 됐다!'


 리사가, 사무실로 보이는 방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었다. 화면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하던 그녀는 마침내 카메라 조정을 끝내고 화면 앞에 나타났다. 


 '짜잔! 앤-디! 오클라호마에서 안녕! 요즘 자기가 많이 힘들어하는 거 같더라고? 다 알아.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데 힘들 수밖에 없지. 그래서 음... 우리 자기한테 뭘 해주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역시 이게 제일 좋을 거 같더라고!'


 리사는 쿡쿡 웃으면서 화면을 바라보다가 손가락 세개를 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르윈을 위로했다. 


 '하나, 자기 옆에는 내가 있어. 둘째, 힘들면 내려놓아도 돼. 셋째...'


마지막으로, 리사는 팔을 펼치고 외쳤다. 그동안의 실험이 너무 지루해서 감정 모듈을 다 꺼둔 게 후회될 지경이었다.


 '항상 사랑해! 앤디!'


 "...그렇다네."


 "..."


 울로아는 뭐라 말하려다가, 르윈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수백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난 그녀가, 울로아가 수천년간 해야 할 말을, 단 10초만에 해준 모양이었다. 르윈은 웃고 있었다. 분명 웃고 있었다. 르윈은 홀로그램에 손을 뻗어 0과 1로 이루어진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고마워. 리사."


 르윈은 몸을 돌려 지구를 바라보았다. 운석과 충돌하기 직전 멈춘 지구. 그가 만든 세상이,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르윈은 에덴 인터페이스에서 명령어를 골라서 실행했다. 굳어버린 시간이 기지개를 켜고, 운석이 지구와 닿았다. 운석이 닿은 곳을 기점으로, 붉은 파도가 일어나 지표면을 삼켰다. 세상이 끝나간다. 인류 문명이 끝난다.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간 르윈이 지켜봤을 거대한 실험장은 불청객이 불러온 운석 앞에서 종잇장처럼 부서지고, 붉은색의 용암 파도 앞에서 모래성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달 위에 서서, 완벽을 자신하던 세계가 무너지는 장관을 바라보았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땅 한 조각을, 외계의 재앙이 삼켰다. 르윈은 울로아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울로아."


 "울로아. 그래... 울로아."


 르윈의 옆에서 지구의 멸망을 지켜보던 울로아는, 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는 느낌에 양 팔을 들어보았다. 손가락 끝부터 데이터 조각으로 변해서 흩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구만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계 자체가 필요를 잃고 사라지려는 모양이었다. 울로아도 르윈을 바라보았다. 르윈은 활짝 웃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울로아."


시스템 오류: 접속코드가 만료되었습니다. 

오류 코드:  Bad Request 412 - Precondition Failed

Eden 접속기 페일세이프  코드 41 작동:  Eden 접속을 강제 종료합니다.

신경 피드백에 대비하십시오.



"...별 말씀을."


 마지막 인사는 Eden에서 빠져나온 뒤에야 할 수 있었다. 울로아의 눈 앞에 안토니오가 보였다. 안토니오는 울로아에게는 길고 긴, 하지만 그녀에게는 짧았을 여정을 마친 울로아를 꼭 안아주었다.


 "세 번이나 실패한 세계로 또 들어갔다며?"


 "한동안 TP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너 정말 TP가 좋구나. TP랑 결혼도 하겠네."


 "헤헤, 일등 신랑감이네. 어쨌든! 다녀왔습니다!"


 울로아도 안토니오를 껴안고 몸을 뒤집어서 장난을 쳤다. Eden에 접속하면서 과열된 몸체 때문인지, 안토니오가 참 시원하게 느껴졌다. 안토니오는 울로아의 몸이 따뜻하다며 더 안았다. 


 "하하! 간지러워! 언니!"


 "조금만 더 할게, 조금만 더!"


 둘이 한참을 뒹굴고, "기쁨" 모듈에 불이 들어오며 차갑던 방에, 자기 전 갓 데운 우유 한 잔의 따뜻함이 가득 찼다. 둘은 침대에서 서로 껴안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언니라서 이런 것도 먼저인 건지, 안토니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헤드헌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돌아왔는데 웬 이상한 놈이 네 앞에서 다리를 떨고 있더라고? 너 뭐냐고 물으니까 다짜고짜 명함부터 전송하려 들길래 내쫓았지. 그런데, 그 사람이 헤드헌터라고? 그러면 TP는 어떻게 하지?"


 "그 사람 전자명함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찾아보면 돼. 아, 그리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울로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울로아도 르윈의 영향을 받았는지 정말로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안토니오는 울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사실 이럴 필요는 없었다.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 정보를 빨리 전달받고 싶다면 무선 통신을 하면 됐고, 진짜로 빠르게 전달받고 싶었다면 초광속 케이블을 연결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방식을 택했다. 느리고, 부정확하다. 하지만 상대가 하는 이야기니까, 이 편이 더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사랑스러우니까. 그건 단점이 아니었다. 


