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S입니다

※ 크로스로드에 기반한 스토리이지만,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 *



 똑똑똑-

 " 계신가요...?"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나지막히 들려오는 목소리.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도, 실비아는 별 관심 없이 귀찮다는 듯 누워있는 채로 대답했다.


" 열려있어, 들어와. "


그러자 간신히 얼굴만 내밀 수 있을 만큼 소심하게 문을 열고서 빼꼼, 하는 얼굴.


" 그... 실비아 씨...? 놀라지 마시죠 ... "

" 엥?? 뭐야, 너??? "


보자마자 재수없는 샌님이 떠오르는 짜증나는 얼굴. 앗차, 하고 당황하는 새에, 실비아는 들고있던 콘솔도 떨어뜨리고 말았다. 분명 낯이 익은 사람인데, 아는 사람일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어딘가 중요한 부분이 반전되어 있는 것 같았으니까.


" 아, 아니 그 ... 누구세요? "


처음 보는 것 같지 않은, 묘하게 낯이 익은 그녀는 냉큼 들어와서는 문을 살포시 닫고, 조용히 하라는 듯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 카일입니다, 카일 웡. "

많이 움츠린 채로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눈은 유독 갈 곳을 잃고 우왕좌왕 하고있다.

처음엔 그 긴 머리와 볼륨감이 생겨버린 몸에 정말로 카일 웡이 맞나 싶었지만, 다시보면 정말 똑같이 닮았다. 실비아는 성별이 다른 일란성 쌍둥이가 성립할 수 있나? 하고 잠시 의문을 품었다가, 본인 스스로가 카일이라고 했으니 본인이 맞겠지 하고 이내 수긍했다.


" 이건 또 무슨 재미없는 농담이야. 새로운 취미에 눈이라도 뜬거야? "

" 차라리 제게 그런 부끄러운 취미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자켓 밑단을 양손으로 꼬옥 움켜쥐고는,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사이즈가 안 맞는 탓인지, 누구보다 빠릿하게 각이 잡혀있을 델타세븐 정복이 마치 남자친구의 옷을 빌려입은 듯한 오버핏 캐주얼 룩처럼 헐렁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은 자꾸 뻐끔뻐끔 하면서도 소리는 나지 않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릴락 말락 한 나지막한 크기로 말했다.


" 그 .... 도와주십시오, 실비아 씨. "



 * * *


 " 어쨋든 그러니까, "


 쇼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전해들은 실비아가 상황을 정리했다.

카일은 구구절절 변명이라도 늘어놓듯 지난날 밤부터의 상황을 상세하게 읊었고, 실비아는 처음엔 진지하게 듣다가, 이내 이야기가 길어질 수록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동시에 이 샌님이 이런 재미있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 자체가 실비아의 뺨을 간질간질 자극하고 있었다.


 "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여자가 되어있었다는거지?? 답지 않게 왜이리 말이 길담. "

 " 전후 사정이 명확히 파악이 되어야 실비아 씨도 뭔가 해결책이 떠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카일은 에휴, 하고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 근데 왜 하필 날 찾아온거야?? "

 " 그야 .... 실비아 씨라면 뭔가 .... "


 실비아는 의문이라는 듯 물었고, 카일은 실비아를 바라보며 말하려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어정쩡하게 돌리고서는 대답했다.


 " 아니 그냥 소거법일 뿐입니다. 사령관님께 가기엔 부끄럽고, 대령님은 못미덥습니다. "

 " 아~ 믿을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고? "

 " 도대체 뭘 들은 겁니까. "

 " 오케이, 그럼 이 누님이 또 도와줘야지, 어쩌겠어 카일 양. "

 "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


얼굴 전체가 잔뜩 빨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카일이었다. 실비아는 '쿨러라도 하나 달아줘야겠네' 같은 농담을 생각하며 쿡쿡 웃고는, 영차 하고 일어났다.


 " 일단 그 옷부터 어떻게 해야지. 어떡할래? 내 옷이라도 입을래? "

 " 아, 빌려주신다면 감사히 ... "


카일은 고개를 들다가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고는, 아차 싶었는지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여러번 실비아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대충 찢어낸 듯한 마감에, 허벅지 끝까지 올라와있는, 속옷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청바지. 그리고 정말로 속옷 끈을 대놓고 보여주는 나시. 카일은 외면하듯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 .... 아닙니다, 옷은 차라리 이대로 입고 있겠습니다. "

 " 야! 내 옷이 뭐 어때서?? 그런 갑갑한 정복따위보다는 훨씬 편하다니까? "

 " .... 실비아 씨나 많이 입으십시오. "

 " 멀쩡한 옷도 많은데? "

 " 어차피 키 때문에 안 맞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지원과에 가서 새 정복을 받아오겠습니다. "


 바닥에 쓸릴 것 같은 바지를 움켜쥐고, 카일은 방문으로 향했다.


