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범주에 관한 추상적 사유는, 대립 관계를 무모순의 대립 관계로서 고찰하고자 한다. 추상적 사유는 이와 같은 대립 관계를 도출하기 위해 무조건 양 항 중 하나만 현실성을 얻어야 하고 나머지는 가능성의 영역에 있어야 한다는 의식에 필연적으로 얽매인다. 이에 기초한 가장 간단해 보이는 예를 들어보자: ‘삶과 죽음’에서 ‘삶’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한해서, 그리고 ‘죽음’은 사람이 죽어있을 때에 한해서 성립하기에, 각각은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삶’이면서 ‘죽음’이라는 것의 표명에는 이러한 시간적 선후 관계 상에서 놓여 있는 관계이며, 따라서 ‘삶과 죽음’라는 대립 관계에는 그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


대립에 관한 이러한 파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정형화된 것―대립 관계로 제시된 모든 사례를 취급하는 일반화된 방식으로서 등장한다. 그는 당대 자연철학자에 의해 제시된 모든 ‘대립’―모순을 내포한―에는 대립을 이루는 것으로 다루어지는 양 항에 각각 현실성과 가능성이 상호 배타를 이루며 부착되어 있기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고 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모순은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현실성과 가능성 역시 모순을 이루는 속에서 서로가 필연적 계기로 되는 통일체로서 제시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이에 반하는 논증을 전개하기 위해 각각에 현실성과 가능성의 범주를 중첩 부착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우리가 현실성과 가능성 간 모순 속 통일의 양상을 고찰하는 데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따를 경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 현실성은 가능적이기에 현실적인 것으로서의 가능성과 모순을 이룰 수 없으며, 현실성이 현실적인 것일 경우에는 가능성이 가능적인 것일 테니 역시 두 범주가 서로 모순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따라서 현실성과 가능성의 대립이 실제로 하등의 모순일 수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현실성과 가능성의 범주 관계가 모순일 수 없다는 그 근거로서 다시 현실성과 가능성을 요구하는 논증이기에 결과적으로 순환 논증이다.


변증법적 사유는, 대립에 있어 서로 대립하는 두 항에서 한쪽은 현실적인 것, 다른 한쪽은 가능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대립이란 오로지 이를 통해서 규정적일 수 있다는 견해에 내재하는 한계를 인식한다. 현실성과 가능성의 범주 관계 자체가 이미 모순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대립물의 통일이다. 변증법의 핵심은 동일성의 필연적 제 계기이자, 절대적 구별의 보편자인 객관적 모순을 통해 대립이 발현된다는 통찰에 있다. 더 나아가 변증법적 체계는 논리적 범주 쌍이 추상적 사유 하에서 인식되었을 경우 항상 그것이 순환 논증의 요소를 자기 내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필연적이고도 보편적인 연관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규정적인 것이 실상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사상은 고대에 이미 제출된 바 있지만, 이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정리·확립한 사상가는 헤겔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흔히 ‘차이 논문’이라 불리고 있는 피히테와 셸링 철학 체계의 차이(1801)에서 이를 정밀한 방식으로써 전개하고 있다.


