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작전 지역에서 야경이 좋은 곳을 찾았어요, 사장님. 같이, 보러 가실래요?”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서윤을 반겨주려 입구에 나가있으니,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음? 지금 뭐라고 했나?”
“좋은 야경을 찾았는데 같이 보러 가시는 게 어떻겠냐고요.”
꽤나 뜬금없는 소리이었기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나 보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여유로운 얼굴로 그렇게 말을 전했다. 뭔가 또 음흉한 속내라도 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러했듯, 그녀의 표정에서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이유랄 건 없고요, 그냥 사장님과 저의 개인 시간이 적다고 생각해서요.”
“개인 시간?”
“흐음...개인 면담 시간이라고 할까요? 그 왜, 린하고는 상담도 해주셨다고 하던데요?”
아, 그랬었지. 그 얘기를 들으니 바로 생각이 났다. 동시에, 그녀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는지에 대해서도 대강 추측이 가기 시작했다. 연봉 협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협상을 빌미로 한 협박이다. 며칠 전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알트 소대는 왜 정식 라이센스를 따놓고도 그런 회사에 있는 거임?’
확실히 무려 관리국의 정식 라이센스를 획득해놓고도 우리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그것과 그녀들의 실력만 있다면 그들은 어느 회사라도 들어가 평생 놀고먹을만한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을 테니까. 애당초 그녀들의 목적은 라이센스 획득이 아니었는가. 게다가 우리 부사장은 돈을 안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녀들이 계속해서 우리 회사에 남아있는 것은 언더그라운드 용병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우리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계속되는 미스터리였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는 내게 온 것이다. “야경 보러 가실래요?”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들고서 말이다. 야경은 핑계, 둘만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필시 그녀는 우리 회사의 여러 약점과 치부를 들추며 요구를 안 들어주면 떠나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연봉 협상과 권리 증진을 부르짖으리라. 이전에 부사장이 그녀에게 당한 것처럼 말이다. 그걸 볼 때는 재밌기만 했는데, 막상 그게 내 처지가 되니 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하지만 사장으로서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
“사장님?”
깜짝이야.
“왜 계속 말이 없으세요? 기계가 고장이라도 났나?”
계속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그녀는 갑자기 조금 뾰루퉁 한 표정을 짓고는 기계를 마구 치기 시작했다.
“크흠! 크흠!”
“아, 고쳐졌다.”
“애초에 고장 났던 게 아니라네.”
“흐음....그래서 대답은요?”
잠깐 묘하게 나를 쳐다보던 그녀는 그새 생긋 웃으며 내게 질문을 했다. 대답. 그래, 여기서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건 오히려 일을 키울 뿐이다. 여기서는 사장으로서 당당하게 내 영도력을 보여주며 그녀를 감복시킬 차례다.
“알겠네.”
“정말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오늘 본 것 중 가장 밝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단.”
“?”
“내가 본 모습으로 밖을 돌아다니기는 어려우니 이 모습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
그녀가 살기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째려본다. 분명 기계를 통해서 보고 있음에도 내 등골까지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후우...알겠어요...뭐 이게 어디야....”
그래도 내 사정을 알기 때문인지 마지못해 그녀는 이를 수긍해 줬다. 이런 거만 보면 참 착한 소녀인데, 왜 자기들 손익 관련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그녀가 조금 시무룩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럼 퇴근하고 비사중 앞으로 와주세요, 사장님.”
그렇게 말을 하며 그녀는 등을 돌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퇴근 후 밤이 깊어진 시간, 나는 비사중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름 빨리 나온다고 나온 것이었는데 어느새 도착했는지 그녀는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하고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옷도 사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평소에 입는 옷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프리한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멀리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서윤 양, 너무 빨리 온 거 아닌가?”
“아, 사장님! 괜찮아요, 온 지 한 3분 정도밖에 안 지났어요.”
거짓말이다.
“자 그럼 빨리 가볼까요? 따라오세요, 사장님!”
내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그녀는 말을 돌리고 길을 앞장섰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나란히 걷지도, 바로 붙어서 걷지도 않고, 그녀가 앞에 그리고 내가 뒤에 서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형태로 말이다. 도로 위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약간의 어색한 적막감만이 우리의 띄어진 거리 사이로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녀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적당한 높이의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마한 벤치였다. 주위에 있는 것은 세워진지 조금 오래된 듯 희끄무레한 불빛을 띠는 가로등 몇 개와 나무들뿐이었으며, 그 외에는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초라한 모습과는 반대로 앞에 수놓인 풍경은 참으로 굉장했다. 벤치 앞의 뻥 뚫린 공간 사이로 불이 켜진 도시의 모습과 넓게 펼쳐진 하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몇 번의 세계를 거쳐왔지만 이런 풍경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나와 서윤은 나란히 벤치에 앉아 한동안 그 모습을 조용히 감상하기만 하였다. 내 경우엔 벤치 위에 서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어쨌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조용함과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말을 꺼냈다.
“참 아름답구만..”
왜인지 옆에서 서윤이 잠깐 흠칫하는 듯했지만 곧장 자세를 바로잡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 아경 말이죠? 제가 엄선해서 고른 건데 당연하죠~.”
“이런 곳은 난생처음 보는군. 어쩌다 이런 곳을 알게 된 건가? 작전 중에 이런 곳으로 올 일이 없을 텐데..”
“하하, 여자의 비밀이라는 거죠. 너무 파고들으시면 다쳐요.”