 " 그 몸으로? "


멈칫, 하는 카일.

뒤를 돌아보니, 실비아가 실실 웃고있었다.


 " 화이팅, 카일 양! 옷 빌려주려 했는데 아쉽게 됐네."


한쪽 팔을 들고 응원한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카일은 그대로 얼어붙고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간신히 말을 꺼낸다.


 " ... 도와주십시오. "

 " 그래야지. 그렇게 공손히 부탁해야지, 카일양. "


실비아는 빙긋 웃으면서 앞장 선다.

카일은 아무 말 못하고, 얼굴이 잔뜩 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저 따라갔다.



 * * *


 " 사이즈 맞는지 한번 입어보고 오라구. "


 카일의 등을 밀치며 탈의실로 밀어넣는 실비아. 와중에도 실실 웃는 미소는 그대로다.


 " 아, 같이 들어가줄까? 같은 여자잖아. "

 " ... 적당히 해주십시오. "


이미 오는길에 잔뜩 놀림받아 홍당무가 되어있는 카일은, 대답할 기력도 없다는 듯 터덜터덜 탈의실로 들어갔다.

실비아 덕분에 새 옷은 잘 받았다. 카일은 숨어있고, 실비아 혼자서 지원과에서 새 정복을 받아왔다. 원래는 민간인 고문인지라 정복 지급이 안된다는데, 어찌저찌 잘 우겨서 받아낸 실비아였다.


 탈의실 안에서는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 그... 치마 대신 바지는 안되는 겁니까? "


기력 없어보이는 볼멘소리. 궁시렁궁시렁 대면서도,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옷은 잘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실비아는 킥킥대면서 대답했다.


 " 안되지, 여자 정복인데. "

 " 사령관님도 바지입니다만. 원칙적으로 여군에게도 바지는 지급됩니다. "

 " 아 거 참 말 많네. 그러면 바지 질질 끌고 다니던가. "

 " ...... "


대답을 못하는 카일.

3분 쯤 지났을까, 안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치마는 왜 이렇게 짧은겁니까 ..? "

 " 길면 불편하잖아. "

 " 하아 .... "


한숨 쉬고서는 바로 나온다.

기존에 입던 정복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 단정하면서도 아름다워서, 실비아는 아주 잠깐 넋을 놓아버릴 뻔 했으나, 다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댔다.


 " 이 ... 스타킹? 양말? 은 또 왜 애매하게 중간에 끊겨있는 겁니까? 이래서는 보온도 방어도 어중간하지 않습니까. "

 " 관리국 높으신 분 취향인가보지. "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 카일. 실비아는 끅끅 대면서 웃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 * *


다시 실비아의 숙소로 돌아와서, 둘은 한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호르몬 이상부터 시작해서 침식 증후군, CRF 부작용, 생화학 무기에 우주 바이러스까지 온갖 가설이 나왔지만, 그 어느것도 현상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문득 실비아가 코핀 컴퍼니 이야기를 꺼냈다.


 " 확실히 의심스러운 태스크포스이긴 합니다. 범인으로 의심스럽다는게 아니라, 무언가 이와 관련된 현상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느낌입니다. "

 " 그렇지? 걔네 확실히 기술 수준이 남다르긴 하잖아. "

 " 그럼 .... 하아, 밑져도 손해볼 상황은 아니니, 일단 가보도록 하죠. "


깊게 한숨을 내쉬는 카일.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또 말을 꺼냈다.


 " 아 그런데 실비아 씨, 이상한 질문인 건 압니다만 .... 혹시 제 지금 모습, 어디선가 보신 적 있지 않으십니까? "


손으로 자기 몸을 크게 훑는 카일. 무언가 기억 날 듯 말 듯, 애매하게 눈을 찡그리고서는 핸드폰으로 자기 얼굴을 비춰본다.


 " 너, 그런 취미 있었니? "


 장난치듯 더욱 오버하며 질색하는 표정의 실비아.


 " 저 지금 진지합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

 " 뭐, 잃어버린 쌍둥이라도 있는거야?? "

 " .... 됐습니다. 출발이나 하죠. "


 한심하다는 듯 획 돌아서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카일.

실비아는 어디서 본 적 있나, 하고 갸우뚱 하고 있을 뿐이었다.



 * * *


 " 카린 양? "


 코핀 컴퍼니 복도.

우연찮게 마주친 주시윤과 카일 일행.


주시윤은 반 쯤 의아한 표정으로, 마치 볼 수 없는 걸 보았다는 듯한 신기한 표정 반 쯤으로, 카일을 마주쳤다.


 잠시간의 정적 후, 실비아가 가장 먼저 폭소했다.


 " 푸하하하!!! 야, 카린이래, 카린. 잘 어울린다, 카린 양. 아예 개명하는거 어때? "

 "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한 껏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카일.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주시윤을 노려보며 물어보았다.


