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리온한테 침식체가 됐으니까 다른 마왕들한테 구원받으면 어떨까? 하고 소설을 써 봤습니다.

반응 좋으면 로자리아랑 에델편도 써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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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여기는?"


"정신이 들었느냐?"


마치 오랜 잠에서 깬것 처럼 머리가 멍했고, 또 시야가 흐렸다.

떠지지 않던 눈에 힘을 줘 천천히 빛을 받아들이자 그 앞에는 검은 머릿카락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새하얀 드레스, 새하얀 안대... 그리고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까지... 검게 뻗어나온 머릿결과 어울려 마치 인형같은 여자였다.


"너는..."


"자, 이제 약속대로 날 괴롭혀다오."


약속? 괴롭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저 여자를 괴롭혀야 하는지, 자신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는지...

그런 것 보다 꼬맹이를 빨리 찾아야 했다.


"꼬맹이는 어디 있지?"


"꼬맹이?"


흑발의 여자는 뭘 말하는 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치미 떼지 마.

 우리 꼬맹이, 대시는 어디 있냐는 말이야."


"대시... 모르겠군.

 날 괴롭혀 주겠다는 조건은 분명 둘을 구해주는 것 뿐이었을 텐데 미니스트라?"


"미니스트라?"


으윽! 머리가 아파왔다.

마치 그 이름이 열쇠가 된 듯이 내 머릿속에 나이지만 내가 아니었던... 침식체의 기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꼬맹이를?...미안해...미안해...!

 내가 침식체가 된다 해도 너 만큼은 지키고 싶었는데... 대시...!


"이제 생각이 난 건가?

 자, 나를 괴롭혀다오, 타키리온의 자매... 아니, 전 자매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전 자매... 나는 바로 내 등 뒤에 걸린 머리카락을 잡아 시야에 보이도록 앞으로 옮겼다.

녹색... 군데군데에 검은 색이 섞여 있었지만 분명히 녹색이었다.

원래대로, 인간이었던 시절로 돌아온 건가?


"타키리온도 아니고 타키리온보다 격이 떨어지는 자매한테 매도 당하는 게 더 두근거리겠지만,

 구해달라는 조건이었으니 가슴 아프지만 원래의 외모도 괴롭히는 걸 좋아할 것 같으니 불행 중 다행이군."


구해달라... 내 머릿속에 흘러드는 미니스트라의 기억 속을 뒤지며 저 여자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 시간이 꽤 오래전... 이면세계에서 카운터들한테 팔다리를 잃었던 대시, 아니 스피라의 부품을 찾고자 할 때 였었다.


"너... 예쁜 팔다리를 가지고 있구나.

 내 동생에게 달아주면 그 아이가 기뻐하겠어."


단숨에 팔다리를 잘라 돌아가려 했던 것도 잠시,

눈을 떴을때는 이미 저 여자한테 죽기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건방지구나.

 그렇지만, 그래서 마음에 드는구나.

 고작 3종 주제에 이 나를 상대로 고압적으로 굴다니...! 두근거려! 새 주인을 만들었지만 이 녀석도 마음에 드는군.

 자, 네 오만방자함은 용서하겠다. 나를 더 괴롭혀다오!"


약간 숨이 거칠어진 여자의 안대 너머의 눈은 뭔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침식체가 되었을 때부터 보석 너머에서 흘러오던 기억이 저 여자의 정체를 자신에게 속삭여 줬다.


"뭐 하고 있는거지? 날 어서 괴롭히란 말이다."


"최초의 인형 세라펠... 위대한 분과 동격의 마왕..."


"날 경애하는 눈으로 보지 말아라.

 감히 타키리온의 부하 주제에, 날 매도해라, 질낮고 수준낮은 폭언... 검으로 찔러 내게 고통을 달란 말이다."


그 때의 나 자신이 무슨 말을 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시를/스피라를 위해 돌아가야 한다는 건 침식체 였을 때도 똑같았다.


"지금으로는 그대를 괴롭힐 수 없군."


"어째서인가?

 내 팔다리를 자르려 했던 기세는 어디 갔느냔 말이다?!"


세라펠은 짜증이 났는지 점점 더 힘을 늘려가 자신을 위협했다.

마치 괴롭혀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듯이...


"두려움과 경애를 가지는 대상을 어찌 괴롭힌단 말이냐?

 그냥으로는 안된다."


"그냥으로는?"


"나를... 나와 내 동생을 살려준다면 널 괴롭혀주도록 하지."


미니스트라가 되면서 고정된 오만한 말투로 마치 거래나 제안을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부탁이고 목숨 구걸이었다.


