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통합 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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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보고서에 전부 넣어뒀으니 확인 부탁드려요?”
"회사에 복귀하면 살펴보겠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나유빈은 보고서를 넘겼다. 자세히 훑어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서윤이니 필요한 내용들은 전부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숲에서 목격한 상황이었다. 그의 걱정대로 일이 벌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시그마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서윤이 마지막에 어떤 이유에선지 폭주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거기서 학생들을 전부 죽여버렸어도 상관없었다. 죽은 아이들은 불쌍하지만 그로써 그녀에게 지워질 죄책감도 훌륭한 족쇄가 되었을 것이다.
“진심을 담은 칭찬 감사드려요. 이만큼 열심히 했으니 성과금으로 보상해 주실거죠?”
“힘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한번 고려는 해 보겠습니다.”
“이 좋은 블루로즈 아일랜드까지 와서 학생들하고 유치한 장난이나 했는데, 꼭 반영해 주시면 좋겠어요.”
"유치한 장난이라기엔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더군요."
나유빈은 사실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이성을 잃기 전에 스스로 자제했던 것처럼 그녀가 계속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면, 관리자의 말처럼 세심한 관리를 받아 조금씩 호전될 수 있다면 이런 조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확실성에 걸 수는 없었다. 시간도 여유도 부족했던데다 도박판에 올려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관리자의 목숨이었다.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대상이지 판돈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결정했다. 서윤에겐 튼튼한 목줄이 필요했다.
"서윤 양. 미리 사과하겠습니다."
“네? 갑자기 뭘요?”
그러니 좋은 시간은 여기까지. 이제 휴가는 끝났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전 서윤 양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을 믿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직원 면접때부터."
서윤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멋쩍게 웃었다.
“어머,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에요? 저 이번에도 잘 했는데..뭐 맘에 안드시는 거라도 있으셨어요?”
오늘 하루 인간미를 드러냈던, 즐거웠던 서윤의 얼굴을 생각하면 역시 아쉬웠다. 정말 관리자의 말처럼 그녀는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나유빈은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계획을 위해서 변수는 확실히 제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했다. 서윤은 이제 마지막까지 그를 경계하고 증오할 것이다. 그녀의 광기를 묶어둘 장치로는 그 편이 나았다. 통제에는 애정과 신뢰보다는 증오와 의심이 효과적이었다.
"가면을 쓴 사람끼리는 서로를 참 기가 막히게 알아보죠. 그렇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부사장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아직은 서로 웃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방금 전처럼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서윤은 두려워졌다. 이 남자는 자신이 숨긴 모습을 어디까지 알고있을까? 왜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남자가 안다면,
그럼 관리자 님은?
"지금은 그 알량한 내숭을 떠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아까 숲에 저도 있었습니다.”
“….”
뭘 봤을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입이 막힌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윤 양. 경고하겠습니다. 자신이 정한 선을 넘지 마세요."
"……말씀하시는 바를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우선, 자해는 관리자님의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씨발. 서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주변을 훑어봤지만 기습해도 치명상을 입힐만한 마땅한 흉기가 없었다. 언제부터 알았을까? 그리고 어디까지? 이성적으로는 여기서 이 남자를 죽이는 순간 상황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살의가 솟구쳤다. 변변찮은 무장들은 다 써버렸다. 그럼 그냥 염동력으로? 무리였다. 애초에 기습한다고 해도 죽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단 둘뿐인 객실. 비무장에 지쳐있는 서윤과 쌩쌩한 나유빈. 개새끼. 그래. 이런 상황을 다 계산하고 말하는거겠지.
“서윤 양에게 정신적인 결함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상관없습니다. 서윤 양은 알아서 처신할 줄 아는 영리한 사람이니까요. 미나 양에 대한 감정? 괜찮습니다. 당신이 적정 선에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도 꽤 오래 지켜봤으니 알 수 있었죠. 대외적으로 당신은 유능하고 사회성도 괜찮은 사원이었습니다. 미나 양만 제외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죠.”
