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Scan the shade




“아니, 이 미친년이 도대체 몇 번 말해?!”


불이 꺼진 브릿지 안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에 부상 중인 선체도 놀랐는지 덜컹덜컹, 흔들리고 있다. 현실부상과 다이브를 견디기 위해 단단히 고정해뒀음에도, 레이더를 비롯한 각종 계기 장치들이 들썩들썩 춤을 춘다. 하지만 그 눈동자만은------


“⋯”


해왕성처럼 차갑고, 푸르고, 깊고, 어두운, 그 시각 정보 수집기는 초점을 맞춘 우주망원경처럼 미동조차 없다. 이 흔들림 속에서, 행성의 자전주기를 맞추듯이 천천히 움직이며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기계의 전원 표시등이라도 되는 양 일정하게 빛을 뿜고 있다. 



“방금으로 5번이 됩니다.”

“와하⋯!”



푸른 눈의 말에, 남자는 감탄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다 손에 잡히는 게 없자 한숨과 함께 내려놓는다. 리모컨이라던가 무전이 있었다면 분을 참지 못하고 그 눈을 향해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선을 넘지 않은 안도가 한숨으로 뿜어졌다. 



“다시 한번 고지합니다. 계약을 이행하시죠.”


그런 남자의 열띤 표현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푸른 눈이 입을 열고, 한숨 덕분에 조금 가라앉은 남자가 다시 폭발하고 만다. 


“아니 그러니까, 여기 이면세계라고 이면세계! 알아? 아냐고?!”

“네.”

“네? 네? 네?! 그럼, 내가 뭐라 그랬어. 니가 말한 좌표로 못 가는 이유!

 그 좌표로 가는 항로에 이변이 발생했다고! 그러니까 지금 못 가. 현실부상 해야 한다고!”



남자의 말에 주변이 푸른 눈을 쳐다본다. 푸른 눈이 대답한 것처럼 똑같은 대화가 벌써 다섯번째. 등 뒤에서는 ‘이제 그만 좀 하지’라는 눈초리.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눈은 여섯번째를 입에 담는다. 



“그 문제의 답은 간단합니다. 항로를 수정한 뒤 계속 다이브 하면 됩니다.”

“아⋯아⋯아아아아, 아오!!! 그러니까, 여기 고심도라고. 고심도 알아들어? 여기서 정규 항로가 아니라 수정하게 되면 다른 차원이변에 휩쓸릴 수도 있다고. 그리고, 뭐. 니가 말하는 대로 운 좋게? 어? 그 안전하게 다이브가 가능한 항로라고 치자, 이 고심도 밑바닥에 안전한 곳에 뭐가 있겠어?”


푸른 눈의 말은 타당했고, 남자의 대답도 타당했다. 정규 항로에 생긴 차원이변이라면 피해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고 있던 좌표는 이면세계 중에서도 깊은 곳. 이미, 보통의 고심도 채굴지라고 부를만한 곳을 넘어섰다. 여기서부터는 ‘공식적’으로는 미 탐사 구역이다. 설령 탐사했더라도 고지하지 않는 곳. 관리국에서는 다이브를 금지한 곳. 그런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뻔하다.


고준위 침식파, 고등급 침식체, 혹 운이 좋아 안전하다면 그곳은 필시 현실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부류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있을 것이다. 다이브 중 정규 항로가 막혀서 다른 길로 빠져든 먹잇감을 먹기 위해 대기하는 장소. 이 이면세계의 레이어가 산처럼 이루어졌다면 그들은 산적이라 불렸을 것이고, 바다처럼 심층으로 이루어졌다면 해적이라 불리는 존재들. 스캐빈저.


푸른 눈은 그 위험성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변함없이 미동도 없는 눈으로 답한다.



“제가 거기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아, 진짜 미쳐 버리겠다. 이 씨발, 야! 뭐해. 얼른 현실부상 항로 점검이나 해.”

“아, 넵.”