“어쨌든 좋은 장소 알려줘서 고맙네. 나중에라도 다시 와봐야겠구만.”
“후후, 그때는 꼭 불러주시기예요?”
그렇게 잠깐의 의미 없는 대화를 마치고 침묵은 다시 찾아왔다. ‘언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번 침묵을 깨는 것은 그녀였다.
“저는...사장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
들려온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 본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는요...학교에서는... 땅만 보고 살아야 했어요. 그런데 여기선 마음껏 하늘을 올려다 보네요.”
“.....”
“다 사장님 덕분이에요.”
이번 세계에 와선 처음으로 본 듯한 그녀의 솔직 담백한 모습이었다. 그러한 탓 때문일까, 그녀가 하늘을 보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자, 지금까지의 긴장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남들이 보기엔 참으로 바보 같은 꼴이었으리라.’같은 자조적인 생각만이 내 머리를 감쌀 뿐이었다. 스스로 반성하며 나는 그녀의 말에 있는 그대로 마음을 전했다.
“아닐세. 내가 뭘 한 게 있나. 자네들이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준 덕분이지.”
“후훗, 사장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어요.”
“....”
“그래도...감사해요. 이 말만은 하고 싶었어요.”
“그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건가?”
“뭐 그렇기도 해요. 이런 장소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하잖아요?”
“그렇기도 하다...?”
“사실은...그냥 사장님과 같이 있고 싶었거든요. 아까 말했죠? 개인 면담 시간이라고.”
그녀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한밤중 고지대의 추위 때문인지 입김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이라 칭하기도 너무나 먼, 아주 오래된 세계의 기억이 말이다. 나는 교장이었고, 그녀는 방송부 부장으로서 많은 학생들을 이끌었던 기억이었다. 그녀와 나는 가깝게 지냈었지만, 끝내 나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었다. 물론 그녀만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젊은 치기에 휩쓸려 부주의했던 나는 유미나를 필두로 다른 학생들 또한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반성은 하지만 떠올리기는 싫은 기억으로서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만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 이 기억이 떠올라 버린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지금, 그때의 서윤이 옆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 덧씌워져 보이는 것일까.
“....사장님...?”
한동안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으니, 그녀는 웃는 것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런, 너무 감상에 빠졌었다. 그녀 말대로 이런 장소에 와버리니, 나까지 감정적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다. 어쨌든 나는 빨리 말을 돌려야 했다.
“하.하.하. 아무 것도 아닐세.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했네.”
“무슨 생각이요?”
“사실 나는 자네가 정식 라이센스를 땄으니 다른 회사로 이직하겠다고 협박하려 이곳으로 나를 부른 줄 알았지 뭔가. 그런데 되지도 않는 망상이었으니 웃길 수밖에. 하.하.하.”
“...도대체 사장님 머릿속에서 제 이미지가 어떻게 돼있는지 참 궁금해지네요.”
아차 실수했나?
그녀가 정색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긴장을 하는 나였지만, 그 긴장은 무색할 정도로 쉽게 풀리게 되었다.
“걱정도 참. 라이센스 받았다고 떠날 리 없잖아요. 이 회사에는 아직 얻어갈 게 많이 남았거든요. 음... 예를 들어 사장님이라거나?”
“....”
웃는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답지 않게 약간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언제나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 의중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참 사람을 골리는 데는 이골이 난 선수다.
그렇게 또 한 번 침묵이 찾아왔다. 아니 나는 그렇다 쳐도 그녀는 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조금 부들부들 떠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부끄러워하는 건가? 아마 그녀도 감성에 취해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하지 못했나 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자니 그녀가 마냥 귀여운 아이처럼 보였다.
“서윤 양.”
“네?”
조심스레 그녀를 부르자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나를 쳐다봤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지금처럼만 있어주게. 죽지도 말고, 변하지도 말고 말이야.”
“사장님....”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지내주게. 알트소대 멤버들이나, 부사장, 시윤 군...아, 그리고 미나 양도...!”
“...사장님”
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녀가 갑자기 허리를 휙 틀고는 양손으로 내 몸체를 꽉 잡은 것이다. 정확히는 기계의 몸체를. 뭐지? 내가 실수했나? 갑자기 너무 잔소리를 한 것이 탈이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스쳐 지나갈 때쯤, 나를 꽉 잡은 채로 지긋이 바라보던 그녀는 말을 꺼냈다.
“전 알트 소대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나온 것은 또 다시 전혀 예상치 못한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내가 당황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소빈이는 다정하고, 린은 가끔 욱하는 것만 빼면 좋은 아이에요. 유진이는....애는 착하고요.”
“그...그런가...?”
“부사장님이나 시윤 선배, 힐데 소대장님도 모두 좋은 분들이라 생각해요. 미나는...음....조금 재수 없는 것만 빼면 괜찮다고 생각하고요.”
“다..다행이구만..”
“그래도 말이에요, 사장님...”
“...”
“지금은...저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마음을 전한다. 아까보다도 더욱 시뻘건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이제는 그저 추위 탓이라고 하기도 힘들겠지. 그녀가 바라보고 있을 머신갑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놀란 표정? 아니면 웃고 있는 표정? 그것도 아니면 무표정일까. 뭐가 됐든, 지금 저곳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내 표정을 그녀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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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강 노잼이라 실강 들으면서 써봤음
2차 창작은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데 너그럽게 봐주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