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한 게이가 또 요챈에 들를진 모르겠지만 약 24시간전에 좆같이 댓글단거 미안하구 


원래 회가 일본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것처럼 육고기도 발효숙성시킨 음식이 있음. 과거엔 지금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았을거임.


공자 식인썰푸는 애들이 드는 사람고기젓 그건 먹으라고 담근게 아니고 눈엣가시 확찢했을때나 수배대상 잡았다는 증거로 택배보낼때 시체 빨리 썩지 말라고 소금에 절이던거임. 마피아가 옷에 싼 생선 보내는건 먹으라고 보내는게 아니고 "옷 주인 용궁갔음"이란 메세지인 것처럼. 그게 먹으라고 담근 자로육젓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부하들이 팬케이크에 뿌려먹으려고 꿀에 담갔나?


(마음의 눈으로 보는 소르베 퍼즐맞추기)


'삭힘'의 메커니즘은 자가소화의 일종일수도 있고 외부 미생물에 의한 발효와 부패 사이의 줄타기일수도 있고 거기에 외부에서의 효소 혼입, 상온 마이야르, 산화, 탈수같은 자연적인 화학적 물리적 반응을 포함하기도 하는 등 복합적인 반응이라 일괄적으로 정의하기는 힘들어서 새벽에 댓글로 쓰려다 눈깔이랑 멘탈 동시붕괴=그따구로 얘기한거임. 미안함. 다만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삭힌음식' 문화가 한가지 공통점을 시사할 뿐힘. 먹고 탈나면 부패, 멀쩡하면 발효인거임 ㅅㅂㅋㅋㅋ


일단 홍어는 왜 삭혀도 괜찮은지 생각해봤냐고 했는데 그건 사실 요소에 쩔어있는 연골어류의 생리적 특성때문에 '다른 생선보다 잘 버티는'거지 처음부터 오직 삭혀먹기만 했던건 아님. 홍어도 엄연히 갓잡아 싱싱할때 회를 떠먹기도 했음. 안 삭힌 홍어회는 요즘 맛알못들이나 하는 짓이 아니고 옛날에는 산지에서만 먹을수 있는 하나의 별미였음. 냉장유통이 발달하면서 삭힌 홍어가 별미 취급을 받는거지 그 전엔 유통과정에서 썩는건 면해도 삭는건 재주없었음. 


홍어를 두엄에 박아 삭힌다는건 똥술이나 오줌피딴이랑 똑같은 악성루머임.


1. 아무리 삭힌 홍어에 미친 사람이라도 똥오줌 구덩이에 처넣은 홍어를 누가 먹냐, 삭기는 커녕 잡균때문에 그냥 썩는다고 딴사람도 아니고 홍어잡이 집안 사람이 방송에서 일갈함. 옛날에 홍어를 잡아서 실어 보낼때 짚으로 감싼것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음


2. 퇴비 부패열이 엄청나서 주기적으로 뒤집어주어야 하는데(안그러면 자기들이 만든 열과 가스에 미생물들이 자살해서 거름이 제대로 안됨. 그런 미숙퇴비를 뿌리면 밭에서 부패해서 오히려 작물에 극독이 됨. 분변 거름구덩이면 폭발할 수 있는건 덤★) 그래도 그 사이에 내부 온도가 70~80도는 우습게 넘길 정도로 올라감. 홍어를 박아놓으면 그냥 삶아진다고 이 쌀나무도 모를 무식한 새끼들아! 


여튼 연골어류는 경골어류보다 '덜 상하는' 편이지 안 상하는건 아님. 연골어류의 몸에 축적된 요소 자체는 냄새가 없음. 물고기가 죽고나서부터 이게 암모니아로 분해되어(암모니아는 원래 CHO에 N을 붙였다 뗐다 하는 단백질 대사에서 발생하게 되어있지만 어쨌든 그 자체로는 생물에게 극독이라 요산이나 요소로 한번 더 합성하는 기전이 있음) 냄새가 날아오르는 주작이 되는데 이 냄새를 '운송 중 숙성이 진행된' 신호로 받아들이는 쪽에선 잘 삭은 냄새라고 하는거고 '잡은지 시간이 지난' 신호로 받아들이는 쪽에선 냄새를 날리는 쪽으로 조리하는거임.