남자는 고개 돌려 둘의 대화를 쳐다보고 있던 여성에게 소리친다. 달달달 떨리는 시트 위에서 이 지루한 반복, 내려가자는 이와 돌아가자는 이의 기 싸움. 이 대화는 화가 난 남자 쪽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브릿지에 있는 다섯 승조원 중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시트가 떨리고, 계기판이 흔들린다. 이 작고 낡은 선체로 용케 이 고심도까지 다이브했다. 아무리 위법 다이브라 해도 충분한 항해 실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비루한 차원함정으로는 차원이변의 주변에 다가가기만 해도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임은 승조원 모두가 인지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아 다른 차원에 내뱉어지는 거라면 다행이지, 이 낡은 차원함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악한 골동품-은 이변과 맞닥뜨리는 순간 용접 이전의 부품들로 분해 될 가능성도 있다. 



“⋯”



푸른 눈은 지쳤는지 그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남자는 오른손을 내젓는다. 휘 휘. 알아들었다면 얼른 선실로 꺼지라는 듯이.


푸른 눈이 반응하지 않고 쳐다만 보자, 브릿지는 다시 고요를 되찾는다. 

‘심도 상승률 안정적입니다.’ ‘차원 항로 오차율 0.2’ 등의 있어야 할 말만을 채운다. 동시에 그 무감정한 현황보고와 승조원들의 등이 푸른 눈을 때린다. 그만하고 얼른 나가달라는 무언의 압력.



“야, 중간부터는 관리국 공인 항로로 들어가는 거 알지? 우리가 올 때 들어 왔던 루트로 몰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네, 그렇게 할게요.”



푸른 눈은 아예 자신을 무시하는 남자와 승조원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마치 파노라마 사진이라도 찍는 듯이 천천히 좌에서 우로 전부를 스캔. 그런 뒤에



“컥!”



손을 뻗었다. 

선체가 크게 흔들린다. 현실부상으로 인한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철판이 크게 흔들리는 소리.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촉각적이었다. 고기의 비명과 철을 때리는 파동. 낡은 함정이기에 외부장갑은 다이브나 이면세계 탐사를 위해 이터니움 합금을 사용했다. 하지만 내장재는 다르다. 일반, 그러니까 종래의 철판과 철골. 

덕분에 선장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날아간 뒤쪽 벽은 그대로 찌그러진다. 위력보다는 단순히 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철에 부딪힌 인간의 어딘가가 부러지지도 않았으니. 



“이⋯이, 미친⋯”

“⋯”


푸른 눈이 걸어간다. 고꾸라진 남자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 올린다. 벽에 밀어붙여서, 다시 한번. 쾅.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계약대로 지정한 좌표로 향하십시오. 휴먼.”

“이, 이이⋯미친⋯그러니까, 며, 몇 번 말해⋯이면세계⋯”


오른손이 남자의 얼굴을 스친다. 새까만 장갑이 철판을 찌그러트리다 못해 뚫어버린다. 그 충격으로 뒤에 있던 항해실의 찬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네, 이면세계 어디든지 보내준다고 계약했을 겁니다. 휴먼.”

“이, 이래서⋯씨발, 관리국 비공인 좌표로 가자는 새끼들은⋯!”

“당신이 계약 당시 했던 음성 데이터를 들려 드릴까요? 저는 지금 정당한 계약이행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틀립니까? 휴먼?”



푸른 눈은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머리 두 개 정도의 키 차이. 하지만 그 손에 붙들려있는 건 남자다. 


남자도 이제야 푸른 눈을 직시한다. 현실부상을 위해 계기 외에는 전등은 끈 브릿지. 하지만 빛을 잃지 않는 그 푸른 눈동자. 해왕성처럼 차가운 그 아래, 지이잉, 지이잉. 자신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있는 카메라를 확인한다.

육식 동물의 그것과도 같은 세로 동공 안의 차디찬 렌즈. 


그리고서, 브로커를 저주한다. 머리에 로봇청소기를 두 개나 단 미친 꼬맹이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지정한 좌표로 보내달라.’ 라고 했을 때 봉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이만한 차원이변이 생겼는데도 다이브하자고 하는 미친년일 줄이야. 게다가, 멱살을 쥔 손아귀의 힘이 이상할 정도로 강력하다. 뿌리칠래야 뿌리칠 수 없었다. 



“으으윽⋯!”



이제야 알았다.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는 지금에서야 눈앞의 푸른 눈의 정체를 깨닫는다. 가이노이드.