“그런데 딱 한 명. 서윤 양이 연출해 놓은 인물상을 벗어나서, 갈수록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이 관련되면, 당신은 걸어놓은 안전장치를 풀어버리더군요.”
"그만하세요. 부사장님."
서윤은 높낮이가 사라진 어조로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가 세워두었던 가면이 박살났다. 나유빈은 드디어 서윤의 날 것 그대로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새까맣게 죽은 눈.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소름돋을 정도로 완전한 무표정이었다.
“지금까지는 잘 숨겨오셨으니 말할 필요가 없었죠. 말했다시피 회사에서도 꽤 훌륭한 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서윤 양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괜찮은’ 수준이었던 미나 양에 대한 감정도 이제는 위험수준입니다. 영악한 당신이니 스스로 느끼고 있겠죠.”
"....아직은, 못 들은걸로 할 수 있어요."
“자해뿐이 아니야. 당신은 알량한 집착 때문에 오늘 네 명을 죽일 뻔 했어. 서윤.”
“그만해, 씨발!”
최소한의 예의조차 잊어버린 서윤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입술을 너무 세게 깨물었는지 진득한 피 맛이 났다. 또다시 마개가 열린 분노와 광기로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 폭주하려는 이성을 정말 가까스로 붙들었다.
“그만하라고.”
부탁이야. 더 말하지 말아줘. 들여다보지 말아줘.
불편하지만 관리자님이 신뢰하는 사람이니 잘 보이는게 좋다. 그런 계산은 처음부터 있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이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의외의 모습들. 속에 품고 있었던 생각보다 많은 상처들. 티나지 않게 언뜻언뜻 드러났던 배려들. 순진하지만 어쩌면 고귀하다고 평할 수 있는 이상. 그것들은 서윤으로 하여금 나유빈이란 사람의 그림을 조금 다시 그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겪어왔던 역겨운 사람들과 나유빈은 본질이 달랐다. 입에 올렸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관리자만큼은 아니어도 이 남자도… 자신을 이해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차 비틀림이 심해져 간다는 것은 자신도 알았다. 그래도 이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당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어.
입가 한 줄기로 타고 흐른 피가 턱을 지나 바닥을 적셨다. 똑. 똑. 핏방울을 노려보며 서윤은 조용히, 애원하듯 말을 내뱉었다.
"제발. 내 마음을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
어느새 주저앉은 서윤을 나유빈은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끊었던 담배가 생각났다.
이미 많은 것들을 버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렇기에 관리자와 나유빈의 계획은 절대 실패해선 안 됐다.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요소가 되기 전에 적절히 가지치기를 해줄 정원사가 필요했다.
망가진 그녀를 이해해 주는 것도, 상처를 보듬는 것도 그의 몫이 아니었다.
나유빈은 서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마음이 깊이 병들어 버린 여자. 처음엔 그녀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순수하게 기뻐할 줄도 슬퍼할 줄도 아는, 평범하게 부모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이제는 알 수 없지만, 자기보다 조금 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이타적인 아이였을지도, 혹은 정의감과 호기심이 뛰어난 골목대장 같은 소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녀는 그대로 자라 어른이 되지 못했다.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었길래.
자신보다 한참 어린 이 여자는, 언제부터 폐허처럼 폭삭 내려앉은 마음을 숨기고 살아왔을까. 누구에게도 진심을 보이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거짓된 호인을 연기하며, 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해 아득바득 남을 짓밟아가면서 여기까지 도달했을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그러나 참혹한 삶을 이어온 그녀에게는 분명 소중했을 감정들을 하나씩 잘라가며 삶을 견뎌왔을까.
그리고 왜 하필 그녀는 자신에게 애정을 줄 사람으로, 자신이 애정을 바칠 사람으로 관리자를 선택한 것일까.