차이 논문에서 헤겔은 오성적 인식에 기반한 선험적 직관에 관해 그것이 “단순 반성의 측면에서 사유를 보는” 것이라 규정하고, 그러는 한 “절대적 동일성은 대립물의 정립 속에서, 즉 이율배반 속에서 나타나 보일 뿐”이라고 하고 있다. 선험적 직관의 사유 하 동일성은 필경 ‘A = A’, 즉, 동일률 하 취급되는 동일성이다. 그것은 ‘A ≠ B(또는 ‘-A’)’로, 자기의 대립물과 그저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서 표명될 뿐이다. 이때 표명된 순수한 동일성인 ‘A’는 “일체의 부등성이 사상되어 있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 속에 그 대립물을 통일한 것으로서의 동일성이 아니다. 헤겔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오성적 인식의 한계가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동일성의 내재적 양식에 대한 사유, 즉 이성은 순수한 동등성 속에서 사상돼 버렸던 바로 그것, 즉 대립물 또는 부정성의 정립까지도 요구한다. 왜냐하면, ‘A’가 진정 ‘A’라는 자기동일성으로서 정립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기와 구별되는 자신 타자와의 관계 속에 놓여야 하기 때문이다. 붉은색이 붉은색이라는 규정을 얻기 위해서는 비붉은색이 요구된다. 설사 그것이 명도가 없는 색―검은색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필시 명도가 최상에 올라와 있는 색―흰색을 내재함을 통해서만 그 자신의 규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즉 특수한 동일자는 그 자신과 추상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특수한 동일자로 될 수 있다. 그리하여 ‘A = A’는 다름아닌 ‘A = B(또는 -A)’를 자기 내에 현실적인 것으로 포괄하는 것으로서의 ‘A = A’이다. 이를 염두에 두어 앞서 다룬 순수한 동일성ㅡ‘A’에 대해 다시 파악해 보도록 하자: 먼저, 그것이 표명한 동일성ㅡ상대적 동일성 “역시 동일성임에는 틀림이 없는 까닭”에, 그것은 앞서 다룬 동일성의 규정 양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그것은 “순수한 오성의 개념일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이 취급하는 동일성은 앞선 동일성의 자기규정 원리에 종속된다. 결국 “오성의 동일성은 ‘B’, ‘C’ 등을 요구할 수밖에 없으며, 반복되는 ‘A’는 바로 그 속에서 정립되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규정된 동일성은 그것이 규정된 동일성이라는 바로 그 점에 연유하여 다음과 같은 운동을 포괄한다: 다시 말해, 동일성은, 동일성 그 자신과 구별되는 타자로의 진행, 그리고 그 타자가, 최초에 취급되었던 그 동일성으로의 복귀를 자기의 내용 그 내재적 존재 양식으로서 운동을 통해 구성으로서 포함한다. 그리하여 동일자는 대립 관계의 논리적 양식, 즉 주어와 술어의 이중화에 매개된 속에서만 동일자일 수 있다. 레닌은 이러한 논리적 내용에 관해 날카롭고 올바르다고 하였으며, 그의 철학적 입장을 개진하는 데서 기초적인 것으로서 모든 구체적인 사물, 모든 구체적인 어떤 것은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종류의 또 종종 모순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그러므로 그것은 그것 자신이면서 타자”임을 승인하였다.


‘삶과 죽음’은 각 항이 엄연히 현실성의 규정을 얻은 채 공존하는 채로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삶은 세포의 지속적 사멸, 즉 ‘죽음’ 없이는 존재할 수조차 없는데, 왜냐하면 세포대사 자체가 필연적으로 특수한 세포 영역의 소멸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로지 체세포 분열이, 세포의 발생과 사멸 각각에 현실성의 규정이 부착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삶’을 위한 체세포 분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 역시 이미 다른 생명의 ‘죽음’이 필연적으로 현실성의 규정을 얻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한쪽 역시 실제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자연은 자기 정립하는 것, 즉 대자적인 것이기에 역사적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은 본질적으로 자연사이다. 머릿속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논리적 범주는 이러한 역사적인 것, 역사적 실재의 반영이다. 사유가 얻어낸 대립 관계 역시 그것이 직접적으로는 하나의 논리적 단위로서 범주가 분명하므로, 이러한 관계 역시 역사적 실재의 반영으로써 확립된다. 가령 낮과 밤 각각을 규정적인 것으로 보존하는 힘으로서 객관적이고도 실제적인 관계 양상이 없는 영역에서는 ‘낮’과 ‘밤’이라는 주관 논리적 범주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특수한 항 사이의 대립 관계는 그 항 사이의 대립이 우리의 관념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사실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현실적 관계의 객관적 모순으로부터 주어진다. 따라서 어떠한 범주 쌍에 관한 천부적인 대립 관계, 변하지 않는 대립 관계란 있을 수 없다.


