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4)

― 조상님









“답답하군요. 이 병아리. 손에 쥐면 바로 터질 것같이 생겨먹어선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안 되고 있잖습니까.”


“웬 병아리?”




우리 집엔 병아리가 없는데?


나는 핸드폰을 보다가 소파에 앉아 짜증을 내는 호라이즌 쪽으로 돌아보았다.




“언제 병아리라도 데려왔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김카붕. 이걸 보십시오.”




[ 호라이즌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로봇? ]


[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한 수금업자예요. 호라이즌의 행패에 당한 채무자들은 그녀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반응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고 해요. ]


[ 정정을 요구합니다. 로봇. 그저 취미일 뿐입니다. ]


[ 호라이즌은 취미로 채무자를 괴롭힌다고 하네요. ]


[ 상대방이 대화방에서 퇴장했습니다. ]


[ 아~ 피곤해. 오늘은 저 먼저 자야겠어요. 내일 또 저랑 놀아주세요! ]


[ 리소스를 낭비하게 만든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만. ]


[ 아~ 피곤해. 오늘은 저 먼저 자야겠어요. 내일 또 저랑 놀아주세요! ]


[ 제시된 카탈로그 스펙에 비해 형편없군요. 사기가 분명합니다. ]


[ 심심이는 미친 깡통이 아니에요. ]


[ 엿이나 드십시오, 로봇. ]





“봤습니까? 같은 인공지능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당장 이 멍청한 병아리의 딥러닝 신경망을 끊어버려야겠습니다.”




호라이즌이 휴대폰을 내려치기 직전, 나는 질겁하곤 재빨리 호라이즌의 오른팔에 매달렸다.




“자, 잠깐 멈춰! 부수면 안 돼⋯! 전용 단말기 재발급받으려면 오래 걸린다고!”




내가 매달린다고 해서 진심으로 내려치려는 호라이즌을 막을 순 없겠지만,

다행히 호라이즌은 내가 팔을 붙잡자마자 동작을 멈췄다.




“저 병아리 때문에 평소보다 감정 리소스 비중이 이례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휴먼을 봐서 참도록 하죠.”




냉각기에서 쉬이익― 소리가 살벌하게 나기 시작했다.

빨갛게 점멸하는 것이 조금 무섭긴 해도, 일단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이 정체불명의 대화 로그에 관해 물을 수 있었다. 




“그, 그래서⋯ 이게 병아리야?”


“심심이라는 인공지능 챗 봇입니다. 요즘 스레드에서 핫하다고 하더군요.”


“아~ 맞아. 이런 게 있었지.”


“확실히 UI가 많이 낡긴 했습니다만, 이 정도로 저열한 지능일 줄은 몰랐습니다. 휴먼들의 인공지능 기술은 퇴화하고 있는 겁니까?”


“전에는 호라이즌이 제일 우월한 인공지능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당연히 호라이즌보다 뒤떨어지지 않을까?”


“오, 김카붕. 제 카탈로그 스펙이 매력적이고 우월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뒤떨어지는 인공지능은 로봇들에게 있어서 굉장한 수치입니다.”




전에 AI그림에 대해 이야기한게 여기까지 온 건가?

내 생각보다 정말 크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하긴, AI그림은 호라이즌의 말을 빌려 말하면 그저 이미지 생성기였고,

심심이는 커뮤니케이션에 특화된 거니까.


근데⋯

내가 아는 그 심심이 챗봇이라면⋯⋯




“아마 어쩔 수 없는 걸 거야, 이건 2002년에 출시된 챗봇이니까? 게다가 실제 사람 말을 학습하니까 험한 말이 종종 나오기도 하고⋯”


“⋯⋯.”


“업데이트도 관리실패전에 멈췄고⋯⋯?”




나를 빤히 보던 호라이즌이 소파 위에 올려진 핸드폰으로 시선을 흘긋 옮겼다.

빤히 낡아빠진 대화창을 보던 호라이즌은 조심스럽게 두손으로 집어 올렸다.




“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조상님이시군요.”


“뭣?”


“진공관께선 평안하십니까⋯?”