당연히 나유빈에게도 감정이 있었다. 그녀가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관리자는 안 된다. 반쯤 미친 여자 하나를 위해 클리포트 게임의 총 지휘자를 던져줄 수는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 서윤을 특별히 취급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
서윤은 그들이 지키지 못한 세상이 낳은 또 하나의 피해자였다. 결코 가해자가 아니었다. 이해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유빈은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했다. 씁쓸했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절대 쉽게 잘라내선 안 될 마음도, 그래야만 할 때가 있었다.
"이번이 제가 서윤 양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리는 경고입니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엇나가지 마십시오. 자신을 붙잡으십시오.”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이 나아질거라고 믿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지 않지만 그 분을 믿습니다. 그러니 그 분이 결정을 내리시기 전까지는, 저는 서윤 양을 쳐내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쭉 당신을 지켜볼겁니다."
사실 나유빈은 서윤을 아예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자신의 가치를 몰랐다. 서윤과 미스틸테인은 앞으로의 계획에 필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때문에 그는 그녀를 묶어두기 위해 뒤틀린 애정까지도 이용해야 했다. 나유빈은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끼면서 준비한 마지막 말을 꺼냈다.
“계속 관리자님의 옆에 있고 싶다면 넘치는 감정은 버리십시오. 지금까지 해온 것 보다 더. 더 치밀하게 거짓을 연기하십시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서윤 양이 충분히. 이해하셨을거라 믿습니다.”
즉시 답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서윤이 어떤 대답을 할 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나유빈은 그녀에게는 잔인할 시간을 말없이 기다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좋습니다.”
“...좀, 혼자 있고 싶어요.”
“도착하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서윤은 객실에 혼자 남았다. 일어날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모으고 사이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새까만 어둠이 그녀를 포옹했다. 나유빈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그녀의 본성에 대해 관리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었다. 아주 직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 서윤은 자기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이 나아질거라고 믿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감춰둔 모습을 들킨 것이 무서웠다. 버림받는 것이 무서웠다.
역겨운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받을까 참을 수 없이 슬펐다.
추악한 모습을 알아챘음에도 자신을 믿어주는 남자가 황홀했다.
그게 편의에 의해서건 아니건, 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씨이발. 아! 아아아아아아!
서윤은 고장난 수도꼭지가 되어버린 눈을 꽉 눌렀다. 울음소리가 나오는걸 막을 수가 없었다.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관리자님. 절 믿어주셨네요. 이렇게 답도 없이 미쳐버린 년인걸 알고 계시면서. 어떻게, 어떻게 그래요? 사랑해요. 정말로, 존나 사랑해요. 저, 절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게요. 진짜 노력할게요.
그런데 죄송해요. 관리자님. 나을리가 없잖아요. 전 계속 이렇게 살아왔는데. 진흙탕에서 발버둥치면서 이미 손 쓸 수도 없게 망가졌는데. 어떻게 나아요? 어디부터 고쳐야 할까요? 뭘 어떡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치열하게 숨기고 연기할게요. 티내지 않을게요.
사랑해요. 진심이에요. 관리자님. 정말 사랑해요. 누구보다 더. 당신께 버림받으면 더 살아갈 가치가 없어요. 곁에만 있게 해주세요. 다른 어떤 년들보다도 잘 할게요. 시키시는건 뭐든지 할게요. 편리하게 쓰셔도 좋아요. 버리지만 말아주세요. 제 목숨이라도 드릴게요.
그러니, 제발 관리자님도 제 마음을 배신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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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홍어 운동회편 끝
계속 멘탈 정신병자인 애 글만 썼더니 피곤하다 이벤트 스토리가 너무 맘에 안들어서 거의 심리전개로 떡칠해버렸더니 루즈하고 시리어스한 글이 됐네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읽어준 카붕쿤들 넘모 고마어 빤스런 마려웠는데 덕분에 겨우 끝냈다
내가 쓰는 글이 대화보다 문장 위주인 옛날식이라 카챈 유행이나 니즈에는 안맞았던거 같은데 개추메타덕에 어찌저찌 끝까지 썼던거같네. 앞으로 글을 더 써올지는 몰?루겟지만 아모턴 카운터감사합니노
카바~