하우카르틀은 그린란드 상어의 살에 축적되어있는 TMA를 산화시키려고 황태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묵히는거라 유래물질이나 제조과정 특성상 암모니아 공장과 에폭시 공장이 동시에 터진듯한 살인적인 악취로 유명한거고


수르스트뢰밍은 소금 조달 문제때문에 바닷물을 퍼넣고 틀어막은게 유래임(.) 원래 고위도 저압대 바다는 강수 등에 의한 유입량보다 증발량이 후달려서 바닷물 염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발트해 바닷물이 유별나게 염도가 낮음. 생리식염수만도 못한 바닷물 대충 부어놓고도 삭는걸로 끝난게 북구의 신비임 진짜... 물론 요즘 깡통 수르스트뢰밍은 발트해 직송 바닷물 아닙니다 국민여러분


수르스트뢰밍이 대서양 청어가 아니고 스웨덴 앞바다에서 잡은 씨알 작은 청어로 만들었단데서 알 수 있듯 원래는 생선 절이는데 소금 팡팡 쓸 돈이 없었던 옛날 스웨덴 어부들 안습한 사정이 기원이었던 거임. 솔직히 스웨덴은 북해 유전 터지기 전엔 금발(+그나마 왕국이라서 왕족 해볼수 있음; 현 왕조 시조부터가 소꼬리보다 닭대가리가 낫다며 나폴레옹 통수친 나폴레옹 부하임ㅋㅋㅋ) 빼면 볼 거 없는 나라 취급이었음.


여담으로 네덜란드 가공 청어도 옛날에 바닷물 부어넣긴 했는데... 그건 고깃배에 싣고 올 때 얘기고 육지로 가져오면 초절임이나 훈제로 재가공했지 스웨덴처럼 그걸 그대로 삭혔다 먹진 않았음(.) 네덜란드는 원래 중세시대부터 유럽 북대서양 어장에서 놀던 나라임. 어장도 다르고 생선도 다르니 수르스트뢰밍처럼 냅두면 큰일남


보이저호 탈출궤도 타던 얘기를 다시 비저의 귀환으로 돌려서 그럼 왜 육고기는 '삭힌' 음식이 없느냐?


없긴 왜 없어? 야매 공장제 말고 전통 제작법에 비춰봤을때, 생햄이나 육포같은 비가열 육가공식품 사실 따지고 보면 단백질이 '삭은' 감칠맛을 끌어낸 식품임. 본연의 목적은 보존성을 높이는 데 있지만 그 과정이나 첨가물에 의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임. 원래 육포는 볕 좋고 바람 잘 부는 봄가을에 직사광선에 두고 말렸단 말임. 직사광선에 말리면 자외선이 단백질을 개발살내주는 것임. 위생이야 열풍건조기로 말린게 당연히 우수하고 빠르고 균일하게 건조되겠지. 자연건조는 안개만 맞아도 곰팡이 날 판인데


왜 처음에 갑자기 공자님 고기젓갈 얘기를 했냐면 공자 가라사대 '내게 배우고자 한다면 육포 한 속이면 족하다'라고 한 것과도 관련이 있음. 공자가 미친 고기매니아라 수업료로 비첸향 비-프 져-키를 바쳐라 이게 아니고 육포는 예물의 최저선이었음. 자기 제자가 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예를 갖춰" 찾아오라는 소리임.

