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19세기 유럽, 조금 더 구체적으론 마르크스가 거주하던 프로이센은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종교 국가로, 내부의 유대인들과 적대적으로 대립하였다. 이미 1812년에 유대인을 독일인으로 인정하자는 해방칙령이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유대인과의 대립은 지속되었다. 한편으론 독립적인 유대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었고, 한편으론 독일에 맞지 않는 풍습을 버리며 유대교를 독일화하려는 입장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해방칙령을 부정하며 이전 체제로 회귀하자는 반동적 입장도 있었다. 1842년, 빌헬름 4세의 유대인 법안은 이런 입장에 있었고, 프로이센 내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화두를 불태우게 되었다.


2. 브루노 바우어의 「유대인 문제」

무신론적 신학자이자 급진적 반종교주의자인 브루노 바우어는 1843년에 유대인 문제에 대한 문헌을 작성하였다.

바우어는 기존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해법, 유대교도으로서의 유대인 해방운동을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립은 본질적으로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대립은 어째서 발생하는가? 대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립은 어떻게 철폐되는가? 대립이 불가능하게 됨으로서 철폐된다. 따라서 바우어는 유대인이 여타 종교와의 대립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대교라는 개념으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됨으로서만, 기독교인도 기독교라는 개념으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됨으로서만, 보편적으로 오직 종교 전체의 급진적인 철폐를 통해서만 해방 될 수 있다는 대안적인 주장을 했다.


3. 칼 마르크스의 바우어 비판

마르크스는 바우어와 같이 반종교적 입장에 있었음에도 같은 해에 유물론자로서 이에 대한 비판문을 작성함으로서 바우어의 논리적 추상성을 비판했다.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적 대립은 바우어의 주장과도 같이 종교적이거나 그저 정치적인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실질적이고, 경제적이고, 구체적인 대립이다. 유대인은 그저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각 사회에 처해있는 경제적 관계가 그 사회의 구체적인 '유대인'을 형성하는 것이다.


4. 인권 선언 비판

가령, 프로이센에서의 유대인의 대립은 바우어의 주장대로 종교적 개인으로서의, 종교적 대립처럼 보인다. 그러나 종교적 대립이 없는 세속 국가(마르크스의 표현으론 정치적 국가)인 미국에서의 유대인의 대립은 비종교적 대립이다. 이미 종교적 자유가 이미 법적으로 실현된 '자유 민주 국가' 미국에선 어째서 자유롭지 못한 유대인이 존재할까?

이 지점에서 유대인의 대립은 여타 일반과 구분되지 않기에, '유대인 문제'에 대한 의문은 유대인 문제를 벗어난다. 나아가, 어째서 미국, 프랑스, 또는 현대 한국과 같은 시민 사회에서 개인은 정치적 자유를 가졌음에도 자신의 출생, 신분, 직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왜냐하면 법적, 정치적 자유는 실질적으로 인륜적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해방은 이기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적 적대에 대한 해방을 의미하지, 인간에 대한 해방을 의미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상업적 자유는 상업적 이기성에 대한 해방이지, 상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자유는 종교적 본질에 대한 해방이지,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은 이러한 추상성을 내포한 비현실적 법률이자, 악의적인 상업적 수단이였고, 개혁의 대상이였다.


5. 종교의 본질

종교적 해방은 유대인의 해방에 적절하지 못하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유대인을 관찰한 바우어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세속적인,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유대교가 아닌 현실적인 유대인 사회를 관찰함을 통해 유대인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형성된 규정력을 찾으려 한다. 시민 사회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유대인이 처한 규정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유대인의 규정력을 '실천적 이기주의'라고 정의한다. 유대교의 교리가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이 유럽 사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불가피하게 가지게 된 상업적 규정이 유대인이라는 민족 사회와, 그것의 교리까지 규정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믿는 유일 신앙은 야훼가 아니라, 그들의 경제적 규정력, 화폐 신앙인 것이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유대인은 시민 사회 속에선 표면적으로 유대교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론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 수단은 이미 유대교적인 것이고, 한편으론 시민 사회의 일반적인 생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유대인이나 다름 없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가 유대교의 경험적 본질, 악덕 상행위와 그 상행위의 전제를 지양하는 데 성공하는 즉시, 유대인[의 존립]은 불가능해진다. 유대인의 의식은 더 이상 대상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유대교의 주관적 토대인 실천적 욕구가 인간화되며, 개인적-감각적 실존과 인간의 유적 실존 사이의 충돌이 지양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사회적 해방은 유대교로부터의 사회의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