사유가 의식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실재와 반복적인 매개를 이룸으로써 사유 영역에 주관 논리적 범주가 발생한다는 사상은 이미 플라톤의 대화편에 전반적으로 제출된 바에파고게 또는 더 세부적으로 귀납적 에파고게가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분석론후서에도 극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개별적 주관 논리적 범주가 형성되기 위한 전제로서의 객관적 규정이자 사유 규정인 ‘공리’ 역시 둘 사이 전제된 관계인 즉자적 동등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객관적 실재와 사유 간 매개의 산물임을, 즉 그것이 실재로부터 발원하는 반복적인 작용력을 통하여 이 작용의 내용 즉자적이며 대자적인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발생한다는 사실까지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스토아학파에 이르러서는 논리적 범주로서 공통 개념과 더불어 그러한 범주의 토대인 ‘공리’마저 외부 실재의 반복되는 작용력과 이와 매개를 이루는 혼, 다시 말해 혼에 각인된 것으로서 (외부에서 혼으로 반복 가해지는) 객관적 작용력인 선-이해의 산물이라고 간주하였다. 범주에 관한 스토아학파 이와 같은 심리학설은 당대 노예제 사회 하 생산력 발전에 힘입어, 기원전 3세기에 등장한 피론주의적 경험의학파의 학문적 활동과 대립을 이루며 지속 발전하였다. 로마 제국의 총체적 붕괴기인 3세기 전반에 걸쳐 선-이해는 고대 관념론 최후의 단계인 신플라톤주의 세계관에 통합되었다. 신플라톤주의에 내재해 있던 귀납과 범주적 보편화 간 통일성의 사상은 당대 생산력에 있어 유럽 지역보다 우위에 있던 아랍 지역에서 연금술과 함께 경험과학의 발전을 추동하였는데, 신플라톤주의가 갖는 이중성―과학적 특성과 밀의적 요소의 공존―으로 인해 이 시기 경험과학은 항상 신비주의 외피를 뒤집어쓴 것으로 되어있었다.


생산력의 발달로 인해 논리적 범주에 관한 기존 신학적-본유주의적 관점의 학문적 지위는 크게 흔들렸는데, 1620년에 간행된 베이컨의 신기관은 그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였다. 18세기 당시, 신학적 세계관은 실증과학과의 전투에서 이미 대부분의 고지를 빼앗긴 처지였다. 이 한가운데에 있었던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생물학적 틀―특히, 해부학을 통해 논리적 범주라는 특수한 관념 형태의 신비를 해명하고자 시도하였는데, 이러한 작업은 영국의 귀납주의와 감각주의적 전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신성가족에서 데카르트에서 스피노자로 이어지는 합리주의적 전통이 낡은 스콜라적 세계관을 완전히 거두어내지 못했던 반면,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주의적 전통은 이를 전면적으로 극복해 내는 데서 커다란 힘으로 되었다고 찬양한 바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관 논리적 범주의 개별태가 초역사적인 무언가를 반영한 것이 아닌,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실재를 반영한 것이라는 사상을 제출하였다. 낡은 유물론자들이 찾고자 하였던 형이상학적 실체로서의 ‘물질’, 그리고 이러한 ‘물질’에 기반하여 수립된 논리 체계가 지니고 있던 한계는 이 단계에서 들어서면서 극복되기에 이른다. 두 사상가는 당대 현존 사회를 분석함으로써, 인식과 논리의 객관적 기초인 물질이 역사적-사회적 관계의 힘과 함께 대자적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즉 그것이 역사적으로 규정된 인간적 관계로서 자기 운동하며, 따라서 오늘날의 역사에서 물질이 사회 이전의 물질과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밝혀냈다. 더 나아가 논리적 범주가 이러한 토대를 반영한다는 사실로 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범주가 직접적인 것으로서의 특성을 지니는 것을 넘어, 본질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역사적-사회적으로 매개된 규정, 즉 사회적 관계 규정이라는 특성 또한 지닌다는 사실을 최초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로자 룩셈부르크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