 

역사적으로 별미로서 날음식을 전혀 먹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날것을 그대로 쳐묵하는것보다 문명한 사대부답게 '법도에 맞게' 즉 적절하게 처리하고 정성스럽게 손이 간 음의 격을 훨씬 높이 쳤음. 예물이나 선물이랍시고 상하기 쉽고 손도 많이 가는 생고기 갖다주는건 예절 생략한 사이가 아니면 니가 만들어 나한테 올려라 or 너한텐 말려서 갖다주는 수고도 아깝다 수준의 비매너였음. 옛날부터 생각해봐라 예를 갖추어 술, 꿀, 장, 육포, 젓 등을 갖추어 보냈다고 하지 흑우 생갈비 한짝 보냈단 얘기가 어딨냐


공자는 제대로 된 해(식해 할때 그 해; 일명 고기젓이라고 하는 고기 가공식품으로 추정되는 그 무엇)가 올라오지 않았다던가 고기 썬 꼴 글렀다고 밥을 먹지 않았다는 기록→후대에 백성들은 풀뿌리 캐먹는데 대충 처먹지 존나 지랄이네 하는 오해가 생긴것. 

현대의 관점에서 공자와 제자들의 가정생활이라든가 고기젓 얘기 보면 야 이거 반동새끼네 싶지만 그네들 입장에선 '예禮'로서 제도한다는 사상에 근거해 실천한 것 뿐임.

이 양반은 역성혁명이나 막나가는 아나키스트나 원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사회의 질서를 복구할 방법을 역사에서 추구한 사람임을 잊어선 안됨. 말해놓고 보니 반동 맞네 공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주나라 시대의 질서에 기반한 자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비록 자신이 공경대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예법을 아는 사(士)로서 아무거나 아무렇게 먹으면 안된다고 여긴거임.


제후와 공경대부는 원래 왕과 그 측근 유력자들의 신분이고 그들과 혈연이 아니면서 조정에 등용된 자들은 사(士)였음. 서주~동주시대 통틀어 공자 본인이나 자로처럼 조정에 스카웃된 친구들 말임. 지배계층이 전투의 중심인게 당연하던 시절이니(인人은 지배계층이고 민民은 피지배계층을 일컬었음. 춘추시대 후기인 손무병법 제첫번째 챕터인 시계편에서 사생지지 존망지도는 별 같잖은걸로 전쟁 벌였다 전투 좆되면 너네부터 뒤집니다 원래 이 소리였던거임. 그렇게 지배계층이 자기 휘하의 힘쓰는 놈들 즉 士를 동원해 전차타고 싸우던게 춘추시대의 전쟁이었음. 트로이 전쟁ㅇㅇ 전쟁준비엔 국력이 소모된단건 마찬가지지만. 그러다 다수의 민民을 전면적으로 동원하는 국가총력전 성격으로 변한 전국시대의 오자병법은 장수가 장병을 자식처럼 아낄줄 알면 장수를 위해 불속에도 뛰어든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거임.) 사(士)도 당연히 무력을 갖추어야 했음. 공자 피지컬이면 자로를 참교육 가능했을거란게 반쯤은 농담이지만 예수 쥬-윅설보다는 좀 더 말이 되기도 하는게 팩트임. 춘추시대에 제후국 사이를 떠돌며 70 넘게 살았다는걸 보면 평상시의 음식 조심+타고난 피지컬 비범했던게 맞는것도 같음ㅋㅋㅋ 여튼 장기에서 궁에서 장군을 호위하는 말이 사(士)인것도 거기서 유래함. 후대에 생각하는 붓 든 선비가 아니라 무장귀족이란 말임.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얘기 아니냐? ㅇㅇ그러함. 사무라이 계급의 형성과 그들이 지배층으로 대두하는 얘기랑 비슷하지? 