"...좋다, 지금은 내 주인을 만드느라 힘을 썼으니 다음에 오겠다.

 그 거래 기억하도록 하거라."


그렇게 최초의 인형, 마왕 세라펠은 자신을 죽이지 않고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가... 실눈을 뜬 남자, 은발의 키 작은 여성, 그리고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여자의 이상한 검에 난 쓰러졌었다...


"난 분명 그들한테 쓰러져서... 어떻게 된 거지?"


"영혼의 조각 하나 정도면 너희 둘 정도의 인격을 되살리는 건 간단하지.

 설마 그렇게나 다른 마왕들의 악의를 많이 받은 녀석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이야... 솔직히 놀랐다."


둘? 설마...! 


"대시... 나와 함께 되살렸던 아이는 어디 있지?

 대답해라! 세라펠!"


"으흣~! 이 박력, 좋아... 기껏 되살린 보람이 있구나.

 타키리온의 수하 따위로는 너무 아까운 재목이었어."


세라펠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자 나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팔로 세라펠의 어깨를 힘껏 밀어 넘어트렸다.

그리고는 그 위로 올라가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네 주인으로서 명령하겠다, 물음에 답해라."


"그래...! 이걸 원했다, 주인님.

 같이 되살린 여자라면 아마도 하랍 주인님이 대리고 있을 거다."


"하랍? 그건 또 누구지?"


"내 주인, 인형에게는 가지고 놀아줄, 괴롭혀주고 거칠게 다뤄줄 주인이 필요한 법이지.

 그래도 안심해도 좋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대는 하랍과 함께 내 공동 주인이니까 말이다."


흰 색의 안대 너머에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 눈빛과 마주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내해라, 그리고 명심해라.

 내 여동생에게 손을 댄다면 절대로 널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 편이 더 기분 좋을지도 모르겠군."


최초의 인형이 원하는 강한 명령 어조로 말하는 것이 좀 어려웠지만,

대시를 다시 만나려면 이런 것 따위는 몇번이라도 더 할 수 있었다.

한 순간 눈부실 정도의 밝은 빛이 일어난 후, 나와 세라펠은 아까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있었다.


"어머? 내 인형이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였나 보구나.

 나와 함께 인형을 소유할 거라던 타키리온의 전 자매가 넌가?"


마치 인형이나 옷가지를 만드는 공방처럼 천과 솜, 그리고 실들이 정리되어 있는 커다란 방의 안,

붉은색의 제복과 그 안에 선정적인 본디지를 입고 있는 여성, 채찍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저게 세라펠이 말한 하랍인 것 같았다.


"언니!"


그리고 그 옆, 그토록 지켜주고 싶었고, 제대로 좋은 걸 가르쳐주지 못해 미안했고, 제대로 대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자신의 여동생이나 다름 없었던 대시가 밝게 날 향해서 웃어주고 있었다.


"이 언니가 제 덩실이를 고쳐줬어요! 옷도 새로 다 만들어 주셨고요! 어때요? 예쁘죠?"


쉴 새없이 말하면서 자신에게 이것 저것을 보여주고 물어보는 모습... 언제나의 대시 같았다.

하지만, 침식체가 되었던 잔재가 대시한테도 남았는지 평소에 손에 끼던 장갑과 손이 일체화 된 듯한 검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 이건 신경 안쓰셔도 되요.

 자 봐요! 이거 하나도 안 아프고 제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미안해... 이제까지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서... 더 좋은 걸 가르쳐주지 못해서...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해주지 못해서... 그런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한 것까지... 미안해. 

나는 너에게만은 떳떳한 어른이고 싶었어."


"아니에요 언니, 힘들기는 했어도 언니랑 호라이즌 사장님이랑 함께 있었던 사무소 생활이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행복했던걸요?

 그러니까... 언니는 저한테 최고의 어른이었어요."


"진짜...야?"


"더 일찍 말했으면 좋을텐데 미안해요."


"흑, 흑!"


"그러니까 울지 마요.

 여기 하랍 언니도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요? 제 옷이 다 늘어졌다고 다시 만들어 줬어요.

 언니의 오르메타도... 걘 금속이라 안되려나?

 새 옷가지를 맞춘뒤에 예전에 언니가 자주 가던 단골 술집으로 가요.

 호라이즌 대표님도 같이요!"


"...그래,

 거기서 네가 마실건 밀크 쉐이크 정도겠지만 분위기 좋은 곳이야."


"에에? 이제는 진짜 생일 지나서 술 마셔도 되는걸요?"


"그래도 안 돼.

 내 앞에선 넌 언제나 꼬맹이니까."


"아 왜요~? 저도 리타 언니랑 같은 거 마시고 싶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