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3094879
EP - 나나하라 가문 연합 ~ Fenrir platoon in Japan ~
일본 오이타현 어느 고등학교 교실
12월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학교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엥? 진짜!? 문화제 때 야마나시 선배랑 데이트라고!?"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좋겠다~ 나는 올해 문화제 위원회로 뽑혀서……."
크리스마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들뜰만하지만 이 학교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에 문화제를 개최하는 유구한 전통이 있어 청춘을 구가하는 이 학교의 학생들에게 인생의 봄날에 크나 큰 이벤트날이다.
"하아……."
나유카 미나토도 청춘을 구가하고 싶고, 본인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문화제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자신도 모르게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온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뭐야 갑자기 한숨이나 쉬고."
옆자리에 있는 친구는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말을 걸자 미나토는 시원찮은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그냥 올해도 네들하고 크리스마스를 보낼 생각하니까 답답해져서."
"뭐야 별 거 아니었네. 그것보다 나도 올해도 너하고 보내기 싫거든!"
미나토와 중학생 때부터 줄곧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얼굴을 일그렸다.
"나는 미나토 너도 알다시피 여자애들하고 함께할 가능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지만 너는 그래도 매일 같이 너 찾아오는 '여자애들'이라도 있잖아!"
"나 좋다는 애 하나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 옆반에 나나하라였나? 그리고 걔 언니였던 2학년 선배. 2학기 시작된 이후로 계속 너한테 찾아오잖아."
"그 사람들은 얘기 안 하면 안 되냐……."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찌푸리자 친구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복에 겨운 자식. 나도 나 좋다고 그렇게 찾아와주는 여자, 그것도 자매가 쌍으로 찾아오면 매일 같이 하늘에 감사하다고 제를 올리고 살겠다."
"모르면 말을 말아……."
나유카 가문은 오래 전 나나하라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 가문이다. 그런 나유카 가문의 일원들은 나나하라 가문연합의 연합원으로서 나나하라 가문을 섬기고 서포트 해 왔으며 오늘날까지 그리해왔다. 즉 나나하라 가문의 자매들과 미나토는 머나 먼 친척인 것이다.
굳이 학교에서는 티 내지 않았기에 이들이 먼 친척 관계라는 사실을 당사자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미취학 아동 시절 도쿄에서 이사온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나하라 가문 본가에서 함께 놀았던 기억만 있을 뿐, 그렇게 깊은 인연이 아닐지라 지나가다 서로 마주치면 목례만 하던 사이일 뿐이었다.
여름 방학 이전까지는.
나나하라 가문의 전 당주── 나나하라 자매의 할아버지가 7월 말에 세상을 떠나면서 나나하라 치나츠가 당주가 되면서 연합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왜 아직 고등학생 밖에 되지 않은 치나츠가 당주가 되었는가 이유를 묻는다면 치나츠의 부모님이 일찍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막은 잘 알 수 없지만 '봉인'에 큰 균열이 생겼을 때 '어떠한 사건'에 휘말려서 돌아가셨다고 들었고, 그 이후 미나토의 할아버지를 비롯 부모님이 나나하라 가문에 발을 끊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미나토도 모른다.
입지를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어린 나이에 치나츠가 당주가 되자 방계 가문들은 노골적으로 새 당주를 무시하며 멋대로 굴기 시작했다. 물론 조용히 따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유카 가문처럼 그닥 힘이 있는 가문원들은 아니었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치나츠는 그럼에도 천천히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가문원들을 포섭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미나토였다.
'할아버지가 이 시계만 주지 않았더라도…….'
옷 소매를 살짝 걷어 손목에 차고 있는 손목 시계를 본다.
미나토는 어릴 적 카운터였던 할아버지를 동경했다. 그랬기에 어릴 적 항상 할아버지에게 나중에 꼭 자신에게 카운터워치를 물려달라고 조르곤 했다.
하지만 점차 머리가 굵어지면서 생각은 바뀌고, 카운터가 되어 침식체와 싸우기 보단 평범한 삶을 원하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서 공부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들을 사귀어 놀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여자친구를 사귀어 연애를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과 달리 지난 여름, 나나하라 가문의 당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가 미나토를 방에 부르시더니 어느 낡은 시계를 건내주었다.
그 시계가 무슨 시계인지 몰랐기에 미나토는 할아버지가 이제 슬슬 하나 둘 신변을 정리하시려고 하는 줄 알았지만 그 시계는 카운터워치였고, 그날로 미나토는 카운터로 각성했다.
그 소식을 언제 누구한테 들은 것인지 2학기가 시작된 이후로 나나하라 자매가 매일 같이 교실에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뭐, 네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난 동아리 활동하러 갈 건데 넌?"
"나도 가야겠다. 교실에 있어봤자 할 것도 없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서 각자의 동아리 방으로 발을 옮겼다.
2
일본 후쿠오카 공항 PM.4:30
"두 사람 다 그만 웃으면 안 돼?"
유미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공항에서 나오는 소대장과 선배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두 사람은 그것도 개의치 않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고 있었다.
"미나 양, 아무리 비행기를 처음 타봤다고 하지만 비행기를 신발 벗고 타야한다는 말을 정말로 믿는 건 너무 순박한 거 아닌가요?"
"속인 선배랑 소대장이 나쁜 거 잖아!"
"우리 신입은 인생이 시티콤이라 아주 부러워."
