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함선 안유미나는 갑작스레 몰려온 피로에 잠깐 눈을 붙이기로 하였고

평소엔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함선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자장가로 삼아 조금씩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여기가 어디지…? 선배랑 소대장은 어디 가고? 내가 마침내 블랙 기업에서 일하다 죽어버린 건가…."



수명이 다 되어가는 등이 깜빡거려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함선 내부도, 항상 능글맞게 웃는 선배 주시윤도 없으며,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으나 이내 익숙해진 담배 연기를 줄곧 내뿜는 힐데 소대장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흰 빛만 은은하게 내뿜는, 처음보는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뜬 유미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나저나 내가 생각한 저승이랑은 많이 다르네, 저승은 좀 더 피가 튀고 비명이 들리는 그런 곳일 줄 알았는데…. 그냥 흰색만 있고 아무것도 없네. 이런게 마지막이라면 좀 허무한데. 하하..."



그렇게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하는 유미나의 등 뒤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나야잘 지냈어?"



유미나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이곳에서 목소리가 들린 이유도 있지만, 그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운 목소리, 꿈에서라도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



고개를 돌린 시선, 그리고 그 시선 끝에 보이는 한 소녀

유미나는 이 소녀를 무척 잘 알고 있다. 그래, 이 소녀는...



"나래야…? 진짜 나래야…? 어떻게 네가…. 내가 정말 죽어버린 건가?"



"뭐…? 풉, 하하하! 오랜만에 본 친구를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야? 뭐야 그게 김빠지게. 좀 더 감동적인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여전하구나 미나는."



"하지만 나래 너는 분명히….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 이게 대체…."


양갈래로 묶은 갈색머리와 크고 맑은 눈동자, 그리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좋게 만드는 쾌활한 목소리.
지금 유미나의 두 눈에는 리플레이서 비숍도, 테라사이드 프로젝트의 마지막에서 사라진 비숍 재생체도 아닌 자기가 그렇게나 보고 싶어하고 추억으로만 그리던 신나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유미나의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돌아가고 가슴이 빠르게 뛴다.



"음...글쎄 내가 어떻게 네 눈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기적이라도 일어난걸까?"



"하하…. 기적이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나래 너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들도 많았고, 사과도 하고 싶었는데….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게 느껴질 때마다 너무 괴로워서….
내가 이런 힘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진이 까지 셋이서 계속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혹시 날 원망하진 않을까?
나랑 같이 알고 지냈던걸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 물어보고 싶은데, 나 혼자만 살아있어서 미안하다고 하고 싶은데…."



댐에 생긴 틈으로 물이 새듯, 마음속에 감춰뒀던 속마음들이 입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사춘기 소녀에겐 힘들었을 경험, 그래서 더욱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감정이 넘쳐흐르고,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은 이내 눈물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미안해…. 나 때문에 모든 게 망가졌어…. 흑... 흐윽... 너희를 맘속에 묻어두고, 나 혼자만 이렇게 살아있어서…. 흐흑... 정말 미안해…."



그동안 살아오며 진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숨기고 강한척으로 살아오던 유미나 였으나, 한번 폭발한 감정은 절대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있는것이 아니다. 지금의 모습은 카운터도, 코핀컴퍼니의 사원도 아닌 그저 한명의 소녀였다.


"괜찮아, 미나 네 탓이 아니야."



유미나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그녀를 감싸안는 신나래, 대체 얼마만에 느끼는걸까 

자신을 감싸안은 친구의 온기에 유미나는 그저 흐느끼기만 할뿐이다.



"미나는 아직도 내가 아는 그 모습 그대로네, 마음 여리고 상냥한 미나야. 힘들게 너 혼자 전부 안고 있을 필요 없어…. 이제 편해져도 되지 않을까?"



"흑... 정말…. 날 용서해 주는 거야? 이렇게 이기적인데도?"



"당연하지, 그야 우린 친구잖아?"



환하게 웃는 신나래,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인가 아니면 진짜 기적인가 하는것은 중요하지 않다. 죽었던 친구가 이렇게 눈앞에 있고 자신을 용서해주는 이 순간, 그동안 감춰두었던 무거운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래야…. 이런 나를 용서해줘서, 정말 고마워…."



「─양?」

「─나양,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그리고 들려온 또 다른 목소리,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신나래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제 갈 때가 온 것 같네잘 지내 미나야. 나랑 나진이는 항상 네 가슴속에 있을게. 부디 잊지 말아줘."



"나래야! 이제야 겨우 만났는데, 안돼! 아직 하고싶은 말도 많은데! 제발 가지마!"



울부짖으며 붙잡아 보려는 유미나였지만신나래의 모습은 이미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미나 네가 내 ─라서…. 정말 ─했어…."



한마디 말만을 남기며 신나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유미나는 이내 눈을 뜬다.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함선,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건 능글맞게 웃는 주시윤과 담배를 물고 있는 힐데 소대장이었다.



"미나양이 함선에서 졸다니 별일이네요, 많이 피곤하셨나요? 부사장님께 산재처리라도 해달라고 할까요?"



"아 아니야! 그냥 갑자기 졸려서 그랬어, 산재는 무슨…."



"그런가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런데 미나양슬픈 꿈이라도 꾸셨나요? 눈시울이 빨가네요?"



"아…. 그냥 좀 그리운 사람을 만났거든…."



"그리운 사람이라…. 이 꽃잎 때문일까요?"



"꽃잎?"



머리를 만져보니 오른쪽 옆머리에 작은 꽃잎이 하나 붙어있었다.



"음…. 이건 백일홍이네요. 어디 바람에 타고 날아왔나 보네요."



"선배 꽃도 볼 줄 알아? 의외네"



"하하, 꽃도 알아두면 다 쓸모가 있으니까요, 참고로 꽃말은…."



"잡담은 그만해라, 이제 도착했다."



다 핀 담배를 끄고, 꽁초를 버린 힐데가 둘의 대화를 끊었다.
이윽고 함선의 문이 열리며 눈부신 빛과 함께 강한 바람이 들어온다, 그리고 꽃잎은 바람에 날려 푸른 하늘로 날아간다.


유미나는 날아가는 꽃잎을 보며 하늘을 본다.



"잘 가 나래야…. 나도 네가 내 친구라서 행복했어…."













이런식의 레파토리를 좋아해서 한번 써봤는데 

책 안읽은지 너무 오래돼서 쓰기가힘드네...

다 지우고 올리지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올렸는데 너무 못써서 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