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통합 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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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득. 서윤은 습관처럼 이빨을 갈고는 곧 후회했다.


아이 참. 이 상하면 안 되는데.


호화 유람선으로 아카데미 운동회 장소까지 이동한다고 했을 때는 사치를 밝히지 않는 서윤이라도 꽤나 기뻤다.

거기다 장소도 특급 휴양지로 유명한 블루로즈 아일랜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완전 좋았다.

회사 차원에서 동행인이 붙는다고 했을 때는, 혹시나 사장님과- 하고 기분 좋은 생각까지 했었다.


서윤은 자신의 순진함을 원망했다. 매우 불쾌한 출장이 될 것 같았다.

그녀의 맞은편에 널찍한 소파에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기대듯 앉은 남자 때문이었다.

동행인은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들었다.


"너무 싫어하는 티를 내시면 서운한데요. 서윤 양."


한국에서는 조금 이를 지 모르지만, 남국의 섬에서는 어울릴법한 화사한 오픈카라 셔츠와 반바지를 걸친 나유빈이 빙그레 웃었다.

항상 회사에서는 무채색의 슈트와 장갑으로 몸을 꽁꽁 숨겼던 것과는 달리 편한 옷차림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그의 오른팔에는 알파트릭스 이노베이션의 로고가 새겨진 은색의 의수도 달려있었다.


서윤이 유미나에게 느끼는 어둡고 질척이는 감정과는 다르게, 나유빈에 대한 감정은 껄끄러움에 가까웠다.

원래 그녀는 어디서 말싸움으로 져본 적이 없었다. 정상인을 연기하는데 도가 튼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상대의 멘탈을 깎아내다가 결국에는 판정승을 쟁취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꽤 여유롭게 그녀를 상대했다. 


평소엔 회사에서 자주 마주치지 않았지만, 때때로 나유빈과 길게 대화하게 될 때면 서윤은 자신이 철저하게 세워뒀던 가면 너머로 내면을 들여다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사람과 출장이라니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불편한 마음을 알 리가 없는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종합 관광 책자와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보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뭐냐고 이 완전 혼자 휴가 가는 기분내는 사람.

어쨌든 진심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어머, 그럴리가요? 부사장님이 함께 해주셔서 든든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걸요."


"왜 하필 제가 여기 있냐는 표정이었지만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에이, 아니에요. 부사장님 요즘 저한테 맘에 안 드시는거 있는 거 맞죠? 말씀해 주시지. 저도 좀 서운하네요."


"그런 일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있더라도, 저는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성격입니다. 아주. 잘."


"그러면 다행이고요. 아무튼, 사장님이 워낙 열성적으로 교육해주셔서..저는 사장님이 오시는 줄 알았거든요."


"아하. 서윤 양에게는 유감스럽겠지만 제가 공정한 남자의 승부에서 이겨서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관리자님을 둘만 보낼 리가 없잖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도 아니고.

나유빈은 굳이 본심을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쨌든, 서윤 양이니 작전 준비는 충분하시겠죠?"


"아시잖아요. 저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하는 편이라는거."


관리자가 보장한 아티팩트란 말에 덜컥 일을 받아 들이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소원구슬이란게 그렇게 뛰어날 리가 없었다. 

정말 현실개변력이 위험할 정도로 높다면 자기 하나만 나서서 될 일이 아니란것쯤은 서윤은 쉽게 깨달았다.

혹시라도 소원구슬이 진짜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관리자에게 점수나 따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이번 작전에 제가 필요했을까 싶어요. 토끼들 잡는데 호랑이가 끼는 건 좀 그렇잖아요?'


"하하.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꽤 높아졌군요. 서윤 양은 잘 쳐줘야 이제 겨우 고양이 아닐까요?'


"어머, 아마추어와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회사 소속 프로 카운터라는 의미의 비유였어요. 자격이 다르잖아요?"


"이런, 미안합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다면 살쾡이 정도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감사해라. 살쾡이만 되도 할퀴면 엄청 아프실텐데."


손톱으로 할퀴는 동작을 취한 서윤을 본 나유빈은 대답하는 대신 입꼬리만 올려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드러난 정보가 극히 일부였지만, 서윤도 과거에 그가 꽤나 급수가 높았던 카운터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관리자와 가까운 사이이니 구 관리국 소속이었음이 분명했다. 그건 업계에서 탑으로 취급받는 카운터보다 한 단계 위라는 얘기였다.

비록 지금은 현역이 아니라지만, 실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 여전히 최소 A급, 혹은 그 이상일 게 분명했다.

이런 사람이니 기분은 나빠도 더 받아칠 말이 없었다.


"뭐, 이렇게 됐지만 작전 중에 저를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 목적은 관광이니까요. 사장님께서 직접 '특별' 교육까지 해 주셨는데, 서윤 양이 작전 중 특이사항을 발생시킬 일도 없겠죠."


나서서 참견하기 싫으니 사고 치지 말란 뜻을 빙빙 돌려서 말하네.

물론 서윤도 소원 구슬을 얻을 때까지는 일단 그럴 생각이었다.


"와. 부사장님도 참. 제가 언젠 그랬던가요? 저, 실수하는 편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아쉬운데요."


"맞습니다. 항상 하시던대로 하세요. 서윤 양이 선호하는 매우 비열하고 사악한 방법도 상관없습니다."