"인천공항에서 화장실 갔다오는 길에 미아센터로 데려가진 스승님이 할 말은 아니시죠."
"시끄럽다 인천, 후쿠오카 두 곳에서 다 보안 검색대에서 테러 의심자로 집중단속 당한 네 녀석도 마찬가지니까."
펜릴 소대는 오늘도 평화롭다.
"하하하, 제3자 입장에서는 만담 트리오가 따로 없겠네요. 그나저나 공항에서 나오면 누군가 마중나올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아직 시간이 일러서 아직 안 왔을 수도 있다. 신입, 처음으로 외국에 와 봤는데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
"소대장이 사주는거야?"
"물론이지."
"감봉까지 당했는데 그 자금의 원천이 어디일지 궁금하네요."
"시끄럽다 주시윤. 너는 네 돈으로 사먹어라."
힐데가 관자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펜릴 소대에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한국 코핀 컴퍼니에서 오신 펜릴 소대분들이십니까?"
"그렇다만? 의뢰주인 나나하라 가문연합 관계자인가?"
일본어로 하는 물음에 힐데는 능숙한 일본어 솜씨로 대답하였다.
"저는 나나하라 가문의 시종 하야미 사나에라고합니다. 금일 당주의 명으로 세 분을 모시기 위해 찾아뵈었습니다."
"나는 힐데, 펜릴 소대의 소대장이다. 뒤에 두 사람은 내 소대원들이고."
주시윤이 가볍게 목례를 하자 무슨 상황인지, 무슨 내용이 오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유미나는 분위기 상 인사를 하는 타이밍임을 눈치로 확인하고 주시윤을 따라 목례하였다.
"그럼 갑작스럽습니다만 이쪽에 있는 차에 탑승해주시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하야미 사나에라고 하는 여성의 손날 끝으로 가리킨 차량은 한눈에 보아도 비싸보이는 고급 세단이었다.
"선배…… 저 차 비싼 차 맞지?"
"네 비싼 거 맞으니 또 신발 벗고 타셔야죠?"
주시윤의 배에 정권을 내질렀지만 주시윤은 가볍게 피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어넣었다.
세 사람이 캐리어를 가지런히 트렁크에 실어넣고 모두 차에 탑승하자 차는 행선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수석에는 힐데가, 뒷자석에는 남은 두 사람이 앉은 상황에서 차 안은 잠시 동안 조용했다.
미나가 창밖 너머 처음 보는 외국의 풍경을 한참 구경할 때 차안을 정적을 깨는 건 주시윤이었다.
"미나 양, 퀴즈입니다. 세계에서 신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뭐야 갑자기. 넌센스 퀴즈야?"
"넌센스는 아니랍니다. 한번 맞춰 보시죠."
"정황상 정답은 일본…이려나?"
"정답.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본이 신이 제일 많은 나라라고 하지요. 그리고 두 번째 퀴즈, 일본어로 행방불명은 뭘까요? 사전 찾아봐도 좋습니다."
"사전에는 유쿠메후메(行方不明;ゆくえふめい)? 그리고 카미카쿠시(神隠し; かみかくし)?라고 하는데? 두 단어 무슨 차이야?"
"정답입니다. 차이점은 이따 알려드리죠. 그리고 세 번째 퀴즈, 이면세계와 침식체가 공식화되기 이전까지 지진은 그저 지구의 지각변동으로만 생기는 자연재해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원인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면세계의 좌표 발생 내지, 침식체의 난동……."
"정답입니다. 역시 미나 양은 똑똑하시군요."
"이게 지금 무슨 연관이 있는건데?"
"미나 양, 방금 전에 유쿠에후메와 카미카쿠시의 차이점을 물어보셨죠? 쉽게 말하자면 유쿠에후메는 그냥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고, 카미카쿠시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행방이 사라졌다는 뜻이랍니다. 주로 어린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쓰는 단어였고, 요즘으로써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지요. 저도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들은 것이라고는 옛날 애니메이션 제목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일본어 원제목에서만 들어봤답니다."
"흐음… 그렇구나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입니다. 원인으로는 단순한 지각 변동으로 일어난 것도 많지만 이면세계와 침식체 때문에 일어난 케이스도 상당하죠. 과거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이면세계로 사라진 것을 아마 '카미카쿠시'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첫 번째 퀴즈였던 신이 많은 이유는…."
"침식체들의 존재를 몰랐던 옛 일본인들은 그것들을 두려워하며 신으로 모셨을지도 모르죠. 물론 지금까지 한 얘기는 어디까지나 제 생각에 불과하니 정설로는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주시윤은 웃으며 허무하게 끝맺음을 지었지만 그럴싸해 보였는지 유미나는 다시봤다는 눈으로 선배를 보았다.
"선배 이렇게 보니까 뭐라고 해야할까… 인텔리하다고 해야할까──"
"제가 좀 스마트한 구석이 있죠 하하하."
"──오타쿠 같아."
"우리 신입이 사람 보는 눈이 많이 늘은 것 같군."
"스승님?"
"조용히 해라 오타쿠 제자야."
그 후 주시윤은 도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각주

후쿠오카현과 오이타현 위치

1화에서 나나하라 가문 저택은 카나가와현에 있는 카모하나쇼부엔(加茂花菖蒲園)이라는 곳 상상하면서 썼음. 애니 빙과에서 치탄다 집 모티프 된 곳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