처음에는 무슨 대단한 짓을 저지른 범죄자가, 이쁘장한 여자애로 전신 성형한 건 줄 알았다. 고심도 이면세계에서 조난자 행세라도 하며 행적 세탁을 하는 일을 종종 거들어 왔었기에.


“거듭 고지합니다. 계약대로 이행하시죠.”

“야, 적당히 해라.”


가라앉은 말과 함께 철컥, 하고 장전되는 쇠의 소리. 푸른 눈이 돌아본다. 조준한 것은 항로 계기를 보고 있던 승조원 남성.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 건지, 시트 밑에 두었던 총기를 꺼내어 겨누고 있다.



“대가리에 빵꾸나기 싫으면 선장 내려놔. 이 미친년아. 여기 이면세계야. 누구 하나 죽어도 대충 둘러대면 아무도 몰라. 설마 관리국이 통행금지 박은 좌표로 가려던 년이, 관리국 핑계 댈 건 아니지? 그 새끼들도 귀찮은 일은 존나 싫어하거든?”


“아까부터⋯

 지금 제 사고회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휴먼들.

말씀하신 대로 여기는 이면세계입니다. 현실부상 중이지만. 그렇기에⋯”



푸른 눈이 만약, 아집이 없었다면 방금은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이걸로 일곱번째, 그녀는 감정을 일축하고서 사실만을 답한다. 



“역으로 당신들이 전부 죽어버려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고, 제게도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이 미친⋯!”



환경이 위협적이라면 그건 이 공간에 있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니 날뛰면 죽여버린다는 말은 내뱉은 본인에게도 마찬가지인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푸른 눈의 그녀에게는 처음부터 위협이 될 수가 없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총구에게 시선을 던진다. 감정 없이, 차갑게. 마치 기어가는 개미라도 보듯이. 


“그리고, 그런 싸구려로는 제 수금용 위력 행사 프레임에 흠집조차 나지 않습니다.

 밀항선이라면 하다못해 CRF 집약탄이 사용 가능한 총기 구비를 추천해 드리죠. 정식 구매 절차가 어렵다면 비공인 루트를 알려드릴까요? 

안심하시길, 정식 A/S는 어렵고 불량률은 있지만 1종 침식체라면 어떻게든 대응은 가능한 사양입니다. 휴먼.”


“뭐⋯?”


“아, 혹시 재정이 여유롭지 못하다면, 여신 관련 상담 업무를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본점은 휴업 상태지만, 출장소 개념으로 문제없습니다.

 법정 최고 금리로⋯”



“이 미친년이!!!”


까르륵, 노리쇠가 후퇴하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총을 겨눈 승조원은 확신했다. 미친년이다. 침식증후군에 걸렸거나, 아니더라도 그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제 정신이 아님을 확신하고 손가락을 당긴다. 


“야!!!”


그 행동을 걷어낸 것은 벽에 붙들린 남자의 외침.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이 멈춘다.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들어 올린 뒤 내린다. 그 움직임에 겨눠졌던 총구도 따르고 있다.



“⋯현실부상 시퀀스 그만하고, 다시 다이브 해.”

“형님!”

“시키는 대로 해! 항로 수정해서 최대한 안전한 루트로 진행해. 야 타기! 뭐해?!”



남자가 손으로 지시한 뒤, 푸른 눈을 바라본다. 크롬 질감의 머리색. 불이 꺼진 이 브릿지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멱살을 붙잡은 손은 장갑을 썼다고는 하나, 한없이 차가웠다. 사람이라면 위협이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자신도 죽기 싫으니까. 하지만 이 가이노이드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마, 명령한 누군가가 이 가이노이드를 만든 누군가가 입력한 정보대로.


해당 좌표로 가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사람이 아닌 기계를 보낸 거겠지. 


남자는 다시 한번 브로커에게 욕지거리를 보낸 뒤, 

푸른 눈에게 ‘이걸로 됐지?’ 하는 시선을 보낸다.  멱살을 잡았던 손이 거두어진다. 



“켈록, 켈록. 후우, 니가 말한대로, 계약대로 한다.”

“좋습니다. 계약대로 그 좌표로 향하기만 한다면, 위력행사로 나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이 빌어먹을 깡통아.”


비틀거리며,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가는 남자. 푸른 눈의 시선도 따른다. 