나중에 문벌귀족이 주요 관료직을 독점하는 체제가 붕괴하고 과거제가 본격화되면서 기존의 중앙귀족이 아닌 지방의 유력자들 즉 향신(鄕紳)이 마침내 중앙관료로서 진출하게 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음. 즉 기존의 사(士) 정도에나 한정되던 사람들이 중앙 관료=대부(大夫)의 직책에 정식으로 등용될 수 있게 되어 사+대부=사대부란 말이 생긴게라. 삼정승과 육조판서도 거슬러 올라가면 삼공(三公)구경(九卿)에서 유래한거임


어쩌다 사대부 얘기까지 왔냐면 정신적으로 왕=프린켑스 오브 사대부인 조선시대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이기야.  조선시대는 왕부터 동성동본 금혼을 철저히 지켜 양반가의 여식과 결혼했고 내외명부의 교류가 잦아 (눈치보여서 어느정도 제한이 있긴 하지만) 양반가의 음식과 궁중의 음식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함.


황혜성 할매와 제자들이 "수라상 배워놓고 당면 넣은 가난뱅이 잡채같은거 만들지 마라" 외에도 들은 얘기가 "양념도 안한 생고기를  막 구워먹는건 길바닥 패거리나 하는 짓"이란 소리였음. 야키니쿠 스테이크 헤으으응 하는 요즘 들으면 이게 뭔 개소리야 싶을텐데 그건 냉장이 발달한 요즘 얘기고 옛날에 갓 잡은 날고기 바로 구워먹는 경우가 어떤 경우일까? 유목민 즉 오랑캐 아니면 주원장 프렌즈들임. 중팔이가 목동 노릇 할 시절에 너무 배고파서 친구들이랑 송아지 잡아먹고나서 주인한테 먼지나게 맞고 쫓겨났단 일화 말임. 그 상황에서 무슨 고기젓이나 양념불고기를 해먹겠냐고ㅋㅋㅋ 물론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 음식과 성격이 전혀 다른 서민음식인 국밥은 그러거나 말거나니까 일단 논외.


고유의 회 문화와 별개로 '최대한 신선한 고급 식재료를 구해, 인공적인 처리를 최소화하고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을 고오급으로 치는 일본 식문화의 이미지는 원래 에도 상류층 한정이었음. 일본에도 각지 향토음식은 짜--------디짜게 절여 숙성한 보존식 많음. 내륙 교토의 공가 귀족 중심으로 한 '담백한' 식문화와 바닷가 뻘창을 메꿔 지은 바닷가 남초도시 에도의 식문화, 에도 막부의 정이대장군을 필두로 에도에 모여살게 된 사무라이 계급의 관료화, 체면을 중시하는 무가 문화, 공가와의 교류, 전후 일식 이미지의 고급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합쳐진게 지금의 고급 일식의 이미지지 원래부터 그랬던 것도 아니고 모든 지방이 다 그랬것도 아님. 오히려 위생상태가 불안했던 옛날엔 아무것도 안 친 진짜 날음식을 요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게 여겨서 형식적으로라도 밥이나 네타에 식초를 가미한 거임.


토요토미가 박살난 뒤 상인의 왕국이 된 오사카와 달리 관료화된 사무라이 계급이 상주하는 도쿄 즉 에도에선 결국 비지니스-의 상당부분이 사무라이와의 접촉이었고 그에 따라 문화적 분위기나 취향도 갈리게 됨. 서로 실속없는 빡대가리니 천박하게 돈만 밝히니 하다하다 우동까지 까대는건 그런 수백년의 히스토-리가 있는거임. 원래 오사카는 난바 또는 나니와(難波)라고 왕인 박사 시에도 나오는 지역이고 에도는 도쿠가와 막부에서 간척사업 할때까지 있지도 않은 땅이었으니 간사이 사람들이 "누가 누구더러 촌놈이래" 할만도 하지


