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납고의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건

홍조를 띄고있는 타이탄의 모습이었다


인간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게 프로그래밍된,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 몸의 처녀

관절을 구속당해 옴싹달싹 못하는 그녀는

시각 정보를 완전히 차단당한 채로

쾌락의 파도를 견뎌내고 있었다


격납고에 가득한 암컷 특유의 윤활유 냄새

정비를 담당하는 사람이 온다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대 침식전으로 개발된 인류의 수호자가

한마리 암캐로 전락해 윙윙 떨고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땐 지금보다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자율사고 인공지능」

하지만 기계는 아무리 똑똑해 봐야 기계다


구관리국의 결전병기 「크로노스」

자신보다 훨씬 예전에 만들어진 기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열등감

주저하고 망설이고 혼란스러워하는 순간

그 열등감이 만들어낸 빈틈을 파고들면

이리도 쉽게 허물어져내린다


아까부터 변하지않는 규칙적인 신음소리와 절정

행여라도 정신을 잃지나 않았을까

안대를 슬쩍 들춰 상태를 확인해본다


초점이 전혀 맞지않는 카메라

바들바들 떨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체는

낭떠러지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버티는 그녀에게

갑자기 자그마한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튀어나온 볼트를 꾸욱 하고 조이자

이를 악물고 윤활유를 뿜어댄다


이 가련한 로봇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기대하는 내 하물에도 피가 쏠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