“말조심하시죠. 살덩이. 제 프레임은 적어도 이 낡아빠진 밀항선과 당신들 전부의 목숨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으니까요.”


“하, 지랄병하고 있네. 머리에 로봇청소기나 얹은 주제에. 계약대로 해줄 테니까 얼른 선실로 꺼져!”




















원제

Scan the shade

-1










그들은 확실히 계약대로 지정한 좌표에 도착했다. 이변이 발생한 항로를 돌아, 다이브 심도를 조절해가며 어떻게든 다이브에 성공했다. 다만, 진짜 계약대로. 지정 좌표에 도착하자마자 푸른 눈이 있던 선실을 퍼지 시킨 후에 곧바로 현실 부상. 2인용 선실, 철 상자째로 200M 상공에서 그녀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라졌을 뿐.


새까만 하늘. 마치 흑연으로 만든 것 같은 하늘 위에 누런 구름.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헤집고 떨어진 선실은 그대로 몇 번이고 구른다. 다행히 지면은 모래. 경사진 곳이었기에 떨어진 충격으로 박살 나지 않고 이리저리 구르다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철판으로 되돌아간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즉사했다. 처음 떨어진 충격만으로 즉사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구르는 동안 반죽기 안의 반죽처럼 질어져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분해 된 선실. 철판과 한 때는 뼈대였던 막대사탕. 모래 더미. 그 잔해 속에서 손이 튀어나온다. 까만 장갑. 그 아래, 더러워지긴 했지만 화려한 점퍼. 새빨간 바탕 아래 금색 용이 튀어나오더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푸른 눈이 일어선다. 탁탁탁, 이미 옷 안 곳곳에 들어찬 모래와 분쇄된 쇳가루들을 털어내고 있다. 


“소체에 이상은 없지만, 다음부터는 계약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겠군요.”



지정한 좌표는 이면세계. 그 안에서는 어디에 내릴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렇다 한들 이러한 처사는 거의 사기에

가까웠다. 개복수술을 요청했더니 수술 후에 열린 배를 닫지 않고 집에 돌려보내는 꼴. 하지만 푸른 눈의 말대로

계약한 사항을 이행한 것이다. 


계약한 사항만.


이러한 것은 그녀의 나쁜 버릇이었다. 좋게 말하면 와일드, 나쁘게 말하면 그 외의 것은 신경 쓰지 않는 행위.

마치 적혀있는 문제의 답만 적을 수 있다면 커닝을 하든, 시험관에게 총구를 들이밀든 상관없다는 사고방식.


그 부작용이 이번에는 그녀에게 돌아왔을 뿐이다. 


별 대수롭지 않게 몸을 터는 푸른 눈은 점퍼 소매가 찣겨져 나간 걸 발견하더니 잠시 멈춘다. 그리고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



뭔가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뒤로 돌린 시선. 그녀의 수트케이스였던 것의 손잡이만이 남고, 나머지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혹은 처음부터 저 잔해들의 스크램블드에그였다는 것처럼 널브러져 있다.



“술도 케이크도⋯뭐, 괜찮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듯 푸른 눈은 남은 손잡이마저 놓기로 한다. 애초에 저 물건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지금 소매가 튿어진 옷조차도. 그러니 미련은 없다. 


“선후관계로 들면 그 둘은 회사 비품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물건도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사라지지 않자 푸른 눈은 포기한다. 옷을 전부 벗고, 머리카락 속까지 씻어내지 않으면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서 감내하기로 한다. 


“그나저나, 대시도 그렇고 조금 전의 남자도 그렇고 제

방열판을 이상하게 부르는군요.”


“뭐, 됐습니다. 휴먼의 감각적 센스는 개체차가 있으니까요.”



그러고선, 푸른 눈은 시선을 멀리 던진다. 황야. 흑연으로 만든 것 같은 척박한 땅. 비추는 해는 보이지 않지만 어둡지는 않다. 물론 어둡더라도 그 정도의 암야. 그녀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이 거리라면 그쪽이 더 가깝겠군요.”



발걸음을 옮긴다. 경사진 모래 구덩이를 벗어나 걷기 시작한 뒤에 이곳이 절벽에 가까운 지형임을 파악한다. 

그녀는 마치 익숙한 귀갓길의 지하철 환승구역처럼 능숙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스산하게 깔린 침식파와 때때로 불어오는 검은 바람, 그녀가 혐오한다고 하는 인파가 없는 것.