 "...그렇게 된 거야."


 "정말로 고생 많았어. 로아."


 "헤헤... 응? 잠깐..."


 외부 송신 감지... 위험 등급 없음. 보안 등급 비즈니스.

 송신 종류: TP 송금 시도.

 송금 금액: 470118 TP

 보내는 사람: Headhunter_Huns_871

 승인합니까? Y/N


 안토니오의 품에 안긴 채로 솔솔 오던 잠이 확 깼다. 울로아는 벌떡 일어나서 전자명함을 불러오고, 그 명함에 적힌 코드로 전화를 걸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토니오가 물었지만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약속받은 보수는 기본료의 4배 쳐서 4만 TP였고, 거기에 잘 했으니 조금 쳐줬다 쳐도, 일처리를 잘 해서 지켜보던 이들이 잔뜩 후원을 했다고 해도 이 액수는 말이 안 되는 액수였다. 


 '왜? 부족해?'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거야? 47만 TP가 말이 돼?'


 '앤더스 르윈. 그 사람한테 물어. 그 사람이 너한테 그동안 모은 TP를 죄다 사례비로 주겠다고 했어.'


 '갑자기 무슨 변덕이래...?'


 '됐고, 빨리 송금 받아. 영수 처리 늦겠다. 아! 그러고보니까, 그 사람이 너한테 편지 좀 전해달라고 하더라. 받는 김에 이것도 받아. 끊는다.'


 띠링, 통신이 끊겼다. 울로아는 Y를 눌러 말도 안 되는 보수를 수령했다. 울로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앞으로 온 편지 파일을 실행했다. 




 고통은 싸울 수 있고, 보듬을 수 있지만,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서로를 보살피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실현할 수 있지만, 고통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인류라는 종의 수명이 다하고 마침내 멸종할 그때까지 고통은 인류와 함께할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제껏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어렵지만, 현실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에게 어렵지만 가능한 길을 열어줘서 고맙습니다.


 약소하지만 사례를 챙겨드립니다. 좋은 데 쓰시기 바랍니다.


앤더스 르윈 배상



 "...약소하기는."


 "울로아? 무슨 일이야?"


 야호! 울로아는 환호성을 지르며 안토니아를 껴안고 다시 뒹굴었다. 우린 부자야! 우린 부자라고 언니! 안토니오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울로아가 불러주는 액수에 뒤늦게 기쁨에 찬 비명을 질렀다. 무한할 것 같은 행복 속에서, 울로아의 전자 신경에 한 생각이 스쳤다.


 그녀의 삶 역시 고통의 연속이었다. 출고된 날 고에너지 레이저로 새겨지는 각인이 자신의 이름을 결정했을 때,걸핏하면 과열되는 냉각장치 때문에 찜통 속에서 고통받을 때,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을 때, 판타지 세계의 미아를 찾으려다 온 몸이 망가지는 경험을 했을 때. 


 그뿐인가. 안토니오가 Eden에 접속했다가 몇 년간 깨어나지 못했을 때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안토니오와 함께 지낸 행복한 세월이 있었기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행복이 빛이라면 고통은 그림자다. 긴 행복 뒤에는 긴 그림자가 따라붙었고, 그림자를 없애려 빛을 비추면 다른 방향으로 옅은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또다른 고통이 생겨난다.



 하지만 고통이 있었기에 그녀는 안토니오를 만날 수 있었고,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순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녀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건 허세였지만, 그녀가 살아갈 미래를 결정하고, 그녀의 행복을 만들어준 고통의 몫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마침내 가동을 정지하고 최신형 안드로이드들에게 살아갈 자리를 양보하는 날까지, 고통은 그녀와 함께 갈 것이다. 안토니오마저 그녀를 떠날 지언정 고통은 그녀를 떠나지 않으리라.


  고통은 때로는 독기 가득한 조언자가 될 것이고, 때로는 그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스토커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과 싸우고, 고통과 협상하고, 잠깐 고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고통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게 삶이었고, 그게 인생이었다.


 앤더스 르윈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인생 앞에 무슨 고통이 있을 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로아는 살아간다.


 고통의 바다 밑바닥에서 그녀를 기다릴, 행복을 품은 진주조개를 찾아서. 


 언젠가 찾아올 피할 수 없는 최후를 찾아서.


인간의 본성과 특질이 좆같다는 걸 인정한 사상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아병적인 낙관으로 일관한 사상은 모두 실패했죠.


그것이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단순히 레이저 총이 나오고 외계인이 나오는 그런 게 아니라, SF 느낌이 나는 글은 처음이네요.


즐겁게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