 " 카린 .... 분명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이름입니다. 당신, 뭔가 알고 있습니까? "

 " 엥? 카일 웡 소령님인가요? "

 " 그럼 저 말고 달리 누구겠습니까. "

 " 야 너 그 모습으로 달리 누구냐고 하면 어떻게 알아듣겠냐 진짜 웃겨죽겠네 "


 어리둥절 하는 주시윤과 숨 넘어갈 듯이 웃는 실비아.

카일은 조용히 하라는 듯 실비아를 지긋이 노려보았고, 실비아는 이내 입을 다물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 아차, 그 군인 분이셨구나. "

 " 역시 당신, 뭔가 알고 있군요. "

 " 아하하 .... "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주시윤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카일.

주시윤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두 손 들고 호의적으로 대답했다.


 " 혹시 막 자고 일어났더니 여자가 되어있었다 그런 상황인가요, 지금? "

 " .... 어떻게 알고 있죠? "


오히려 대답히 너무 빠르게 나오자, 더더욱 경계하는 카일.

주시윤은 혹여나 오해가 커질까, 쉬지 않고 내리 말하기 시작했다.


 " 그게 설명하자면 엄청 긴데 말이죠, 저희 회사 연구소에 박정ㅈ... 올리비에 박 박사님이 계시잖아요? 근데 사장님이 얼마전에 곧 만우절인데 뭐 재밌는거 없냐고 연구소에서 막 이것저것 만져보고 뒤져보고 가셨단 말이죠? 그래서 박사님도 갑자기 삘받으셨는지 뭔가 약을 막 제조하시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3월 말일에 그 조교님이 또 야근해가면서 뭔가 만들어 내신 것 같더라니 하하 아무래도 그 영양이 조금 없진 않은 부분이 있다고나 할까요~ "


 카일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이야기를 조곤조곤 다 듣고서는, 잠깐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는 듯 했다.


 " 그럼 결국 너네 회사가 뭐 이상한거 또 만들었다는거 아니야? "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던 실비아가 물어본다.


 "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하하... "

 " 좋습니다, 사실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원래대로 돌아가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


다시 가까이 다가와서 묻는 카일. 하지만 전같은 위협적인 분위기는 없고, 오히려 조금 간절해보이기도 한다.


 " 아, 그거 말이죠 .... "



 * * *


 아침.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화사하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햇살.

분위기 좋은 아침이었지만, 카일은 그런 것따위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잽싸게 침대에서 반 쯤 일어나 몸 구석구석을 만져본다.

일어날 때 이상하게 머리가 걸리적거리지도 않았고, 가슴도 평평하다.


그걸론 불충분했는지,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이틀 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거울을 한동안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 자고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하루짜리 이벤트가 목표라, 그렇게 만들었다나 뭐라나.'

 ' 확실합니까? '

 ' 확실합니다~ '


어제 주시윤이 말해준 그 말이 떠올랐다.

결국, 하룻밤의 해프닝이었다는 건가. 그런데 그 자는, 어떻게 하룻밤만에 돌아온다고 확신했을까. 마치, 직접 본 적이 있다는 듯이.


카일은 궁금증이 신경쓰인다는 듯이 살짝 미간을 찌뿌린 채로, 침대로 돌아와 침구류를 정리하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 어때? 몸 돌아왔어? '


실비아가 보낸 메시지였다.


 ' 예, 멀쩡히 돌아왔습니다. 실비아 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정상적으로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옷을 챙겨 샤워실로 들어가려던 찰나.

어제 새로 받은 정복이 카일의 눈에 들어왔다.


카린 .... 카린 .... ?


 " 아!!! "


카일은 그제야 자신이 잊고있던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냈다.



 - Fin.



 * * *


오랜만에 이런거 쓰네요. 예전에 금태씨가 만든 다른 겜 할때 거기 갤러리에도 문학 몇개 올렸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태생이 씹덕이라 그런지 이런거 좋아한단 말이에요. 끄적끄적 적는거. 항마력 딸리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뭔가 더 길게 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공부할 시간도 적어져가지구 중간에 스킵이 많아졌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흑흑.


분야는 꼴림캐로 해야하나 그 외로 해야하나 고민했는데, 그 외로 하기로 했습니다. 카일은 나오지만 카린은 안나오잖아요? 어차피 그림이 아니라 꼴리지도 않는데 머.


크로스로드 스포일러는 없지만, 크로스로드 스토리를 모르면 이해 안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근첩비틱은 아니지만, 이런 뭔가 포맷이 갖춰진 글을 쓸 때는 이상하게 예의를 차리게 되네요. 평소에는 입도 손가락도 참 거친데 말이에요.


무튼, 카챈에도 문학이 많이 흥하면 좋겠습니다. 카챈 화이팅 !! 무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