"네에. 역시 제가 일을 좀 잘 하긴 하죠? 칭찬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끊고 서로의 관심으로 돌아갔다. 

나유빈은 콧노래를 싱글거리며 관광 계획을 세웠고, 서윤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죽였다. 


삼십분이 넘는 시간이 조용히 지나갔다.

관심가는 최근 피드들을 대충 훑어본 서윤은 슬쩍 나유빈을 보았다. 

늘 능글맞게 웃는데다 감춰둔 비밀이 많은 남자. 관리자님 옆에 딱 붙어서 감시의 눈길이나 뿌려대는 귀찮은 사람.


그녀가 지나가듯 말을 꺼낸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저, 회사에선 의수를 안 하셨잖아요? ...부사장님."


"예. 그랬죠."


다시 잠깐의 침묵. 그리고 나유빈은 한참을 빼곡하게 적던 메모지를 내려놓고 별 거 아니란 듯 입을 열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항상 제 실수를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의 어리숙했던 자신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유빈은 온전한 손으로 강철 의수를 쓸었다. 아무 의미없는 단순한 동작이었다. 

서윤은 그 행위 너머로 평소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복잡한 감정이 드러난 모습을 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어린아이, 혹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고집 센 소년 같았다. 익숙치 않은 상실감에 사로잡힌 청년 같기도 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새파란 눈이, 선이 제법 굵은 눈썹이, 모양 좋은 입술이, 펜을 집었던 꽤 가늘은 손가락이, 그의 몸 전체가 무엇을 더 말하고 싶은 것처럼 갈 곳 없이 방황했다. 마지막 모습은 아련한 추억에 잠긴, 지독하게 지쳐버린 남자였다. 정말, 아주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서글서글 웃는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서윤은 처음으로 속에 구렁이가 수십마리는 들어 있는 것 같았던 부사장의 민낯을 본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숨겨진 모습을 허락없이 멋대로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거북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괜히 물어봐서."


"됐습니다. 서윤 양에게 배려 같은게 없다는 건 원래 잘 아니까요. 아무튼, 평소에는 그렇습니다만 오늘의 저는 휴가자입니다. 저를 좀 내려놓는 시간이죠. 그러니 딱히 기분 나쁠 일도 없습니다."


"..죄송해요. 정말로요."


"그렇게 사과 받을 일 아닙니다. 그만하세요."


서윤도 그가 담아둔 감정이 단순하게 말 몇마디로 설명할 게 아니라는걸 알았다. 하지만 뭐라고 더 말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친밀하지도 않았고, 서로를 신뢰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서윤은 위로가 서툴었다. 정확히는, 애초에 남을 진심으로 대하는 법을 전혀 몰랐다. 그래 본 적 없었으니까.


처음보다 더 불편해진 지금 이 남자와 더 얘기할 거리도 없었다. 차라리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좀 자두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감았다. 항해는 아직 몇 시간은 넘게 남아있었다.


"아, 서윤 양. 중요한 걸 하나 빠뜨린게 있군요."


"네. 부사장님?"


"깜빡했습니다만, 운동회 중간의 점심은 도시락을 준비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


서윤은 총 맞은 비둘기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참 진지했는데 뭐?


"아무리 휴가라도. 제 직위가 부사장인 만큼 작전중인 사원에게 기본적인 복지는 챙겨드려야죠. 그리고 서윤 양에게는 천만 다행히도, 제 취미가 요리라서요. 말씀 안 드렸던가요?"


"어.......그...렇죠."


우리 그렇게 안 친하잖아요. 서로의 취미같은 거 살갑게 얘기하는 사이 아닌데.

거기다 이 남자가 요리를? 자백제 같은거 넣은 거 아냐? 아님 초소형 마이크라던가.


서윤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알아챘는지, 완전히 본래의 스탠스를 되찾은 나유빈은 왼손으로 따봉을 만들어 보였다.


"간만에 솜씨를 좀 부렸으니 거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히 마음에 들 겁니다."


"어....음...네.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표정이 영 별로군요. 서윤 양."


"그냥...부사장님의 취미가 의외였던것도 있고...갑작스러워서, 좀 이해가 안 되서요?"


보통 같았으면 자연스럽게 자기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데 자신 있으시냐고 받아쳤겠지만, 의외의 모습에 서윤은 돌려 말하거나 포장해서 말하지 못하고 속내를 그대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나유빈은 기대했던 반응인듯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이해하지 못해도 되요. 어차피 맛있을테니까."


머리 한구석이 지끈 아파오는 것 같았다.

빨리 섬에 도착했으면.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게 될 지도 몰랐다.

까득. 서윤은 이제 운동회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 명만 걸려. 진짜 딱 하나만.


* *


"아이씨,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


반짝이는 금발을 트윈테일로 묶은 소녀, 나이엘 블루스틸은 몸을 풀다가 살짝 소름이 돋았는지 등을 긁적였다.


"뭐, 나같은 역사적인 천재에게 질투의 시선은 익숙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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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운동회와 나이엘 담당일진 등판은 다음 글부터 하고 빌드업 쌓는 파트

주말에 쓸랬는데 봉하콘서트에 원순 달리다보니 주말이 홈빡가버렸다 이말이야

개추댓글 항상 꼬맙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