참고로 일본에 드릅게 비싼 선물용 과일이나 과자가 많은건 "돈을 그대로 주면 그건 뇌물이고 패물이나 귀중품은 너무 속보이니 계절감 드립도 칠 겸 과일이나 과자가 무난하다"에서 발달한거임. 나로서는 한 송이에 백만엔짜리 포도같은거 보면 여기도 나라에 돈이 없는게 아니라 도적놈들 천지인 게로구만 싶지만(솔직히 오사카 사람도 그래봤자 포도가 포도지 미친놈들이라고 할 거같음)


현대에 와서 전과 같은 자연숙성 가공육 즉 '삭힌 고기'가 드물어진것처럼 보이게 된건 식품 유통과 가공 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보존식의 필요성이 감소한것(예시: 참치, 우유 등), 기생충이나 세균감염 등 식품위생에 관한 인식 변화, 과거에 비하면 일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화 교류, 거기에 양차대전을 비롯한 근현대의 더욱 파괴적인  전쟁과 전후 재건의 영향도 매우 크다고 본다. 6.25는 신분차별조차 박살냈다고 할 정도로 남한 입장에선 남아난 게 없는 전쟁임. 그 후엔 산업화와 핵가족화로 전처럼 손이 많이 가는 숙성 보존식을 하기가 어려워졌고 필요도 없어졌음. 그나마 최저선으로 살아남은게 김치임. 뭐 동로마 멸망하고 같이 망한 로마표 생선젓갈같이 기록만 남은 단절 사례는 찾아보면 과거부터 얼마든지 있다만


한국에서 식문화 특히 육식문화가 얼마나 격변했냐면 내 아버지 세대는 한 달에 월급 삼십만원 받던 시절 돼지 삼겹살 사와서 구워먹었고 월급이 세 자리 됐을때(물론 물가도 많이 올랐다 전화요금이 5원짜리 넣다가 30원 넣었으니) 목살 먹었음. 내 어렸을때도 삼겹살은 부위별 가격 순위를 뒤에서 세는게 빨랐음. 삼겹살에 미친 이 시대가 납득이 안 갈 따름이지


고기를 얼마나 구워야 좋은지도 아버지한테 배웠고 갈치가 싱싱하면 갈치국 끓이듯 하얗게 익혀도 일품이란 것도 아버지한테 배움. 어머니가 요알못이라 그랬다기보단 원래 남자가 제수 준비하거나 먹고 살만한 집안 출신이면 고기나 생선을 훨씬 잘 다뤘음. 집집마다 가풍이 다르다지만 개인적으론 ㄲㅊ떨어진다, 제사준비는 원래 여자가 다 하는거라고 화투치고 소주나 빨고 있다고 그런 소리 들으면 근본없는 놈들이 뭐하러 제사지내냐...그런 극단적인 소리까진 아니어도 사대부 중에도 요리왕 많았다는 고사 모르냐 싶긴 함. 음식을 모르면 공자 코스프레도 못한다 새끼들아


아니 또 얘기가 핼리혜성 되어버렸누 ㅅㅂ;;; 여튼 멜젓이나 수르스트뢰밍같은 삭힌 고기는 지금은 전보다 드물어진게 사실이지만 알고보면 전통의 진미로서 남아있는 숙성육 음식은 꽤 됨. 주로 비가열 숙성햄이나 소시지의 형태로 많이 남아있음. 삭혔다=지독한 냄새가 나는 괴식이란 선입견이 있다면 잠깐 내려놓고 그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 잠깐만 시간을 내서 검색해봤으면 해. 그러면 무작정 괴식이라고 웃음거리로 삼는것보댜 훨씬 건설적일거야.


물론 냄새가 강렬한 정도를 넘어 안받는 수준인 것도 있단건 부정 안함. 나도 키비악같은건 굶어죽느냐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하다 굶어죽을거같거든.


추신: 진짜로 사람 확찢해서 고기젓 만들기도 했다만 극도의 공포심 조성이 목적이지 진짜 먹으라고 만든건 아님... 역사상 인두겁 쓴채로 사람 포기한 것들이 없진 않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