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 경정님이다!!"


2월 14일. 경찰서로 출근한 이유미 경정을 보자마자 강소영 경위는 평소처럼 상관에게 장난을 치기위해 비행기처럼 양팔 벌려 달려갔다.


"오면서 초콜렛 많이 받았나요? 아~ 설마 단 하나도 못받아서 편의점에서 혼자 자기 자신에게 주는 초콜렛을 먹은 건 아니겠죠~?"


"강소영 경위!!"


발렌타인데이는 한참 이성에게 관심을 갖을 시기 나이 또래에게는 신경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날이다. 그건 이유미 경정도 마찬가지었다.


겉보기에는 그런쪽에 관심 없어 보이는 이 경정이지만 실상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이 경정도 어쩔 수 없는 소녀라 사실은 엄청나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내심 기대도 많이 했지만 결과는 올해도 단 한 개도 못 받았고, 먹은 초콜렛이라고는 강 경위가 이야기한대로 스스로 사먹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출근하자마자 정곡이 찔리니 부들거리며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어라…?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사실 이 경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학교에 드물 정도고, 남학생들 중에는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몇 있다. 하지만 평소 이 경정이 하고 다니는 행실── 대표적으로 호감을 표현하기 위해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사다준다고 해도 "청탁금지법 때문에 받을 수 없어."라며 단칼에 거절하는데 누구든지, 그것도 굳이 겨울방학 중에 만나서 초콜렛을 줄 엄두도 못낼 것이다. 어찌보면 자업자득이다.


"아~ 안타깝네요. 한참 좋을 때에 초콜렛 하나 못 받고."


안타까움 20퍼센트와 놀림 80퍼센트 비율의 마음이 담긴 말을 건내자,


"그럼 강소영 경위는 고등학생 때 초콜렛 받아본 적 있어!?"


라고 발끈하는 여고생이 있었지만,


"네. 당연하죠."


뭘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을 지으며 답하는 강 경위었다.


"거짓말… 강 경위가…?"


"아하하… 뭔가 살짝 상처받는데요?"


"써, 썰좀 풀어봐!!"


강 경위는 평소답지 않게 흥분하며 얼굴을 들이미는 상관의 두 어깨를 살짝 밀어내며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고등학교 2학년 때인데……."



* * *


강소영 고등학교 2학년 시절 10월 말.


그 시절 나는 경찰에 전혀 꿈이 없던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해결하겠지.'라고만 생각하던 흔하디 흔한 철부지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집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교실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떠들며 장난 치기 바쁘던 그런 평범한 철부지 고등학생이었다.


그런 어디가나 흔하게 있는 학생 중 한 명이었던 나는 CA활동을 위해 딱히 어느 동아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매일 방과후 별관 3층에 있는 미술실에 찾아갔다.


우리 학교 미술부는 과거 일반계 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유명 미대를 해마다 10명 이상을 보내던 영광을 누렸지만 그 영광은 빛 바래 지금은 동아리 인원 1명만 남겨둔채 폐부의 수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런 미술부를 찾아가는 이유는 단 한 사람, 방금 이야기한 미술부의 최후의 1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없는 별관 3층 복도를 지나 미술실이라고 팻말이 적힌 곳의 미닫이 문을 열자 곰팡이인지, 물감아니면 그 외의 안료 냄새인지 알 수 없는 특이한 냄새가 코를 반겨주었고, 그 공간은 형광등이 켜지지 않은채 온통 창밖에서 들어오는 오렌지색의 노을빛으로 가득찼다.


난 그곳 한 가운데에 이젤을 펼치고, 앞에 석고상을 보고 두상화(頭像畵)를 그리는 한 소년을 보고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안녕 선배! 오늘도 못 생겼네요!"


"………."


선배는 그림에 집중하며 내 인삿말을 말로써 대꾸하지 않고 살며시 왼손을 들어 흔드는 줄 알았더니 중지만 치켜세웠다.


엿 먹으라신다.


그렇게 욕을 하는 사람을 보고 피식 웃으며 다가가 그가 그리는 그림을 보았다.


5미터 정도 앞에 있는 이름 모를 서양인의 석고 두상을 보고 그린 선배의 소묘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지만 마치 흑백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았다.


그가 그림에 열중할 수 있도록 말 없이 쓰지 않아서 쌓아올린 책걸상 더미에 걸터 앉아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입을 굳게 닫고 열중하는 선배의 옆모습은 굉장히 정열정이면서 고상한 듯, 하지만 어딘가 고고해보였다.


대략 30분 정도 지났을까, 그림을 완성했는지 이젤에 목탄 연필을 내려놓고 새까맣게 잿가루가 묻은 손을 하늘 높이 들어 기지개를 펴는 선배를 발견하고는 걸터 앉아 있던 책상에서 폴짝 내려왔다.


"다 그렸나요?"


선배는 이번에도 말대신 고개를 끄덕임으로 대답을 하였다.


"선배 말좀 해줘요~ 실어증 걸린 것도 아니고 아까부터 인사도 안 해주고."


심통난 것처럼 아양을 떨어보자 선배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극혐……."


이라고 말하면서도 목탄화를 그릴 때 쓰려고 구비해놓은 식빵과 바나나맛 우유를 나에게 건내주었다.


이렇게 냉정하게 대하는 선배가 뭐가 좋아서 매일 같이 미술실에 가서 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게 겉과 속이 다른 선배 나름대로의 표현 방법인 것을 알기에 나는 웃으며 넘어갔다.



선배와 처음 만난 건 작년 5월, 체육대회 때였다.


다른 친구들이 각종 경기에서 활약하는 남학생들을 보며 열광하고 있을 때 나도 다른 애들과 다를 바 없이 남학생 축구를 보며 열광하고 있었다.


때양볕 아래서 관전하던 중, 목이 말라 이온음료를 사러 가기 위해 매점을 가다가 어이없게도 축구공에 머리를 맞았고, 얼마나 힘차게 찼는지 맞고나서 기절했던 모양이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양호실 침대였다.


다행히 기절한지 30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고 괜찮은 것 같아서 퇴실하려고 했지만 혹시 모르니 더 쉬었다가 가라는 보건 선생님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 때까지 입실해 있는 걸로 했다.


그날따라 몸을 많이 쓰는 체육대회날이다 보니 양호실에는 끊임 없이 부상 환자나 찰과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왔고, 보건 선생님은 양호실을 찾는 학생들에 비해 보건실이 비좁자 안 되겠나 싶었는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시더니 아이에 바깥에 천막을 치고 업무를 보신다며 나가버리셨다.


그렇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조용한 양호실 침대에서 마땅히 할 것도 없으니 다리 꼬고 누워 있자 흰색 천칸막이 너머 옆 침대쪽에서 조용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었다.


사각이며 연필을 끄적이는 소리. 체육대회날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고, 그런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서 칸막이를 너머를 보기로 했다.


칸막이를 천천히 거두자 건너편 침대에는 체육복을 입은 남학생 한 명이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노트를 올려놓고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맞은편 침대에 앉아 있는 사람의 체육복 색이 다른 것을 보고 한 학년 위라는 것을 인지할 때 그 남학생─ 이산해는 칸막이가 거두어진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나와 선배의 첫 만남이었다.




누가 킬러강 순애 문학 써달라해서 써봄


옛날에 내가 썼던 동명 순애 라노벨에서 각색했는데 결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