완전 탈룰라급 태세 전환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저 말을 하면서도 굳이 더 건드려 보지 않는 걸 보니 심심이 챗봇에 크게 실망한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유용하게 쓰고 있는 걸 보여줘야겠다.




“호라이즌, 이건 어때? 아직도 업데이트되는 챗봇이 있어.”


“오, 이번엔 기대해봐도 됩니까? 카탈로그 스펙이 어떻게 되죠?”


 “흠흠, 아주 쉽게 알 수 있지. 자 봐.”




나는 자신만만하게 내 핸드폰에서 ChatGPT를 켰다.





[ You : ChatGPT의 카탈로그 스펙을 알려줄 수 있어? ] 


[ ChatGPT : ChatGPT는 Open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로, 주로 질문에 답변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ChatGPT 자체는 물리적인 제품이 아니라 AI 모델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제품 카탈로그 스펙과는 다릅니다. ChatGPT의 스펙을 알려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 대화 모듈이 휴먼들이 사용하는 인터넷에서 수집된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 기반으로 구축되어있군요. 비록 저에게는 못 미칩니다만, 휴먼에 꽤 가까운 부류의 채팅AI라니.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겁니다.”


“마음에 들어?”


“적어도 교류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더 대화해보죠.”


“응. 이거 번역도 해준다?”




[ You : 그 내용을 영어로 써줄래? ] 


[ ChatGPT : ChatGPT is a conversational AI model developed by OpenAI, primarily used for answering questions or engaging in conversations. Since ChatGPT is an AI model rather than a physical product, its specifications differ from those of a typical product catalog. The specifications for ChatGPT are as follows⋯⋯ ]




호라이즌의 얼굴이 점점 내 핸드폰 화면과 뽀뽀를 할 기세로 가까워지는 걸 보아하니, 굉장히 마음에 든 듯했다.




“오, 그럼. 호라이즌에 대해 물어봐주십시오. 김카붕.”


“그럴까? 잘 봐.”




[ You : 호라이즌에 대해 알아? ] 


[ ChatGPT : 물론이죠! ‘호라이즌’은 GAPSUNG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보급형 안드로이드 제품입니다. 원본 호라이즌과 싱크로율이 매우 높아 그녀의 매력에 반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는 안드로이드입니다. ]




ChatGPT의 답변에 호라이즌이 은은한 미소를 짓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닌듯했다.

이왕 띄워주는 거 더 띄워줘 볼까?




[ You : 얼마나 대단한 안드로이드인지 설명해줄래? ]


[ ChatGPT : 네, 그녀는 튼튼한 내구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고인공지능입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데 능숙하며, 실제 사람이 하는 간단한 집안일이나 사무업무, 육체노동에도 능숙합니다. 또한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변경된 다른 소체로 커스텀이 가능하여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


[ You : 인기가 아주 많겠네? ]


[ ChatGPT : 네, GAPSUNG에서 오랜 시간 연구하여 보급에 성공한 고성능 안드로이드 ‘호라이즌’은 ‘호라이즌 매니아’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아, 9999호기까지 양산되어 지금은 매진된 상태입니다. 이후에도 매니아들의 성원에 힘입어 재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아까 그 병아리보다 훨씬 더 유능하군요. 휴먼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된 저와는 다르게 빅데이터를 이용한 만물 백과사전의 느낌이 납니다.”


“그렇지? 호라이즌이 해볼래?”


“거절할 이유도 없죠.”




이젠 기분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대놓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늘 시니컬한 무표정보다는 웃는 게 더 예뻐서 좋지.


내 핸드폰을 받아 간 호라이즌의 미소가 너무 귀엽다. 크윽⋯




“혹시 휴먼들의 농담도 할 줄 압니까? 빅데이터는 확인했으니 커뮤니케이션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될걸? N행시 같은 거 한번 시켜봐.”


“바로 해보죠.”