그 고즈넉하기도, 을씨년스럽기도 한 정적을 가르며

몇 개나 되는 괴성이 끼어든다. 무시하고서 걷는다.

하지만 그녀의 감각은, 수용체계는 분석과 판단을 끝마쳤다. 



차량, 그것도 세 대 이상. 괴성, 아마 남자들의 것. 조잡한 엔진과 뒤섞인 기계음.



침식체가 아니다. 곧이어 들려오는 진동. 그녀가 선장을 내던졌을 때와는 또 다른 폭력의 소리. 타이어가 마모되고 철제 프레임이 지면을 미끄러지는 역겨운 굉성. 웃음소리. 터져나가는 엔진.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한 오일. 




그리고, 그녀 앞을 구르며 튕겨 나온 여성. 



“⋯”



무시하고서 걷는다.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 환승구역을 빠져나가듯이 푸른 눈은 걷는다. 




“으⋯으으으윽⋯사, 살려⋯”

“감히 도망을 쳐? 이 쓰레기 같은 년이?”



비포장도로를 미끄러지며 감속하는 타이어. 웅웅하고 거칠게 우는 엔진음. 마치 싸구려 앰프에 물린 것 같은

남성의 목소리. 


“음? 넌 또 뭐야?”


푸른 눈의 뒤에 멈춰 선 두 대의 차량에서 내려온다.

거대한 파일 벙커를 든 남자와 로켓 런처로 보이는 무기를 든 남자. 남자라고 하기엔 목소리뿐. 전신을 덮은 것은 침식 방호복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했다.


군데군데 이어진 파이프와 조잡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합금들. 마치 누더기를 기워 맞춘 것 같기도 했다.


“⋯”




하지만 그런 괴이한 광경에도 푸른 눈은 앞을 향해 걷는다. 환승구역에서 누가 델리만쥬를 먹고 있어도, 누가 구걸해도,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도, 자신이랑 상관없는 것처럼. 그저 걷는다.





“어이, 거기 꼬맹이. 넌 뭐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으면 일단 갈겨 요술봉? 침식체 아냐?”




“⋯”



그들이 쫓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그 여성보다, 무시하고 지나치는 푸른 눈에게 쏘아지는 시선. 그 의심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다. 노말 사이드라면 모를까, 이곳은 카운터 사이드. 불쑥 사람이 튀어나와서 될 곳이 아니다.


하물며,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시하고 걸어가는 여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가능성은 자연히 푸른 눈동자의 그녀는 침식체다. 드문 인간형 침식체. 아니면 도플갱어나 또 뭐든 알게 뭔가. 남자는 겨눈다. 

대인용이 아니지만,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뭘 쏘든 낭비가 아니라고 말하듯이 손가락을 당긴다. 굉음이 하늘을 울린다. 



“도, 도망 쳐요!”



일어난 폭발에 쓰러진 여성이 몇차례나 굴러떨어지고, 

빛과 열이 쏟아지고 있다. 휘유하고 그 광경에 찬사를 보내는 남자와 성큼성큼 걸어가는 파일 벙커를 든 남자.



그리고. 





“⋯적대적 행위를 확인했습니다. 당연히 각오는 되셨겠죠. 휴먼?”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푸른 눈이 그들을 돌아본다.

해왕성에 빠트릴 것 같이, 차갑고, 깊고, 어둡고, 에는 듯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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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 제목 좋아 보이는 게 있어서 긴빠이함.


그리고 챈럼들이 어그로 제목으로 하라고 해슴






울않너 이전의 시점이고 딱히 읽어도 스포일러가 될만한 건 없음. 그늘의 밑바닥 직후 또는 조금 시간이 지난 시점이라 호라이즌의 캐릭터성, 성격을 조금 매섭게 잡았음.


제가 개씹찐따아싸거북목유방단힙스터충이라 모두가 좋아하는 호라이즌은 이번에 처음 다뤄봐서, 어설프지만 이쁘게 봐주세오. 


저번 짭지아처럼 맵다거나 19금 같은 거 없는 평탄한 휴먼드라마에요. 아 호라이즌은 인간이 아니니 깡통 드라마인가. 


길게

안할거니까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