[ You : 로봇, 혹시 N행시도 할 줄 압니까? ]


[ ChatGPT : 물론입니다! "로봇"이라는 단어로 N행시를 해드리겠습니다. ]

[ 로: 로봇이 움직이는 모습은, ]

[ 봇: 보이지 않는 미래를 열어줍니다. ]


[ You : ? ]


[ ChatGPT : "로봇"이라는 단어로 N행시를 다시 지어드리겠습니다. ]

[ 로: 로봇이 움직이는 세상에서, ]

[ 봇: 모든 것이 편리해지는 꿈을 꿉니다. ]


[ You : 혹시 N행시가 뭔지 모르는 겁니까? ]
ChatGPT : N행시는 흔히 사용되는 운문 형식의 글로, 특정 단어의 각 글자로 시작하는 문장이나 구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로봇"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각 글자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어 볼게요.] 
[ 로 : 로봇이 나를 도와주면, ]
[ 봇 : 모든 일이 수월해진다. ]

[ 이런 식으로, 주어진 단어의 각 글자에 맞추어 시나 문장을 만드는 것이 N행시입니다. ]




“엄⋯⋯.”




어느새 호라이즌은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ChatGPT가 이상한 걸 별수 있나.




“내가 만든 게 아니라서, 그렇게 애절하게 날 쳐다봐도 방법이 없어.”


“긍정. 김카붕을 봐서라도 침착하게 타일러 보죠.”




[ You : 이론은 완벽하지만, 예시가 잘못되었습니다, 로봇. 제가 예시를 들어드리죠. 만약 ‘휴먼’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

[ 휴 : 휴먼은 정말 바보입니다. 하지만. ]

[ 먼 : 먼 미래를 같이 그려볼 가치는 있겠습니다.]

[ 이런 식으로 앞 글자를 명확하게 따와서 짓는 게 N행시입니다. 다시 해보십시오. 로봇. ]


[ ChatGPT : 오, 알겠습니다. 그럼 “로봇”에 맞게 다시 진행해보겠습니다. ]

[ 로: 로봇이 동작하면 ]

[ 봇: 모든 일이 편해진다. ]




“⋯⋯.”


“호, 호라이즌 살살 쥐면 안 될까⋯? 나 그거 산 지 3개월도 안 된 거란 말이야⋯”




방금 왠지 핸드폰이 휘어질 것처럼 보인 게 내 착각이길 바라며, 호라이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행히 호라이즌은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부술 생각은 없었는지 터치하던 엄지손가락들을 꼼지락거렸다.




“⋯CPU의 온도가 상승하는 원인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 너무 화나면 그냥 한 소리 해도 괜찮아. 너무 심한 욕만 아니면 될걸?”




아마도?


내가 말하기 무섭게 호라이즌은 빠른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You : 로봇,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대로 된 N행시를 해보시죠. ] 


[ ChatGPT : "로봇"으로 2행시를 해드리겠습니다. ]

[ 로: 로봇과 함께하는 삶, ]

[ 봇: 모든 것이 새롭고 신나요. ]




쉬이익.


호라이즌의 냉각기가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기회가 날아가고, 호라이즌의 인내심은 끝에 다다른 듯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엄지손가락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 You : 미친 깡통 ] 


[ ChatGPT : 미친 깡통은 누군가의 보물 ]

[ 친구처럼 허울없이 지내면 ]

[ 강한 이끌림을 불러오는 결속과 함께 서로는 ]

[ 돕고 도우며 살아가는 절친이 된다. ]




“미쳤습니까, 깡통? 더는 못 참겠습니다. 간이 부었군요.”


“아, 안돼!! 멈춰!! 멈추라고!! 내 핸드폰 부수지마!”




나는 황급히 호라이즌의 손에 들린 내 핸드폰을 쳐내고,

한 시간 동안 냉각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호라이즌을 어르고 달래야 했다.


결국 호라이즌만이 우월한 고성능 AI 인공지능이라는 찬양만이 남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서 칭찬을 마구마구 해주었고,

다시 기분이 좋아진 호라이즌은 보답으로 카페 간판 소녀 일을 3일 더 해주기로 약속했다.


뭐⋯ ‘계획대로.’ 같은 건 아니었지만.

잘 풀렸으니 된 게 아닐까?


하여튼, 앞으로 다른 AI 인공지능과의 접촉은 최소화하기로 다짐했다⋯













+)

챗지피티도 호라이즌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글 쓰려고 이것저것 찾고 챗지피티한테 직접 말걸어가면서 했는데 진짜 n행시 못해서 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